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초기의 드로잉

고흐는 정식으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독학에 의존했다.

그렇지만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해내고자 최선을 다했던 집요한 통찰력은 그가 받지 못한 교육을 대체했다.

일반적으로 회화 세계에 입문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기본 요건 중의 하나는 드로잉 능력이다. 오늘날에는 사실 이 기초를 개무시하고 개나 소나 붓을 휘두른다.

다음과 같은 작품들이 이런 기초를 무시한 대표작들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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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백의 처절한 고통을 조롱하는 게 바로 이런 ‘개나소나 선화’

고흐의 통찰 속에서 드로잉(소묘: 색칠하지 않은 그림)은 가장 중요한 기본기였다.

고흐는 유화든 수채화든 그 작품에 전념하기에 앞서 밑그림에서 활용하는 단색(흑백)의 사용 방식을 집중적으로 고민하고 통찰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스케치(밑그림 그리기) 과정을 그 자체로서 예술의 한 장르라 굳게 믿었다. 다른 말로 하면 ‘한 장르로서의 스케치’를 폄훼하던 당대의 화풍을 거부한 것이다.

소묘에 대한 이 같은 열정은 회화의 토대였다
Head of a Peasant Woman painting

고흐는 말하기를 “…아주 작은 부분에 대한 묘사는 부담스러울 정도의 커다란 크기로 확대되었을지라도 그 부위에 대한 흑과 백의 조화에 기초하여 표현된다..”며 한탄을 쏟아냈다. 이런 탄식이 고흐로 하여금 그토록 소묘에 매달리게 하였을 것이다.

‘흑과 백’에 대한 이 같은 성실함은 다른 화가와는 대조되는 의식적인 발상이었다. 다른 화가들의 경우 손대기 어려운 세밀한 부위는 붓으로 그저 되는 대로 발라버리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흐는 이 같은 드로잉의 단계를 “캔버스 위에 무작위로 놓인 조잡한 모든 종류의 사물에 관한 착념을 털어 내버리는 과정”이라고 여겼다. 그런 다음 이 과정을 거친 “사물들이 신(神)의 이름에 최대한 부합하는 닮은 꼴로 다시금 발견될 수 있도록 (그 사물에) 깊은 생각도 입히고 때로는 어두움도 입히는 것”이 회화 행위라고 여겼다.

소묘의 이 핵심 기술을 정복하도록 만든 그의 투지는 이 그림에 나타나는 것처럼 헤이그에 머물던 시절 거의 모든 시간을 소묘로 보냈던 그를 상상하기에 충분하다.

고흐의 초기 드로잉

두 모델이 입은 의상에 의도된 구성을 통하여 소녀의 젊음과 남성의 기품 있는 연륜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흑과 백의 조화(소녀는 백, 노인은 흑)를 깊이 체험하도록 만드는 구성인 셈이다.

‘순수함과 연륜’ 사이, 그리고 ‘삶의 시작과 끝’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이 병렬 관계는 연민과 냉철함으로서 ‘흑과 백’의 관계처럼 현시되고 있다.

이 나이든 남자는 이 시기 고흐의 작품에서 종종 등장하는 인물이다.

같은 남성임으로 미루어 같은 시기로 추정할 수 있다
A Sower, Vincent van Gogh, Dec. 1882.

고흐는 풍경화의 밑그림에도 성실했다. 아래 그림은 후기의 드로잉이다.

후기(1888년경) 드로잉 Street in Saintes Maries de la Mer

삶에는 고통이 더해지고 있지만 선은 점점 부드러워지고 있음이 포착된다. 자신만의 향을 뿜으면서.

‘이 정도는 나도 그리겠다’ 싶어 그린 듯한 앞의 샘플들과 비교해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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