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날개」

이상의 “날개,” 「마리서사」 제 2호 (1936).

내일 4월 27일, 적지 않은 사람이 이상의 《날개》의 주인공 같은 심정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전문을 담아본다.

박제(剝製)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銀貨)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횟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리 속에 으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오. 그 위에다 나는 위트와 패러독스를 바둑 포석처럼 늘어놓았소. 가증할 상식의 병이오. 나는 또 여인과 생활을 설계하오. 연애 기법에 마저 서먹서먹해진, 지성의 극치를 홀깃 좀 들여다본 일이 있는, 말하자면 일종의 정신분일자(精神奔逸者) 말이오. 이런 여인의 반(半) ― 그것은 온갖 것의 반이오 ― 만을 영수(領收)하는 생활을 설계한다는 말이오. 그런 생활 속에 한 발만 들여 놓고 흡사 두개의 태양처럼 마주 쳐다보면서 낄낄거리는 것이오. 나는 아마 어지간히 인생의 제행(諸行)이 싱거워서 견딜 수가 없게끔 되고 그만 둔 모양이요. 굿바이.

굿바이. 그대는 이따금 그대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을 탐식(貪食)하는 아이러니를 실천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소. 위트와 패러독스와…
그대 자신을 위조(僞造)하는 것도 할 만한 일이오. 그대의 작품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기성품에 의하여 차라리 경편(輕便)하고 고매(高邁)하리다.

19세기는 될 수 있거든 봉쇄하여 버리오. 도스토예프스키 정신이란 자칫하면 낭비일 것 같소. 위고를 블란서의 빵 한 조각 이라고는 누가 그랬는지 지언(至言)인 듯 싶소. 그러나 인생, 혹은 그 모형에 있어서 디테일 때문에 속는다거나 해서야 되겠소? 화(禍)를 보지 마오. 부디 그대께 고(告)하는 것이니…
(테이프가 끊어지면 피가 나오. 상채기도 머지 않아 완치될 줄 믿소. 굿바이)

감정은 어떤 포우즈(그 포우즈의 원소元素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닌지 나도 모르겠소). 그 포우즈가 부동자세에까지 고도화할 때 감정은 딱 공급을 정지합네다.

나는 내 비범한 발육을 회고하여 세상을 보는 안목을 규정하였소.
여왕봉과 미망인 ― 세상의 하고 많은 여인의 본질적으로 이미 미망인 아닌 이가 있으리까? 아니! 여인의 전부가 그 일상에 있어서 개개 ‘미망인’이라는 내 논리가 뜻밖에도 여성에 대한 모독이 되오? 굿바이.

§

그 33번지라는 것이 구조가 흡사 유곽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다. 한 번지에 18가구가 죽 ―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서 창호가 똑같고 아궁지 모양이 똑같다. 게다가 각 가구에 사는 사람들 이 송이송이 꽃과 같이 젊다.
해가 들지 않는다. 해가 뜨는 것을 그들이 모른 체하는 까닭이다. 턱살 밑에다 철줄을 매고 얼룩진 이부자리를 널어 말린다는 핑계로 미닫이에 해가 드는 것을 막아 버린다. 침침한 방안에서 낮잠들을 잔다. 그들은 밤에는 잠을 자지 않나? 알 수 없다. 나는 밤이나 낮이나 잠만 자느라고 그런 것은 알 길이 없다. 33번지 18가구의 낮은 참 조용하다.
조용한 것은 낮뿐이다. 어둑어둑하면 그들은 이부자리를 걷어 들인다. 전등불이 켜진 뒤의 18가구는 낮보다 훨씬 하려하다. 저물도록 미닫이 여닫는 소리가 잦다. 바빠진다. 여러 가지 내음새가 나기 시작한다. 비웃 굽는 내, 탕고도오랑 내, 뜨물 내, 비눗 내…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도 그들의 문패가 제일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이다. 이 18가구를 대표하는 대문이라는 것이 일각이 져서 외따로 떨어지기는 했으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번도 닫힌 일이 없는 한길이나 마찬가지 대문인 것이다. 온갖 장사아치들은 하루 가운데 어느 시간에라도 이 대문을 통하여 드나들 수가 있는 것이다. 이네들은 문간에서 두부를 사는 것이 아니라 미닫이만 열고 방에서 두부를 사는 것이다. 그렇게 생긴 33번지 대문에 그들 18가구의 문패를 몰아다 붙이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들은 어느 사이엔가 각 미닫이 위 백인당(百忍堂)이니 길상당(吉祥堂)이니 써붙인 한곁에다 문패를 붙이는 풍속을 가져 버렸다.
내 방 미닫이 위 한곁에 칼표 딱지를 넷에다 낸 것만한 내 ― 아니! 내 아내의 명함이 붙어 있는 것도 이 풍속을 좇은 것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러나 그들의 아무와도 놀지 않는다. 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사도 않는다. 나는 내 아내와 인사하는 외에 누구와도 인사하고 싶지 않았다.
내 아내 외에 다른 사람과 인사를 하거나 놀거나 하는 것은 내 아내 낯을 보아 좋지 않은 일인 것만 같이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만큼까지 소중히 생각한 것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내 아내를 소중히 생각한 까닭은 이 33번지 18가구 가운데서 내 아내가 내 아내의 명함처럼 제일 작고 제일 아름다운 것을 안 까닭이다. 18가구에 각기 빌어 들은 송이송이 꽃들 가운데서도 내 아내는 특히 아름아운 한 떨기의 꽃으로 이 함석 지붕 밑 볕 안드는 지역에서 어디까지든지 찬란하였다. 따라서 그런 한 떨기 꽃을 지키고 아니 그 꽃에 매어 달려 사는 나라는 존재가 도무지 형언할 수 없는 거북스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나는 어디까지든지 내 방이 ― 집이 아니다. 집은 없다 ― 마음에 들었다. 방 안의 기온은 내 체온을 위하여 쾌적하였고 방 안의 침침한 정도가 또한 내 안력을 위하여 쾌적하였다. 나는 내 방 이상의 서늘한 방도 또 따뜻한 방도 희망하지는 않았다. 이 이상으로 밝거나 이 이상으로 아늑한 방은 원하지 않았다. 내 방은 나 하나를 위하여 요만한 정도를 꾸준히 지키는 것 같아 늘 내 방에 감사하였고 나는 또 이런 방을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 같아서 즐거웠다.
그러나 이것은 행복이라든가 불행이라든가 하는 것을 계산하는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나는 내가 행복되다고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고 그렇다고 불행하다고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그날그날을 그저 까닭 없이 펀둥펀둥 게으르고만 있으면 만사는 그만이었던 것이다.
내 몸과 마음에 옷처럼 잘 맞는 방 속에서 뒹굴면서 축 처져 있는 것은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그런 세속적인 계산을 떠난 가장 편리하고 안일한, 말하자면 절대적인 상태인 것이다. 나는 이런 상태가 좋았다.
이 절대적인 내 방은 대문 간에서 세어서 똑 ― 일곱째 칸이다. 럭키 세븐의 뜻이 없지 않다. 나는 이 일곱이라는 숫자를 훈장처럼 사랑하였다. 이런 이 방이 가운데 장지로 말미암아 두 칸으로 나뉘어 있었다는 그것이 내 운명의 상징이었던 것을 누가 알랴?

아랫방은 그래도 해가 든다. 아침결에 책보만한 해가 들었다가 오후에 손수건만 해지면서 나가 버린다. 해가 영영 들지 않는 웃방이 즉, 내방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볕드는 방이 아내 방이요, 볕 안드는 방이 내 방이요 하고 아내와 나 둘 중에 누가 정했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불평이 없다.
아내가 외출만 하면 얼른 아랫방으로 와서 그 동쪽으로 난 들창을 열어 놓고, 열어 놓으면 들이비치는 햇살이 아내의 화장대를 비쳐 가지각색 병들이 아롱이지면서 찬란하게 빛나고, 이렇게 빛나는 것을 보는 것은 다시 없는 내 오락이다. 나는 쪼꼬만 ‘돋보기’를 꺼내 가지고 아내만이 사용하는 지리가미(휴지)를 끄실려 가면서 불장난을 하고 논다. 평행광선을 굴절시켜서 한 초첨에 모아 가지고 고 초점이 따끈따끈해지다가 마지막에는 종이를 끄실르기 시작하고 가느다란 연기를 내이면서 드디어 구멍을 뚫어 놓는 데까지에 이르는, 고 얼마 안되는 동안의 초조한 맛이 죽고 싶을 만치 내게는 재미있었다.
이 장난이 싫증이 나면 나는 또 아내의 손잡이 거울을 가지고 여러 가지로 논다. 거울이란 제 얼굴을 비칠 때만 실용품이다. 그 외의 경우에는 도무지 장난감인 것이다.
이 장난도 곧 싫증이 난다. 나의 유희심은 육체적인 데서 정신적인 데로 비약한다. 나는 거울을 내던지고 아내의 화장대 앞으로 가까이 가서 나란히 늘어 놓인 고 가지각색의 화장품 병들을 들여다본다. 고것들은 세상의 무엇보다도 매력적이다. 나는 그 중의 하나만을 골라서 가만히 마개를 빼고 병 구멍을 내코에 가져다 대이고 숨 죽이듯이 가벼운 호흡을 하여 본다. 이국적인 센슈얼한 향기가 폐로 스며들면 나는 저절로 스르르 감기는 내 눈을 느낀다. 확실히 아내의 체취(體臭)는 파편이다. 나는 도로 병마개를 막고 생각해 본다. 아내의 어느 부분에서 요 냄새가 났던가를… 그러나 그것은 분명치 않다. 왜? 아내의 체취는 여기 늘어섰는 가지각색의 향기의 합계일 것이니까.
아내의 방은 늘 화려하였다. 내 방이 벽에 못 한 개 꽂히지 않은 소박한 것인 반대로, 아내 방에는 천장 밑을 짝 돌려 못이 박히고, 못마다 화려한 아내의 치마와 저고리가 걸렸다. 여러 가지 무늬가 보기 좋다. 나는 그 여러 조각의 치마에서 늘 아내의 동(胴)체와 그 동체가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포우즈를 연상하고 연상하면서 내 마음은 늘 점잖지 못하다.
그렇건만 나에게는 옷이 없었다. 아내는 내게는 옷을 주지 않았다. 입고 있는 골덴 양복 한 벌이 내 자리옷이었고 통상복과 나들이 옷을 겸한 것이었다. 그리고 하인넥의 스웨터가 한 조각 사철을 통한 내 내의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다 빛이 검다. 그것은 내 짐작 같아서는 즉 빨래를 될 수 있는 데까지 하지 않아도 보기 싫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한다. 나는 허리와 두 가랑이 세 군데 다 ―고무 밴드가 끼여 있는 부드러운 사루마다를 입고 그리고 아무 소리 없이 잘 놀았다.

《날개》의 일러스트레이션.

어느덧 손수건만 해졌던 볕이 나갔는데 아내는 외출에서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요만 일에도 좀 피곤하였고 또 아내가 돌아오기 전에 내 방으로 가 있어야 될 것을 생각하고 그만 내 방으로 건너간다. 내 방은 침침하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낮잠을 잔다. 한 번도 걷은 일이 없는 내 이부자리는 내 몸뚱이의 일부분처럼 내게는 참 반갑다. 잠은 잘 오는 적도 있다. 그러나 또 전신이 까칫까칫하면서 영 잠이 오지 않는 적도 있다. 그런 때는 아무 제목으로나 제목을 하나 골라서 연구하였다. 나는 내 좀 축축한 이불 속에서 참 여러 가지 발명도 하였고 논문도 많이 썼다. 시도 많이 지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내가 잠이 드는 것과 동시에 내 방에 담겨서 철철 넘치는 그 흐늑흐늑한 공기에 다 ― 비누처럼 풀어져서 온 데 간 데가 없고 한잠 자고 깨인 나는 속이 무명 헝겊이나 메밀껍질로 띵띵찬 한 덩어리 베개와도 같은 한 벌 신경이었을 뿐이고 하였다.
그러기에 나는 빈대가 무엇보다도 싫었다. 그러나 내 방에서는 겨울에도 몇 마리씩의 빈대가 끊이지 않고 나왔다. 내게 근심이 있었다면 오직 이 빈대를 미워하는 근심일 것이다. 나는 빈대에게 물려서 가려운 자리를 피가 나도록 긁었다. 쓰라리다. 그것은 그윽한 쾌감에 틀림없었다. 나는 혼곤히 잠이 든다.
나는 그러나 그런 이불 속의 사색생활에서도 적극적인 것을 궁리하는 법이 없다. 내게는 그럴 필요가 대체 없었다. 만일 내가 그런 좀 적극적인 것을 궁리해 내었을 경우에 나는 반드시 내 아내와 의논하여야 할 것이고, 그러면 반드시 나의 아내에게 꾸지람을 들을 것이고 ― 나는 꾸지람이 무서웠다느니보다는 성가셨다. 내가 제법 한 사람의 사회인의 자격으로 일을 해 보는 것도 아내에게 사설 듣는 것도 나는 가장 게으른 동물처럼 게으른 것이 좋았다. 될 수만 있으면 이 무의미한 인간의 탈을 벗어 버리고도 싶었다.
나에게는 인간사회가 스스러웠다. 생활이 스스러웠다. 모두가 서먹서먹할 뿐이었다.

아내는 하루에도 두 번 세수를 한다. 나는 하루 한 번도 세수를 하지 않는다. 나는 밤중 세 시나 네 시 해서 변소에 갔다. 달이 밝은 밤에는 한참씩 마당에 우두커니 섰다가 들어오곤 한다. 그러니까 나는 이 18가구의 아무와도 얼굴이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 18가구의 젊은 여인네 얼굴들을 거반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 아내만 못하였다.
열한 시쯤 해서 아내의 첫번 세수는 좀 간단하다. 그러나 저녁 일곱 시쯤 해서 하는 두번째 세수는 손이 많이 간다. 아내는 낮에 보다도 밤에 더 좋고 깨끗한 옷을 입는다. 그리고 낮에도 외출하고 밤에도 외출하였다.
아내에게 직업이 있었던가? 나는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만일 아내에게 직업이 없었다면, 같이 직업이 없는 나처럼 외출할 필요가 생기지 않을 것인데 ― 아내는 외출한다. 외출할 뿐만 아니라 내객이 많다. 아내에게 내객이 많은 날은 나는 온중일 내 방에서 이불을 쓰고 누워 있어야만 된다.

불장난도 못한다. 화장품 내음새도 못 맡는다. 그런 날은 나는 의식적으로 우울해하였다. 그러면 아내는 나에게 돈을 준다. 오십 전짜리 은화다. 나는 그것이 좋았다. 그러나 그것을 무엇에 써야 옳을지 몰라서 늘 머리맡에 던져두고 두고 한 것이 어느 결에 모여서 꽤 많아졌다. 어느 날 이것을 본 아내는 금고처럼 생긴 벙어리를 사다 준다. 나는 한 푼씩 한 푼씩 고 속에 넣고 열쇠는 아내가 가져갔다. 그 후에도 나는 더러 은화를 고 벙어리에 넣은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게을렀다. 얼마 후 아내의 머리 쪽에 보지 못하던 주깔잠이 하나 여드름처럼 돋았던 것은 바로 그 금고형 벙어리의 무게가 가벼워졌다는 증거일까. 그러나 나는 드디어 머리맡에 놓였던 고 벙어리에 손을 대지 않고 말았다. 내 게으름은 그런 것에 내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싫었다.

아내에게 내객이 있는 날은 이불 속으로 암만 깊이 들어가도 비오는 날만큼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나는 그런 때 아내에게는 왜 늘 돈이 있나, 왜 돈이 많은가를 연구했다.
내객들은 장지 저쪽에 내가 있는 것을 모르나 보다. 내 아내와 나도 좀 하기 어려운 농을 아주 서슴지 않고 쉽게 해 던지는 것이다. 그러나 내 아내를 찾은 서너 사람의 내객들은 늘 비교적 점잖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자정이 좀 지나면 으례 돌아들 갔다. 그들 가운데는 퍽 교양이 얕은 자도 있는 듯싶었는데, 그런 자는 보통 음식을 사다 먹고 논다. 그래서 보충을 하고 대체로 무사 하였다.
나는 우선 내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가를 연구하기에 착수하였으나 좁은 시야와 부족한 지식으로는 이것을 알아내기 힘이 든다. 나는 끝끝내 내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말려나 보다.

이상의 “날개”. 일러스트레이션.

아내는 늘 ‘진솔’버선만 신었다. 아내는 밥도 지었다. 아내가 밥 짓는 것을 나는 한번도 구경한 일은 없으나 언제든지 끼니때면 내방으로 내 조석밥을 날라다 주는 것이다. 우리 집에는 나와 내 아내 외의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밥은 분명 아내가 손수 지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아내는 한 번도 나를 자기 방으로 부른 일이 없다.
나는 늘 웃방에서 나 혼자서 밥을 먹고 잠을 잤다. 밥은 너무 맛이 없었다 반찬이 너무 엉성하였다. 나는 닭이나 강아지처럼 말없이 주는 모이를 넙죽넙죽 받어먹기는 했으나 내심 야속하게 생각한 적도 더러 없지 않다. 나는 안색이 여지없이 창백해가면서 말라 들어갔다. 나날이 눈에 보이듯이 기운이 줄어들어 갔다. 영양 부족으로 하여 몸뚱이 곳곳의 뼈가 불쑥불숙 내밀었다. 하룻밤 사이에도 수십 차를 돌쳐 눕지 않고는 여기 저기가 배겨서 나는 배겨내일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이불 속에서 아내가 늘 흔히 쓸 수 있는 저 돈의 출처를 탐색해 보는 일변 장지 틈으로 새어 나오는 아랫방의 음식은 무엇일까를 간단히 연구하였다. 나는 잠이 잘 안 왔다.
깨달았다. 아내가 쓰는 그 돈은 그 내게는 다만 실없는 사람들로밖에 보이지 않는 까닭 모를 내객들이 놓고 가는 것이 틀림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그러나 왜 그들 내객은 돈을 놓고 가나? 왜 내 아내는 그 돈을 받아야 되나? 하는 예의(禮儀) 관념이 내게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저 예의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혹 무슨 댓가일가? 보수일까? 내 아내가 그들의 눈에는 동정을 받아야만 할 한 가엾은 인물로 보였던가?
이런 것들을 생각하노라면 으례 내 머리는 그냥 혼란하여 버리고 하였다. 잠 들기 전에 획득했다는 결론이 오직 불쾌하다는 것뿐이었으면서도 나는 그런 것을 아내에게 물어보거나 한 일이 참 한 번도 없다. 그것은 대체 귀찮기도 하려니와 한 잠 자고 일어나는 나는 사뭇 딴 사람처럼 이것도 저것도 다 깨끗이 잊어버리고 그만두는 까닭이다.
내객들이 돌아가고, 혹 밤 외출에서 돌아오고 하면 아내는 경편한 것으로 옷을 바꾸어 입고 내 방으로 나를 찾아온다. 그리고 이불을 들치고 내 귀에는 영 생동생동한 몇 마디 말로 나를 위로하려 든다. 나는 조소(嘲笑)도 고소(苦笑)도 홍소(哄笑)도 아닌 웃음을 얼굴에 띠우고 아내의 아름다운 얼굴을 쳐다본다. 아내는 방그레 웃는다. 그러나 그 얼굴에 떠도는 일말의 애수를 나는 놓치지 않는다.
아내는 능히 내가 배고파하는 것을 눈치 챌 것이다. 그러나 아랫방에서 먹고 남은 음식을 나에게 주려 들지는 않는다. 그것은 어디까지든지 나를 존경하는 마음일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배가 고프면서도 저으기 마음이 든든한 것을 좋아했다. 아내가 무엇이라고 지껄이고 갔는지 귀에 남아 있을 리가 없다. 다만, 내 머리맡에 아내가 놓고 간 은화가 전등불에 흐릿하게 빛나고 있을 뿐이다.
그 금고형 벙어리 속에 고 은화가 얼마큼이나 모였을까. 나는 그러나 그것을 쳐들어 보지 않았다. 그저 아무런 의욕도 기원도 없이 그 단추구멍처럼 생긴 틈바구니로 은화를 들여뜨려 둘 뿐이었다.

영화로 제작된 이상의 《날개》

왜 아내의 내객들이 아내에게 돈을 놓고 가나 하는 것이 풀 수 없는 의문인 것같이, 왜 아내는 나에게 돈을 놓고 가나 하는 것도 역시 나에게는 똑같이 풀 수 없는 의문이었다. 내 비록 아내가 내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 싫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만 고것이 내 손가락에 닿는 순간에서부터 고 벙어리 주둥이에서 자취를 감추기까지의 하잘 것 없는 짧은 촉각이 좋았달 뿐이지 그 이상 아무 기쁨도 없다.

어느 날 나는 고 벙어리를 변소에 갖다 넣어 버렸다. 그때 벙어리 속에는 몇 푼이나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고 은화들이 꽤 들어 었었다.
나는 내가 지구 위에 살며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지구가 질풍신뢰의 속력으로 광대무변의 공간을 달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참 허망하였다. 나는 이렇게 부지런한 지구 위에서는 현기증도 날 것 같고 해서 한시바삐 내려 버리고 싶었다.
이불 속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난 뒤에는 나는 고 은화를 그 벙어리에 넣고 넣고 하는 것조차도 귀찮아졌다. 나는 아내가 손수 벙어리를 사용하였으면 하고 희망하였다. 고 벙어리도 돈도 사실에는 아내에게만 필요한 것이지 내게는 애초부터 의미가 전연 없는 것이었으니까 될 수만 있으면 고 벙어리를 아내는 아내 방으로 가져갔으면 하고 기다렸다. 그러나 아내는 가져가지 않는다. 나는 내가 아내 방으로 가져다 둘까 하고 생각하여 보았으나 그 즈음에는 아내의 내객이 원체 많아서 내가 아내 방에 가 볼 기회가 도무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변소에 갖다 집어 넣어 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서글픈 마음으로 아내의 꾸지람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내는 끝내 아무 말도 나에게 묻지도 하지도 않았다. 않았을 뿐 아니라 여전히 돈은 돈대로 내 머리맡에 놓고 가지 않나? 내 머리맡에는 어느덧 은화가 꽤 많이 모였다.
내객이 아내에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나 아내가 내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나 일종의 쾌감 ― 그 외의 다른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을 나는 또 이불 속에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쾌감이라면 어떤 종류의 쾌감일까를 계속하여 연구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불 속의 연구로는 알 길이 없었다. 쾌감, 쾌감 하고 나는 뜻밖에도 이 문제에 대해서만 흥미를 느꼈다.
아내는 물론 나를 늘 감금하여 두다시피 하여 왔다. 내게 불평이 있을 리 없다. 그런 중에도 나는 그 쾌감이라는 것의 유무를 체험하고 싶었다.

나는 아내의 밤 외출 틈을 타서 밖으로 나왔다. 나는 거리에서 잊어 버리지 않고 가지고 나온 은화를 지폐로 바꾼다. 5원이나 된다.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나는 목적지를 잃어버리기 위하여 얼마든지 거리를 쏘다녔다. 오래간만에 보는 거리는 거의 경이에 가까울 만치 내 신경을 흥분시키지 않고는 마지 않았다. 나는 금시에 피곤하여 버렸다. 그러나 나는 참았다. 그리고 밤이 이슥하도록 까닭을 잊어버린 채 이 거리 저 거리로 지향없이 헤매었다. 돈은 물론 한 푼도 쓰지 않았다. 돈을 쓸 아무 엄두도 나서지 않았다. 나는 벌써 돈을 쓰는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것 같았다.
나는 과연 피로를 이 이상 견디기가 어려왔다. 나는 가까스로 내 집을 찾았다. 나는 내 방을 가려면 아내 방을 통과하지 아니 하면 안 될 것을 알고, 아내에게 내객이 있나 없나를 걱정하면서 미닫이 앞에서 좀 거북살스러운 기침을 한 번 했더니, 이것은 참 또 너무도 암상스럽게 미닫이가 열리면서 아내의 얼굴과 그 등 뒤에 낯설은 남자의 얼굴이 이쪽을 내다보는 것이다. 나는 별안간 내어 쏟아지는 불빛에 눈이 부셔서 좀 머뭇머뭇했다.
나는 아내의 눈초리를 못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모른체하는 수밖에 없었다. 왜? 나는 어쨌든 아내의 방을 통과하지 아니 하면 안 되니까…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무엇보다도 다리가 아파서 견딜 수 가 없었다. 이불 속에서 가슴이 울렁거리면서 암만해도 까무러칠 것만 같았다. 걸을 때는 몰랐더니 숨이 차다. 등에 식은 땀이 쭉 내배인다. 나는 외출한 것을 후회하였다. 이런 피로를 잊고 어서 잠이 들었으면 좋았다. 한참 잘 ― 자고 싶었다.
얼마 동안이나 비스듬히 엎드려 있었더니 차츰차츰 뚝딱거리는 가슴 동계가 가라앉는다. 그만해도 우선 살 것 같았다. 나는 몸을 돌쳐 반듯이 천장을 향하여 눕고 쭉 ― 다리를 뻗었다.
그러나 나는 또다시 가슴의 동계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아랫방에서 아내와 그 남자의 내 귀에도 들리지 않을 만치 낮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는 기척이 장지 틈으로 전하여 왔던 것이다. 청각을 더 예민하게 하기 위하여 나는 눈을 떴다. 그리고 숨을 죽였다. 그러나 그때는 벌써 아내와 남자는 앉았던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섰고 일어서면서 옷과 모자 쓰는 기척이 나는 듯하더니 이어 미닫이가 열리고 구두 뒤축 소리가 나고 그리고 뜰에 내려서는 소리가 쿵하고 나면서 뒤를 따르는 아내의 고무신 소리가 두어 발자국 쩍쩍 나고 사뿐사뿐 나나 하는 사이에 두 사람의 발소리가 대문간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아내의 이런 태도를 본 일이 없다. 아내는 어떤 사람과도 결코 소곤거리는 법이 없다. 나는 웃방에서 이불을 쓰고 누웠는 동안에도 혹 술에 취해서 혀가 잘 돌아가지 않는 내객들의 담화는 더러 놓치는 수가 있어도 아내의 높지도 낮지도 않은 말소리는 일찍이 한마디 놓쳐 본 일이 없다. 더러 내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있어도 나는 그것이 태연한 목소리로 내 귀에 들렸다는 이유로 충분히 안심이 되었다.
그렇던 아내의 이런 태도는 필시 그 속에 여간하지 않은 사정이 있는 듯싶이 생각이 되고 내 마음은 좀 서운했으나 그러나 그보다도 나는 좀 너무 피곤해서 오늘만은 이불 속에서 아무것도 연구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하고 잠을 기다렸다. 잠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문간에 나간 아내도 좀처럼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 흐지부지 나는 잠이 들어 버렸다. 꿈이 얼쑹덜쑹 종을 잡을 수 없는 거리의 풍경을 여전히 헤맸다.

이상의 《날개》 첫 페이지 일러스트레이션.

나는 몹시 흔들렸다. 내객을 보내고 들어온 아내가 잠든 나를 잡아 흔드는 것이다. 나는 눈을 번쩍 뜨고 아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내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었다. 나는 좀 눈을 비비고 아내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노기가 눈초리에 떠서 얇은 입술이 바르르 떨린다. 좀처럼 이 노기가 풀리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아 버렸다. 벼락이 내리기를 기다린 것이다. 그러나 쌔근하는 숨소리가 나면서 부스스 아내의 치맛자락 소리가 나고 장지가 여닫히며 아내는 아내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다시 몸을 돌쳐 이불을 뒤집어 쓰고는 개구리처럼 엎드리고 엎드려서 배가 고픈 가운데에도 오늘밤의 외출을 또 한번 후회하였다.
나는 이불 속에서 아내에게 사죄하였다. 그것은 네 오해라고……
나는 사실 밤이 퍽으나 이슥한 줄만 알았던 것이다. 그것이 네 말마따나 자정 전인 줄은 나는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다. 나는 너무 피곤하였었다. 오래간만에 나는 너무 많이 걸은 것이 잘못이다. 내 잘못이라면 잘못은 그것밖에 없다. 외출은 왜 하였느냐고?
나는 그 머리맡에 저절로 모인 오 원 돈을 아무에게라도 주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내 잘못이라면 나는 그렇게 알겠다. 나는 후휘하고 있지 않나?
내가 그 오 원 돈을 써 버릴 수가 있었던들 나는 자정 안에 집에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리는 너무 복잡하였고 사람은 너무도 들끓었다. 나는 어느 사람을 붙들고 그 5원 돈을 내 주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여지없이 피곤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좀 쉬고 싶었다. 눕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내 짐작 같아서는 밤이 어지간히 늦은 줄만 알았는데, 그것이 불행히도 자정 전이었다는 것은 참 안 된 일이다. 미안한 일이다. 나는 얼마든지 사죄하여도 좋다. 그러나 종시 아내의 오해를 풀지 못하였다 하면 내가 이렇게까지 사죄하는 보람은 그럼 어디 있나? 한심하였다.
한 시간 동안을 나는 이렇게 초조하게 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이불을 홱 젖혀 버리고 일어나서 장지를 열고 아내 방으로 비칠비칠 달려갔던 것이다. 내게는 거의 의식이라는 것이 없었다. 나는 아내 이불 위에 엎드려지면서 바지 포켓 속에서 그 돈 오 원을 꺼내 아내 손에 쥐어 준 것을 간신히 기억할 뿐이다.
이튿날 잠이 깨었을 때 나는 내 아내 방 아내 이불 속에 있었다. 이것이 이 33번지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 내가 아내 방에서 잔 맨 처음이었다.
해가 들창에 훨씬 높았는데 아내는 이미 외출하고, 벌써 내곁에 있지는 않다. 아니! 아내는 엊저녁 내가 의식을 잃은 동안에 외출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을 조사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전신이 찌뿌드드한 것이 손가락 하나 꼼짝할 힘조차 없었다. 책보보다 좀 작은 면적의 볕이 눈이 부시다. 그 속에서 수없는 먼지가 흡사 미생물처럼 난무한다. 코가 콱 막히는 것 같다.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이불을 푹 뒤집었고 낮잠을 자기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코를 스치는 아내의 체취는 꽤 도발적이었다. 나는 몸을 어려 번 여러 번 비비꼬면서 아내의 화장대에 늘어선 고 가지각색 화장품 병들이 마개를 뽑았을 때 풍기는 내음새를 더듬느라고 좀처럼 잠이 들지 않는 것을 나는 어찌하는 수도 없었다.
견디다 못하여 나는 그만 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나서 내 방으로 갔다. 내 방에는 다 식어빠진 내 끼니가 가지런히 놓여있는 것이다. 아내는 내 모이를 여기다 주고 나간 것이다. 나는 우선 배가 고팠다. 한 숟갈을 입에 놓었을 때 그 촉감은 참 너무도 냉회와 같이 싸늘하였다. 나는 숟갈을 놓고 내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하룻밤을 비었던 내 이부자리는 여전히 반갑게 나를 맞아준다. 나는 내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번에는 참 늘어지게 한잠 잤다. 잘 ―
내가 잠을 깬 것은 전등이 켜진 뒤다. 그러나 아내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 보다. 아니! 들어왔다 또 나갔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것을 상고하여 무엇하나?
정신이 한결 난다. 나는 지난 밤 일을 생각해 보았다. 그 돈 5원을 아내 손에 쥐어주고 넘어졌을 때에 느낄 수 있었던 쾌감을 나는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내객들이 내 아내에게 돈 놓고 가는 심리며 내 아내가 내게 돈 놓고 가는 심리의 비밀을 나는 알아낸 것 같아서 여간 즐거운 것이 아니다. 나는 속으로 빙그레 웃어 보았다. 이런 것을 모르고 오늘까지 지내온 내 자신이 어떻게 우스꽝스러워 보이는지 몰랐다. 나는 어깨춤이 났다.
따라서 나는 또 오늘밤에도 외출하고 싶었다. 그러나 돈이 없다. 나는 또 엊저녁에 그 돈 5원을 한꺼번에 아내에게 주어 버린 것을 후회하였다. 또 고 벙어리를 변소에 갖다 처넣어 버린 것도 후회하였다. 나는 실없이 실망하면서 습관처럼 그 돈 5원이 들어있던 내 바지 포켓에 손을 넣어 한 번 휘둘러 보았다. 뜻밖에도 내 손에 쥐어지는 것이 있었다. 이 원밖에 없다. 그러나 많아야 맛은 아니다. 얼마간이고 있으면 된다. 나는 그만한 것이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기운을 얻었다. 나는 그 단벌 다 떨어진 코르덴양복을 걸치고 배고픈 것도 주제 사나운 것도 다 잊어버리고 활개짓을 하면서 또 거리로 나섰다. 나서면서 나는 제발 시간이 화살 닫듯 해서 자정이 어서 홱 지나 버렸으면 하고 조바심을 태웠다. 아내에게 돈을 주고 아내 방에서 자 보는 것은 어디까지든지 좋았지만, 만일 잘못해서 자정 전에 집어 들어갔다가 아내의 눈총을 맞는 것은 그것은 여간 무서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저무도록 길가 시계를 들어다 보고 들어다 보고 하면서 또 지향없이 거리를 방황하였다. 그러나 이 날은 좀처럼 피곤하지는 않았다. 다만 시간이 좀 너무 더디게 가는 것만 같아서 안타까웠다.
경성역 시계가 확실히 자정을 지난 것을 본 뒤에 나는 집을 향하였다. 그날은 그 일각 대문에서 아내와 아내의 남자가 이야기하고 섰는 것을 만났다. 나는 모른 체하고 두 사람 곁을 지나서 내 방으로 들어갔다. 뒤 이어 아내도 들어왔다. 와서는 이 밤중에 평생 안하던 쓰레질을 하는 것이다. 조금 있다가 아내는 눕는 기척을 엿듣자마자 나는 또 장지를 열고 아내 방으로가서 그 돈 이 원을 아내 손에 덥석 쥐어 주고 그리고 ― 하여간 그 이 원을 오늘 밤에도 쓰지 않고 도로 가져온 것이 참 이상하다는 듯이 아내는 내 얼굴을 몇 번이고 엿보고 ― 아내는 드디어 아무 말 없이 나를 자기 방에 재워 주었다. 나는 이 기쁨을 세상의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편히 잘 잤다.

《날개》 일러스트레이션.

이튿날도 내가 잠을 깨었을 때는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또 내 방으로 가서 피곤한 몸으로 낮잠을 잤다.
내가 아내에게 흔들려 깨었을 때는 역시 불이 들어온 뒤였다. 아내는 자기 방으로 나를 오라는 것이다. 이런 일은 또 처음이다. 아내는 끊임없이 얼굴에 미소를 띠우고 내 팔을 이끄는 것이다. 나는 이런 아내의 태도 이면에 엔간치 않은 음모가 숨어 있지나 않은가 하고 적이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내의 하자는 대로 아내의 방으로 끌려갔다. 아내 방에는 저녁 밥상이 조촐하게 차려져 있는 것이다. 생각하여 보면 나는 이틀을 굶었다. 나는 지금 배고픈 것까지도 긴가민가 잊어버리고 어름어름하던 차다.
나는 생각하였다. 이 최후의 만찬을 먹고 나자마자 벼락이 내려도 나는 차라리 후회하지 않을 것을. 사실 나는 인간 세상이 너무나 심심해서 못 견디겠던 차다. 모든 일이 성가시고 귀찮았으나 그러나 불의의 재난이라는 것은 즐거웁다. 나는 마음을 턱 놓고 조용히 아내와 마주 이 해괴한 저녁밥을 먹었다. 우리 부부는 이야기하는 법이 없었다. 밥을 먹은 뒤에도 나는 말이 없이 그냥 부스스 일어나서 내 방으로 건너가 버렸다. 아내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나는 벽에 기대어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그리고 벼락이 떨어질 테거든 어서 떨어져라 하고 기다렸다.
오 분! 십 분! ―
그러나 벼락은 내리지 않았다. 긴장이 차츰 풀어지기 시작한다. 나는 어느덧 오늘밤에도 외출할 것을 생각하고 돈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돈은 확실히 없다. 오늘은 외출하여도 나중에 올 무슨 기쁨이 있나. 내 앞이 그냥 캄캄하였다. 나는 화가 나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굴렀다. 금시 먹은 밥이 목으로 자꾸 치밀어 올라온다. 메스꺼웠다.
하늘에서 얼마라도 좋으니 왜 지폐가 소낙비처럼 퍼붓지 않나. 그것이 그저 한없이 야속하고 슬펐다. 나는 이렇게밖에 돈을 구하는 아무런 방법도 알지는 못했다. 나는 이불 속에서 좀 울었나 보다. 돈이 왜 없느냐면서……
그랬더니 아내가 또 내 방에를 왔다. 나는 깜짝 놀라 아마 이제서야 벼락이 내리려나보다 하고 숨을 죽이고 두꺼비 모양으로 엎드려 있었다. 그러나 떨어진 입을 새어 나오는 아내의 말소리는 참 부드러웠다. 정다웠다. 아내는 내가 왜 우는지를 안다는 것이다. 돈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냔다. 나는 실없이 깜짝 놀랐다. 어떻게 저렇게 사람의 속을 환 ― 하게 들여다 보는구 해서 나는 한편으로 슬그머니 겁도 안 나는 것은 아니었으나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아마 내게 돈을 줄 생각이 있나보다, 만일 그렇다면 오죽이나 좋은 일일까. 나는 이불 속데 뚤뚤 말린 채 고개도 들지 않고 아내의 다음 거동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옛소 ― 하고 내 머리맡에 내려뜨리는 것은 그 가뿐한 음 향으로 보아 지폐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내 귀에다 대고 오늘일랑 어제보다도 좀더 늦게 들어와도 좋다고 속삭이는 것이다. 그것은 어렵지 않다. 우선 그 돈이 무엇보다도 고맙고 반가웠다.
어쨌든 나섰다. 나는 좀 야맹증이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밝은 거리로 골라서 돌아다니기로 했다. 그리고는 경성역 일이등 대합실 한 곁 티이루움에를 들렀다. 그것은 내게는 큰 발견이었다. 거기는 우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안 온다. 설사 왔다가도 곧들 가니까 좋다. 나는 날마다 여기 와서 시간을 보내리라 속으로 생각하여 두었다.
제일 여기 시계가 어느 시계보다도 정확하리라는 것이 좋았다. 섣불리 서투른 시계를 보고 그것을 믿고 시간 전에 집에 돌아갔다가 큰 코를 다쳐서는 안 된다.
나는 한 복스에 아무것도 없는 것과 마주앉아서 잘 끓은 커피를 마셨다. 총총한 가운데 여객들은 그래도 한 잔 커피가 즐거운가 보다. 얼른얼른 마시고 무얼 좀 생각하는 것같이 담벼락도 좀 쳐다보고 하다가 곧 나가 버린다. 서글프다. 그러나 내게는 이 서글픈 분위기가 거리의 티이루움들의 그 거추장스러운 분위기보다는 진실하고 마음에 들었다. 이따금 들리는 날카로운, 혹은 우렁찬 기적소리가 모차르트보다도 더 가깝다. 나는 메뉴에 적힌 몇 가지 안 되는 음식 이름을 치읽고 내리읽고 여러 번 읽었다. 그것들은 아물아물한 것이 어딘가 내 어렸을 때 동무들 이름과 비슷한 데가 있었다.
거기서 얼마나 내가 오래 앉았는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중에 객이 슬며시 뜸해지면서 이 구석 저 구석 걷어 치우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아마 닫을 시간이 된 모양이다. 열한 시가 좀 지났구나, 여기도 결코 내 안주의 곳은 아니구나, 어디 가서 자정을 넘길까, 두루 걱정을 하면서 나는 밖으로 나섰다. 비가 온다. 빗발이 제법 굵은 것이 우비도 우산도 없는 나를 고생시킬 작정이다. 그렇다고 이런 괴이한 풍모를 차리고 이 홀에서 어물어물하는 수도 없고 에이 비를 맞으면 맞았지 하고 나는 그냥 나서 버렸다.
대단히 선선해서 견딜 수가 없다. 골덴 옷이 젖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속속들이 스며들면서 추근 거린다. 비를 맞아 가면서라도 견딜 수 있는 데까지 거리를 돌아다녀서 시간을 보내려 하였으나, 이제는 선선해서 이 이상은 견딜 수가 없다. 오한이 자꾸 일어나면서 이가 딱딱 맞부딪는다. 나는 걸음을 재치면서 생각하였다. 오늘 같은 궃은 날도 아내에게 내객이 있을라고?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집으로 가야겠다. 아내에게 불행히 내객이 있거든 내 사정을 하리라. 사정을 하면 이렇게 비가 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알아 주겠지.
부리나케 와 보니까, 그러나 아내에게는 내객이 있었다. 나는 너무 춥고 척척해서 얼떨김에 노크하는 것을 잊었다. 그래서 나는 아내가 보면 좀 덜 좋아할 그것을 그만 보았다. 나는 갑발자국 같은 발자국을 내면서 덤벙덤벙 아내 방을 디디고 내 방으로 가서 쭉 빠진 옷을 활활 벗어 버리고 이불을 뒤썼다. 덜덜덜덜 떨린다. 오한이 점점 더 심해 들어온다. 여전히 땅이 꺼져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만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튿날 내가 눈을 떴을 때 아내는 내 머리맡에 앉아서 제법 근심스러운 얼굴이다. 나는 감기가 들었다. 여전히 으시시 춥고 또 골치가 아프고 입에 군침이 도는 것이 씁쓸하면서 다리 팔이 척 늘어져서 노곤하다.
아내는 내 머리를 쓱 짚어 보더니 약을 먹어야지 한다. 아내손이 이마에 선뜩한 것을 보면 선열이 어지간한 모양인데 약을 먹는다면 해열제를 먹어야지 하고 속 생각을 하자니까 아내는 따뜻한 물에 하얀 정제약 네 개를 준다. 이것을 먹고 한잠 푹 자고 나면 괜찮다는 것이다. 나는 널름 받아 먹었다. 쌉싸름한 것이 짐작 같아서는 아마 아스피린인가 싶다. 나는 다시 이불을 쓰고 단번에 그냥 죽은 것처럼 잠이 들어 버렸다.
나는 콧물을 훌쩍훌쩍하면서 여러 날을 앓았다. 앓는 동안에 끊이지 않고 그 정제약을 먹었다. 그러는 동안데 감기도 나았다. 그러나 입맛은 여전히 소태처럼 썼다.
나는 차츰 또 외출하고 싶은 생각이 났다. 그러나 아내는 나더러 외출하지 말라고 일르는 것이다. 이 약을 날마다 먹고 그리고 가만히 누워있으라는 것이다. 공연히 외출을 하다가 이렇게 감기가 들어서 저를 고생키시는 게 아니냔다. 그도 그렇다. 그럼 외출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그 약을 연복하여 몸을 좀 보해 보리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나는 날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밤이나 낮이나 잤다. 유난스럽게 밤이나 낮이나 졸려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잠이 자꾸만 오는 것은 내가 몸이 훨씬 튼튼해진 증거라고 굳게 믿었다.
나는 아마 한 달이나 이렇게 지냈나 보다. 내 머리와 수염이 좀 너무 자라서 후틋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 내 거울을 좀 보리라고 아내가 외출한 틈을 타서 나는 아내 방으로 가서 아내의 화장대 앞에 앉아 보았다. 상당하다. 수염과 머리가 참 산란하였다. 오늘은 이발을 좀 하리라고 생각하고 겸사겸사 고 화장품 병들 마개를 뽑고 이것저것 맡아 보았다. 한동안 잊어버렸던 향기 가운데서는 몸이 배배 꼬일 것 같은 체취가 전해 나왔다. 나는 아내의 이름을 속으로만 한 번 불러 모았다. “연심(蓮心)이!”― 하고……
오래간만에 돋보기 장난도 하였다. 거울 장난도 하였다. 창에든 볕이 여간 따뜻한 것이 아니었다. 생각하면 오월이 아니냐.
나는 커다랗게 기지개를 한번 켜 보고 아내 베개를 내려 베고 벌떡 자빠져서는 이렇게도 편안하고 즐거운 세월을 하느님께 흠씬 자랑하여 주고 싶었다. 나는 참 세상의 아무것과도 교섭을 가지지 않는다. 하느님도 아마 나를 칭찬할 수도 처벌할 수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다음 순간 실로 세상에도 이상스러운 것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최면약 아달린 갑이었다. 나는 그것을 아내의 화장대 밑에서 발견하고 그것이 흡사 아스피린처럼 생겼다고 느꼈다. 나는 그것을 열어 보았다. 똑 네 개가 비었다.

《날개》가 실린 「마리서사」의 표지

나는 오늘 아침에 네 개의 아스피린을 먹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잤다. 어제도 그제도 그끄제도 ― 나는 졸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감기가 다 나았는데도 아내는 내게 아스피린을 주었다. 내가 잠이 든 동안에 이웃에 불이 난 일이 있다. 그때에도 나는 자느라고 몰랐다. 이렇게 나는 잤다. 나는 아스피린으로 알고 그렇게 한 달 동안을 두고 아달린을 먹어 온 것이다. 이것은 좀 너무 심하다.
별안간 아뜩하더니 하마터라면 나는 까무러칠 뻔하였다. 나는 그 아달린을 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산을 찾아 올라갔다. 인간 세상의 아무것도 보기가 싫었던 것이다. 걸으면서 나는 아무쪼록 아내에 관계되는 일은 생각하지 않도록 노력 하였다. 길에서 까무러치기 쉬우니까다. 나는 어디라도 양지가 바른 자리를 하나 골라 자리를 잡아 가지고 서서히 아내에 관하여서 연구할 작정이다. 나는 길가에 줄창 핀, 구경도 못한 진개나리꽃, 종달새, 돌멩이도 새끼를 까는 이야기, 이런 것만 생각하였다. 다행히도 길가에서 나는 졸도하지 않았다.
거기는 벤치가 있었다. 나는 거기 정좌하고 그리고 그 아스피린과 아달린에 관하여 연구하였다. 그러나 머리가 도무지 혼란하여 생각이 체계를 이루지 않는다. 단 오 분이 못가서 나는 그만 귀찮은 생각이 번쩍 들면서 심술이 났다. 나는 주머니에서 가지고 온 다딜린을 꺼내 남은 여섯 개를 한꺼번에 질겅절겅 씹어 먹어 벼렸다. 맛이 익살맞다. 그리고 나서 나는 그 벤치 위에 가로 기다랗게 누웠다. 무슨 생각으로 내가 그 따위 짓을 했나? 알 수가 없다. 그저 그러고 싶었다.
나는 게서 그냥 깊은 잠이 들었다. 잠결에도 바위틈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졸졸하고 언제까지나 귀에 어렴풋이 들려왔다.
내가 잠을 깨었을 때는 날이 환―히 밝은 뒤다. 나는 거시서 일주야를 잔 것이다. 풍경이 그냥 노오랗게 보인다. 그 속에서도 나는 번개처럼 아스피린과 아달린이 생각났다.
아스피린, 아달린, 아스피린, 아달린, 마르크스, 말사스, 마도로스, 아스피린, 아달린.
아내는 한 달 동안 아달린을 아스피린이라고 속이고 내게 먹였다. 그것은 아내 방에서 아달린 갑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증거가 너무나 확실하다.
무슨 목적으로 아내는 나를 밤이나 낮이나 재웠어야 됐나?
나를 밤이나 낮이나 재워 놓고, 그리고 아내는 내가 자는 동안에 무슨 짓을 했나?
나를 조금씩 조금씩 죽이려던 것일가?
그러나 또 생각하여 보면 내가 한 달을 두고 먹어온 것은 아스피린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무슨 근심되는 일이 있어서 밤이면 잠이 잘 오지 않아서 정작 아내가 아달린을 사용한 것이나 아닌지, 그렇다면 나는 참 미안하다.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큰 의혹을 가졌다는 것이 참 안 됐다.
나는 그래서 부리나케 거기서 내려왔다. 아랫도리가 홰홰 내어저이면서 어찔어찔한 것을 나는 겨우 집을 향하여 걸었다. 여덟시 가까이었다.
나는 내 잘못된 생각을 죄다 일러 바치고 아내에게 사죄하려는 것이다. 나는 너무 급해서 그만 또 말을 잊어버렸다.
그랬더니 이건 참 너무 큰일났다. 나는 내 눈으로는 절대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을 그만 딱 보아 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얼떨결에 그만 냉큼 미닫이를 닫고 그리고 현기증이 나는 것을 진정시키느라고 잠깐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기둥을 짚고 섰자니까 일 초 여유도 없이 홱 미닫이가 다시 열리더니 매무새를 풀어헤친 아내가 불쑥 내밀면서 내 멱살을 잡는 것이다. 나는 그만 어지러워서 게가 그냥 나둥그러졌다. 그랬더니 아내는 넘어진 내 위에 덮치면서 내 살을 물어 뜯는 것이다. 아파 죽겠다. 나는 사실 반항할 의사도, 힘도 없어서 그냥 넙죽 엎드려 있으면서 어떻게 되나 보고 있자니가, 뒤이어 남자가 나오는 것 같더니 아내를 한아름에 덥썩 안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아내는 아무 말없이 다소곳이 그렇게 안겨 들어가는 것이 내 눈에 여간 미운 것이 아니다. 밉다.

아내는 너 밤 새워 가면서 도둑질하러 다니느냐, 계집질하러 다니느냐고 발악이다. 이것은 참 너무 억울하다.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 도무지 입이 벌어지지를 않았다.
너는 그야말로 나를 살해하려던 것이 아니냐고 소리를 한 번 꽥 질러 보고도 싶었으나, 그런 긴가민가한 소리를 섣불리 입 밖에 내었다가는 무슨 화를 볼는지 알 수 없다. 차라리 억울하지만 잠자코 있는 것이 우선 상책인 듯싶이 생각이 들길래, 나는 이것은 또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툭툭 털고 일어나서 내 바지 포켓 속에 남은 돈 몇 원 몇 십전을 가만히 꺼내서는 몰래 미닫이를 열고 살며시 문지방 밑에다 놓고 나서는, 나는 그냥 줄달음박질을 쳐서 나와 버렸다.
여러 번 자동차에 치일 뻔하면서도 나는 그래도 경성역을 찾아갔다. 빈 자리와 마주 앉아서 이 쓰디쓴 입맛을 거두기 위하여 무엇으로나 입가심을 하고 싶었다.
커피 ― . 좋다. 그러나 경성역 홀에 한 걸음을 들여 놓았을 때 나는 내 주머니에는 돈이 한푼도 없는 것을 그것을 깜박 잊었던 것을 깨달았다. 또 아득하였다. 나는 어디선가 그저 맥없이 머뭇머뭇하면서 어쩔 줄을 모를 뿐이었다. 얼빠진 사람처럼 그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면서……
나는 어디로 어디로 들입다 쏘다녔는지 하나도 모른다. 다만 몇 시간 후에 내가 미쓰꼬시 옥상에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거의 대낮이었다.
나는 거기 아무 데나 주저앉아서 내 자라온 스물 여섯 해를 회고하여 보았다. 몰롱한 기억 속에서는 이렇다는 아무 제목도 불그러져 나오지 않았다.
나는 또 내 자신에게 물어 보았다. 너는 인생에 무슨 욕심이 있느냐고. 그러나 있다고도 없다고도 그런 대답은 하기가 싫었다. 나는 거의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히기조차도 어려웠다.
허리를 굽혀서 나는 그저 금붕어나 들여다 보고 있었다. 금붕어는 참 잘들도 생겼다. 작은 놈은 작은 놈대로 큰 놈은 큰 놈대로 다 ― 싱싱하니 보기 좋았다. 내리비치는 오월 햇살에 금붕어들은 그릇 바탕에 그림자를 내려뜨렸다. 지느러미는 하늘하늘 손수건을 흔드는 흉내를 낸다. 나는 이 지느러미 수효를 헤어 보기도 하면서 굽힌 허리를 좀처럼 펴지 않았다. 등허리가 따뜻하다.
나는 또 오탁의 거리를 내려다 보았다. 거기서는 피곤한 생활이 똑 금붕어 지느러미처럼 흐늑흐늑 허우적거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적근적한 줄에 엉켜서 헤어나지들을 못한다. 나는 피로와 공복 때문에 무너져 들어가는 몸뚱이를 끌고 그 오탁의 거리 속으로 섞여 들어가지 않는 수도 없다 생각하였다.
나서서 나는 또 문득 생각하여 보았다. 이 발길이 지금 어디로 향하여 가는 것인가를……
그때 내 눈 앞에는 아내의 모가지가 벼락처럼 내려떨어졌다. 아스피린과 아달린.
우리들은 서로 오해하고 있느니라. 설마 아내가 아스피린 대신에 아달린의 정량을 나에게 먹여 왔을까? 나는 그것을 믿을 수 없다. 아내가 대체 그럴 까닭이 없을 것이니, 그러면 나는 그날 밤을 새면서 도둑질을, 계집질을 하였나? 정말이지 아니다.
우리 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인 것이다. 내나 아내나 제 거동에 로직을 붙일 필요는 없다. 변해할 필요도 없다.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서 세상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이 발길이 아내에게로 돌아가야 옳은가 이것만은 분간하기가 좀 어려웠다. 가야 하나? 그럼 어디로 가나?
이때 뚜우 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나는 불현듯이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리 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1936.

날 개

이상(李霜)

 

‘느릅나무’ 밑의 욕망

1850년 뉴잉글랜드 어느 마을, 거대한 느릅나무 그늘에 가려 항상 음습한 생활을 이어가는 한 농가가 있었다. 캐벗(Cabot)이라는 노인의 가정이다. 이 집에는 엄청난 거구에 탐욕스럽고 색(色)을 밝히는 노인 캐벗과 그의 첫째 아들 에번(Even), 둘째 시미언(Simeon), 셋째 피터(Peter)가 살고 있다. 시미언과 피터는 금광에서 노다지를 찾겠다며 캘리포니아로 갈 꿈에 부풀어 있고, 에번은 아버지의 재산을 홀로 독차지하려는 욕망을 안고 살아간다.

Desire Under the Elms (1958)

그런 와중에 이미 나이가 일흔 다섯이나 된 아버지 캐벗은 젊고 싱싱한 여자 에비(Abbey)를 집에 데려다 놓았다. 아내로 데려온 것이다. 가난에 찌들어 방황하는 삶을 살던 에비는 안락한 생활에 정착하고자 이 고령의 노인 품에 들어 온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요조숙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장남 에번을 보자마자 추파를 보내기 시작한다.

Desire Under the Elms (1958)

에번은 시미언과 피터에게 각각 3백 달러씩을 주고 아버지 유산을 포기하라 한다. 3백 달러씩 손에 쥔 두 사람은 집을 떠난다. 그러는 동안 에비는 싱싱한 육체를 이용해 노인의 마음을 손아귀에 넣고 자기에게 모든 재산을 넘겨주겠다는 약속을 받아 낸다. 그러면서도 에번을 유혹해 통간한다. 열 달 뒤에 에비는 에번의 아이까지 낳는다. 아버지 캐벗이 진실을 모른 채 자기 뒤를 이을 자식이 태어났다며 좋아하고 있는 동안, 계모 에비와 아들 에번은 불륜을 지속한다. 부자 간에 벌이는 이 같은 탐욕과 색욕의 뒤섞임이 짐승 같은 시간을 흘려보낸다.

Desire Under the Elms (1958)

에번은 에비가 자신을 이용해 낳은 아들로 아버지의 유산을 독차지 하려 든다는 생각에 질투와 분노에 휩싸인다. 그런 애증의 시간이 뒤엉키는 가운데 에비는 자신이 에번을 사랑한다는 증거를 보여주겠다며 자기가 낳은 갓난아기의 목을 졸라 살해한다. 불륜의 씨앗만 없애면 에번이 변심해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뒤늦게 모든 사실을 안 아버지 캐벗은 보안관이 에비와 에번을 체포하러 오기를 기다리면서 이렇게 외친다.

“살인자들끼리 정말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로구나. 너희 같은 년놈은 한 나뭇가지에 매달아, 나처럼 늙은 사람 구경거리나 되게 해야해!”

이 막장 드라마는 결코 외설이 아니다. 1936년 노벨문학상과 네 번의 플리처상을 받은 현대 희곡의 거장 유진 오닐(Eugene O’Neill)의 ‘느릅나무 밑의 욕망’(Desire under the Elms)이라는 작품의 줄거리이다. (※ 찰리 채플린이 이 사람의 사위)

Desire Under the Elms (1958)

그리스 신화 메데이아(Μήδεια)를 본뜬 듯한 이 이야기의 제목에는 왜 ‘느릅나무’가 들어 있을까. 느릅나무의 학명은 Ulmus davidiana var. japonica이다. 이름에는 별 기호가 없다. 다만 아래 보다시피 날씨는 화창한데 무성한 잎 아래로는 언제나 음습하다.

아들과 젊은 새어머니, 하늘과 닿은 윗부분은 화사하지만 아래로는 음습한 이 두 젊은 주인공의 욕망은 이 극에 등장하는 두 그루의 느릅나무를 닮았다. 그리고 늙은 아버지, 신화적일 정도로 거대한 체구를 지닌 아버지 캐벗은 착취의 전형이다. 새 여자를 데려오기 전에 그는 두 번의 상처(喪妻)를 당하였는데, 먼저 세상을 떠난 두 아내들은 캐벗에게 지나치게 혹사당한 나머지 죽어나간 것이었다. 두 그루의 느릅나무가 또한 이 두 아내들을 상징한다.

Musical Image.

그래서인지 프랑스에서는 ‘느릅나무 밑에서 기다리라’는 말은 ‘믿지 말라’는 의미라고도 한다. 그런가 하면 J. K. Rowling의 《해리포터》에 나오는 말포이의 마술 지팡이 재료가 또한 느릅나무이기도 하다. 욕심과 심술로 얼룩진 마술 지팡이.

느릅나무의 주인은 그런 욕망의 주인공일 것이다.

Liberalism Facebook

끝으로 저 희곡에 나오는 에번의 대사 한 대목을 소개한다.

(풀이 죽어 나지막하게) 알았어, 이제야 알았어. 날 농락했어. 바보 취급을 한 거야! 처음부터 도둑질을 할 생각이었지. 나를 끌어들여 아들을 낳아서는 아버지의 아들로 꾸미고, 이 농장을 차지하고. (괴롭고 저주스러운 눈길로 에비를 응시한다.) 당신 몸엔 악마가 깃들어 있어! 인간이면 그 따위 악한 짓을 할 순 없어. (아픈 마음으로) 차라리 당신이 죽었으면 좋았을 걸. 이런 일이 생기기 전에 같이 죽었으면 좋았을 걸. (분노하며) 나도 복수를 하겠어. (사납게) 그 늙은이한테 복수하고야 말거야, 당신한테도. 떠들썩하게 자랑하는 아들이 누구라는 이야기를 해줄테야. 그리고 당신하고 늙은이가 서로 잡아먹도록 할거야. (결심한듯) 난 가! 돈을 벌어 가지고 돌아와서 당신들 두 인간을 길거리로 차내 버려야지. 당신은 아들하고 같이 굶어죽게 만들테야! (괴로워하며)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지금 당장 죽여버리는 게 좋아. 다시는 보지 않겠어. 그것 때문에, 그게 생겼기 때문에 모든 것이 변하고 만 거야. 계획적으로 도둑질을 하게 된 거지. 난 당신을 믿었어, 벙어리 황소처럼. 그래, 그런데 당신은 날 속였어.

김구의 ‘임시 정부’는 왜 ‘임시’로 끝났나

‘임시 정부’ Vs. ‘임시정부’ 

‘임시’라는 말은 명확한 기한을 정하지 않은 잠시 동안의 상태를 이르는 명사이다. ‘정부’라는 단어와 함께 쓸 때는 둘 다 명사이므로 띄어쓰기를 해야 하나, 그 임시 정부가 어떤 고유성을 띨 때에 한하여 그것은 ‘임시정부’라 붙여 써도 마땅할 것이다. 이 글은 이 문법적 고려를 가해서 쓴 글이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3·1 독립선언에 기초하여 설립된 조직이다. 이 기구는 1919년 4월 13일 상하이에서 처음 설립된 단체로서 3·1운동이 개시되고서 1개월 뒤에 결성한 단체이다. 3·1운동의 여세로 5개월 뒤에는 각지에서 활동하는 단체들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경성(京城)에서 벌어진 3·1운동이 없었으면 단지 ‘임시 정부’로 머물렀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임시 정부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는 소리이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라는 명칭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고안한 것은 신석우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고종(高宗)이 지은 ‘대한제국’이라는 이름과 연관성을 갖는 문제에 대해 여운형이 망해먹은 ‘대한’이란 이름을 왜 쓰느냐고 이의를 걸었으나 ‘망한 이름으로 흥해보자’고 밀어부쳐 ‘대한민국’이 되었다 한다.

임시 정부와 이승만

바로 이 임시 정부의 초대 대통령이 이승만이다.

1919년 9월 상하이에서 임시 정부들이 통합될 때 그는 부재한 상태에서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이는 그의 외교력, 즉 우드로 윌슨과의 친분을 고려해 추대되었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그가 이미 4월에 한성 임시 정부의 총재로 추대받자 워싱턴에 임시정부 총재 집무실을 열어놓고 대외적으로 (통합) 대통령 행세를 해서 정치적으로 유리한 고지였다는 견해도 있다. 어쨌든 그를 뽑은 것은 상하이 임시 의정원이었는데, 이승만에게 상하이로 와줄 것을 청원하는 청원서를 그가 거주하고 있는 워싱턴에 발송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5년 뒤인 1925년에 그는 임시 정부 대통령직에서 탄핵당한다. 발단은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이라는 해외 기구에 우리나라 통치를 위임했다는 사유였다. 당시 독립운동가들로부터 이완용보다 더 한 자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결국 면직당했다. 하지만 반(反) 이승만 전선은 ‘위임통치’라는 단어만 전파했지, 그 국제연맹이 우드로 윌슨이 만든 기구라는 사실은 누락한다.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은 1918년 1월 8일 미국 국회에서 1차 세계대전 이후 제국주의의 팽창을 막고 세계평화와 새로운 질서를 제시하는 14개조를 연설한 일이 있는데, 이 14개조항이란 우리나라 같은 약소국에는 더 없이 중요한 독트린이었다. 그 요지는 제국 간의 비밀조약 파기, 항해의 자유 보장, 국가들 간의 관세장벽 해제, 군축, 그리고 무엇보다 ‘민족자결과 자치권’이라는 대목이었다. 바로 이 ‘민족자결주의’가 우리나라 같이 식민 치하에 놓인 입장에서는 일종의 ‘복음’과도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윌슨 대통령은 연합국과 대결하고 있던 독일, 오스트리아, 터키에 속한 식민지에만 적용하려던 것이었으나 미국에 거점을 둔 이승만 등 세계 정세 파악에 밝았던 지도자들은 이 원칙을 바로 우리나라에까지 강력하게 적용시키는 외교의 노력을 펼쳤던 것이다. 게다가 우드로 윌슨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이승만의 스승이었다. 위탁통치인가 외교인가, 여전히 다툼의 여지가 있다.

3·1운동 정신의 피로감과 새로운 독립 전선

3·1운동의 흥분이 천년만년 가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국내든 국외든 피로감에 젖어들기 마련이었는데, 국내에서는 일제의 박해 내지는 친화 정책으로 이탈자가 속출하고 있었고, 해외에서는 생활형 독립운동가들의 끊임없는 파벌 싸움으로 평소 애국적인 동포들도 신물을 내고 있었던 터이다.  이러한 피로감 속에서 기회가 찾아 왔다.  일본이 미국 본토를 때린 것이다. 1941년 12월 7일 아침, 미국령 하와이 진주만이 일본에게서 기습 공습을 받았다. 미국이 어떤 나라로부터 본토가 침공당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임시 정부는 3일 후인 1941년 12월 10일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를 했다. (뭔 힘이 있다고? 라고 말하지 말라) 미국이 대대적인 반격에 나설 것임을 예상해서였을 것이다. 이때 애국심 있는 재미 한인들에게도 새로운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재미 한인 단체들은 앞뒤를 다퉈 미국에 충성을 다짐하는 선언을 발표했다. 그것은 구호에 그친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활동으로 나타났는데 이른바 ‘US War Bond’ 즉, ‘미국 전쟁공채’를 구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재미 한인은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무려 50만 달러를 구매하였다고 한다. 1941년대의 50만 달러이다.

이 액수는 한인 개인당 약 2천불에서 3천불에 달하는 액수였는데, 이는 1900년대 초 노동이민으로 이주해 와서 정착하기까지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된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이기도 했다. 오늘날은 ‘친미’라는 용어로 이러한 친화적 동력을 격하시키지만 미주 한인의 이러한 친화력은 1900년대 같은 이주 동양인이었던 일본인과는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처신이었다. 일본인은 한인보다 좀더 일찍 이주한 종족이었는데 이들은 기독교로 쉽게 개종한 한인과는 달리 자국의 불교 내지는 신도(神道/ 신토)를 좀처럼 버리지 않았다. 그것은 자기 2세들의 미국 동화작용까지 방해하는 사회 행태로 나타났는데, 미국 사회에 동화력을 갖춘 한인들이 조국에 대한 애국심을 간직하고 있는 양상과는 달리 당시의 일본인의 조국에 대한 열정은 무조건적 충성심에 기인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이것이 두 인종에 대한 미국 사회의 처후를 가른 것이다.

당시의 일본인은 한인보다 지위가 더 좋았음에도 전쟁이 터지자 미국 사회는 일본군이 미국 서해안에 상륙한다면 미국 거주 일본인들은 모조리 일본군을 도울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여론은 미국 대통령으로 하여금 ‘행정명령 9066’을 발동시키게 했다. 이 행정명령이 뭐냐하면, 미국 서부지역의 약 11만 명에 달하는 일본인을 서해안에서 떨어진 중부사막 수용소들(relocation camps)로 보내 태평양전쟁이 끝날 때 까지 무려 3년 반 동안이나 감금을 시킨 일이다. 인권의 나라에서 어찌 이런 처후가 발생했느냐. 전쟁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자기 자녀를 미국에 보내 공부시키거나 아예 미국 시민권자로 만드는 반미주의자는 이런 걸 잘 말하지 않는다. 모르고 있거나.

정부가 될 기회를 놓친 ‘임시 정부’

한인들은 요인암살, 테러 등을 불사하여 실질적 무력투쟁을 명분으로 삼는 임시 정부(들)의 지지부진함과 끊임없는 분쟁 그리고 파벌싸움에 후원하는 것보다는 제2차세계대전을 치르고 있는 연합군을 지원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인 독립운동이라 여겼다. 게다가 전 연합군의 최종 병기고이고 인적, 물적, 모든 면에서 자원이 무한한 미국의 승전 가능성이 높고 또 그들이 세계의 헤게모니가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조국 광복의 동력으로서 더 믿음직스러웠다.

그리하여 한인들은 광복군을 위한 독립금, 혈성금, 인구세 등 임시 정부를 위해 모금했던 액수의 수십 배를 더 미국 전쟁공채를 구입하는 데 사용했다. 노동이민으로 온 자신들에게 영사도 하나 보내주지 않던 나라, 그토록 부르짖던 호소에도 외면하던 조국에 애정이 흐릿해지다가 이 전쟁을 통해 되살아난 것이이다. 애국심이.

한편 임시 정부는 구미외교위원부라는 기구를 두고 있었다. 1919년 8월 임시 정부 설립 당시 워싱턴에 설치하여 미국, 유럽 등을 상대로 외교를 주무하는 용도였다. 그러나 1925년 구미외교위원부의 2대 위원장이었던 이승만을 임시정부 대통령직에서 탄핵하면서 이 기구를 그의 사조직으로 분류하는 바람에 공식적으로는 철폐시킨 기구였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당시의 임시정부란 ‘임시 정부’였기에 이승만은 독자적으로 독립을 위한 활동을 속개했다. 그러던차 임시 정부는 1934년 다시금 이승만을 외교위원으로 선출한 터이다. 모지? 어쟀든.

그렇다면 임시 정부와 주미 외교위원부는 2차세계대전으로  찾아온 이 절호의 독립의 기회를 십분 활용해야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러지를 못했다.

미주 한인을 중심으로 미국전쟁공채 구매 등 적극적 의사 표현에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동안, 임시 정부는 궁극적으로 ‘참전’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에게는 이 전쟁이 자국을 방어하는 전쟁이었겠지만, 이면에서 이 전쟁은 세계 질서를 재편하는 전쟁이었기에 약소국들은 너도나도 참전을 선언하고 있는 분위기인데도, 진주만 공습 3일만에 ‘대일 선전포고’를 한 한국 임시 정부가 참전 선언은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당시 미국의 헐(Cordell Hull) 국무장관은 이승만이 중경 임시 정부의 워싱턴 대사인 것까지는 인정하였지만, 대한민국의 ‘임시 정부’는 끝끝내 ‘임시정부’로는 인정하지 않았다. 이승만의 대변인 역이던 크롬웰(James Cromwell)은 1942년 6월 23일 임시 정부 승인을 위해 미국 국무성과 더 이상의 대화를 한다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결론을 내린다. 대체 왜 그리되었을까? 이승만이 소극적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임시 정부는 일본에 선전포고는 하였으나, 광복군은 마지막 순각까지 적극적인 참전의 의사를 밝히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일부 자신의 목숨을 던진 의사들을 통해 무력 테러는 있었지만, 이제 비로소 전쟁다운 전쟁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을 때 정작 일본과의 접전에 나서지 않은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가장 큰 문제였던 것이다. 이는 다른 약소국의 상대적인 반응에서 드러난다. 당시 연합국들과 더불어 참전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정부’로 인정을 받는 기회였다. 왜냐하면 파시즘이 기세를 떨칠 당시 ‘임시 정부’는 우리에게만 있었던 게 아니다. 식민지 및 종속국들은 반 파시즘의 기치 아래 곳곳에서 게릴라전을 펼쳤다. 그 가운데서 이를 테면, 줄기차게 게릴라전을 펼치던 티토(Josip Broz Tito)는 연합군에 참전함으로써 우방임을 인정받았고 전쟁 후에는 그 세력을 유고슬로비아 독립국으로 인정하였던 사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왜 광복군은 참전 의사를 밝히지 않았던가?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용감하던데.

이로써 결과적으로 상해 임시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해외 거점을 두고 한인을 대표하는 여러 한인 단체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만약 중경의 ‘임시 정부’만을 정부로 인정한다면 다른 단체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되지 않겠느냐는 사유를 스스로 제공하고 말았던 것이다. 당시 상해에서 독립금, 혈성금, 심지어 인구세 등의 명목으로 각지의 한인들에게서 거둬갔던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의 기원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과 접전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참전에 대한 어떠한 구두 천명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은 연합군의 승리로 종전이 되었다. 당시 재미 한인 단체들이 연합하여 결성한 한족연합위원회는 중경 특파원을 보내 중국 한인을 항일 전선에서 적극 참가하게 하여 미국 정부로 하여금 상해 임시 정부를 교전국 정부로(연합군 일원으로) 그 지위를 인정받아야 정부 승인을 받을 수 있다고 역설하였으나 광복군은 아무런 접전 없이 일본의 무조건 항복 뉴스를 맞은 것이다.

훗날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대표 김구는 이르기를, 임시 정부와 광복군은 한 일이 없어 앞으로 발언권이 약하게 되었으므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하였다 전한다. 실제로 광복군은 연합군의 일원이 아니었기에 해방된 경성에 태극기를 높이 들고 입성하지를 못 하였다. 임시 정부 대표들은 모두 다 개인 자격으로 미소 양군이 점령하고 있는 38선으로 분단된 조국에 돌아왔다.

현대에 들어 대한민국의 기원에 대한 논란이 가열차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대한민국의 임시정부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대다수는 그 임시 정부를 ‘김구의 임시 정부’로 기억하는 까닭일 것이다. 김구를 위대한 선각자로 여기지 않는 사람도 있던가?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임시정부로서의 권위를  ‘김구의 임시 정부’로 기억하는 한, 그러면 그럴수록 그런 고정관념은 당시 함께 공존했던 여러 임시 정부들 중 하나에 불과했던 사실의 반증으로 작용하는 모순에 봉착할 것이다.

‘임시 정부’가 아닌 ‘정부’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부의 궁극적 요체는 ‘군사력’에 있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군사력을 가진 나라는 세상에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현대적 의미로서의 전쟁이란 일종의 진짜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외교’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실은 현대만이 아니라 과거 임시 정부 때도 그랬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나라는 2차세계대전 당시와 똑같은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지정학적인 이유로 열강의 틈에 끼어서,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이념의 갈래에 끼어서, 언제나 가장 많은 피를 흘리는 당사 국인 우리 자신은 결정적 상황에서 스스로의 당사 국 지위를 내려놓는 민족성을 보이는 것이다. 혹시 자주독립을 꿈꾸며 광복의 동력을 연합군에게 내주고 만 것이었다면, 자주독립을 위해 그렇게도 사드(THAAD)의 해체를 부르짖었을 수 있다. 그러나 자주독립이라는 술어는 엄밀한 의미에서 외교력이 없는 국가에서만 돋보이는 용어일 수 있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역사적으로 스스로 독립을 이룬 나라란 없다. 있다면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에 독립을 할 필요가 없었거나, 아니면 전혀 가치가 없는 땅을 영토로 딛고 있었거나.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필연적으로 힘 있는 누군가가 주권을 부여해 줄 때에만 비로소 독립은 성립될 수 있었다. 그것이 역사이다. 그게 아니라면 ‘임시 정부’는 태어날 때부터 스스로 ‘임시 정부’란 말을 써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임시 정부는 그렇게 임시로 끝났다.

 

 

‘지방분권 개헌’은 왜 반대해야 하는가.

1492년 아메리카 대륙이 콜럼버스에 의해 발견된 이래 미국은 줄곧 영국의 식민지였지만, 동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독립전쟁은 영국계 백인 중심의 민족적 독립국가 체제를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독립과 더불어 발생하는 끊이지 않는 혼란은 결국 5년간의 내전(남북전쟁)을 통해 해소되었고, 산업과 금융업이 발달한 동북부 지역은 명실 공히 아메리카합중국의 핵심세력이 되었다.

그들은 영국에서 벤치마킹한 경제체제 곧, 부국경제체제로서의 세계를 중심부(core, 영국본국, 주체지역)와 주변부(periphery, 준식민지 내지 식민지)로 나누는 경제발달을 하였듯이, 천연자원이 풍부한 남부와 서부를 내부적 경제식민지화로 구현하면서 성장하였다.

드넓은 미개척 대륙에 동서로 횡단하는 철도를 놓으면서 미 전역을 연결하는 철도통신망을 갖춘 단일 경제∙정치 체제를 이룩한 것이다. 이는 지상 최대의 영토와 천연자원을 소유한 연방정부체제로서의 공화국이 되게 해주었다.

이것이 지방분권의 의미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지방분권이 본격화된다면 필연적으로 중심부와 식민지(내지는 준식민지)로 나뉘기 마련이며, 영토가 좁고 천연자원도 없는 상황에서의 경제식민화라면 오로지 한가지 방식, 그 양상은 동북(산업금융)ㅡ남서(천연자원)로 연동되던 미국식 연방체제와는 달리, 북(핵/이념)에 식민지화 된 남(산업금융)으로서의 사회주의(내지는 공산주의)연방으로 향할 우려가 크다. 이미 통일 이전임에도, 경제가 급속도로 이념에 부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방분권은 반대함이 마땅하다.

우리사회를 덮친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

윈스턴 처칠로 분한 게리 올드만.

플라톤은 인간이 구현하는 정치·사회체계를 세 가지로 분류하였다. 왕/군주 일인이 통치하는 군주정(Βασιλεία), 소수의 엘리트가 지배하는 귀족정(Αριστοκρατία), 그리고 다수가 정치를 주도하는 민주정(Δημοκρατία). 아울러 그는 이러한 체제들이 각각 그 일인의 폭정(τύραννος), 소수 엘리트만의 과두정(ἀριστοκρατία), 그리고 다수의 우민화를 통해 중우정(ὀχλοκρατία)으로 변질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경고하였다. 그러나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인이 지배하는 군주정과 소수의 엘리트가 지배하는 귀족정, 그리고 다수의 민주정이 공존하는 혼합정치가 분명 존재하며 바로 그 혼합의 왜곡에서 폭정, 과두정, 중우정으로 나타난다고 개정하였다.

1938년 무솔리니와 히틀러가 뮌헨 회담 장소로 가는 모습

이들보다 한 세기 뒤에 태어나 활동한 역사가 폴리비우스(Polibius, BC 200-118)는 이들의 정치이론에 발전론을 입혀서 체제의 몰락이란 군주정에서 폭정으로, 귀족정에서 과두정으로, 민주정에서 우민화로 퇴행하는 데서 기인하기에, 로마 제국처럼 군주정에서 귀족정으로, 귀족정에서 민주정으로 발전하는 것이 제국의 안녕이라고 선전하였다. 그러면서 그 혼합의 시스템으로서 ‘공화정’ 곧 집정관, 원로원, 호민관으로 구성된 체제를 그 완전체로 역설하였다.

하지만 그 완전체조차도 몰락을 할 때는 각각의 머리로부터 썩어 들어갔던 것을 감안하면 플라톤의 근원적 통찰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며, 또한 그 체제의 운용면에 있어서도 아리스토텔레스가 부연(敷演)했던 이상의 다른 혼합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파시즘(fascism)의 등장을 통해서였다.

군중에게 연설하는 무솔리니

파시즘(Fascism/ fascismo)은 ‘묶음’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파시오(fascio)에서 온 말이다. 그런데 이 파시오란 고대 로마의 정무관이 들고 다녔던 파스케스(fasces)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럼 대체 이 파스케스가 뭐에 쓰는 물건이냐. 파스케스는 막대기를 여러 겹으로 묶어서 그 끝에다 도끼를 달아놓은 일종의 권위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는 상징물로서 뿐만 아니라 실제로 체벌이나 처형에도 사용되었으며 그 상징(물)이 기표하는바, 파시즘이란 한마디로 집단주의의 총화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에는 1인 독재자를 지칭하는 말로 전용되지만 실상 역사적으로는 ‘노조’(노동조합)를 이르는 표현으로도 사용되었기 때문이다(un fascio/ 1910).

파스케스를 든 집정관 모습.

이 일단의 결속주의(結束主義)는 정치적으로 적용될 때 국가주의, 국수주의적 색채 속에서 급진적 성향을 띠기 마련인데, 여기서 응용해 뻗어 나온 것이 바로 나치즘(Nazism)이었다.

새롭게 인종적 어프로치를 한 셈이다.

아돌프 히틀러

고대 로마 사회에서 폴리비우스가 자부하던 정치 발달 체제는 썩어 몰락하였음에도 그 어느 것 하나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며 도리어 새로운 혼합의 옷을 입고서 근대 전유럽을 활보하였고, 이는 어떤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무솔리니와 히틀러라는 인물을 통하여서 아주 실제적이면서도 막강한 위력이 되었다. 다른 말로하면 왕도 없어지지 않았고, 귀족체제도 없어지지 않았으며, 다수와 혼합된 채 폭정, 과두정이 그대로 살아서 새로운 변혁을 꿈꾸었던 것이다.

바로 이때, 시대가 윈스턴 처칠이라는 인물을 불러냈다.

전쟁에 패전한 지휘관이었고, 인격적으로는 괴팍하기 짝이 없어 정치적 동반자도 없이 소외된 채 늙어 가고 있던 한 노인을 왜 다시 불러냈을까. 이 영화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가 어느 정도 가까이서 그에 관한 근접/접사 촬영을 해 놓고 있다.

처칠의 웅얼대는 발음까지 훌륭히 연기해낸 게리 올드만.

윈스턴 처칠을 불러낸 이유는 세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첫째, 저 파스케스(fasces)의 악을 일찍부터 파악을 하고서 시종일관 예언자의 목소리를 낸 정치인은 윈스턴 처칠뿐이었다는 사실.
둘째, 저 파스케스 악에게 모조리 패하거나 항복하여 유럽 전역이 두려움에 압도되어 떨고 있을 때 마지막까지 무릎을 꿇지 않음으로써 그 악이 전 세계로 확산되는 것을 저지한 유일한 유럽 정치인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셋째, 폭정·과두정·중우정의 왜곡된 혼합이 탄생시킨 저 파스케스 악은 진정한 민주주의 곧, 왕·귀족·다수가 다같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영국 민주주의의 힘으로 파쇄시킬 수 있다는 그의 결기와 확신.

의회 당직자들에게 연설을 통해 사전 설득을 하는 처칠.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에는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곧바로 냉전의 시대로 진입한다. 냉전의 시대(Cold War Age)란 앞서 저 악의 막대기 묶음을 무찌르기 위해 동맹에 참여했던 소련을 중심으로 동구권 전역이 공산주의 전선으로 재편된 시대를 말한다. 그 막대기 묶음이 공산주의로 넘어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냉전의 시대마저도 종식된 지금은, 뒤 늦게 우리 대한민국을 접경하여 아주 좁은 범주로 그 막대기 묶음의 권역이 줄어들었지만, 파급력 만큼은 가히 전 세계를 향한 위협을 구가하고 있음을 우리 세대가 목격한다.

특히 그 여파로 우리 삶 깊숙이에 그 막대기 묶음이 맹위를 떨치고 있건만 안타깝게도 우리 곁엔 아직 처칠이 없어 보인다.

에필로그.

윈스턴 처칠은 영화에서 시종일관 그 파스케스(막대기 묶음)에 대항하여 ‘민주주의’ 가치를 반복해 되뇌이지만,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파스케스에게 점유당한 오늘날에는 윈스턴 처칠이 끊임 없이 가치로 되뇌었던 그  민주주의가 실상은 ‘자유민주주의’(Δημοκρατία)였다는 사실로 역류한다. 즉 아리스토텔레스가 예증했던 그 혼합의 왜곡이 우리사회에서 폭정, 과두정, 중우정으로 고스란히 시연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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