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교정자의 손을 거친 교정 표기 원고를 접했을 때 다양한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어떤 교정자는 문법적 칼날을 댄 흔적을 남긴다. 다른 부위에 손 댄 흔적이 전혀 없다. 오로지 문법적 칼의 흔적만 남기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교정자는 의미의 칼날을 댄 흔적을 남긴다. 원저자의 불분명한 의미를 펴거나 잘라내 더욱 예리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원저자의 의미보다 더 진본이라 할 수 있는 편집이다. 이들 두 교정자는 탁월하다. 원저자의 숨결을 헤치지 않는다. 자기가 어디에 무슨 칼을 댈지 잘 아는 편집자들이다. 그런데 문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 하고 칼 댄 흔적을 남기는 교정자가 있다. 원저의 의미를 전혀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칼을 댄 것이다. 대체 이 무딘 칼이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 사본의 형태로만 남아 있을 따름이다. 우리가 접하는 현존하는 지식은 모두 이런 방식으로 전수되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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