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창녀 출신 여성을 떠난 뒤의 화풍

창녀 출신 여성과 가정을 꾸렸던 헤이그에서 머무는 동안 고흐는 한 화가로서의 진로에 대해 깊이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시기에 동생에게 쓴 편지에 그런 고민이 잘 드러나 있다.

“테오. 내가 뭐가 되었든 형체가 될 만한 뭔가를 그린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난 분명 풍경 화가는 아니야…”

Man at Work (1883)

이 그림만 보더라도 풍경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가 화면에 배치되어 있지만, 인간의 본질된 형상으로서의 성징이 우리 시선을 모으고 있다. 특히 이 남성의 일하는 손 그리고 나무토막 같은 다리 구조가 우리 이목을 집중시킨다.

여기서 이 남자는 자연과 함께 녹아내리고 있다. 아니 녹아내린다기보다는 땅과 함께 굳어버린 듯하다. 한마디로 땅 위에 식물처럼 심겨 있다. 파릇 파릇한 생명의 식물이 아니라 ‘노동’으로써 땅에 심겨 있는 것이다.

화폭에 담긴 이런 강력한 의제는 땅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불변하는 역사적 실제였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고흐의 이 그림은 헤이그에서의 동시대 화가들과는 전혀 부조화 된 마무리를 맺고 있는 결과물이었다.

대충 대충 먹인 이 붓 터치의 상스러움, 그리고 거친 표면 처리는 깔끔한 마무리를 완성의 기치로 탐닉하던 당대의 미술 소비자로 하여금 몸서리치게 만드는 태도였을 것이다.

그런 자신이 언제나 이질적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고흐는 잘 알고 있었고 그런 현실에 대한 고흐의 의식이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그놈들은(다른 화가들 혹은 일반적 사회 정서를 가리킬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식으로 언제나 결론 내리곤 하지…!”

고흐의 성급한 기질은 이들에 대한 분노를 한층 더 격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의 이런 기질은 그가 감내해야 했던 예술적인 한계 만큼 고스란히 체제 전복적인 이미지로 나타났다.

The Women in the Peat Field (1883)

이 그림은 자기에게 걸맞지 않은 헤이그를 탈출하듯이 자신이 사창가에서 구원해준 여자 시엔에게서 탈출한 직후 드렌트의 한 황량한 시골로 자진해 고립되어 들어가서 그린 그림이다.

잠시나마 사랑한 여인과 그녀의 아이들을 떠나 삶을 오로지 그림에만 쏟기 위하여 찾아 들어간 그곳에서 그린 이 작품명 The Women in the Peat Field 만큼이나 그는 점점 더 우울해져갔다.

농촌 아낙네들이 열심히 농사 짓는 모습 같지만, 토탄(peat) 즉, 습한 지대의 이끼가 분해되어 비료나 연탄 원료처럼 쓰이는 흙무더기를 채집하고 있는 풍경이다. 그 비료 자체가 이 그림 색채처럼 흑갈색인데 고흐는 화폭 전체를 비료로 채우고 있는 것이다. 평화로운 농촌 풍경 같지만 사나운 농촌 풍경인 셈이다.

이 그림은 고흐 자신의 우울함을 통해 소작농을 투사했던 드렌트 기간의 전형을 담고 있다. 그의 정신적 비통함은 흑갈색 비료 그림 속에서의 고통과의 동질감으로 발견된다.

어두움과 밝음 이중으로 된 녹색 하늘은 비료/연료를 캐는 여자들 뒤로 보이는 저 멀리 위에서부터 참을 수 없는 짓누름으로 우울한 화면을 조장한다.

평행하게 묶인 이 색상 묶음은 대지와의 평행을 이루면서, 여성들의 모습은 그림 중간을 가로지르며 차고나가는 노란 태양광 수평선에 의해서 실루엣(검은 윤곽)을 이룬다.

비료/연료를 채집하는 이 여성들이 체험하는 고통의 감각은 우울감에 빠져 자기 연민 안에서 허우적 대며 발버둥치고 있었을 고흐가 사투를 벌이는 바로 그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세 달 정도만 머물렀던 드렌체 그의 집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내가 둥지를 틀고 있는 지붕은 자지러질 정도로 음울하고, 창으로 쏟아지는 빛은 텅 빈 페인트 통으로 떨어지고 있으며, 다 쓸모없게 된 붓의 털 뭉치들은 이 경이로운 암울함, 바로 그 언어 속으로 향한다…”


  • 빈센트 반 고흐 시리즈
  1. [빈센트 반 고흐] 전도사에서 화가로, 어떻게 변신했나?
  2. [빈센트 반 고흐] 초기의 드로잉
  3. [빈센트 반 고흐] 창녀 출신 여성과 살면서 힘든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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