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A Time)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경전 전도서라는 책의 제 3장에는 14쌍의 때(time)가 나온다.

그것은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모든 때의 전부이다.
아니? 인생이 얼마나 길고 복잡미묘한데 그게 전부라구?
그게 전부다.

그것은 마치 온갖 미묘한 맛이 있지만
사실은 단맛, 쓴맛, 신맛, 짠맛이 전부이듯
인간이 살면서 체험할 수 있는 그 모든 때의 전부이다.

(생로병사, 희노애락의 확장으로 보면 맞다.)

1. 날 때, 죽을 때.
2. 심을 때, 심은 것을 뽑을 때.
3. 죽일 때, 치료시킬 때.
4. 헐 때, 세울 때.
5. 울 때, 웃을 때.
6. 슬퍼할 때, 춤출 때.
7. 돌을 던져 버릴 때, 돌을 거둘 때.
8. 안을 때(받아들일 때), 안은 것을 멀리할 때.
9. 찾을 때, 잃을 때.
10. 지킬 때, 버릴 때.
11. 찢을 때, 꿰맬 때.
12. 잠잠할 때, 말할 때.
13. 사랑할 때, 미워할 때.
14. 전쟁할 때, 평화할 때.

그런데,
이 스물여덟 ‘때’가 모조리 카이로스다.
크로노스는 어디로 가버렸단 말인가?
첫 절에서는 있었는데…

“천하 범사에 때(크로노스)가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카이로스)가 있나니…”(1절)

크로노스는 마치 전차와도 같은 것이다.
무자비하다.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 무자비한 시간은 마치 하나님과도 같다.
무자비하신 하나님…

그렇기에 헤겔은 시간이란 원래 그냥 그렇게 무자비하게 생겨먹은 것이라 하였고, 칼 막스는 그것을 설국열차라고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크로노스는 우리 각자의 소중한 카이로스를 태우고 가는 씨줄 기차에 불과한 것이지 어떤 악은 아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자신이 씨줄일 뿐이지, 하나님이 무자비하신 건 아니다.

게다가 설국열차 식으로 내가 타고 있는 칸보다 앞에 있는 칸이 더 나을 것이란 망상은 우리가 다른 정거장에서 다른 칸에 탔다는 소중한 경험, 즉 그 카이로스를 망각할 때 비롯된다.

14쌍, 스물여덟 ‘때’라고 하였던가?

성서는 말하기를 그 모든 ‘때’(카이로스)가 아름답다고 역설한다.
찢기고, 꿰매이는 것이 아름답다구?
그렇다.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것은 살아 숨쉬는 생물 가운데 오로지 영원을 사모하는 카이로스만이 크로노스를 향해 달려들 수 있기 때문이다. (11절)

그리스도께서 그 (무자비한 전차) 크로노스를 정지 시켜버렸다.
자기의 카이로스로 멈춰 세운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14쌍 스물여덟 칸칸의 때(카이로스)에 올라타 있다.

자초지종 이렇게 된 것이오니 부디 하나님의 무자비함에 대한 오해와 노여움들을 모두 푸시기를…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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