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지난 회 글 [빈센트 반 고흐] 내가 칙칙하냐?에 대한 진중권 교수의 코멘트가 있었다.

인상주의가 아니라 사실주의입니다. 네덜란드에서 그린 칙칙한 그림은 사실주의, 파리에 와서 그린 색깔 들어간 건 인상주의. 초기 몇 작품만 인상주의고..전형적인 고흐 그림은 후기인상주의입니다. 후기 인상주의는 더 이상 인상주의라고 하기 뭐 해요.

_진중권

지난 회 글 말미에 유럽에서 불어 닥친 세기말(fin de siecle) 현상의 경계성(borderline)에 대한 내 평가가 고흐의 칙칙한 그림을 인상주의로 단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주의,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이들의 경계선상에서 산출된 결과물을 무자르듯 잘라낸다는 것은 고흐의 그림에서 심화되기 시작하는 빛이 대체 무엇이냐를 규정하는 것만큼이나 모호하다.

빈센트 반 고흐
2021년 3월 9일

사실주의를 문자적인 의미에서 현실에 충실한 것이라 규정한다면, 느낀 인상에 충실한 것이라는 정도가 인상주의에 대한 문자적 의미일 것이다. 기존의 틀에 박힌 규칙을 시각적인 인상에 준거해 허무는 정도로 그 방법적 화풍을 단편적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인상주의의 가장 도드라지는 특징은 자연이라는 프레임 속 대상이 빛에 따라 그 껍데기 표면에서 일으키는 색 변화에 관심한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작가 자신이 밖에서 관찰했던 풍광을 실내에서 자기 정신으로 통제하고 정리한 결과물을 산출하는 종전의 방식과는 달리 한번 지나가면 다시 잡을 수 없는 순간을 담아낸다는 기치, 이것을 인상주의라 부른다.

그런 점에서 저 ‘사실주의’로 진단 받은 그림과 동시대에 그린 작품들이 과연 틀에 박힌 사실적 묘사인가 하는 의문은 떨쳐내기 힘들다.

‘소작농의 머리’ 시리즈 (1885)

저 칙칙한 아줌마 그림과 같은 시기에 그린 이 작품은 고흐의 초기 작업에 방점을 찍는 <감자 먹는 사람들>(1885)의 완성을 향해가고 있는 습작 중 하나로 꼽힌다.

이 그림을 보면 고흐는 소작농의 삶에 대한 인상을 ‘면’보다는 ‘윤곽’에 담고 있다. 다수의 사람 신체에서 따내고 있는 윤곽들임에도 그것은 하나 같이 동일한 순간인 것처럼 빛을 채집한다. (참조. 검은 두건을 쓴 소작농 여인의 머리, 1885)

남의 머리를 초상화로 담으면서 안식이라도 누리는 것인가? 빛이 그것을 말한다. 이런 소작농 이미지는 칠흑 같은 인내 속으로 확실히 사로잡혀 끌어내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사람 한사람 대조에서 일어나는 강렬함은 여러 얼굴을 그린 군상화보다는 고흐의 기질에 더 맞아떨어지는 듯 보인다.

이 빛은 작업실에서 정리된 빛인가 ‘순간’에 사로잡힌 인상인가?

(사실 ‘인상주의’란 말처럼 구라도 없는 것이다. 정리 안 된 빛이 어딨겠는가. 발가락으로 자연스럽게/인상적으로 뿌려도 작가의 의도는 전제되는 법.)

가령 저 얼굴 큰 아저씨 그림은 마치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떠올린다. 하이라이트를 통해 꾀하는 갈색과 검정 색의 조화는 장차 위대한 네덜란드의 주류로 기억될 텐데, 과연 별은 4년 후에 빛이 나는가, 아니면 이미 빛은 빛나고 있는 것인가.

매너리즘을 붕괴시킨 것이 빛이 아니었던가?

렘브란트 초상화 (1660)

유사성이란 우연이 아니다. 고흐가 이들 선대에서 상속받은 유산으로서의 이 화풍은 빛을 이미 날카롭게 인식한다.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검정색 채색으로 가장 아름다운 것을 그려내는 것은 이제 이 시대 화가에게는 필요치 않을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검정색 안에는 빛이 있단다.”

비록 렘브란트에 상당하는 기술적 효과로서의 성취에 지나지 않은 것이라 하더라도, 분명 이런 유사(類似)는 이제 별을 향해 나아가면서 부단히 배우고자 했던 초기 고흐의 용기 있는 노력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대부분 자기 것을 (그것이 무엇이든)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미화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실주의였든 인상주의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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