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죽으려고 빵을 먹는단다”

집을 나서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오는데 도로 인접한 동의 한 4, 5층 되는 높이에서 절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지 음성 같기도 하고 할머니의 남성화된 음성 같기도 하고, “밥 좀 주세요”“밥 좀 주세요” 내가 가던 길을 멈추고 올려다 보자 더 큰 목소리로… “밥 좀 주세요”“밥 좀 주세요” 위에서는 내가 보이는 모양인데 열린 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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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릅나무’ 밑의 욕망

1850년 뉴잉글랜드 어느 마을, 거대한 느릅나무 그늘에 가려 항상 음습한 생활을 이어가는 한 농가가 있었다. 캐벗(Cabot)이라는 노인의 가정이다. 이 집에는 엄청난 거구에 탐욕스럽고 색(色)을 밝히는 노인 캐벗과 그의 첫째 아들 에번(Even), 둘째 시미언(Simeon), 셋째 피터(Peter)가 살고 있다. 시미언과 피터는 금광에서 노다지를 찾겠다며 캘리포니아로 갈 꿈에 부풀어 있고, 에번은 아버지의 재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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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 선포문 번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월 6일(현지시각)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한다고 발표했다. 다음은 발표문의 요약 번역한 것이다. “내가 집무실에 왔을 때(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나는 열린 눈으로, 그리고 매우 새로운 생각으로 세상에 대한 도전을 약속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실패한 전략을 반복함으로써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모든 도전 과제에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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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행위’가 있었느니라! (괴테)

괴테가 “태초에 빛이 있었다” 하지 않고 “태초에 행위(리듬)가 있었다”고 한 것은 무엇을 말하려 했던 것일까? “태초에 빛이 있었다”란 기독교 성서 가운데 구약 부분의 가장 첫 책에서 천지창조를 상징하는 명제인데, 신약성서의 요한복음에서는 이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는 개정된 기치로 언어(λόγος)에 천착함으로써 응답했다. 괴테는 이를 한층 실존적으로 격상시켜 ‘죄’라는 인간의 불가항력적 본성을 입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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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과 문장(文章)으로 이룬 나라

    영화 ‘남한산성’(2017)은 소국이 겪어야만 하는 대국(大國)과 맺는 화친(和親)의 정당성을 아주 잘 묘사해 낸 영화이지만 원작 「남한산성」의 본질은 잘 옮겨 내지 못한 영화다. 1. 문장의 발신(發身) 원작은 화친의 정당성이 아니라 그 화친을 둘러싸고 오고가는 문장(文章)의 흥망성쇠를 묘사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즉 ‘남한산성’의 핵심 주제는 ‘문장’이다. 원작 초입에는 이런 표현이 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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