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창녀 출신 여성과 살면서 힘든 점

헤이그(The Hague)라는 도시는 고흐가 창녀 출신의 여성과 함께 살면서 그녀에게 달린 두 아이까지 부양해야 했던 지긋지긋한 곳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유화 기법을 숙성시킨 곳이기도 하다. 헤이그로 이주한 고흐는 짧은 기간을 그곳에서 보냈다(1883년).

에텐(Etten)에서 줄곧 수채화를 사용했던 그에게 있어서 이 새로운 도구로의 변신은 행복 그 자체였다. 유화에 대한 이 첫 실험에 얼마나 고무되어 있었는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언급되기도 한다.

평론가들은 이런 끊임없는 열정이 그의 동생에게서 지속적인 후원을 끌어낸 동인이라고 평가하지만, 그 반대일 수 있다. 후원자에게 뭔가 계속 뜯어내려면 뭔가를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표명하지 안 되는 법이다. 빈궁한 자의 삶에 무슨 고무되는 일이 있겠는가.

어쨌든 유화 물감은 수채화 물감보다 더 비쌌다. 즉 후원자인 동생 테오는 더욱 부담스럽고 무거워진 책임을 감당해야 했다.

Cottages (1883) by Vincent Willem van Gogh

이 시기의 오두막 시리즈는 19세기 유화의 전형이지만, 다소 과장된 어두운 톤은 소작농이 생활하는 일상의 풍미를 아주 잘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드러나는 고흐의 화풍은 이미 관습 화풍에서 분리되어 나와 있었다.

이 어둡고 평이한 작품의 핵심은 고흐가 서 있던 바로 그 물리적인 ‘자리’에 있다. 전통적으로 화가들은 자기 화실 안에서 작업에 대한 마무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고흐는 이젤을 들고 나가 자연을 직접 보고서 화폭에 옮겨냈다.

작법에 있어서도 부드럽고 꼼꼼하게 마감질하는 전통 화법 대신에 캔버스 위에 직접 물감을 짜내고, 그 표면 층을 아주 두껍게, 그러면서도 아주 자유롭게 처리하는 작법을 고안해냈다.

이처럼 헤이그에서의 기간은 고흐에게 있어 한 화가로서 발돋움하는 중요한 전기였는데, 홀란트 왕국(Holland)의 정치적인 수도였던 그곳은 네덜란드 예술계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고흐는 그곳의 일원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두 아이가 달린 창녀 출신의 여성과 함께 지독한 삶을 살면서도(그가 다 부양해야 했다) 헤이그에 온 명시적인 목적은 그곳에서 예술적 지위를 얻는 것이었다.

그는 화실 하나를 얻어 운영했는데 첫 작품은 그의 사촌인 안톤 마우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네덜란드에서 꽤 유명한 화가였던 마우베는 en plein air(사생/외광파)의 일원이었으며 이때만 하더라도 고흐는 자신의 열정을 이 부유하고 고급스러운 전통 화단에 입문하고자 쏟아부었다. 네덜란드 화단의 주류들에게 레슨 받기를 자진했던 셈이다.

Houses Among Tree (1883)

위 그림은 고흐의 초기 작품에서 나타나는 전형적 스타일이다. 그것은 일종의 휴지기(diapause)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가 겪는 모든 것을 유감 없이 보여준다.

위대한 네덜란드 화단의 그야말로 전통적인 화풍으로 표현된 풍경일는지 모르지만, 그 옛것과의 이질감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두운 과거가 있는 여성과 살아가는 가난한 삶에서 오는 이질감이 아니라, 가장 낮은 신분인 창녀 출신 여성과 살아가면서도 가장 높은 신분의 화풍을 배우고자 시도하는 자신에게서 오는 이질감일 것이다.

낡은 농가와 허물어져가는 헛간이 이 엇박자를 폭로한다. 아름다운 숲을 흐릿한 배경 속 이미지로 방치함으로써 이 이질감은 증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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