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도상해석

지금 나는 이 글에서 어려운 시도를 하고 있다.

아래 10년 전 캡춰에서처럼 10년도 넘은 글을 통해 ‘10년이 지난 글을 통해 나를 심판하고 있는 나’를 심판하는 시도이다.

흔히 밤새 쓴 편지나 일기를 다음 날 아침이면 찢고픈 충동이 인다는데 나는 “흔히 밤새 쓴 편지나 일기를 다음 날 아침에는 찢어버리고픈 충동이 일기 마련”이라면서 “10년도 넘은 이 텍스트는 나의 심판주”라 적고 있는 나와 다시 마주한다.

10년에서 다시 10년이 넘은 나의 텍스트는 나를 심판하는 판관으로 임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심판자 입장을 자처하여 감히 “…당신의 인생이 지금 그런 꼴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라 경멸하는 나 자신을 향해 반성과 도덕을 입히는 방식으로 내 자아를 재 게시하고 있는 ‘나’와 지금 나는 재차 마주한다.

이것이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시녀들>의 작법이다.


Las Meninas(the Maids of Honour), 1656년

벨라스케스는 17세기 스페인의 국왕 펠리페 4세의 선택을 받아 궁정 화가로 들어 간 인물이다.

말이 화가이지 왕궁의 시종이었다. 당시 스페인의 화가 지위는 그리 높지 않았다. 대신에 안정적인 예술 활동을 할 혜택이 주어졌다. 하지만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만 그릴 수는 없었다. 임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왕실의 가족들을 그려내는 일이 그의 직무였다.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는 첫 아내가 일찍 죽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마저 죽은 처지였다. 재혼한 펠리페 4세는 아이를 얻었는데 그 아이가 바로 이 그림 속 주인공 마르가리타 공주이다.

그림 중앙의 어린 소녀가 공주 마르가리타이고 주변의 소녀들은 모두 시녀다. 그리고 화면 앞 우측에는 어린 소녀 같으면서도 나이든 얼굴을 한 여성 한명이 서 있다. 그녀는 시녀가 아니라 난장이 어릿 광대이다.

벨라스케스는 루벤스와 더불어 티치아노 그림을 연구한 화가였을 것이다. 화면에 통일성을 부여해 전체 화면을 통제하는 것이 티치아노 화풍이다.

이 그림 화폭 속에는 거울 속에 비친 두 사람을 포함해 모두 11명이 배치되어 있다. 11인 안에는 이 그림을 그린 벨라스케스 자신도 포함된다. 왼쪽에서 팔레트와 붓을 들고 있는 인물이 바로 벨라스케스 자신이다.

이들 11명 중에서 거울 속 두 사람을 빼면 8명이요 화가 자신을 빼면 10명이므로 사실은 화가 자신이 주인공이다. 마르가리타 공주를 제외하고 시녀도 2명이요, 어릿 광대도 2명이요, 어두운 그늘에 가린 남녀 한 쌍의 시종도 2명이요, 문앞 계단에 선 호위 시종은 맨 앞에 앉아 있는 개와 한 쌍을 이루기 때문이다.

벨라스케스 자신이 빠졌어야만 비로소 마르가리타 공주가 주연이라 할 수 있다.

가장 결정적으로는 이 화폭이 누구의 시점으로 구성되었느냐가 이 수비에 이은 결정타를 날린다.

거울 속에 비친 남녀 한 쌍은 다름 아닌 마르가리타 공주의 부모 펠리페 4세 부부이다.

그들은 왜 화폭에서 거울 속에 들어가 있을까?

펠리페 4세는 다른 군주와는 달리 초상화로 등장하는 것을 기피하였으나 이 작품에서 만큼은 거울 속의 인물로 등장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한다.

그러니까 이 그림의 표면적 주제는 바로 이 화면을 보고 있는 ‘시점’ 자체인 셈이다.

하지만 이 화폭의 진정한 주제/주인공은 그 시점 안에서 가장 돋보이는 구성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벨라스케스 자기 자신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미술사가 H. W. Jason은 이 작품의 진정한 제목으로 ‘시녀들’(the Maids of Honour)이 아닌 ‘화실 속 화가’(Painter in the Studio)라 부른 것이다. (당시 궁중화가에게는 자기 작품에 제목 정할 권한이 없었음)

앞서 10년 전의 텍스트를 통해 자기를 심판하겠다든지, 자기 반성을 입혀 자기를 게시하는 식의 도덕적 현시는 다 이런 화폭 속 자기 현시에 사용된 기전(機轉, mechanism)의 유사라 할 수 있다.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윤리와 종교도 이런 기전에서 파생하는 것이다.

종교적 회심조차도 ‘돌이키고 있는 자기 자신’을 자기에게 현시하는 기법인 까닭이다.

물론 이 글의 시도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보여주는 것이 주제인지 아니면 그 화폭 속에 나를 현시하는 것이 주제인지 해석은 독자의 몫이다.

이것이 이 그림에 나타나고 있는 화법이며 훗날에 이를 바로크(Baroque)라 부른다. 일그러진 진주(pérola barroca)라는 의미에서 온 말이다.

The Maids of Honour by Diego Velázquez (1599–1660)

마르가리타 공주는 21세에 요절하였는데, 담론가들은 당시의 여성들이 자신을 창백하게 보이기 위해 납 향을 자주 들이켰다는 고증에 착안해 저 그림 속 어린 공주가 들고 있는 빨간 호리병이 납이 들어 있는 병이었다카더라 추정하지만 당시 왕가에 요절이 흔했던 이유는 근친혼의 영향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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