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죽으려고 빵을 먹는단다”

집을 나서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오는데 도로 인접한 동의 한 4, 5층 되는 높이에서 절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지 음성 같기도 하고 할머니의 남성화된 음성 같기도 하고,

“밥 좀 주세요”
“밥 좀 주세요”

내가 가던 길을 멈추고 올려다 보자 더 큰 목소리로…

“밥 좀 주세요”
“밥 좀 주세요”

위에서는 내가 보이는 모양인데 열린 창문 중 정확히 어느 창문에서 나는 소리인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혹시, 학대 받는 노인인가?’라는 생각이 잠시 스치고 지나갈 때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올랐다.

우리 할머니는 98세까지 사셨다.

돌아가시기 전 어느 날 찾아뵈었을 때의 일이다. 때마침 빵을 잡수시고 계셨는데 내가 방에 들어서자 정신이 오락가락하시면서도 방에 들어선 나를 의식하셨는지 갑자기 들고 계신 빵을 꿀꺽 꿀꺽 삼키는 시늉을 하며 이렇게 말씀하였다.

“내…내가…죽죽으려고…빵을…이렇게… 막…먹는데…안 죽어…막… 삼키는데도…안 죽어.”

어릴 때는 이 말이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속으로,

‘아니, 이 양반이 빵으로 숨을 막히게 해서 돌아가시겠다는건가? 아휴… 잘만 드시면서…’

라고 생각하며, 빵을 드시다 손자와 마주치니 멋쩍어하는 말 정도로만 여겼다.

그런데 살다보니 어느 순간 그 말뜻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정확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이런 뜻이다.

그 말은 “내가 죽으려고 빵을 먹는다”라는 뜻이 아니라,

“내가 죽으려고 애를 쓰는데도, 빵이 자꾸 먹힌다.”

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소보르 빵을 씹어먹다 문득 알게 된 사실이다.

어느 날 부산역에서 한 할머니와 손자

그러므로 “밥 좀 주세요”라는 말과 “얘야, 나는 죽으려고 빵을 먹는단다”라는 말은 다 같은 말이다.

영혼과 신체 간에 여백-공간이 없어지고 협착이 되었을 때 일어나는 마찰음의 일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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