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Carl Jung)은 어떻게 히틀러 나치즘(Nazism)에 부역했나.
구글 검색 창에 “칼 융과 나치즘”(Carl Jung and Nazism)이라는 말을 기입해 본 적 있는가. 융(Carl Jung)이 반유대주의 신봉자이자 나치의 동조자라는 혐의에 깊이 빠져들게 될 것이다. 많은 자료가 그를 비난하고 있거나, 변증을 꾀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그를 토양적 혈통적 아리안 인종의 영웅으로 칭송하고 있는데, 사실 이러한 문제를 식별하는 일은 의외로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 이 논쟁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한 때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친구이자, 학생, 또는 동료였던 이 유명한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에 대한 증언은 무엇이 사실인가ㅡ
진실은 결코 좋게 보이지만은 않는다고 전한다. 자신의 여동생과 함께 나치의 길을 가고자 했지만 정작 나치에 의해 의도적으로 배제 된 니체와는 달리, 융은 반유대주의자로 읽히는 맥락에서 그리 벗어나 있지 않다. 1934년 The State of Psychotherapy Today지(誌)에서 그가 나치의 국가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를 “가공할 현상”으로 경탄해 마지않으면서 “아리안 종족의 무의식은 유대인보다 잠재력이 더 크다.”고 쓴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역사학자 앤드류 사무엘스(Andrew Samuels)가 보여 주듯 그러한 진술들 가운데 가장 불쾌한 것 중 하나였다.
친 융 학파 중 한 사람은 Lingering Shadows라 불리는 수필집에서 융이 “나치의 이념에 무의식적으로 감염되었다.”고 인정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심리학자 John Conger는 “반(反) 유대주의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감염되었다 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옹호적 반문을 한다. 나치가 권력을 잡기 전에 융은 이미 30대 때에 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와 마찬가지로 유대인 동료들을 쫓아 냄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한편 전문직 종사자들과 거래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전기작가 디어드리 베어(Deirdre Bair)는 사람들이 융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융의 이름으로 (유대인)박해를 지지하곤 했다고 주장한다. 융은 특히 자신이 “독일인의 심리 요법이 유대인 개개인에게 공개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실제로 투쟁했었다”는 가디언지의 마크 버넌(Mark Vernon)의 기사에 격분한 적이 있다. 베어는 융이 “지도층 의사들과 함께 ‘총통은 미쳤다’고 선언함으로써 히틀러를 축출하기 위한 두어 가지 계획에 참여했으나, 둘 다 무위로 그쳤다.”고 전한다. 하이데거(Heidegger)와는 달리 융은 전쟁 중에 반유대주의적 견해를 강하게 비난했다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유대인 분석가들을 보호했다”고 Conger는 말한다. 난민을 도왔을 뿐 아니라 전쟁 중에 그는 CIA의 전신인 OSS에서 일했다고도 한다.
한편 알렌 덜레스(Allen Dulles)는 융의 나치즘과 파시즘에 대한 깊은 반감에 관해서도 썼다. 덜레스는 “융 교수가 전쟁 중에 연합군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러한 융의 언어들, 인격 속에서의 모순과 행동은 아무리 반쯤 접어 듣더라도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융의 아돌프 히트러에 관한 관조를 위한 정당성에 종사한다. 무엇보다 융에게 찬사를 보내는 오늘날의 신 나치들을 들여다 보면, 그가 제시했던 히틀러의 특징 곧, “보탄(Wotan*) 또는 오딘(Odin)”으로서 당대 독일인들이 했던 것처럼 현대의 인종차별적 민족주의에다가 고대 유럽인들의 공포의 파간/선전 시스템을 그대로 옷입힘으로써 자기네 신자들을 흥분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어렵지 않다. [* 보탄: 북유럽 신화의 Odin에 해당하는 게르만 신화의 신]
1936년 에세이 Wotans에서 융은 “1933년 수십만의 실직자들이 벌인 행진”을 통해 독일인이 “바이마르 공화국의 끝을 향해” 이주한 것은 “정신력의 인격화”(personification of psychic forces)였다면서 그 모든 힘으로서의 전통 신으로 ‘보탄’(Wotans)을 묘사했다. 그러면서 융은 보탄이 “폭풍과 열광의 신, 정열의 자유이며, 전쟁의 갈망이요, 더욱이 초자연의 모든 비밀 속에서 정통한 환상의 마술사이자 예술가”라면서 독일인 또는 히틀러로 투사된 그를 찬양했다. “독일의 정신”(German psyche)을 분노한 신으로 인격화 한 융은 더 나아가 “밖에 서 있는 우리는 마치 책임 있는 대리인인 것처럼 너무 많이 독일인을 판단한다. 하지만 아마도 그들은 비폭력자라고 보면 거의 진리에 가까울 것이다.” 라고 했다.
희망에 비추어 볼 때, 분명히 희망에 반하여 “융은 독일에 대한 구속(redemption)의 논거로서” 그의 성명들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명백하게 희망의 반대편에서” 작용했다고 브래스크(Per Brask)는 기록한다. 그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Wotan”(보탄)의 무의식에 대한 그의 신비주의적 인종차별은 알프레드 로젠버그(Alfred Rosenberg)의 “히틀러의 수석 이데올로기” 이론과 함께 완벽하게 일치했다. 융에 관한 이같은 모순들과 마찬가지로 상황도 복잡했다. 1942년 Omnibook Magazine에 의해 출판된 1938년 인터뷰에서 융은 히틀러에 대한 독일 숭배와 “열등감을 가진 사람의 특성”인 메시아에 대한 유대인의 욕구를 비교하면서 이러한 혼란스러운 개념들을 반복해서 이어갔다. 그는 “마술적” 형태로서의 히틀러의 힘을 묘사한다. 그러면서 “그 힘은 히틀러가 듣고 순종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목소리는 그 자신의 무의식 이외의 다른 어떤 것이 아니며, 독일 사람 자신들 즉, 7천 8백만의 독일인의 무의식에 투사된 것이었다. 그것이 그를 강력하게 만드는 이유였다. 다른 말로 하면 독일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융의 관찰은 과장된 것이지만 그들은 착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사로 잡힐 수 있으나 그것은 분명 그들의 의지이다. 그는 자신의 뜻이 아닌 나치 지도자가 제정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융은 말하기를 “진정한 리더는 항상 이끌고 나가는 것”이라 말한다. 그는 계속해서 베를린에서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함께 관찰하면서 더 어두운 그림을 그려나갔다.
히틀러는 무솔리니(Mussolini)와 비교했을 때 옷이나 로봇의 가면과 같은 마스크가 있는 오토 마톤(automaton) 같았다. 자신을 거죽이 덮인 일종의 나무 받침대 같은 인상이 들도록 만들었다. 어떤 공연을 관람할 때도 그는 결코 웃지 않았다. 마치 그가 유머 감각이 전혀 없거나 나쁜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는 인간미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모든 표현에서 유머 감각이 없는 비인간적인 인상으로 보이려는 목적은 단 하나, 그는 마치 진짜 사람의 두 배가 되는 것처럼 보이기 위했던 것이다. 그런 의도를 매커니즘으로 신체의 맹장처럼 의도적으로 숨겼다.
히틀러와 함께라면 당신이 남자와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이 히틀러와 함께 있었다면 의사 또는 영적인 형상 또는 반신(demi-deity, 半神), 또는 더 나아가 신화와 함께 있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당신은 그 남자와 결코 이야기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거기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이 아니라 집단이었던 것이다. 그는 개인이 아니라 전체 국가였던 것이다. 그가 개인적인 친구가 없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과연 한 국가와 어떻게 친밀하게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융은 계속해서 보탄(Wotan) 숭배의 부활, “성경에서의 삼위, 제3제국과의 평행선”, 그리고 특히 융 학파 다른 고유한 공식 등 대한 논의를 계속한다. 융의 분석에 있어서, 니커보커(H.R. Knickerbocker)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나치의 이름과 상징에 대한 이 정신의학적 설명은 비전문가에겐 환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치당과 그 안내인(FÜHRER)에 대한 팩트만큼이나 환상적일 수 있을까? 단순히 그들을 갱이라고 부를 때 설명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잘 설명 될 수 있어야 한다.”
cf. open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