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석탄 색인 줄 알았더니 블루

빈센트 반 고흐 시리즈 지난 회 글이 무려 9개월 전에 작성한 글이다. 거듭된 인생의 실패(고흐가 언제 성공한 적 있었느냐만)와 습작의 시기를 거쳐 고흐식 ‘인상주의’가 태동하게 된 계기를 지난 회까지 살펴보았다.

다음 작품은 고흐가 습작과 수련에 매진하던 뉴엥에서의 모든 기간을 통틀어 가장 특기할 만한 작품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고흐의 화법은 캔버스를 한 곳에 고정해 놓고 그리되, 그 그림이 다 완성될 때까지 비교적 빠른 속도로 그리는 방식을 선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빈센트 반 고흐
The Potato Eaters (1885)

그러나 이 그림 만큼은 소작농을 화폭에 담아낸 다양한 초상화 습작과 함께 향후에 연작이 될 것을 가늠하며 나름 규모를 가지고 그린 흔적이 포착된다는 사실이다.

배경에 비해 지나치게 크고 거칠기만 한 형상들이라든지, 삶이 짊어진 노동의 무게로 얼룩진 표정이라든지, 그런 묘사는 고흐가 길게 내다보고 있는 흔적들이다. 특히나 풍화 작용이 할퀴고 지나간 것만 같은 이들 군상의 피부는 격하게 강조됨으로써 고흐 화폭 특유의 ‘소작농’을 천명하고 있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화가 밀레처럼 이 시기 반 고흐의 주된 목적은 그 땅의 고된 삶을 사실적으로 대변하려는 시도였다.

이 사실주의가 보여주는 바는 이것이다:

한 가정의 식탁 교제의 시간으로 실내를 조정하고 있으면서도 이 그림 속의 내부 자체는 모종의 동굴 내지는 동물들의 토굴처럼 보이고 있다.

먹을 것이라고는 삶은 감자와 커피뿐이다. 이것이 소작농의 주식이다. 특히 이들의 검게 그을린 피부 톤과 하이라이트 처리된 얼굴 뼈들은─ 이는 마치 무슨 케리커쳐처럼 보일 지경이다 ─고된 노동의 강도에 지치고 지친 가축의 도상을 넘어 차라리 야수들의 도상으로 환유되고 있는 것이다.

고흐의 편지 중 일부 다음 소절은 이것이 분명 연작을 목적하고 그린 것임에 틀림 없다는 확신을 우리에게 준다.

“나는 등불 아래서 감자 먹는 그들의 접시에 놓인 참된 손,
땅을 파던 바로 그 진정한 손을 강조하려고 했어.
그리고 그 손을 써서 얻은 음식이 얼마나 정직한 것인지를 그리려고 애썼어.”


이와 같은 뉴엥에서의 시기 마지막 즈음에 다다라 고흐의 그림은 당시 인상파 화풍의 영향을 받은 듯 비교적 밝은 특징을 보인다.

그렇지만 인상주의는 1874년 경부터 떠오르기 시작한 화풍임을 감안할 때, 고흐의 이 화풍으로의 이행은 아주 서서히 진행 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아니, 실제로는 고흐가 아직 이 화풍이 뭔지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일 수 있다.

그 시절에는 화풍에 관한 활발한 패션쇼나 색채 복제가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현장인 전시회 따위가 오늘날처럼 활발한 시기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화풍/패션의 이행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상대적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우리와는 다른 세계와 현장 속에서 살아 가는 고흐가 이 화풍을 (우리처럼) 입체적으로 이해했을리 만무하다.

이는 무엇보다 도저히 팔아먹기 불가능했던 자기 형의 그림에서 뿜어 나오는 칙칙한 색채들로 인해 낭패감을 토로했던 동생 테오의 편지를 통해서도 입증되는 사실이다. 동생은 당시 유행하던 인상파 화가들이 얼마나 새롭고 밝게 그림을 그리고 있는 지 그 흐름을 형에게 설명하기 위해 애썼다.

그런 점에서 반짝이는 풍경화, 천연 색과 똑같은 색채로 그리는 수준의 인상주의 화풍보다 더 진보된 인상주의 화풍을 고흐가 이해하게 된 계기는 적어도 동생이 아닌 제3의 경로를 통한 자극이었을 임이 확실하다.

그것은 한마디로 매일의 일상을 사실주의로 재해석하는 개념으로 재형되었다.

Woman Digging (1885)

<땅을 파는 여인>(1885)은 고흐가 이 당시에 그 인상주의를 이해하고 그런 화풍을 시도한 전형적 예시일 것이다. 이 노동하는 여성의 등을 아주 완전히 구부러뜨리는 바람에 이 여성의 형상은 그야말로 얼굴 없는 상이 되고 말았다. 고흐는 언제나 그렇듯이 여자 개인의 인격과 개성이 아니라, 어떤 개성과 인격 속의 여성을 그려내고 있다.

그녀의 푸른색 드레스, 그것은 뉴엥 소작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색상이다. 그것은 어떤 (소작인의) 유전적 유형으로 이 개념을 강조하고 있다.

고흐는 이 색채를 참으로 사랑한 것같다.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내가 봤던 중에 가장 아름다운 청색을 입고 있어. 그것은 그들이 직접 직조해 짠 거친 마로 되어 있는거야-”

여기서 보여주는 색채에 관한 이와 같은 전망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모종의 다른 테마로 편입되고 있는 것으로 엿보인다. 상기의 그림은 마치 <직조공>(1884)에서 보여준 것처럼 가난에 관한 인상주의적이고도 낭만주의적 관점을 표지하며 노동이 갖는 위엄성 따위를 환원해 넘겨주고 있다 하겠다.

어쨌든 석탄 색인 줄로만 알았던 저 소작농들이 입은 옷 색상은 푸른 색이었다는 사실.


  • 빈센트 반 고흐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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