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카이나와 독사(δόξα)의 관계

결론적으로 70인역(Septuagint) 번역자들이 이 독자적 정신성 단위 ‘독사’를 구약의 가봇(영광)에 대한 대응어로 채택해 온 궁극적 근거는 그것이 어떠한 물리적 사물에 의존하지 않고도 ‘거주’(shekinah) 할 수 있는 가장 우월한 정신 입자를 설명하기에 용이한 개념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쉐카이나가 존재의 양식이라면 독사는 일종의 그 존재의 형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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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이 독사(δόξα, 영광)를 싫어했던 경위에 대하여

플라톤(Plato)은 독사(δόξα)를 아주 경멸하고 싫어했다고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독사는 영광(Glory)이 아니었다. 플라톤이 독사를 싫어한 경위는 곧, 독사가 영광이라는 지위를 얻게되는 경위와 이어져 있다:

독사(δόξα, 영광)가 현대 기독교인에게는 최상의 영예로운 영적 상태와 지위를 표명하는 어휘가 되었지만 플라톤(Plato)은 이를 아주 경멸하였다고 한다. ‘견해’ 또는 ‘의견’이라는 뜻을 지닌 이 독사의 개념을 앞서 오늘날의 언론 매체 사설 따위로 예를 들은 바 있다. (각 언론사 사설은 마치 독자적 견해인 것처럼 임하지만 언제나 자기 이념의 권역에서 관철시키고자 하는 노선을 꾀하는 것, 그래서 마치 독.자.적.인. 진술인 것처럼 임하는 바로 그것이 독사라고 일러두었다.) 플라톤은 폴리스의 허접한 소피스트들이 이런 저질 레토릭을 이용해 시민들을 기만한다고 지적하면서 이런 독사의 행위와 개념을 경멸했던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달랐다. 그는 신체의 감각과 분리된 최고의 정신 단위를 이 독사/δόξα에 두었다. 동물도 인간처럼 상상 할 수 있다. 생각하는 그 능력을 이용해 먹이를 찾아 이동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먹이를 손에 넣으려고 추론까지 한다. 그렇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의] 그것들은 모두 신체의 감각이 주도하는 상상과 추론으로 분리 규정하였다. 반면 신체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인간만의] 보다 높은 정신 단위, 즉 정신 스스로가 홀로 독자적 판단을(δόξα) 내릴 수 있는 권능을 바로 독.사.라고 규정함으로써 스승 플라톤의 가르침을 혁파하였다. 다시 말해서, 독사는 레토릭 기술 정도로 치부되던 지위로부터 최고의 독자적 정신사고 단위로 격상되기에 이른 것이다. 70인역(Septuagint) 저자들이 구약의 가봇(영광)을 이 단어를 채택해 번역하게 된 전거이다.

이후 이교도들인 이슬람은 희랍의 이 최신 철학을 적극 받아들인 덕택에 십자군 전쟁 때만 해도 여전히 플라톤 구식 철학에 머물던 미개한 기독교보다 우월한 학문적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십자군들에게 이 유연한 사고체계를 다 빼앗기고 오늘날은 당대의 십자군 같은 미개한 사생아 집단만 적출해내는 처지로 전락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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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독사(δόξα)는 원래 영광(Glory)이 아니었다

기독교인이 의미심장하게 사용하는 용어 ‘영광’을 희랍어로 독사(δόξα)라고 한다. 그런데 엄밀한 의미에서 이 δόξα는 본래 ‘영광’과는 거의 상관이 없는 용어였다. 그 쓰임새가 주로 opinion 즉 ‘견해’라는 의미에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독사’가 영광(Glory)으로 쓰이게 된 것은 셉투아진트 번역자들의 절대적 공헌이다. 그들이 희브리어 가봇(영광)을 독사로 번역해놓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가봇’을 독사로 번역했을까. 그것은 ‘독사’가 기대함으로 (바라)본다!는 뜻을 지닌 δοκεῖν에서 온 말이라는 사실로 더 잘 유추할 수 있는데, 고대 희랍의 소피스트들에게 견해(opinion) 또는 의견이란 스스로 계산하고 추론하고 상상할 수 있는 압도적인 능력 범주에 속한다는 점에서 다른 열등한 생물과는 매우 상대적인 개념이었다. 오늘날도 저명한 뉴스 매체에서 단순한 기사로서 지면이 있고, 그에 반해 오피니언 지면은 비교적 상층부 구조에 자리한 예로 들 수 있다. 그들은 마치 독자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것처럼 논술한다. 해당 매체의 절대적인 노선의 권역에 머무르면서도 언제나 마치 어떤 독자적인 진술인 것처럼 임한다. 이것이 δόξα의 쓰임새이다. 이 견해나 의견(δόξα)을 낼 수 있는 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내다보는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시기 이전 약 200년 전의 유대인들은 벌써 구약의 가봇(영광)에 얽힌 쉐카이나 개념을 이처험 희랍식 메타피지컬한 정신 문화 구조로 이식 할 능력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우린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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