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너(J.M.W. Turner)의 그림 《황금가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그림의 풍경은 옛사람들에 의해 ‘디아나의 거울’이라고 불린 네미(Nemi)의 작은 숲속에 있는 호수의 꿈 같은 환상인데, 오랜 옛날에 이 숲의 풍경은 기묘한, 그리고 되풀이 되는 비극의 무대였다.
이 거룩한 숲속에는 무성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는데 그 둘레를 깊은 밤중에도 종일토록 내내 무시무시한 사람의 그림자가 배회하고 있다. 그의 손에는 언제나 칼집에서 빼어 들 수 있는 칼이 쥐어져 있고, 마치 그는 언제 적의 습격을 받을지 모른다는 듯 조심히 방심하지 않고 자신의 주위를 경계하고 있다. 그는 사제이면서 동시에 살인자다.
그가 경계하고 있는 사나이는 조만간에 그를 죽이고 그를 대신하여 사제직을 맡게 되어 있다. 이것이 곧 성소의 규칙이다. 후보자는 사제를 죽임으로써만 그 사제직을 계승할 수 있고, 그래서 일단 사제가 되면 자기보다 더 강하고 교활한 자로부터 살해될 때까지는 그 자리를 보전할 수가 있다.
이 불안정한 향유권에 의해서 그가 누리는 지위는 사제직과 함께 왕의 칭호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불안한 밤을 지새우거나 더 무서운 악몽에 시달리는 왕은 지금껏 없었을 것이다. 해마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갠 날이나 궂은 날이나 할 것 없이 그는 이 외로운 감시를 계속해야 했고 잠시라도 선잠을 잤다가는 자신의 목숨을 내걸어야 할 판이었다. 경계의 둔화나 힘과 검술의 약간의 감퇴도 그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다. 백발이야말로 그를 사형집행 영장을 봉인하는 것이었다.…이 (왕과) 사제직의 기묘한 규칙은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도…, 이런 관습이 원시시대의 냄새를 지닌 채 제국시대에까지 잔존하여 마치 깨끗이 손질한 잔디밭에 우뚝 서 있는 자연의 바위처럼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 관습에 관한 설명의 실마리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그 야만성이 바로 그것이다.”
ㅡ James G. Frazer, “Diana and Virbius,” THE GOLDEN BOUGH.
19세기 사회인류학의 거장 제임스 프레이저의 역작 《황금가지》의 ‘숲의 왕’에 나오는 첫 대목이다.
종교적인 배척에도 불구하고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우리에게 선사한 진실 몇 가지가 있다. 그 중에 상당한 규칙의 실체는 세련된 진화를 거쳐 우리 사회에도 고스란히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상기 인용에 나오는 왕 또는 사제직 승계의 법칙에 새겨진 야만성이 결코 미신이 아니라는 사실이 진화의 법칙으로 밝혀진 것이다.
다시 말해 권력을 탐하는 교활한 야만성은 태고적 원시 사회에서나 현대 사회에서나 동일한 법칙에 의해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야만인들에게 미신은 야만적인 믿음이 아니라 이미 체제 유지의 법식으로 작동한 원리이다.
이것을 종교라 부른다.
현재 우리 사회는 “더 강하고 교활한 자”가 전임자들을 습격하는 원시 사회의 전형이 현대 정치의 옷을 입고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성스러운 나무 둘레를 깊은 밤중에도 종일토록 내내 배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언제나 칼집에서 빼어 들 수 있는 칼이 쥐어져 있고, 마치 그는 언제 적의 습격을 받을지 모른다는 듯” 달덩이처럼 큰 눈알을 두리번거리며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방심하지 않고 자신의 주위를 경계하고 있다.
그는 월교의 “사제”이다. 월교신자들의 왕이다. “더 강하고 교활한 자로부터 제거될 때까지는 그 자리를 보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