‘자기표절’이란 말이 있다. 연구 부정 행위로 규정한 용어 중 하나다. 자기가 자기 것에서 중복해 가져다 썼다는 뜻이다.
엄격하고 정직한 규정이라기보다는 등신 같은 규정이 아닐 수 없는데 1) 여섯 단어 이상의 연쇄 표현 일치, 2) 타인의 창작을 자기 것처럼 이용하는 따위를 금하는 표절 규정에 덧붙여 자기 작품에서조차 재활용을 삼가는 엄정 윤리를 표방하지만, 사실 그 모든 규정을 엄수한 작품이라 할지라도 둔재들의 작품은 천재적인 표절에 비하면 참으로 가여운 것이기 때문이다.
고흐가 밀레를 어떻게 표절했는지는 앞서 일러두었다.
그뿐 아니라 소작농과 그들의 생활 양식에 대한 고흐의 친밀감은 자신이 그린 여러 그림 속에서 각 사물의 존재의 양식으로 부활하여 드러난다. 이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의존해나갔던 그가 그린 그림에 나타나는 도상(Iconography)이다.
여기 화폭에 한 여성 소작인이 탄광 같은 자신의 가정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 그림을 그린 같은 해에 그린 저 유명한 작품 <감자 먹는 사람들/The Potato Eaters>에서 묘사된 색감과 구성이 동일한 양식이다.
그뿐 아니다. 좌측의 소박하게 위치한 지푸라기 얹은 의자는 고흐가 장차 3년 후에 그리게 될 아를(Arles)에서의 자기 방, the Yellow House에 배치한 가구와 똑같은 사물이다.
한 마디로 반 고흐가 느꼈던 소장농(과 그들의 삶)에 대한 애착은 그의 저변 모든 환경과 친밀감 있게 자라나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서 생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걸 다른 말로 ‘자기 표절’이라면 자기 표절.
의자뿐 아니라 인물상 역시 고흐의 삶의 저변에서 다시 생기하는 매개 중 하나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감정이입이 고흐 자신으로 하여금 실제 소작인이 되기를 원했다는 뜻은 아니다. 자기 자신을 형성한 것이 무엇이냐는 범주에 관한 논의이다.
고흐는 이 시기 한 예술가로서 자신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갈망했다.
그런 소망은 파리에 있는 동생 테오에게 자기 그림을 부지런히 보내게 만들었다. 작품을 보낼 때마다 뭔가 새로운 작품으로서(새롭긴 뭐가 새로웠겠느냐만) 작품 구매자에게 보다 나은 구매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보냈다. 여러 판매상에게 하나씩 하나씩 보여줬을 것이다. 뽑히기를 기대하면서.
사실 이것은 여러 차례의 거절 끝에 난관에 봉착한 마지막 기획이었다.
수익을 내야만 하는 미술상으로서 동생 테오 자신도 형의 그림들이 팔리기만을 고대했지만 형의 그림을 사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작품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소박한 것은 고사하고 칙칙하고, 우울하고… 과연 이 그림을 누가, 어느 벽에다 걸어 놓겠느냐는 문제. 상업적으론 둔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고흐의 개인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유럽에서의 세기말(fin de siecle)이 안고 있는 문제였다.
그것은 고흐 자신의 내면처럼
지나치게 어둡고,
이 고루한 소작인의 삶의 풍경이 보여주듯이,
최신의 색감으로 도무지 겨뤄보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 태도 또는 삶의 질을 말한다.
그것은 자본주의가 거세게 불어 닥친 ‘세기 말’에 대해 대수롭지 않아 하는 권태, 냉소, 염세, 퇴폐의 총체적 동향을 말한다.
이것을 오늘날 우리가 인상주의라 부르는 것이다.
여러분이 지금 빠져들고 있는 그 고루함을 훗날에 무엇이라 부를까? 다들 희망을 가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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