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덩케르크’는 ‘브렉시트’(Brexit) 이야기

1. ‘덩케르크’의 배경

<덩케르크>는 여러 보도에서 알려진 대로, 제2차 세계 대전 초기 ‘덩케르크 전투’에서 영국군과 프랑스군을 비롯한 연합군 34만여 명이 고립되자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전개된 다이나모 작전(Operation Dynamo)을 극화한 영화다.

1940년 5월 10일 독일의 프랑스 침공으로 서부전선이 무너지고 연합군은 참패를 거듭하던 것이 전쟁 초기의 상황이었다. ‘덩케르크’ 지역에서 독일군의 집중적인 공략으로 전멸할 위기에 빠진 연합군은 반격을 시도했으나 끝내 실패하고 결국 독일군에게 포위된다.

이 영화의 시작 부분인 해안의 풍경, 수십만의 병력임에도 하나 같이 무기력한 모습은 연속되는 패배로 사기가 떨어진 채 갇혀 있던 당시 연합군의 상황을 잘 반영한다.

2. ‘덩케르크’의 구조

이 영화는 총 세 개의 고리로 이루어져 있다.

– The Mole/ one week (방파제/ 한 주)
– The Sea/ one day (바다/ 하루)
– The Air/ one hour (공중/ 한 시간)

이 세 개의 고리는 3개의 이야기인가? 3개의 시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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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파제의 ‘한 주’ (The Mole/ one week)

덩케르크 현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소년 병사 토미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사실은 이야기라 느낄 수도 없게 되어 있다. 플롯보다는 쇼트들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많은 관객이 “다큐멘터리다.” “지루하다.”고 느낀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이야기’이다.

토미가 구조선에 먼저 타기 위해 깁슨과 부상병을 들 것에 싣고 뛰는 이야기, 프랑스군보다는 영국군을 우선해서 승선시키는 이야기, 배 밑창에 숨어들어 밀물이 들어와 배가 뜨기만을 기다리는 이야기, 총탄이 날아들어 여기저기 배에 구멍이 나서 물이 새들어와 가라앉는 것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는 이야기 등은 다 의미 있는 플롯들이다.

바다의 하루 (The Sea/ one day)

덩케르크에 고립된 병사들을 구출하기 위한 이 작전에는 영국의 수많은 개인 소유의 민간인 배가 징발된다. 섣불리 병력을 보냈다가 재차 고스란히 포위망에 갇히는 사태를 우려해서다.

‘바다의 하루’(The Sea/ one day)는 징발된 문스톤호(Moonstone) 선주의 아들 피터의 시점이다. 당초 영국군은 배만 징발해가려 했던 것인데, 문스톤호의 선주는 자신이 직접 배를 몰고 덩케르크로 향한다. 이때 피터의 친구 조지가 따라나선다.

앞서 ‘방파제’(The Mole/ a week)에서 시점을 제공한 토미와 동년배인 피터의 시점이란 실은 ‘조국’(homeland)의 관점일 것이다. 철저한 구조자로서의 입장. 정부나 군지휘부 입장과는 또 다른 의미의 구조자로서의 입장. 이를 테면 해군 제독이 망원경으로 바다를 보며 탄성을 내자 부관이 “뭐가 보이시냐”고 묻는다. 이때 제독은 “home(land)이 보인다”고 말한다. 그것은 ‘조국이 보인다’는 표현으로서 문스톤호와 같은 수많은 민간 구조선이 구조를 자청하고 덩케르크 해안에 들어서자 그렇게 지칭한 것이다.

문스톤호는 적기의 공격까지 피할 정도로 항해에 노련하지만 구조에도 철저하다. 목적지 덩케르크로 향하는 과정에서 바다에서 표류하는 장교들을 위험을 무릅쓰고 모두 구조하고, 덩케르크 현장에서도 배의 재원 이상의 많은 병사를 태운다.

특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 장교(킬리언 머피)의 난동으로 친구 조지가 결국 죽었는데도 피터는, 나중에 제정신이 든 장교가 조지의 안부를 물을 때 “괜찮다.”며 책임을 묻지 않는다. PTSD 환자가 새로운 자책에 빠질까봐. 이 자세와 태도는 이 영화가 주장하는 ‘조국’으로서의 자질인 것일까.

하늘의 한 시간 (The Air/ one hour)

모래밭에서의 일주일은 바다에서는 하루 같고, 그리고 하늘에서는 한 시간과 같다.

이는 필경 만물의 이치 같은데, 전쟁에서의 이치이기도 하다. 시간이 남아돈다는 뜻이 아니다. 모래밭에서의 불안은 지루하고, 바다에서의 불안은 초조하지만, 하늘에서의 불안은 긴박하기만 하다. 하지만 하늘에서는 모든 것이 내려다보이는 반면,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하늘의 한 시간 동안에 벌어지는 ‘일주일’을 압도하는 분량의 긴박감을 미처 알지 못한다.

이와 같은 ‘모래밭’과 ‘하늘’의 괴리감은, 영화 말미에 문스톤호와 같이 귀환한 전투기 조종사 콜린스에게 육군 하나가 툭 내뱉는 말, “대체 공군은 한 게 뭐있냐?!” 라는 말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이 영화에서는 오로지 전투기 3대만이 투입되어 싸우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역사적으로 이 다이나모 작전에 투입된 영국 공군 전투기는 실제로 격추된 것만 474대였다고 한다. 독일군이 전투기 132대의 손실을 본 것에 비하면 3배에 육박하는 규모이다. 그럼에도 모래밭에 있던 사람의 입에서 “대체 공군은 한 게 뭐냐?!”는 말이 나온 것은 짙은 안개로 그들의 활약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은 크리스토퍼 놀런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기호화 된 장치로서 나타나는 시간의 유리(遊離) 현상이지만, 우리의 실존 세계에서도 ‘땅’과 ‘하늘’의 유리됨은 얼마든지 체감 가능한 현상이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다시 말하면, 신분이 낮거나, 돈이 없거나, 신의 응답이 더디거나.

바다에서 모든 장면을 목격한 문스톤호 선장 도슨만이 “우리가 안다”고 공중의 사람을 위로한다. 정말로 바다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이 공중에서의 시점은 이 영화에서 가장 절묘한 대목이다. (이 영화가 IMAX로 제작된 이유이기도 할 텐데,) 이 시점은 바로 관람을 하는 관객의 시점일 수 있기 때문이다.

3. 이 영화는 전쟁영화다!

“이 영화는 전쟁영화가 아니다”라는 홍보문구와 함께 국내에 소개된 <덩케르크>는 분명한 전쟁영화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현대적 의미에서의 전쟁을 방불케 했던 ‘브렉시트’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익히 알다시피 브렉시트(BREXIT)란 영국을 뜻하는 BRitish와 탈출을 뜻하는 EXIT가 합쳐서 된 말로서 지브롤터 영국령을 포함하는 전 영국이 EU(유럽연합)에서 탈퇴할 당시 나온 조어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중의 하나가 ‘탈출’ 혹은 ‘(빠져) 나가다’ 일 것이다.

영국은 EU에서 정치, 경제면에서 독일과 더불어 주류였기 때문에 영국의 이탈은 EU의 존재의 의미의 퇴색이며 EU와의 결별이라기보다는 사실상의 독일과의 결별이었던 셈이다. <덩케르크> 이야기는 불과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의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에서의 적/악의 무리였던 독일과 불과 100년도 안 지나서 연합을 이루어 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 연합체를 둘러싸고 여전히 전쟁 당시의 패러다임을 복고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놀랍다.

상기와 같은 구조에 덧붙여 몇 가지 기호 역할을 하고 있는 쇼트들을 소개하면,

썰물이 다 빠져나가 땅에서 움직이지 않는 배 밑에 은신하여 밀물에 배가 뜨기만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총탄에 구멍은 뚫리고, 그 구멍들을 일일이 손으로 틀어막아야 하는 상황, 그나마 그렇게 구멍 난 배라도 띄우려면 짐을 줄여야 하는데 사람을 줄이자는 상황, 어떤 사람을 줄여야 할까 했을 때 영국군으로 위장하고 들어온 프랑스인을 내리게 해야 한다는 주장… 그렇지만 프랑스도 연합군이 아니더냐…는 따위의 다이얼로그들은 다 브렉시트 전후의 영국 상황을 표지한다.

2016년 이 브렉시트를 놓고 영국은 분열에 빠졌는데, 6월경 EU에 잔류할 것을 주장하던 노동당 하원의원이 도서관 앞에서 한 남성에게 흉기에 찔리고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일설에 의하면 이 테러범은 하원의원을 공격하며 “Britain first!”(영국이 먼저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일종의 캐치프레이즈였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프랑스 병사들이 철수선에 태워달라고 간청할 때 “Britain first!”라는 외침이 들려온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영국 군함들이 속수무책으로 침몰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본래 영국은 막강한 해군의 나라가 아니던가. 그런 제해권(制海權)을 상실한 영국이 처한 현실을 변증하는 맥락에서 보면 큰 무리가 없는 복선이기도 하다.

또한 침몰한 배들에서 흘러나와 바닷물에 엉긴 기름으로 인해 구조된 영국 백인 병사들의 얼굴이 온통 검은 칠이 된 장면도 오래 노출된다. 이는 영국(또는 유럽)에 포화 된 유색 인종을 표명할 것이다. 브렉시트의 주된 요인은 외국인 이주민 정책 분야에 관한 의제였던 까닭이다. 다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이런 쇼트를 통해 영국 백인도 유색인종과 같은 처지가 될 수도 있다는 풍자를 한 것인지 아니면 브렉시트에 승선한 영국 자국인 중에는 유색인종도 있다는 일종의 변증인지, 그 노선은 알 수 없다. 참고로 런던 태생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아직 영국 국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쨌든 영화 <덩케르트>는 이 ‘다이나모 작전’을 통해서 브렉시트를 변증한다. 특별히 영화 종장에 흘러나오는 윈스턴 처칠의 위대한 연설을 그 변증에 종사시키고 있다.

“영국은 약해지거나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바다와 대양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감과 힘을 길러 하늘에서 싸울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영국을 지켜 낼 것입니다.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상륙지점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들판과 거리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언덕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의 철수는 위대한 승리입니다.”

이 연설을 방증이라도 하듯 영화 속에서 자주 들려오는 “영국 먼저!” 라는 구호는 단순한 이기심에서만이 아니라, 다이얼로그들의 전반적인 의식적 행간 속에서 “그 다음은 프랑스”라는 의미와 맞물려 들려온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이 철수 작전의 지휘관 볼튼이 프랑스의 철수를 돕기 위해 영국군 철수 후에도 방파제에 남는 장면으로 장식되었는데, 실제 역사적으로는 프랑스 병력 2개 사단이 영국군의 철수를 엄호하다가 남겨져 작전 종료일에 모두 독일군 포로가 된다.

앞에서 제1시점인 ‘방파제’를 ‘모래’라는 용어로 대체해서 서술하였는데, ‘덩케르트’ 자체 즉, The Mole/ one week로서 공간은 종교적 기호를 갖는다. 됭케르크(Dunkirk)는 ‘모래밭의 교회’(‘dune’ㆍ‘kerke’)라는 뜻에서 온 말로서 모래/ 해안선은 전통적으로 종말을 뜻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종말이란 임박해 있는 전쟁이기도 하다. 이 혼재의 공간은 그래서 The Mole이라 이름지었을 수도 있다. Mole은 방파제도 되지만 스파이도 되기 때문이다. 앞서 총탄에 구멍이 뚫려 가라앉는 배 밑 상황에서 서로 정체와 신분을 따지고 묻는 장면들에 대해 일러 두었다. 종말이란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는 시간과 공간이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바다는 화있을찐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ㅡ계 12:12, 17.

4. 코렉시트(Korexit)

이 영화가 “<인천상륙작전>, <연평해전>, <국제시장> 같은 값싼 애국심 영화와는 격이 다르다”느니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영화다”라느니, 국내 전문가의 평들은 앞서 수입/배급사에서 내 건 ‘이 영화는 전쟁영화가 아니다’라는 선전만큼이나 넌센스하다.

우리에게 있어서의 ‘인천상륙작전’이나 ‘국제시장’(흥남철수) 만큼이나, 영국인에게 각인된 이 민간선박들의 활약과 기적으로 회자되는 ‘덩케르트의 기적’(Dunkirt Spirit)은, 실제 역사적으로는 대부분의 덩케르크에 갇혔던 병사들이 민간선박이 아닌 군함에 태워져서 구조되었다는 점에서 소위 우리네 값싼 애국심(평가단은 이를 대개 ‘국뽕’이라고 부른다)을 능가한다. 어느 나라든 각인된 애국심은 있기 마련인데도, 유독 우리의 것만 값싸게 여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전쟁다운 전쟁을 교시하는 영화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철수’, ‘구조’, ‘탈출’ 등을 단순한 휴머니즘이 아닌 강력한 전쟁수행의 연장선상에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철수를 승리라고 가르치는 처칠의 교지속에서 이 영화를 읽었을 때, 우리의 정부는 어떤 입장에 서 있는지 자못 궁금하기도 하다. 당장에 ‘탈북민’, 그리고 미처 아직 떠나지 못하고 있는 저 ‘북녘의 모래밭’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얼마전 북한 선전 매체에 등장한 탈북 방송인 임지현씨에 대한 납치설이 제기 되고 있는 가운데 [voa news], 중국 공안에 붙잡힌 탈북 일가족 5명이 음독 자살한 사건, 그리고 다른 70명이 북송된 사건은 전쟁의 현재진행이다)

과연 우리에게 있어서 이 세 거점은 어떻게 작동될까?

– The Mole/ one week (방파제/ 한 주)
– The Sea/ one day (바다/ 하루)
– The Air/ one hour (공중/ 한 시간)

저 북녘은 The Mole 지역일까? 그러려면 문스톤호가 활약한 ‘바다’로서의 자의식이, 스핏파이어/파리어가 활약한 ‘하늘’로서의 자의식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 우리 내면에 문스톤과 스핏파이어는커녕, 우리 자의식과 정체성이 내면적 스파이(mole)가 혼재하는 모래밭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러면 저 북녘이 아닌 이 남쪽 지대는 도리어 불과 1주일 시한을 남겨둔 The Mole 지대로 전락하고 마는 셈이다. 그러면 우리의 바다와 공중은 누가 될꼬? 그야말로 코렉시트(Korexit*). [* ‘Korea’ + ‘Exit’]

참고로 1주일(The Mole/ one week)은 다이나모 작전 기간이었던 총 9일(5/27-6/4) 중에서 영국군이 철수를 완료한 실제 기간이었다.

에필로그.

이 영화에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캐릭터로 킬리언 머피가 등장한다. 문스톤호가 뒤집힌 배에서 표류하고 있던 이 사람을 구조해서 태웠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배우다)

그런데 이 인물이 ‘방파제’(The Mole/ one week)에서도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토미가 깁슨과 함께 기뢰를 맞은 배에서 탈출을 했을 때, 구명 보트에 자리가 없다며 태워주지 않은 그 보트의 지휘관으로 나왔던 것이다.

토미에게 더 이상은 태울 수 없으니 물에서 기다리라며, 물이 차갑지 않으니 괜찮을 것이라는 친절한 안내까지 덧붙이지만 실상은 별로 구조의 의지가 없는 지휘관으로 나왔던 것이다. 문제는 이 사람이 이미 One Day(the Sea) 구간에서 구조가 된 상태임에도, 극상에서는 One Week(the Mole) 지역에서 병사를 구조하지 않는 장교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1인 2역일까? 아니면 서로 다른 시/공간의 연결일까?

이 신비로운 인물의 기호가 바로 코렉시트(Korexit)의 표지이다.

The Mole(방파제) 지대에서 one week(일주일)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The Sea(바다) 권역에 들어와서도 자신의 본분과 본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한 구간씩 밀리는 것이다. One Week를 방어하지 못하면 One Day에서 여전히 One Week를 살아가는 원리라고나 할까? 이 영화에서 PTSD 장애가 그렇게 재해석되었다. 어느 면에서 우리들은 심각한 PTSD를 겪고 있는 셈이다.

6.25.전쟁은 다이나모 작전 이후 10년 뒤에 발생한다.

영화 ‘덩케르크’는 ‘브렉시트’(Brexit) 이야기”에 대한 2개의 생각

    1. 답변이 너무나도 늦었습니다. 공감에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신속 답변하겠습니다! 좋은 연말연시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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