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땅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약간 下位의 神들이 인간의 몸을 만들 때 머리를 어떻게 만들지 선택해야 했다.
머리를 보다 견고하게 만들어 사유 능력은 떨어지더라도 수명을 길게 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아주 약하게 살짝 덮어 씌우기만 하여 보다 높은 수준의 정신 생활을 영위하도록 할 것인가…를 선택하던 가운데 후자를 택했다.
간장(肝臟)이 비록 낮은 곳에 위치해 있지만 어떤 고상한 생각을 반영하고 십이지장도 그 길이가 길어 식사 시간을 오래 소요함으로써 결국 충분히 명상에 잠길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제공했다.
역시 이런 면에서 몸의 최고 정점은 그 직립이다. 천공의 모형인 둥근 머리를 위로 치켜든 인간은 식물처럼 땅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천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간은 말하자면 하늘의 산물이다.” ㅡPlato.

바빙크의 '하나님의 큰 일'

재미있는 질의가 있어서 옮겨본다.

다음 두 구절은 바빙크 <하나님의 큰일>에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챕터에 있는 부분인데요. 방금 문제의 부분을 읽으면서 이해가 안가는 곳이 있어서 본 서의 두version을 병행해 놓고 봤는데 , 어느 번역이 맞는지요…전문가 지체님들의 댓글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마리아에게서 인성을 취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이미 영원 전부터 아들의 위격으로 존재하셨었으므로….- 개혁교의학(원광연 역), 401p 밑에서 6번째 줄.

>.. 마리아를 통해서 인성을 입으신 하나님의 아들은 이미 영원 전부터 성부의 인격으로서 존재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큰일(김영규 역) 313p 밑에서 8번째 줄.

원교수님의 역본은 영원 전 예수님의 위치에 대해 “아들의 위격”이라고 번역 하고 있고, 반면 김교수님의 번역은 “성부의 인격”이라고 하고 있는데, 아들의 위격과 성부의 인격은 제가 삼위일체에 대해 이해하는 바로 전혀 다른 건인데요.(제 생각이 틀렸다면, 뭔가 놓친게 있다면 너그러이 바로잡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점괘 보듯

이번 학기에 처음 본 학생 하나가 깊이 묵상해보라고 성경구절을 문자로 보내왔다. ‘이런 시건방진…’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지만, ‘혹시..?’ 하고 점괘를 펼치는 기분으로 펼쳐보았다.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25 허다한 무리가 함께 갈쌔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28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찐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9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31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 만일 못할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찌니라
33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34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35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 없어 내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 하시니라
ㅡ누가복음 14:25-35

어제 이 여학생이 자기 사진을 보여줬는데 머리를 박박 깎은 모습이었다. 암 투병을 했다고. 이곳엔 온통 심령을 꿰뚫어 보는 신통력을 지닌 사람 투성이.

힘의 원천

4원소 가운데 바람은 힘이다. 고대인들은 왜 바람을 힘이라고 했을까. 존재하지 않지만 그 어느 것보다 존재하기 때문이다. 태풍 매미가 왔을 때 거대한 철탑을 휘어놓은 것은 바람이다. 어떤 도구나 기계의 엔진 힘으로 우그러뜨린 게 아니라 순전히 바람의 힘이 그리 해놓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인간의 힘도 마찬가지 원리이다. 살집이나 근력에서 힘이 쏟아지는 것 같지만, 그것을 일으키는 것은 호흡이다. 호흡을 일으키지 못하는 자는 자기 근력을 쓸 수 없다.

그렇기에 (그 모든 바람이 하나님은 아니지만) 바람은 대개 하나님의 영이자 권능인 것이며, 창세기의 바람 루아흐는 태초부터 (뭐가 만들어지기 전에도) 함.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숨을 쉬는 한 하나님의 호흡이 있는 것이지만,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하였다. 가득 채우라는 것이다.

그 중에 방언도 일종의 힘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바람, 곧 성령이 충만함으로 방언이 나오는 것이지, 방언을 많이 해서 성령이 충만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기독교 여자 무당이 방언을 섞어 가며 하나님의 말이라고 하는 것도 잘못 된 것이지만(지난 해 12월), 어떤 나이든 신학자가 자기가 방언을 해본 적이 없다고(노O호 목사) 해서 이 세상 모든 방언이 사탄의 소리라느니- 하는 것도 잘못 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말하였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 3:8)

바람이 어디서 불어 어디로 오는지 알 수 없는 것인 것처럼, 방언이라고 하는 것은 그 자신이 glossolalia, 즉 알아들을 수 없는 어떤 것 자체로서 우리 영의 힘의 표식인 것이다.

충만의 개념

성령 충만.
충만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가득찬(fill up) 그래서 출렁 출렁, 철철 넘치는 연상을 하게 마련인데, 충만을 뜻하는 플레로마(πλήρωμα)라는 개념은 (물로) 가득찬 컵이 (물로) 가득찬 대야에 완전히 담겨 있는 상태를 말한다.
즉 충만이라고 하는 것은 고요하며, 소리가 나지 않으며, 평화로운 (그렇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람 곧 성령의 속성이기 때문에 굳이 ‘성령’과 ‘충만’ 둘 중에 고르라면 성령 보다 ‘충만’이 더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다.
충만은 어떤 잉여가 아니라 비로소 된 완전(체)를 뜻하기에 ‘성령’이라는 목적어가 없어도 일맥 상통하기 때문이다.
더러 이 충만을 흔들어, 채워, 그래서 떠드는 걸로만 이해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 개념을 히브리식 멜로(풍부, abundance)로만 오해한 데 기인할 것이다.
다 찼으면 조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