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두고 숨은 코드가 있다느니 미국식 ‘외 눈알’ 음모론이니… 회자되지만, 이 영화는 숨은 코드고 나발이고 분명하게 대놓고 차별금지 이념 영화이다. 친동성애 성향뿐 아니라 다양한 젠더 이념 메시지를 구현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명작 중의 명작으로 꼽을 만한 수작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는 이렇게 경구 화면이 뿌려진다. 영화 감독이 이 경구에 큰 영감을 받았나보구나 싶겠지만, 이 경구의 이니셜 P. T. Barnum은 미 하원을 지낸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Phineas Taylor Barnum, 1810-1891)으로 영화 속 주인공으로 묘사된 실존 인물이다. 그는 살아 생전 ‘참으로 위대한 쇼맨이었다’는 평가와 함께 ‘희대의 사기꾼이었다’는 극단의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영화 배경은 19세기 미국이다. 영국보다는 상놈들의 세상인 미국이지만, 무한 성장 가능성을 잠재한 시장 국가로서 유럽의 부러움을 사고 있을 무렵이다. 하지만 유럽의 차별 문화 정서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나라이기도 했다.
주인공 바넘은 양복점 테일러의 아들로 태어난 천민이다. 소년 바넘은 부유한 상류층 저택을 방문해 맞춤 양복을 제작하는 아버지를 따라다닌다. 하루는 지체 높은 한 가정을 방문했을 때 또래의 예쁜 여자 아이 채리티와 함께 눈 웃음으로 장난치다 그 장면을 본 채리티의 아버지에게 뺨 따귀를 후려 맞는다. 바넘의 아버지는 아들이 그렇게 얻어맞았지만 저항할 힘이 없다.

아버지와 가난하게 살던 바넘은 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길거리를 떠도는 천애 고아 거지가 된다. 그런 상황에서도 기숙학교에 입학한 채리티와의 편지를 통해 애정을 이어간다. 미국 대철도 공사 노동자로 전전하면서 성인이 된 바넘은 정식으로 채리티에게 청혼하려고 그녀의 집으로 찾아 갔다. “바넘의 가난에 질려서 다시 돌아오게 될거야!”라고 외치는 장인의 고함을 뒤로 하고 그렇게 가정을 꾸린 바넘은 삶이 녹록치 않다.

사무직으로 취직해 성실히 살아가지만 해운회사였던 직장은 파산하고 실직자가 된다. 바넘은 포기하지 않고 어린 시절의 꿈이던 쇼 사업을 창업하기로 맘먹고 은행에서 1만 달러를 대출 받는다. 담보는 무역선이 침몰해 망한 이전 직장의 무역선단 권리증서였다. 은행을 속인 것이다.
그렇게 사들인 건물에는 바넘이 전국에서 쓸어 모은 희귀한 물건들로 채웠다. 기상천외한 쇼 박물관을 구상했던 것이다. ‘거대한 기린 박제’, ‘루이 16세의 목을 잘랐다는 단두대’ 등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물건들을 전시하고 거리로 나가 홍보했다. 하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다.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무도 입장권을 구입하지 않는 무관심 속에 실망하고 있을 때 어린 딸이 힌트가 될 한마디를 무심코 던지며 잠든다.
“살아 있는 것들이어야 해요. 아빠.”
그렇다. 박물관에 전시한 것은 모두 죽은 박제나 출처를 알 수 없는 폐품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래서 바넘은 살아 있는 생물을 떠올렸다. 기상천외한 생물. 가장 처음 떠올린 기상천외한 생물은 은행에 대출 받으러 갔을 때 만난 왜소증 청년이었다. 얼마나 작은지 초등학생으로도 보이지 않는 작은 남자였다. 그를 찾아가 설득했다. 세상 밖으로 나오라고.

왜소증 청년은 이미 세상으로부터 상처 받아 냉담한 반응을 보였지만, 바넘의 끈질긴 설득 끝에 마침내 청년을 쇼에 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 다음에 찾아간 사람은 턱수염이 자라는 흑인 여성이다. 노래를 기막히게 잘 부른다. 하지만 본인의 외모 때문에 숨어서 노래할 따름이다. 바넘은 이 여성도 쇼에 끌어내는데 성공한다.
이렇게 모은 사람으로 구성된 바넘의 쇼단은 사람들이 열광할 만한 쇼를 창출해 대성황리에 경제적 성공을 이룬다. 성공하면 할수록 흥행이 될만한 기이한 인물을 발굴해 더 많은 대중을 끌어모은다. 바넘은 이제 명사가 되어 영국에까지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그에게는 핸디캡이 있다.

사람들은 그의 쇼에 열광하지만 모든 쇼는 거짓이고 사기라며 바넘을 멸시하고 수근 거리는 것이다. 그의 쇼가 지닌 한계였다. 대중은 자극적인 흥미를 찾아 계속 쇼를 보러오지만 그 쇼를 하류로 취급했다. 심지어 바넘의 어린 딸이 학교에서도 놀림 받고 돌아왔다. 경제적인 풍요는 거뒀지만 그 멸시와 천대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쇼의 업그레이드를 아쉬워하던 중 바넘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을 알현할 기회를 갖게 되었는데 유럽에서 명성을 날리는 유명 가수 제니 린드를 그곳에서 만난다. 그녀는 상류 사회의 가수였다. 바넘은 즉석에서 미국 투어 공연을 제안했다. 하지만 제니는 바넘과 바넘의 쇼를 하대한다. 명성은 알고 있지만 그런 쇼에는 나가지 않겠다는 거절이다.
하지만 바넘은 화술에 능했다.
“나의 쇼를 보러오는 대중은 어차피 가짜인 것을 알고, 가짜를 보러오는 대중에 불과할 뿐이죠. 하지만 한 번쯤은 ‘진짜’를 보여주고 싶소.”
이 말에 홀린 제니 린드는 미국 투어를 시작한다.

제니 린드가 노래하는 것을 들어보지도 않고 초청한 바넘은 첫 회 공연에서 제니 린드의 노래를 듣고는 완전히 넋을 잃고 만다. 이것이 진짜 공연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제니 린드를 내세운 첫 회 공연에 대성공을 거둔다. 그동안 바넘을 무시하던 상류층 명사들도 바넘의 쇼를 높이 평가하기에 이른다. 대 성황리에 마친 공연을 축하하는 파티 연회가 열렸다. 화려한 명사들이 격조 있는 덕담과 축하를 이어갔다.
바로 그 때.
(내가 이 장면을 소개하려고 이 긴 줄거리 쓰는 수고를 마다 않고 있다.)
바로 그 때 기이한 외모를 가진 쇼단원들, 생사고락을 함께 하여 열심히 공연한 쇼단원들, 바넘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준 쇼단원들, 이들이 파티에 참여하기 위해 계단을 올라 파티장에 들어가려 하자… 아니 글쎄.., 바넘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쇼단원들의 연회장 출입을 막는 것이 아닌가.

기이하게 생긴 너희들이 들어올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장면은 마치 ‘미래통합당’의 그것을 보는 듯하다.
광화문의 여러 다양한 모습의 국민을 기이한 바이러스 보균자로 보듯 문을 딱 걸어잠그는 미래통합당.
실존 인물 바넘은 초기에 창과 엥 벙커(Chang, Eng Bunker)라는 쌍둥이와 서커스를 시작했는데 그들은 팔과 다리가 따로 있고 몸통이 붙은 형제였다. 노예로 살던 그들은 바넘과 함께 일했다. 노예로 사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바넘은 사기꾼이 맞다. 석고로 만든 모조상을 거인이라고 속여 전시한다거나, 평범한 80세 흑인 노파 조이스 헤스를 조지 워싱턴의 간호사라고 속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전신마비였던 그녀를 160살이라고 사기를 쳐 큰 돈을 번 것이다.

그 외에도 그의 주작과 사기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는 살아 생전에 여러 명언을 남겼는데, 앞서 “가장 고귀한 예술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라는 말 외에도 “대중은 속기 위해 태어난다”(There’s a sucker born every minute.)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미래통합당보다는 양심적이었던 것 같다. 바넘은 창과 엥 벙커 형제를 놔주었는데 이들 형제는 노예를 부리며 살 정도의 여생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정치인으로 변신한 바넘이 반(反) 노예 진영에 투신해 일한 것과는 대조적인 행보다.
실존 인물 P. T. 바넘은 10대부터 34살까지는 민주당 소속이었다.
그리고 34살부터 81세로 죽는 날까지는 공화당 보수 정당 소속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