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일런스”와 이코노클라즘(iconoclasm)

※ 스포일러는 글 전개상 필요한 만큼만 있음.

영화 “사일런스”와 이코노클라즘(iconoclasm)—이 영화를 단순히 ‘가톨릭 영화’로 간주하거나, 단지 ‘누가누가 오래 버티나’ 고문이 난무하는 종교영화 정도로만 보면 오산이다.

엔도 슈사쿠(遠藤周作)의 소설 《침묵》(홍성사 역)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종교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의 ‘믿음의 형식’과 그 ‘믿음의 대상’에 관하여 물음을 던지는 영화다.

영화 “사일런스”와 이코노클라즘(iconoclasm)

17세기 중엽 일본의 기독교

일본인 신자들의 얼굴과 몸에 뜨거운 온천수를 끼얹는 박해를 고스란히 지켜만 봐야했던 예수회 소속 선교사 페레이라(리암 니슨)의 갑작스런 행방불명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한 마디로 배교한 선교사들의 이야기다.

페레이라 사제의 제자인 로드리게스(앤드류 가필드)와 가르페(애덤 드라이버) 사제는 연락두절 된 스승을 찾고자 목숨을 걸고 일본으로 잠입하여 일본인 신자들과 만난다. 목자(牧者)들은 어디로 갔는지 다 사라지고 평신도 양떼들만 남겨진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간다. 그러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접한다. 스승 페레이라가 배교를 했다는 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가 아내를 맞이하고 자녀까지 두고 산다는 것이다.

로드리게의 스승 페레이라(리암 니슨)

로드리게스는 키치지로의 배신으로 일본 관리들에게 붙잡힌다. 그리고 붙잡혀 박해당하는 과정 속에서 스승이 걸어간 길을 알게 된다. 지적 교양을 갖춘 한 일본 관리에 의해 고안된 박해의 한 형식을 통해 점차 깨닫게 된 것이다. 그 집요한 박해의 형식은 자신이 지닌 믿음의 형식과 직결되어 심리를 조여들어왔고, 그렇게 해서 파괴된 그 믿음의 형식은 결국 믿음의 대상까지 파괴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했던 박해와 고문은 이런 것이었다.

‘The pit’(구덩이)라 불리는 박해용 고문기구로서 실제 1633년의 일러스트레이션.

차라리 로드리게스 자신을 고문했더라면 순교를 불사한 고결한 믿음이라도 남겼을 텐데, 자신을 따르는 신자들에게만 집중적으로 고문하도록 조치한 일본 관리는 심리전의 대가이다. 이 관리는 신앙의 뿌리인 선교사 로드리게스 자신 때문에 저들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각인시키며 조여오는 것이었다. 그들의 목이 잘려 나가고, 물에 수장되는 장면을 고스란히 지켜볼 수밖에 없는 정신고문이었다.

영화에서 신자들을 배교하라고 할 때 사용된 성상으로 당대 실제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목숨과 맞바꾸게 만든 믿음의 행위가 이 영악한 일본 관료의 수법에 의해 제시된다. 그것은 ‘성상’을 발로 밟도록 만드는 강요였는데, 박해를 가할 때 ‘성상’을 대하는 신자의 행위를 그들의 믿음 혹은 배교의 척도로 삼았던 것이다. 순교자들은 하나 같이 성상 밟기를 거부한다.

당시에 제작된 이미지 중 하나.

여기서 우리는 잠깐 ‘성상숭배’의 기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개신교의 경우 성상(聖像)에 대한 —십자가 또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린 장면이 새겨진— 공경이 과연 신자의 믿음에 있어 그토록 중요한 믿음의 행위였던가? 라는 물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이미지들은 모두 ‘우상’으로 간주하는 것이 개신교의 모범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신교 신자는 (예수님 얼굴이 그려진, 십자가 도상의 예수님이 그려진) 저런 그림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발로 짓밟는가?

배교할 것을 회유하고 강요하는 일본 관리들

성상숭배와 성상파괴운동

성상숭배의 기원은 ‘성상파괴운동’(iconoclasm)과 함께 진작되었다. 단순한 관습과 미신의 수준에 머물던 것이 ‘성상파괴운동’에 대한 반동으로 꽤 조직적인 신학을 골격으로 갖추게 된 것이다.

명시적 ‘성상파괴운동’은 8-9세기 약 100년 동안 두 단계에 걸쳐 진행된 오랜 역사다. 이것은 동방교회(정교회)와 서방교회(가톨릭)가 실질적으로 분열되는 요인이 되었다. 서방교회 즉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성상(Icon)을 공경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 반면, 730년 동방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레오 3세가 십계명에 기록된 “우상을 새기지 말라”는 모세의 율법을 원용적으로 적용해 성상 일체의 숭배를 금하는 칙령을 내렸던 것이 ‘성상파괴운동’의 시작이다.

《클루도브 시편집》(Chludov Psalter) 속의 성상파괴 도상. 9세기.

로마 가톨릭 교회가 성상숭배의 입장을 고수하기까지는 신학적 이론보다는 사실 실질적인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게르만족이나 미개인을 상대로 포교하거나 교육을 실행할 때 ‘보여주는 것’도 없이 ‘믿는다’라는 형이상학적 교훈을 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시작된 성상 이미지의 활용은 점차 신학적 이론을 갖추었는데 점차 삼위일체 신학과 깊은 관련을 맺어나가게 된다.

교회사적으로 삼위일체 신학이 자리 잡는 과정은 ‘우시아’(οὐσία)와 ‘휘포스타시스’라는 희랍어 어휘에 대한 석의 과정과 그 맥을 같이 한다. 다 ‘본질’과 관련된 어휘로서 특히 휘포스타시스(ὑπόστασις)라는 말이 중요한데 히브리서 1장 3절에서 아들을 일컬어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라고 표현하는 대목에서 나오는 말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본질이 본질 자신과 나뉘지 않으면서도 사람 되신 성자에게 속성으로 분여되었음을 나타내는 개념어로 전용되었다.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레닌(Vladimir Lenin)’은 ‘빨간색’이다.

라고 했을 때 ‘레닌’은 제1실체이지만 ‘빨간색’은 속성이다. 하지만 ‘빨간색’으로는 그 실체의 속성을 밝힐 수 없다.

그렇지만,

‘그’는 ‘레닌’이다.

라고 했을 때 ‘그’는 ‘레닌’이라는 명사로써 ‘빨간색’보다 더 명확한 속성을 갖게 된다.

바로 이때에 ‘레닌’, 즉 앞선 문장(“레닌은 빨간색이다.”)의 제1실체는 휘포스타시스가 되는 셈이다.

로드리게스의 환영에 자꾸 나타났던 예수의 얼굴 이미지.

이것은 본래 삼위일체를 논증하는 개념이지만, 서방교회인 로마 가톨릭의 경우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성상’에도 역시 휘포스타시스가 분여된다고 간주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 자신이 이미 한 분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신 까닭이다. 그런 것처럼 거룩한 이미지는 그 성질을 분여 받을 수 있기에, ‘공경’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개신교는 이런 성상숭배 신학은 수용하지 않는다.

로드리게의 환영에 자꾸 나타났던 예수상은 ‘베로니카의 수건’이라는 유명한 전설을 그린 엘 그레코의 작품이다. 베로니카는 예수의 수난 당시에 수건으로 피와 땀을 닦아 드린 바 있는데 그 수건에 예수의 얼굴 상이 묻어 났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손으로 만들지 않은’(ἀχειροποίητα) 도상이라는 신학의 원용이 되기도 했다.

믿음의 형식과 믿음의 대상

이 영화에서는 믿음과 그 행위를 놓고 세 부류의 사람이 등장한다. 첫째, 믿음에 대한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키치지로(Kichijiro). 이 사람은 로드리게스를 처음부터 돈 받고 팔아먹은 인물이다. 그렇지만 진실한 고해성사에도 능하다. 성상을 발로 밟는 정도의 배교는 주저할 것도 없이 남들보다 가장 빠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행한 배신과 배교에 대해서는 반드시 고해성사를 청한다. 그것도 진심으로.
즉, 배신도 밥 먹듯이, 회개도 밥 먹듯이 하는 인물이다.

Kichijiro

두 번째 부류는 죽기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들이다. 이들은 성상을 발로 밟지 않는다. 그래서 죽는다. 세 번째 부류는 바로 배교한 선교사 자신이다. 이들은 버티다 버티다 마침내 성상을 밟고 만다. 자기가 성상을 밟지 않음으로 이들 두 번째 집단, 신실한 신자들이 자꾸만 죽어나가기 때문이다.

로드리게스의 스승인 페레이라 선교사는 이미 배교에 선행한 인물로서 로드리게스를 ‘새로운 신앙’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 하나님이 여기 안 계시다는 것이다. 이 종교(기독교)는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까지 한다. 다른 말로 하면, 불교 신자가 된 것이다.

로드리게스는 행방불명 된 스승을 찾으러 갔다가 목자 잃은 양 같은 신자들을 맡아 가르치고 인도하다가 붙잡힌다.

결국 로드리게스는 고통스런 고문으로 죽어나가는 신자들을 보다 못해 스승 페레이라처럼 성상, 주님의 이미지를 밟고야 만다. 그 순간 주님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분명히 듣는다.

Step on Me… (괜찮다. 나를 밟아라)

진짜 그분의 음성일까? 자신의 상상이었을까?

로드리게스가 밟을 때 마주한 형상

이들이 숭배했던(가톨릭은 ‘공경’이라 부르지 숭배라고 하지 않는다) 성상은 가짜일까? 진짜일까?

그 성상의 존재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그 이후에 펼쳐지는 로드리게스의 삶을 통해 나타난다. 로드리게스는 페레이라처럼 일본 당국으로부터 일본인 이름과 아내를 ‘하사’ 받았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하는 일은 무역상들이 국내로 들여오는 물건들 중에서 기독교적인 기운이 있는 물건과 아닌 물건을 감별해내는 작업이다.

멀쩡한 풍경화가 새겨진 물건인데도 이들이 딱! 보고 ‘기독교!’ 하면 기독교 물품으로 판정되는 것이다. 그림의 도상 자체에 은유로 은폐되어 있는 표현인데도 그 기독교적 ‘기운’을 찾아내는 바로 그것, 그것이 휘포스타시스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 ‘기독교적’ 물건을 들여온 장본인들은 당국에 모조리 끌려가고 만다. 배교한 사제들은 배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기독교인을 박해하는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또 하나의 휘포스타시스를 발견한다.

종전에 발로 짓밟은 성상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단지 형식적인 숭앙이었을 뿐이라면, 그 형식을 버림으로써 목숨은 건지고 신앙 또는 사상만은 변치 않을 수도 있었어야 하는데, 그 결과가 그렇지 않더라는 사실이다.

로드리게스에게 그 성상이 밟히고 나니까, 로드리게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실체까지 바뀌고 만 것이다.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던 충직한 영어 잘하는 통역관이 집요하게 이렇게 설득했었다.

그것은(성상을 밟는 것은) 단지 형식일 뿐입니다. 하십시오.

로드리게스가 개울물에 자신을 비쳤을 때 보인 환영. ‘베로니카의 수건’의 예수상이다.

그 성상은 진짜였을까? 가짜였을까?

이것은 가톨릭, 개신교의 교리와 신학의 벽을 넘어 모든 사람에게 던지는 믿음의 ‘실체’에 관한 도전적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믿음의 형식’이 파괴된 즉, 그 믿음과 ‘믿음의 대상’도 파괴되는 이치이다.

‘형식보다는 믿음’이라는 말로 이원화시키는 사람치고 신실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믿음의 진실성은 믿음의 대상에 대한 형식의 신실성에서 나오는 법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본의 아니었지만 이코노클라즘(성상파괴)을 통해 합리적인 믿음에 도달한 것일까?

한국 개신교는 합리적 이코노클라스트이면서도 자신들 선조의 배교에 대한 비난을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배교자에 대한 비난은 극히 절제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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