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유향, 몰약의 기호와 해석

예수 탄생일에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알현하면서 바쳤다는 황금, 유향, 몰약을 기독교에서는 대개 예수의 세 가지 신성한 직분 곧 왕, 제사장, 선지자를 상징한다고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이해들은 상투적인 교의의 전형으로, 그 각각의 본원적 기호를 빗나간 것일 수 있다.

myrrh

몰약은 고대 아카드어 낱말 무루(murru)에서 파생되어, 아랍어로는 무르(murr), 히브리어로는 모르(מוֹר), 희랍어로는 뮈라(μύρρα)라는 어휘군을 형성하였는데, 한글 ‘몰약’은 이들 중 희랍어를 음역한 것이다. 고대로부터 방향제, 방부제, 소독제, 위장약, 생리불순치료제 등 약재로 활용된 몰약은 이집트문명이나 헬라문명에서 향유의 원료로도 사용되다 근대 들어 화장품 원료가 되기도 했다. 몰약이 전파된 루트는 서아시아 일대에서 성행하던 것이 실크로드를 따라 서쪽으로는 희랍·로마, 동쪽으로는 페르시아와 인도로 각각 퍼지게 되었다. 몰약의 채집은, Commiphora abyssinica라는 학명을 쓰는 감람과 계통의 꽃잎/ 열매 식물 줄기에서 나오는 즙을 받아 말리는 적황색의 고체 덩어리들이다. 향기는 특이하지만 무엇보다도 무척 쓴맛인 이 몰약은 아랍어 명칭 무르(murr) 자체가 아주 쓰다는 뜻으로서, 희랍 신화에 따르면 ‘뮈라’(Μύρρα)라는 한 여성이 거부할 수 없는 신탁에 따라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아도니스(Adonis)를 낳게 되는데 이와 같은 운명적 오명을 뒤집어 쓰고서 쓰디 쓴 고난의 삶을 살아가다 아이마저 불행한 죽음을 당한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이 아들의 이름 아도니스를 셈어로 바꾸면 아도나이(Adonai/ אֲדֹנָי) 즉, 주(Lord)이다. 참고로, 예수님 모친의 이름 마리아(Μαρία)는 ‘쓰디 쓰다’는 뜻을 가진 모세의 누이 이름 미리암(מרים)에서 비롯되었다고 루터는 주석한 바 있다.

Arabic frankincense

유향은 고대로부터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희랍, 로마에서 향료로 각광을 받았다. 히브리어로 레보나(לְבוֹנָה), 아랍어로는 루반(luban), 희랍어로 리바노스(λίβανος), 라틴어로 올리바눔(olibanum)이라 하는데 모두가 다 유백색이란 뜻이지만 이 말들의 어원인 아카디아어의 라바나툼(labanatum)은 사제(la-bi)가 나무 진(na)을 태우는(tum) 데서 연유한 것이라 한다. 유향의 채집은, 아주 깊은 숲에서 용나무 비슷한 나무의 줄기를 도끼로 찍어내면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진액을 받아 굳혀 고체로 만드는 것이었다. 아가서 4장 6, 12-16절이나 전도서 2장 5절에서 솔로몬의 시어로써 “유향의 언덕”으로 묘사되는 대목을 감안할 때 이는 솔로몬 정원 또는 성전에서의 향내나는 나무인 점, 그리고 아랍어 루반(luban)은 아예 우유라는 뜻임을 감안 할 때 총체적인 (생명의 젖이 흘러내리는) 성전을 그 기호로 볼 것이다.

다음은 황금이다.

황금은 대개 기독교인들이 왕권을 상징한다 하여 어떤 예물로 이해하지만, 이는 황금이라는 실물 자체의 기호라기보다는 황금이라는 어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희랍어로 황금은 크리소스(χρυσός)이다. 당연히 음가 자체가 ‘그리스도’를 지향한다. 참고로 4세기에 동방 콘스탄티노플에 대주교 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의 이름이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Ιωάννης ο Χρυσόστομος, 349-407)였다. 존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으로 더 잘 알려진 이 사람의 별명이 크리소스톰 즉 ‘황금의 입’이다.

가장 오래 된 황금송아지 상

그를 대부분 뛰어난 설교자였다고 들 회자하면서, 오늘날 맘몬의 화신들과도 같은 자기들의 현대적 명설교자들을 가리키는 기호로 남용하지만 실상은, 크리소스톰의 시절이 시절이었던 만큼 그것은 ‘교리’에 능한 설교가였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처럼 교리를 파괴하는 설교 행위가 아니라.
즉 설교로 (그리스도의)교리를 세워나간 것이다. 황금 크리소스(χρυσός)는 그런 의미로서의 기름부음/크리스토스(Χριστός, Christ)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다른 말로 하면 크리소스톰이란 별명은 ‘황금의 입’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입’이라 불렀어야 했던 것이다. 인간의 욕망이 그의 입을 황금으로 둔갑시킨 셈이다.

태초에 ‘행위’가 있었느니라! (괴테)

괴테가 “태초에 빛이 있었다” 하지 않고 “태초에 행위(리듬)가 있었다”고 한 것은 무엇을 말하려 했던 것일까?

“태초에 빛이 있었다”란 기독교 성서 가운데 구약 부분의 가장 첫 책에서 천지창조를 상징하는 명제인데, 신약성서의 요한복음에서는 이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는 개정된 기치로 언어(λόγος)에 천착함으로써 응답했다. 괴테는 이를 한층 실존적으로 격상시켜 ‘죄’라는 인간의 불가항력적 본성을 입혀 응답한 것이다.

그 태초에 행위가 창조되는 과정을 아래와 같이 가정할 수 있다.

 

§
 

1. “감각에 속해 있지 않았던 ‘지각인 것’은 없다.”

2. 우리 인식은 하나의 먼 기억에 의존한다.

 

3. 겪었던 어떤 느낌을 회상 시키는 순간에야 무엇인가 의미케 된다.

 

 

4. 아는 것만 본다.

 

 

5. 어떤 사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없을 때 그것의 존재를 받아 들이지 못한다.

 

 

6. 하나의 메시지를 해독하는 것은 곧 상징적 한 형태를 지각하는 것이다.

 

 

 

7. 그러므로 장차 감정으로 인식될 먼저 존재했던 그것들(놀람이나 두려움이나 믿음이나 사랑 그런것들)과 환경(맹수나 가난이나 그런 것들) 사이에서 인간은 몸짓으로 존재했던 것뿐이다.

 

 

8. 언어는 거기에 입혀진 것이다.

 

 

 

9. 그런 점에서 인간은 들숨과 날숨의 반복 속에서 떨어져 나온 외침으로서 한 존재인 것이지 자기네끼리 스스로 만들어낸 생명이 아니다.

 

 

10. 이것이 기독교인에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인 것이다.

 

 

§
 

“태초에 ‘말씀’이 있었느니라!” 이렇게 써야 하지 않을까.
벌써 여기에서부터 막히다니! 누가 나를 도와줄 것인가?
‘말씀’이라는 낱말을 과연 이렇듯 높이 평가해야 하는가.
정령의 깨우침을 받았다면,
이 낱말을 다르게 옮겨야 한다.
“태초에 ‘뜻’이 있었느니라!” 이렇게 써야 하지 않을까.
네 펜이 경솔하게 서두르지 않도록
첫 행을 심사숙고하라!
과연 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리는 것이 뜻일까?
“태초에 ‘힘’이 있었느니라!” 이렇게 쓰여 있어야 마땅하리라.
하지만 이것을 쓰는 동안에 벌써 뭔가가 미진하다고 경고하는구나.
정령이 도와주는구나! 불편듯 좋은 생각이 떠올라
자신 있게 쓰노라. “태초에 ‘행위’가 있었느니라”! (“Im Anfang war die Tat!”)
― 괴테의 「파우스트」 중에서

‘마더!’ 보고 놀랐을 기독교인을 위하여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신작 <마더!>는 2014년작 <노아> 만큼이나 기독교인에게 불쾌감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이 영화를 보고서 불쾌했을 기독교인이 계실 것 같아 몇 가지 기호들에 대한 해석을 드리고자 한다.

<노아>의 주제가 ‘아버지의 정의’였다면 <마더!>의 주제는 ‘어머니의 정의’이다. <노아>에서도 세상의 종말을 겪는 한 가정과 그 성원들이 신(神)을 이해해가는 과정을 담았다면, <마더!>에서 역시 세상의 파국에 대한 신의 입장을 한 가정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두 영화에는 공히 종말과 파국만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창조―종말―새창조’ 라는 아로노프스키 특유의 스키마를 보여준다.

<노아>에서는 우리가 평소 알고 있던 온순한 이미지의 노아는 온데간데없고 인류 멸종을 마땅히 여기는 의(義)로 충만한 노아만이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타락한 천사와 함께 살륙을 마다 않는 매정한 인물로 묘사되는 노아를 보고 있자니 심히 불편했지만 영화가 꾀하는 이야기의 완성도에서 거의 상쇄가 되었다. 노아가 하나님의 의를 오해했던 것이 판명되어 마지막에 가서는 우리가 알고 있던 노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마더!>는 지나치게 연극적 요소를 가미한 바람에 독립영화 스케일로 퇴행 해 있다. 그렇지만 <노아>를 압도하는 해체를 구사한다. 그 해체가 어느 정도인지,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가히 미국의 안노 히데아키(庵野秀明)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 해체된 기호들을 다음과 같이 재구성할 수 있다.

  •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의 손님접대(hospitality) 플롯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얼개이다.
  • 손님은 천사들이 아니라 아담과 하와다.
  • 아담과 하와가 주인의 서재에서 함부로 물건을 만지다가 가장 소중한 물건 하나를 깨뜨린다.
  • 그들은 쫓겨나고 서재는 봉인된다.
  • 쫓겨난 둘은 성에 탐닉한다.
  • 두 아들 카인과 아벨이 집에 들이닥쳐 서로 다투다 카인이 아벨을 죽인다.
  • 아벨의 피가 그 집에 스며들어 집에서 핏소리가 난다.
  • 집은 그 자체가 세상이요 토양이다. 창세기의 첫 글자가 집을 뜻하는 ‘베트’(ב)로 시작되었기에 창세기로부터 흐르는 서사시의 주제 자체가 집이요, 그 집 주인은 시인이다.
  • 그래서 이 집 주인의 직업이 시인이다. 아내는 오로지 집밖에 모른다. 진흙을 잘 다루는 그녀는 그 자신이 곧 흙/ 땅이기 때문이다. 반면 시인은 이상이 높고 크기 때문에 그 마음을 해량할 수 없어 언제나 무심하게만 느껴진다.
  • 집에 찾아온 손님을 귀히 여길 따름이다. 무례한 손님, 폭력적인 손님, 음란한 손님까지 이 맘 좋은 시인이 모두 그대로 방치하는 통에 땅인 아내는 미칠 지경이다.
  • 집에 온 손님들은 때로는 광신도로, 때로는 폭도로, 때로는 진압 공권력으로, 변신해가며 집을 유린한다. 이 광신도들과 폭도들은 시인인 남편의 시에 열광하되, 성인(St.)이 된 남편의 표식이라도 얻고자 열광한다.
  • 아내가 사내아이를 낳았다. 집은 이미 전쟁터로 변해 있고, 광신도들이 저 위대한 시인의 표식인 아이를 채가서는 서로 돌아가며 안아보고 짓 까부르다가 그만 아이를 죽게 만든다. 그러고는 그 표식인 아이의 시신을 생식으로 먹는 것이 아닌가! 광신도들.

이러한 구성 속에서 이 영화의 의미를 밝히는 의미심장한 다이얼로그 하나가 나온다. 무례하기 그지없는 손님들에게 관대한 이 시인 남편은 손님들에게 알현시킨다는 명목으로 갓 태어난 아기를 아내에게서 앗아가고자 한다. 빼앗기지 않으려는 아내에게 남편이 I’m His Father. 라고 하자 아내가 이렇게 받아친다.

I’m His Mother!

심오한 말이다.
고대의 문명들은 문명이 생겨나기 전부터 우상숭배를 시작하였는데, 대부분 하늘은 주신으로 대지를 여신으로 한 쌍을 이루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하늘과 대지가 만나야만 땅의 소산이 맺힌다고 이해하였던 것이다. 농경사회 즉, 땅의 조건과 하늘의 조건에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농경사회에서의 당연한 종교적 관습이었다. 그래서 풍요란 본성적으로 우상숭배와 직결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하늘 우라노스와 대지 가이아가 있다면, 이집트 신화에서는 하늘 누트와 대지 게브가 있었다(여기서는 누트가 여성).

BC 950. 이집트. 중앙에 팔을 벌리고 있는 것이 대기의 신 수(Shu), 아치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이 하늘의 여신 누트(Nut), 그리고 아래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것이 땅의 신 게브(Geb).

성서에도 이들 남성성과 여성성의 신성적 모티프는 배경이 되어 나타나지만 유대교는 신의 여성성은 절대 수용하지 않았다. 기독교 중에서 개신교는 그러한 전통을 보전하고 있지만, 가톨릭의 경우만 이 여신 숭배 모티프를 이어 가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하늘 우라노스 격인 시인을 무심한 남편이자 무심한 창조주로 묘사하는 반면, 집에 대한 애착과 살림 밖에 모르는 현숙한 그의 아내는 인간이 딛고 서는 땅으로 묘사함으로써 인간 군상들이 어떻게 땅을 유린하는 지에 대한 반성을 담고 있다. 신심 좋은 기독교도를 포함하여.

다만, <마더!>가 유리 조각을 들고서 사람을 찌르는 장면이라든지, 시인인 남편이 자신을 일컬어 ‘스스로 있는 자’(“I am I,”)라고 말하는 대목은 신성모독이기에 앞서 영화에 내재된 훌륭한 메타포들을 일시에 망가뜨리는 설정들이었다.

그럼에도 하늘의 무심함과 그에 대한 땅의 비통함은 매우 깊은 신학적 이해로 유인한다.

정통한 전승에 따르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탄식은 ‘마더!’가 아닌 ‘아들’을 통해서 분명하게 하늘을 향해 땅이 울부짖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cf. 막 15:34; 마 27:46; 시 43:2)

 

한 줄 평: 땅이 신음하는 영화 ★★★★☆

 

부활 성화 역대작품 25선

 

연대: 1400년대
작가: 무명. 
설명: 성무일도서(Breviary/ Book of Prayers)의 삽화. 이 성무일도서는 가톨릭이 국교였던 스페인 시칠리아 아라곤의 왕 마틴이 소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마틴이 다스리던 때는 아라곤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기였으며, 그것은 전적으로 그의 굳건한 능력과 헌신에 따른 내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의미있는 책들을 많이 수집했는데 이 인상적인 묵상집도 그 중의 하나였다. 1398년 포블레트의 시토파 수도원(Cistercian monastery of Poblet)에서 제작 된 것으로서, 일자/절기에 따라 삽화가 삽입된 이 작품은 아마도 프랑스 왕실에서 배포한 묵상집을 본떠서 만든 작품이었을 것이다(베리 공작의 기도서/ de Berry’s ‘Petites Heures’).

 

연대: 1440
작가: 프라 안젤리코 (Fra Angelico)
설명: 무덤에서 부활한 그리스도와 그를 찾고 있는 여성들을 그린 프레스코이다. 15 세기 후반 플로렌스의 산 마르코(San Marco)에는 도미니칸 수도사가 있었다고 한다. 수도원 기숙사와 암자들의 벽면은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한 아름다운 장면들로 채워져 있는데 수도사의 침묵하는 삶에서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생각에 몰입한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그리되 무덤의 여성들을 그린 이 그림도 화가가 그 수녀원에 머물던 약 1436-1446년 경에 그린 것으로 보인다. 비록 이 도상에 나타난 인물들이 아주 단조롭게 배치되어 있지만 이에 대해 정교함이 부족하다고 비평하는 것은 그른 판단이다. 부활이라는 주제에 관한 것만 강조하고 그 외의 불필요한 세부 묘사는 안젤리코가 의도적으로 생략한 것으로 사료되기 때문이다.
어떤 은혜와 위엄도 그녀들의 슬픔을 감추지는 못한다. 본성 상 물리적 실체는 아니더라도 그 확고한 권위로 안도감을 주고 있는 천사가 (그리스도의) 형상에 대한 설명을 들려주고 있다. 머리를 숙이고 눈을 낮추고 기도하는 모습은 도미니칸의 전형적인 기도의 모습이다. 부활한 그리스도는 이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다.

 

연대: 1443
작가: 파울로 우첼로 (Paolo Uccello)
설명: 플로렌스 두오모의 스테인드 글라스 창. 파울로 우첼로는 1397년 피렌체에서 태어 났으며, 그의 삶 대부분을 그곳에서 그림 그리는 일로 보냈고, 1475년에 같은 곳에서 죽었다.
그는 원근법에 대한 관심으로 유명한 화가이며, 많은 계승자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에서는 ‘사랑’도 기하학적인 형태 속에서 파악된다. 그러니까 그의 작품은 대개 입체파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다 하겠다.
두오모의 유리창에 빛나는 그리스도의 모습은 열린 관 위에 떠 있는 듯, 죽음을 초월한 모습이다. 여기 저기에 짙은 녹색의 감동이 있다. 녹색은 새로운 삶의 신성한 전례의 색이기 때문이다.
창문 양쪽에 있는 잠자는 병사들은 이탈리아 전쟁에서 통상 광범위하게 고용 되는 외국인 용병의 모습이다. 경호와 수위를 제외하고는 아무 것에도 적합하지 않은 병사들이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이 용병들은 점점 더 상업성에 매몰되었으며, 그것은 곧 가능한 한 무혈로 싸우는 것이 자신들의 이익임을 알았다는 뜻이다. 화려한 전열로 배치 된 군대간에 전투를 벌이는 경우 때때로 사상자가 거의 없이 몇 시간 동안 지속되는 때도 있었다. 그들은 팔다리보다 더 긴 창 때문에 악명이 높았다. 우첼로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에, 잠 들어있는 이들 두 병사를 위치시킴으로써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연대: 1463
작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Piero della Francesca)
설명: 부활 벽화. 피나코테카 코무날레의 산세폴크로(Pinacoteca Comunale, Sansepolcro)
이 그림에서의 병사들은 위에서 스테인드 글라스 창에 우첼로(Uccello)가 표현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들은 매우 인간적이며 자신들이 수행해야 하는 지루한 임무에 대해 비교적 의식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 그림은 해부학에 단련된 프란체스카의 묘사력을 엿보여준다. 갈색 옷을 입고 몸통만 묘사된 사람의 경우 독특한 채색이 되어 있으며 아무 생각없이 잠이 든 그의 얼굴은 마치 그의 어머니만 사랑할 수 있는 유아적 분위기를 이루고 있어 흥미롭다. 이 회화는 또한 프란체스카가 혁신적으로 선보이는 단축법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왼쪽 다리와 발이 자신을 무덤에서 들어 올릴 때의 사실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화가가 말하는 이 그리스도는 우리 위에 떠 있는 미묘한 존재가 아니라 진정한 사람인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타협하지 않는 결정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얼굴은 정면으로, 오른손으로는 십자가 깃대를 세우고, 마치 추종자를 전투로 이끌 듯 어깨를 곧게 세우고 있다.

 

연대: 1465
작가: 도나텔로 (Donatello)
설명: 브론즈 설교단.
(중세인들에게) 그리스도는 죽은 후에 림보로 내려갔던 것으로 여겨졌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영혼들은 그의 죽음 후에 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그들의 최전선에서 세례 요한이 예수께 나아간다.
교회 기물 가운데 이 특별한 성물은 도나텔로의 삶의 끝자락에 만들어졌다. 그것은 그가 한 마지막 일이었을 것이다. 그의 작품인지 아니면 그의 견습생의 작품인지 약간의 논란이 있으나, 부활의 중심부 만큼은 그의 작업으로서 논란의 여지가 없다.
도나텔로는 사건의 심리적인 흐름을 탐구하기를 좋아했던 화가다. 중앙 패널에서 예수님의 모습은 잠자는 병사들 위로 우뚝 솟아 서 있다. 그의 권능이 그들로 하여금 의식하지 못하도록 꿈꾸게 함으로써 그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만 같다. 또한 버려진 고문 도구와 그것들 중에 하나인 양각된 전갈 방패가 옆으로 기대어 놓여 있다. 전갈은 죽음의 상징이다.

 

연대: 1475
작가: 지오반니 벨리니 (Giovanni Bellini)
설명: 중세 가톨릭 교회에서 예배의 중심은 제단이었다. 사제는 빵과 포도주를 거룩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였다(가톨릭 교리/ 성체). 빵을 봉헌한 직후 그는 회중의 모든 구성원이 볼 수 있도록 그것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 때에 이 지오반니의 제단화가 제단 바로 뒤에 서 있는 제단을 배경으로 펼쳐졌다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사제가 성체를 하늘로 향하게 하면, 그 의식에 맞춰 이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나 무덤에서 천국으로 올라가 보이는 것이다. 이런 연출이 미사 때 마다 반복되었다.
예수님의 신체가 모셔졌던 관의 모양은 제단의 디자인과 비슷하여 그림과 실제 성례의 미묘한 평행이 강조되도록 설계 되어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한다. 제단 위에는 흰색 천이 깔렸는데 그것은 버려진 수의와 다르지 않으며, 새벽 하늘, 나무에서 새로 나는 잔가지가 자연의 새로움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새 생명의 상징인 당돌한 토끼가 예수님의 발 앞 쪽에서 움직이고 있다.

 

연대: 1477 – 1489
작가: 바이트 슈토스 (Veit Stoss)
설명: 이 부조는 크라쿠프 성모 교회(the Church of Our Lady, Cracow)의 특별 제단 중의 한 부분이다.  42×36 인치 너비의 삼부작으로 제단 뒤에 배치 되어 있다.
부조 속의 예수께서는 무덤에서 약간 물러 선 것처럼 보인다. 그분의 어색한 포즈와 개봉되지 않은 관 뚜껑은 신체 상태의 어떤 변화를 암시한다. 석궁을 들고 있는 병사들은 모두 15세기의 갑옷을 착용하고 있다. 제단 전체는 대단히 웅장한데, 약 12년 간을 이 교회에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모든 제단화가 그렇듯 두 개의 측면 패널은 닫을 수 있게 제작 되었으며, 미사를 위해서만 열렸을 것이다.

 

연대: 1490
작가: 브라만티노 (Bramantino)
설명: 브라만티노(1465-1535)는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드(Lombard)의 화가이자 건축가였다. 그의 진짜 이름은 바르톨로메오 수아르디(Bartolomeo Suardi)였으며 그의 작품들은 훌륭한 건축물 배경으로는 유명했으나 이 작품의 저작권에는 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다만 이 예수상이 건축적인(다소 차거운) 면모가 그의 저작권을 지지한다 할 수 있다. 얼굴과 몸과 외투가 차겁고, 예수님 주위를 감싸는 망토는 피부의 창백함을 비추는 듯한 것이 금속성의 광채를 내고 있다. 건축가다운 필치인 것이다. 피부는 폭력의 상흔과 함께 정맥까지 다 보여 주고 있지만 빛이 나고 창백하며 특히 눈은 슬프다 못해 이 세상 분이 아닌 듯 하다. 신체와 얼굴 색이 다른 것이 얼굴에만 좀 생명력이 남아 있는 정도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한 남성 이미지를 포착하려고 했던 분명한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서 이 차거움의 분위기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선 죽음을 겪은 후 완전히 세상과 분리되어 더 이상 우리가 살고있는 곳에 계신 분이 아니라는 면모로서 이 작품의 분위기는 탁월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연대: 1490
작가: 한스 멤링 (Hans Memling)
설명: 비평가들은 대개 한스 멤링에게 경멸을 쏟아 붓곤 하는 편이다. 멤링의 작품은 대부분 다른 화가들을 모방할 뿐 독창적인 것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 작품을 보면 그런 평가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하다. 멤링의 그림에 나타나는 사람 얼굴은 대개 감각적인 미묘함의 극치를 지니고 있다. 그 미묘함은 한 마디로 우리 모두가 제 각각 다르면서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하나의 영적 세계로서의 통일성일 것이다.
여기 세 개의 패널로 구성된 이 제단화가 바로 그런 표정의 동선이 아주 잘 표현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중앙은 부활한 그리스도, 좌측에는 순교자 세바스찬(the martyrdom of St Sebastian) 그리고 우측엔 승천하는 그리스도와 그것을 지켜보는 목격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부활 장면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병사들이 잠을 자고 있다. 그러는 동안 무덤에서 부활한 그리스도께서 걸어 나오고 있다. 한편 좌측 패널은 순교자 세바스찬이 옷이 벗겨진 채 화살을 맞고 있는 장면이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기독교 신앙으로 인해 황제 디오클레시안에게서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되었는데, 특별히 그의 처형을 그의 수하에 있던 병사들이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제국에 대한 그의 불충에 대해 그를 추종하는 자들에 대한 본보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우측 패널에는 예수의 모친 마리아로 보이는 여성과 제자들이 그들로부터 영원히 떠나가시는 부활 예수의 승천을 보고 있는 장면이다.
우리가 저 우측 패널 장면을 보노라면 과연 제자들이 실제로는 예수님 옷 아래로 무엇을 볼 수 있었을까? 하는 불경한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림 속의 예수님의 발 부분은 어정쩡한 표현임에 틀림없지만, 좌측부터 이 세 번째 패널에 당도할 때쯤 우리는 약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세바스찬의 얼굴과 중앙에서 잠들어 있는 병사의 얼굴과 승천하시는 예수 바로 아래서 놀라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닮았다는 사실이다. 동일 인물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자신의 변화무쌍한 모습이기도 하다.

 

연대: 1510
작가: 암브로지오 보르고뇨네 (Ambrogio de Stefano Borgognone)
설명: 평온함. 순응함. 고요함. 섬세한 자연주의. 그리고 확고한 슬픔. 이런 것들은 보르고뇨네가 이 작품에서 제시한 그리스도의 속성들이다. 보르고뇨네가 여기서 보여주는 것은 신이면서 인간으로서의 그리스도는 더 이상 자신의 험난한 삶에 대한 염려로 괴로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그 모든 것을 넘어서고서 그의 영광으로 나아간다.

 

연대: 1510
작가: 마티아스 그뤼네발트 (Matthias Grünewald)
설명: 예수의 두상 부분이 황금색으로 되어 있는 이 독특한 그림은 알자스의 이젠하임(Isenheim)에 있는 세인트 안토니 수도원(St Anthony’s Monastery) 예배당의 제단화 중 한 부분이다. 해당 제단화 일체는 위에서 보이는 것 처럼 접이식 제단화 두 세트 앞뒤로 붙어 있어서 예전/의식 중 클라이맥스에 가서 접이식 제단화가 펼쳐짐으로써 부활 장면으로 전환 되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두 제단화 중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도상이 가장 먼저 연출 될 패널이다. 그 패널에는 사도 요한의 보살핌을 받는 ​​모친 마리아의 비통함과 그 바로 곁 땅바닥에 쓰러진 막달라 마리아의 비통함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시선으로 이끈다. 그리고 그 오른쪽에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다. 자신이 예언한 메시야라는 것이다. 그 아래에서 어린 양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어린 양임을 상징한다.  이때 제단의 날개가 열리고 나면 완전히 다른 광경이 회중의 시선을 맞이한다. 이제는 황금 색 불빛으로 황홀하게 바뀐 것이다. 앞서 먼저 보였던 이면의 패널과는 달리 이 안쪽 패널에는 빛이 넘쳐난다.
이 빛의 드라마는 부활 장면의 배경인 어두운 밤 하늘에 특히 선명하게 다가 온다. 그뤼네발트가 전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빛을 가져오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뤼네발트의 그림에서는 병사들이 잠들어 있지 않다. 마치 육체적 고통을 일으키기라도 한 듯 그 광채에 나가떨어져 있다. 눈이 부시어 당황하고 있으나, 입고 있는 갑옷으로도 전혀 보호 받을 수 없다. 그들 위를 신비로운 그리스도께서 공중부양 해 계시다. 회중을 향해 펼쳐져 보이는 그의 손바닥 상처만이 바로 직전에 견뎌 내었을 법한 고통을 상기시킨다.

 

연대: 불확실한 1560년 경
작가: 피터 브뤼겔 (Pieter Bruegel the Elder)
설명:  이 드로잉은 그 어떤 그림보다 이 지구 상의 땅을 잘 포착해 낸 그림일 것이다. 무덤의 입구가 떨어져 나가 버린 것이, 마치 입을 벌리고 있는 듯하다. 중력의 작용을 받지 않는 듯한 천사는 커다란 무덤 뚜껑 위로 올라가 있다. 언뜻 보기에는 그리스도께서 어디에 계신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은 거대한 돌뚜껑 위에 걸터 앉은 듯해 보이는 그 천사 위로 떠오르고 계시다. 지금 막 온 것으로 보이는 여성들은 천사를 바라보고 있고, 병사들은 잠에서 깨어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수습하고자 한다. 이 그림은 인간의 활동들로 가득 차 있다. 전경에 펼쳐진 광경에 대해서 모두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이는 살아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연대: 1577
작가: 엘 그레코 (El Greco)
설명: 엘 그레코는 카톨릭 국가였던 스페인에게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화가였다. 다층의 구조를 자랑하는 그의 작품들에서 볼 때 그는 비잔틴 신비주의와 결합하여 자신의 고향 크레타 섬의 베네치아 매너리즘 전통의 음울한 색채를 풍부하게 가져다 쓰는 화가다. 엘 그레코는 스페인 예술의 전형을 표현해 낸다. 관능적이면서도 정교한, 독특한 감성이 세기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여기서 그가 그린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폭풍우가 끼치는 위협적인 하늘에서 나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여러 작품에서의 하늘은 종종 이와 같이 폭풍우로 채워져 있다. 이 작품을 둘러싸고 있는 두터운 황금색 프레임은 그림 자체보다 지나치게 강조되기 때문에 프레임으로서는 좋은 선택이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이 그리스도의 부활 이미지를 이와 같이 둘러싸기 위하여, 다름 아닌 이교도 그리스 성전과도 같은 이런 프레임 구조를 선택했다고 하는 것은 여간 흥미로운 일이 아니다.

 


연대: 1611-1616
작가: 루벤스 (Rubens)
설명: 루벤스는 다른 어떤 플랑드르(Flemish) 거장들보다도 17세기 바로크 양식 형성에 기여를 했다. 그의 작품은 살아있고 극적이고 관능적이며 인간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그것들은 화려하고 관대하고 관능적이며 그 광대함이 최고의 바로크 예술과 음악의 모든 특질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인격을 반영하기라도 한 듯한 포즈가 전체 공간을 지배한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몸은 다른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인간의 몸으로 그 모든 아름다움 속에 있다. 그로써 승리한 한 사람이다. 그림에서 그리스도의 활기/활력은 루벤스 특유의 능숙한 빛과 그림자 묘사로써 증폭되고 있다. 어두운 부분은 (사람들이) 비참하게 비명을 지르지만 그리스도의 몸은 빛으로 빛난다. 빛과 어둠의 이 예리한 대조는 루벤스가 이탈리아에서 카라바치오(Caravaggio)의 작품을 접하면서 고무되었을 것이다.

 

연대: 1635
작가: 렘브란트 (Rembrandt van Rijn)
설명: 위에서 보았던 루벤스의 ‘부활’과 이 그림이 다른 점은 무엇일까? 렘브란트가 그린 이 그림에서의 그리스도는 무덤의 어두움에서 방출되는 순수한 빛이라는 점에서, 물리적인 것보다는 어떤 신학적 진술에 종사한다. 이 빛에 비추어 볼 때, 그림 속의 인간들은 혼란에 빠진 공중의 새들과도 같다. 렘브란트는 17세기의 가장 유명한 네덜란드 화가이자 전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으로 카라바치오가 성공적으로 사용한 그 동일한 기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강렬한 빛이 주변의 어둠을 극복하는 것 말이다. 1630년대는 렘브란트에게 특히 번영의 시기였다. 그는 부유한 미술상의 조카딸인 사스키아(Saskia van Uylenburgh)와 결혼했고 네 명의 자식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 중 한 명만 살아남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품 ‘부활’을 그린 해에 그 첫째 아들이 태어났지만 곧 죽은 해이기도 하다. 이 그림에 나타난 죽음에 대한 그리스도의 정복, 즉 부활은 지극히 종교적인 것이지만 헌신적인 한 가정의 남자이기도 했던 화가 자신에게는 자신이 체험하는 그 고통스런 시간과의 특별한 관계 속에서 한층 의미심장 하게 보인다.

 

연대: 1805
작가: 윌리엄 블레이크 (William Blake)
설명: 이 그림을 통해 우리 모두는 생명이 그의 몸으로 돌아올 때 그와 함께 무덤 안에 있다. 두 천사가 그를 지켜 세 번째 발걸음을 내딛으면 무덤 문을 열 수 있다. 돌이 굴러져서 관객은 천사를 지나서 쌀쌀한 바깥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어두움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빛을 기다리고 있는 상대적인 시각이므로 매우 보기 드문 구도를 띤다. 예술가들은 대개 언제나 무덤을 들여다 보거나 그리스도가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무덤 바깥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장면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명은 ‘무덤의 돌을 굴리는 천사들’(Angels Rolling away the Stone from the Sepulchre)이다.

 

연대: 1867
자가: 니콜라이 게이 (Nikolay Gay)
설명: ‘부활의 조짐’(Harbingers of the Resurrection)이라는 이 그림은 크게 볼 필요가 있다. 전체 전경에서 더 깊이감을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니콜라이 게이는 훌륭한 화가일 뿐만 아니라 훌륭한 사상가였다. 사실 그의 후기 작품들은 그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와는 잘 맞지 않았다. 첫 작품은 비교적 안정적이고 재치있는 훌륭한 장면을 그렸었다. 예를 들어 ‘솔로몬의 심판’은 그 당시 행해졌던 수많은 다른 종교 그림과 비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니콜라이 게이가 점차 나이 들었을 때는, 많은 사람에게 야만적이고, 산란했으며, 불쾌한 작품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의 ‘그리스도와 빌라도’(1890)는 불경스러운 것으로 금지 당하기까지 했으며, 그의 ‘십자가 형’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보다 더 무시 무시하고 현실적이었다. 이 ‘부활의 조짐들’은 이 그림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하늘과 천사는 둘 다 생명의 권역에 있지만, 그림의 오른쪽에 있는 병사들과 어둠의 요새를 전혀 밝히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도취됨를 나타낸다.왜냐하면 부활이 곧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연대: 1886
작가: 티쏘 (James J. Tissot)
설명: 영광스럽고도 지극히 여린 천사가 무덤 앞 대기실(?)에 서 있다. 이 천사는 고전적인 옷차림을 입었고 두 쌍으로 된 매우 현실적인 날개를 가지고 있다. 천사의 뒤에는 이제 돌처럼 보여야 할 커다란 편평한 모양이 있으며 입구에서 멀리 굴러간다. 무덤 안쪽에 두 다른 천사들이 예수님을 기다리고 앉아 있는 것이다(그림의 가장 왼쪽에 네 개의 날개가 보인다). 티소는 부활의 그림을 그렸지만 적어도 그 말은 최선의 표현은 아니다. 적어도 이 그림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을 것 같다.

 

연대: 1920
작가: Theodor Baier
설명: 이 그림의 예수님은 어떤 왕자님 또는 어떤 훌륭한 신사가 자기 목욕탕에서 막 나오신 것 같아 보인다. 예루살렘에 있는 로마 당국이 이 사람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지키고 염려했던 이유가 바로 이래서인가? 싶을 정도… 게다가 핑크색 수의라니…

 

연대: 1957
작가: Michel Ciry
설명: 이 부활한 그리스도는 중세 회화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와 있는지, 렘브란트나 델라 프란체스카(della Francesca)의 그리스도 상들과는 얼마나 극적으로 대조를 이루는지 잘 보여준다. 그 차이는 오늘날 현대적인 그리스도의 완벽한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20세기에는 기독교 신앙이 신화화를 이미 벗어나 있다. 예수님 인성은 그의 신성을 희생하면서 강조되었다. 실제로 사람들은 종종 그리스도의 신성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기 어려워 한다. ‘역사적인 그리스도’에 대한 생각은 현대인의 마음을 휘어 잡았다.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는 희생당하고 만 것이다. 21세기 사람들은 신화적 또는 상징적 사고를 다루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과학과 합리적인 사고에 대한 현대의 믿음은 모든 것이 ‘증명할 사실’이어야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전혀 신빙성이 주어지지 않는 진리다. 따라서 20세기에 부활하신 이 그리스도께서는, 마치 델리에 있는 댄이라는 한 인물과 매우 흡사하게 보이는 이유이다.

 

연대: 1998
작가: 아르카바스/장 마리 피로 (Arcabas/ Jean-Marie Pirot)
설명: 프랑스에 있는 세인트 폴 드 메이떼 교회(St Paul de Meythet Church)에 있는 이 세련되고 극적이며 개연성이 강조된 작품은 큰 그림의 크기를 통해 그 앞 제단을 강조하고 있다. 매우 가치가 있는 현대 종교 예술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그의 모습은 제단의 전체 공간을 지배하는 데 기능한다. 작가 아카바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기독교는 죽음이 아닌 삶에 관한 종교인 것이다.

 

연대: 1998
작가: 프레드릭 하트 (Frederick Hart)
설명: 프레드릭 하트는 예수의 몸에 대해 무중력을 적용해 포착하였다. 그것은 자신의 인성을 초월해 우주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신체는 도나텔로(Donatello)의 다윗 상을 연상케 한다. 팔을 뻗은 몸의 위치는 모든 것을 수용하는 듯한 팔의 굴곡은 대단히 현대적인 감성을 자아낸다.

 

연대: 1875
작가: 칼 블로흐 (Carl Heinrich Bloch)
설명: 칼 블로흐는 19세기 덴마크의 예술가다. 그는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한 일련의 작품을 그렸는데, 덴마크의 프레데릭스보그 궁전(the Frederiksborg Palace)에 보관되어 있다. 그의 그림은 오늘날 예술 애호가들을 기쁘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 안에 있는 인물들은 너무나도 깨끗하고 평온한 유럽인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예수님의 삶의 거친 현실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현실에 대한 21세기의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연대: 2001
작가: He Qi
설명: 부활절 아침 (Easter Morning). 현대 작가 He Qi는 종교적 테마의 가장 인기있는 현대 화가 중 한 사람이다. 이 그림에서 승리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손으로 암흑의 악마들을 물리치고 그들이 그에게서 도망가는 신호로 올리고 있다. 여자들은 아직 제대로 깨어나지 않았고, 무슨 일이 일어 났는지 알지 못한다. 그 이전의 회화에서 자주 등장하던, 그리스도에 의해 들어 올려진 군사적 이미지의 배너 대신에, He Qi의 그리스도는 빛나는 백합을 들고 있다.

 

연대: 2001 작가: 사이먼 듀이 (Simon Dewey)
설명: ‘He Lives’라는 이 그림은 요즘 가장 많이 애용되는 부활절 그림일 것이다. 승리하는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이 현실적인 회화는 사실 전문가들 입장에서는 수준이 낮은 그림이다. 작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아다시피 매우 인기가 있으며 실제로 사이몬 듀이는 20세기 후반 가장 눈에 띄는 종교 예술가 중 한 명이다.

※ 상기의 이미지들은 대부분 가톨릭 정서의 작품들이다. 프로테스탄트 이념의 작품들은 향후 따로 정리할 것이다.

* 이미지 출처: 바이블 탑텐.

 

영화《사일런스》와 이코노클라즘(iconoclasm)

※ 스포일러는 글 전개상 필요한 만큼만 있음.

이 영화를 단순히 ‘가톨릭 영화’로 간주하거나, 단지 ‘누가누가 오래 버티나’ 고문이 난무하는 종교영화 정도로만 보면 오산이다.

엔도 슈사쿠(遠藤周作)의 소설 《침묵》(홍성사 역)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종교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의 ‘믿음의 형식’과 그 ‘믿음의 대상’에 관하여 집요한 물음을 던지는 영화다.

(1) 17세기 중엽 일본의 기독교

일본인 신자들의 얼굴과 몸에 뜨거운 온천수가 끼얹어지는 박해를 고스란히 지켜만 봐야했던 예수회 소속 선교사 페레이라(리암 니슨)의 갑작스런 행방불명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한 마디로 배교한 신부들의 이야기다.

페레이라 사제의 제자인 로드리게스(앤드류 가필드)와 가르페(애덤 드라이버) 사제는 연락두절 된 스승을 찾고자 목숨을 걸고 일본으로 잠입하여 일본인 신자들과 만난다. 목자(牧者)들은 어디로 갔는지 다 사라지고 평신도 양떼들만 남겨진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간다. 그러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접한다. 스승 페레이라가 배교를 했다는 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아내를 맞이하고 자녀까지 두고 있다는 것이다.

로드리게스는 키치지로의 배신으로 일본 관리들에게 붙잡힌다. 그런데 그는 박해를 당하는 과정 속에서 스승이 걸어간 길을 알게 된다. 전적으로 그것은 그 일본 관리들에 의해 조여오는 박해의 한 형식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이었다. 그 집요한 박해의 형식은 믿음의 형식으로 직결되고, 또한 그 믿음의 형식은 결국 믿음의 대상을 파괴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했던 박해와 고문은 이런 것이었다.

‘The pit’(구덩이)라 불리는 박해용 고문기구로서 실제 1633년의 일러스트레이션.

차라리 자기 자신을 고문했더라면 순교를 불사한 고결한 믿음이라도 남겨졌을 텐데, 자기를 따르던 신자들만 집중적으로 고문하도록 조치한 일본 관리는 그들의 신앙의 뿌리인 로드리게스 자신 때문에 저들이 죽어가는 것임을 각인시키고 나온 것이다. 그들의 목이 잘려 나가고, 물에 수장되는 장면을 고스란히 지켜볼 수밖에 없는 정신고문이었다.

영화에서 신자들을 배교하라고 할 때 사용된 성상으로 당대 실제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이들로 하여금 목숨과 맞바꾸게 한 믿음의 행위가 그 영악한 관리의 수법에 의해 제시되었다. 그것은 ‘성상’을 발로 밟도록 강요된 행위였는데, 순교자들은 하나 같이 거부하였다. 일본 당국은 박해를 가할 때 ‘성상’을 대하는 신자의 행위를 통해서 그들의 믿음 혹은 배교의 척도로 삼았던 것이다.

당시에 제작된 이미지 중 하나.

여기서 우리는 잠깐 ‘성상숭배’의 기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개신교의 경우 성상(聖像)에 대한 – 십자가 또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린 장면이 새겨진 – 공경이 과연 신자의 믿는 믿음에 있어 그토록 중요한 믿음의 행위였던가? 라는 물음이 생기는 것은, 비록 거룩한 이미지들이라 하더라도 그런 상들은 모두 ‘우상’으로 간주하는 신학을 모범으로 갖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신교 신자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저 성상들을 발로 밟는가?

배교할 것을 회유하고 강요하는 일본 관리들

(2) 성상숭배와 성상파괴운동

성상숭배의 기원은 ‘성상파괴운동’(iconoclasm)과 함께 진작되었다. 단순한 관습과 미신의 수준에 머물던 것이 ‘성상파괴운동’에 대한 반동으로 꽤나 조직적인 신학을 골격으로 갖추게 된 것이다.

명시적인 ‘성상파괴운동’은 8-9세기 약 100년 동안 두 단계에 걸쳐 진행된 오랜 역사다. 이것은 동방교회(정교회)와 서방교회(가톨릭)가 실질적으로 분열되는 요인이 되었다. 서방교회 즉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성상(Icon)을 공경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 반면, 730년 동방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레오 3세가 십계명에 기록된 “우상을 새기지 말라”는 모세의 율법을 원용적으로 적용해 성상 일체의 숭배를 금하는 칙령을 내렸던 것이 ‘성상파괴운동’의 시작이다.

Miniature from the 9th-century Chludov Psalter with scene of iconoclasm. Iconoclasts John Grammaticus and Anthony I of Constantinople.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성상숭배를 고수한 데에는 실질적인 이유와 신학적인 이유가 있다. 당시 게르만족 등 미개인을 상대로 포교를 하거나 교육을 할 때 ‘보여주는 것’도 없이 ‘믿는다’라는 형이상학적 교훈을 가르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이것은 실질적인 이유였을 것이다. 신학적으로는 삼위일체 신학과 깊은 관련이 있다.

교회사적으로 삼위일체 신학이 자리 잡는 과정은 ‘우시아’(οὐσία)와 ‘휘포스타시스’라는 희랍어 어휘에 대한 석의 과정과 그 맥을 같이 한다. 다 ‘본질’과 관련된 어휘로서 특히 휘포스타시스(ὑπόστασις)라는 말이 중요한데 히브리서 1장 3절에서 아들을 일컬어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라고 표현하는 대목에서 나오는 말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본질이 본질 자신과 나뉘지 않으면서도 사람 되신 성자에게 속성으로 분여되었음을 나타내는 개념어로 전용되었다.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레닌(Vladimir Lenin)’은 ‘빨간색’이다.

―라고 했을 때 ‘레닌’은 제1실체이지만 ‘빨간색’은 속성이다. 하지만 ‘빨간색’으로는 그 실체의 속성을 밝힐 수 없다.

그렇지만,

‘그’는 ‘레닌’이다.

―라고 했을 때 ‘그’는 ‘레닌’이라고 하는 명사로써 ‘빨간색’보다 더 명확한 속성을 갖게 된다.

바로 이때에 ‘레닌’, 즉 앞선 문장(“레닌은 빨간색이다.”)의 제1실체는 휘포스타시스가 되는 셈이다.

로드리게스의 환영에 자꾸 나타났던 예수의 얼굴 이미지.

이것은 본래 삼위일체를 논증하는 개념인데, 서방교회인 로마 가톨릭의 경우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성상’에도 역시 휘포스타시스가 분여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 자신이 이미 한 분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신 까닭이다. 그런 것처럼 거룩한 이미지는 그 성질을 분여 받을 수 있은즉, ‘공경’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개신교는 이런 성상숭배 신학은 수용하고 있지 않다.

로드리게의 환영에 자꾸 나타났던 예수상은 ‘베로니카의 수건’이라는 유명한 전설을 그린 엘 그레코의 작품이다. 베로니카는 예수의 수난 당시에 수건으로 피와 땀을 닦아 드린 바 있는데 그 수건에 예수의 얼굴 상이 묻어 났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손으로 만들지 않은’(ἀχειροποίητα) 도상이라는 신학의 원용이 되기도 했다.

(3) 믿음의 형식과 믿음의 대상

이 영화에서는 믿음과 그 행위를 놓고 세 부류의 사람이 등장한다. 첫째, 믿음에 대한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키치지로(Kichijiro). 이 사람은 로드리게스를 처음부터 돈 받고 팔아먹은 인물이다. 그렇지만 진실한 고해성사에도 능하다. 성상을 발로 밟는 정도의 배교는 주저할 것도 없이 남들 보다 가장 빠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행한 배신과 배교에 대해서는 반드시 고해성사를 청한다. 그것도 진심으로.
즉, 배신도 밥 먹듯이, 회개도 밥 먹듯이 하는 인물이다.

Kichijiro

두 번째 부류는 죽기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들이다. 이들은 성상을 발로 밟지 않는다. 그래서 죽는다. 세 번째 부류는 바로 배교한 신부들이다. 이들은 버티다 버티다 마침내 성상을 밟고 만다. 자기가 성상을 밟지 않음으로 두 번째 부류의 신자들이 자꾸만 죽어나가기 때문이다. 로드리게스의 스승인 페레이라는 이미 배교에 선행한 인물로서 로드리게스를 ‘새로운 신앙’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 하나님이 여기 안 계시다는 것이다. 이 종교(기독교)는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까지 한다. 다른 말로 하면, 불교 신자가 된 것이다.

로드리게스는 행방불명 된 스승을 찾으러 갔다가 목자 잃은 양 같은 신자들을 맡아 가르치고 인도하다가 붙잡힌다.

결국 로드리게스는 고통스런 고문으로 죽어나가는 신자들을 보다 못해 스승 페레이라처럼 성상을 밟고야 만다. 그 순간 주님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분명히 듣는다.

Step on Me… (괜찮다. 나를 밟아라)

진짜 그분의 음성일까? 자신의 상상이었을까?

로드리게스가 밟을 때 마주한 형상

이들이 숭배했던(가톨릭은 ‘공경’이라고 부르지 숭배라고 하지 않는다) 성상은 가짜일까? 진짜일까?

그 성상의 존재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그 이후에 펼쳐지는 로드리게스의 삶을 통해 나타난다. 로드리게스는 페레이라처럼 일본 당국으로부터 일본인 이름과 아내를 하사 받았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하는 일은 무역상들이 국내로 들여오는 물건들 중에서 기독교적인 기운이 있는 물건과 아닌 물건을 감별해내는 작업이다.

멀쩡한 풍경화가 새겨진 물건인데도 이들이 턱~ 보고 ‘기독교!’ 하면 기독교 물품으로 판정이 나오는 것이다. 그림의 도상 자체에 은유로 은폐되어 있는 표현인데도 그 기독교적 ‘기운’을 찾아내는 바로 그것, 그것이 휘포스타시스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 ‘기독교적’ 물건을 들여온 장본인들은 당국에 모조리 끌려가고 만다. 배교한 사제들은 배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기독교인을 박해하는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또 하나의 휘포스타시스를 발견한다.

종전에 발로 짓밟은 성상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단지 형식적인 숭앙이었을 뿐이라면, 그 형식을 버림으로써 목숨은 건지고 신앙 또는 사상만은 변치 않을 수도 있었어야 하는데, 그 결과가 그렇지 않더라는 사실이다.

로드리게스에게 그 성상이 밟히고 나니까, 로드리게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실체까지 바뀌고 만 것이다.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던 그 충직한 영어 잘하는 통역관이 집요하게 이렇게 설득했었다.

그것은(성상을 밟는 것은) 단지 형식일 뿐입니다. 하십시오.

로드리게스가 개울물에 자신을 비쳤을 때 보인 환영. ‘베로니카의 수건’의 예수상이다.

그 성상은 진짜였을까? 가짜였을까?

이것은 가톨릭, 개신교의 교리와 신학을 넘어 이 영화/소설이 모든 사람에게 던지는 믿음의 실체에 관한 도전적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믿음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니까 ‘믿음의 형식’이 파괴된 즉, 그 믿음과 ‘믿음의 대상’도 파괴되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 영화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배교자들에 대한 비난은 극히 절제되어 있다. 본의 아니었지만 이코노클라즘을 통해 이들도 합리적인 믿음에 도달한 것일까?

한국 개신교는 합리적 이코노클라스트이면서도 선조들의 배교에 대한 비난을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