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하나인가 둘인가 셋인가

벌카우어는 ‘나’를 그냥 하나라고 주장했다.

“…(영과 혼) 이 용어들이 단지 의도하는 것은 인간이 화학적인 성분의 육체 이상의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뿐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아니한 채 인간의 구조만을 논하는 것은 성경의 관심이 아니다.” ㅡ벌카우어(Berkouwer)

그러나 정작 성경엔 이런 식으로 적혀 있다 보니 ‘나’가 셋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우리가 마음(카르디아)을 다하여
목숨(프쉬케)을 다하여
힘(이스퀴스)을 다하며
뜻(디아노이아)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람…” ㅡ눅 10:27; 막 12:30.

우리가 마음(카르디아)을 다하여
목숨(프쉬케)을 다하여
힘(이스퀴스)을 다하며
뜻(디아노이아)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람…” ㅡ마 22:37.

마음과 지혜(쉬네세오스)와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 ㅡ막 12:33.

하지만 그런 식으로 ‘나’를 따지고 들면 ‘나’는 네다섯 개도 넘을 것이다.

안전하게 둘이라는 선에서 마무리 치는 사람도 있다.

…(영과 혼) 이 두 용어는 어떻게 쓰이든 육체 또는 몸과 대조되는 사람의 내적 본질을 가리킨다. 그리고 사람의 육체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존재하는 사람의 외적인 면을 가리킨다. 그런 까닭에 사람의 심리적 본성과 관련하여 영은 하나님에게 그것의 기원을 두고 있는 생명을 의미하고 혼은 사람 안에서 형성된 동일한 생명을 의미한다. 영은 사람의 존재의 내적 깊음 곧 그의 인격의 고등한 측면이요 혼은 사람 자신의 특별하고 구별된 개체성을 뜻한다. 프뉴마는 하나님을 향하는 사람의 비물질적 본성이요 프쉬케는 땅을 향하고 감각적인 것들과 접촉하는 사람의 바로 그 비물질적 본성이다.” ㅡ H. D. MacDonald, 1984.

그렇지만 이 사람은 ‘나’를 사실상 셋으로 분할하고 있으면서도 둘처럼 말하는 변증법을 쓰고 있다.
나는 몇 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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