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 선포문 번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월 6일(현지시각)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한다고 발표했다. 다음은 발표문의 요약 번역한 것이다.

In U.S. presidential first, Trump prays at Jerusalem’s Western Wall

“내가 집무실에 왔을 때(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나는 열린 눈으로, 그리고 매우 새로운 생각으로 세상에 대한 도전을 약속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실패한 전략을 반복함으로써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모든 도전 과제에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합니다.

오늘 제가 발표하는 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갈등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1995년 의회는 예루살렘 대사관 법을 채택하여 연방정부가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김으로써, 그 도시가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촉구한 바 있습니다. 이 법안은 압도적이면서도 초당적인 다수에 의해 의회를 통과했으며, 불과 6개월 전에 상원의 만장일치로 재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20년이 넘은 세월 동안 모든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인정하거나,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지도 않았고, 그 법에 대한 유보권을 행사했습니다.

앞선 대통령들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승인하는 그 법안을 연기하는 것이 평화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자기들의 믿음에 따라 그 유보권을 행사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용기가 부족하다 말하지만, 당시엔 그들의 그러한 인식에 따른 근거를 토대로 최선의 판단을 내렸다 봅니다.

그럼에도 기록은 남아있는 것입니다. 20년이라는 기간이 넘도록 그 법안을 지연시킨 지금 우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지속적인 평화 협정에 결코 근접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렇게 동일한 방식으로 반복하고도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공식적으로 천명할 때라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전 대통령이 이를 주요한 의제로 삼았으나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 그것을 이행하고자 합니다.

나는 미국의 최선의 이익을 위하여 이 방침을 판단하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평화를 촉구하고자 합니다. 이는 평화를 진전시키고 지속적인 합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오랜 염원입니다.

이스라엘은 모든 다른 주권 국가와 같이 자신들의 자산을 결정할 권리가 있는 주권 국가입니다. 이를 사실로 인정하는 것은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필수 전제 조건입니다.

70년 전 미국은 트루먼 대통령 재임 시절,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한 바 있습니다. 그 이후로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에 수도를 세웠습니다. 유대인들이 고대에 설립 한 수도말입니다.

오늘 날, 예루살렘은 현대 이스라엘 정부의 거점입니다. 이스라엘 대법원뿐 아니라 이스라엘 의회의 본거지이기도 합니다. 총리와 대통령의 초기 거주지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정부 부처의 본부가 위치한 곳입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 대통령과 국무장관, 그리고 군부대를 방문한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과의 만남을 가졌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3대 종교의 심장부 일뿐 아니라 현재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민주주의 국가 중 하나의 심장부이기도 합니다. 지난 70년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대인, 무슬림, 기독교인, 그리고 신앙을 가진 모든 사람의 양심에 따라, 신념에 따라, 자유롭게 살고, 경외할 수 있는 나라를 건설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오늘날 유대인들이 서쪽 벽에서 기도하는 곳으로 남아 있어야만 합니다. 서쪽 벽에는 기독교인이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무슬림은 알-아크 사원에서 예배합니다.

그러나 미국을 대표하는 대통령들은 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곳을 이스라엘의 자산으로 전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명백히 선언합니다.

이는 현실을 인정하는 일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옳은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 대사관 법에 따라 미 국무부가 텔 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미국 대사관을 옮길 준비를 시작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건축 설계사와 기술자들을 고용하는 즉시 건축은 시작될 것이며, 이어서 새로운 대사관이 완공되고 나면 그 평화에 대한 찬사가 될 것입니다.

지금 이 발표를 하면서 나는 또 한 가지를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이 결정은 지속적인 평화 협정을 촉구하려는 우리의 강한 의지에서 벗어나는 고려가 전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과 관련한 활발한 합의가 진행되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는 예루살렘에서의 이스라엘 주권과 관련하여 분쟁중인 국경 문제에 관한 해결을 포함하여 어떠한 최종 지위로서의 입장도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문제는 어디까지나 관련 당사자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중략…..

그리하여 오늘 우리는 상호 이해와 존경의 길로 스스로 재 헌신 합시다. 우리가 우리의 오랜 기대를 다시 생각해보고 마음과 마음을 서로 가능성 있게 활짝 엽시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유대인, 기독교인, 회교도 지역의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에게 지속적인 평화를 위한 고귀한 노력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고맙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축복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이 미국에 있기를.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지하의 ‘오적’(五賊)과 ‘이 가문 날에 비구름’

김지하가 《오적五賊》을 쓴 나이는 29살이다. 《이 가문 날에 비구름》은 그로부터 42년 후에 낸 텍스트다(2012). 두 텍스트 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 차이를 어떤 이는 ‘변화’라 부르고 어떤 이는 ‘변절’이라 부른다. 변화는 무엇이고 변절은 무엇일까? 탐탁지 않은 사람들은 (오적이) ‘표절’이었다고 까지 폄훼한다. 지금은 탄핵당한, 한 여성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이유에서다.

두 극점에 위치한 텍스트 두 편을 옮겨본다. 우선 전자의 텍스트는 판소리 형식으로 구성된 일종의 담시 형태이고, 후자 텍스트는 강연 형식의 담론을 기자가 엮은 것이다. 읽는다 하더라도 변화의 핵심을 포착하는 이들이 많을 것 같지 않지만, 본문을 읽지 않는 이 시대에 텍스트 자체를 읽을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다.

 

오적(五賊)

1

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것다.
옛날도, 먼옛날 상달 초사훗날 백두산아래 나라선 뒷날
배꼽으로 보고 똥구머으로 듣던 중엔 으뜸
아동방(我東方)이 바야흐로 단군아래 으뜸
으뜸가는 태평 태평 태평성대라
그 무슨 가난이 있겠느냐 도둑이 있겠느냐
포식한 농민은 배터져 죽는 게 일쑤요
비단옷 신물나서 사시장철 벗고 사니
고재봉 제 비록 도둑이라곤 하나
공자님 당년에고 도척이 났고
부정부패 가렴주구 처처에 그득하나
요순시절에도 시흉은 있었으니
아마도 현군양상(賢君良相)인들 세상 버릇 도벽(盜癖)이야
여든까지 차마 어찌할 수 있겠느냐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
남녘은 똥덩어리 둥둥
구정물 한강가에 동빙고동 우뚝
북녘은 털빠진 닭똥구멍 민둥
벗은 산 만장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쬭
남북간에 오종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게딱지 다닥 코딱지 다닥 그위에 불쑥
장충동 약수동 솟을 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
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
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만하고 목질기기가 동탁배꼽 같은
천하흉포 오적(五賊)의소굴이렷다.
사람마다 뱃속이 오장육보로 되었으되
이놈들의 배안에는 큰 황소불알 만한 도둑보가 겉붙어 오장칠보,
본시 한 왕초에게 도둑질을 배웠으나 재조는 각각이라
밤낮없이 도둑질만 일삼으니 그 재조 또한 신기(神技)에 이르렀것다.
하루는 다섯놈이 모여
십년전 이맘때 우리 서로 피로써 맹세코 도둑질을 개업한 뒤
날이날로 느느니 기술이요 쌓으느니 황금이라, 황금 십만근을 걸어놓고 그간에 일취월장 묘기(妙技)를 어디 한번 서로 겨룸이 어떠한가
이렇게 뜻을 모아 도(盜)짜 한자 크게 써 걸어놓고 도둑시합을 벌이는데
때는 양춘가절(陽春佳節)이라 날씨는 화창, 바람은 건 듯, 구름은 둥실
지마다 골프채 하나씩 비껴들고 꼰아잡고
행여 질세라 다투어 내달아 비전(泌傳)의 신기(神技)를 자랑해 쌌는다.

2

첫째 도둑 나온다 재벌이란 놈 나온다
돈으로 옷해 입고 돈으로 모자해 쓰고 돈으로 구두해 신고 돈으로 장갑해 끼고
금시계, 금반지, 금팔지, 금단추, 금넥타이 핀, 금카후스보턴, 금박클, 금니빨,
금손톱, 금발톱, 금작크, 금시계줄.
디룩디룩 방댕니, 불룩불룩 아랫배, 방귀를 뽕뽕뀌며 아그작 아그작 나온다
저놈 재조봐라 저 재벌놈 재조봐라
장관은 노랗게 굽고 차관은 벌겋게 삶아
초치고 간장치고 계자치고 고추장치고 미원까지 톡톡쳐서 실고추과 마늘 곁들여
나름
세금받은 은행돈, 외국서 빚낸 돈, 왼갖 특혜 좋은 이권은 모조리 꿀꺽
이쁜 년 꾀어서 첩삼아 밤낮으로 작신작신 새끼까기 여념없다
수두룩 까낸 딸년들 모조리 칼쥔놈께 시앗으로 밤참에 진상하여
귀뜀에 정보얻고 수의계약 낙찰시켜 헐값에 땅샀다가 길뚫리면 한 몫잡고
천(千)원 공사(工事) 오원에 쓱싹, 노동자임금은 언제나 외상외상
둘러치는 재조는 손오공할애비요 구워삶는 재조는 뙤놈술수 빰치겄다.
또 한놈 나온다.
국회의원 나온다.
곱사같이 굽은 허리, 조조같이 가는 실눈,
가래끓는 목소리로 응승거리며 나온다
털투성이 몽둥이에 혁명공양 휘휘감고
혁명공약 모자쓰고 혁명공약 배지차고
가래를 퉤퉤, 골프채 번쩍, 깃발같이 높이들고 대갈일성, 쪽 째진 배암샛바닥에
구호가 와그르르
혁명이닷, 구악(舊惡)은 신악(新惡)으로! 개조(改造)닷, 부정축재는 축재부정으로!
근대화닷, 부정선거는 선거부정으로! 중농(重農)이닷, 빈농(貧農)은 잡농(雜農)으로!
건설이닷, 모든집은 와우식(臥牛式)으로! 사회정화(社會淨化)닷,
정인숙(鄭仁淑)을, 정인숙(鄭仁淑)을 철두철미하게 본받아랏!
궐기하랏, 궐기하랏! 한국은행권아, 막걸리야, 주먹들아,
빈대표야, 곰보표야, 째보표야,
올빼미야, 쪽제비야, 사꾸라야, 유령(幽靈)들아, 표도둑질 성전(聖戰)에로 총궐기하랏!
손자(孫子)에도 병불(兵不) 후사, 치자즉 도자(治者卽盜者)요 공약즉 공약(公約卽空約)이니
우매(遇昧)국민 그리알고 저리멀찍 비켜서랏, 냄새난다 퉤 –
골프 좀 쳐야겄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 관련하여 법정에 선 모습. 당시 33세였다. 출처: 동아일보 허문명 기자 블로그

3

셋째놈이 나온다 고급공무원 나온다.
풍신은 고무풍선, 독사같이 모난 눈, 푸르족족 엄한 살,
콱다문 입꼬라지 청백리(淸白吏) 분명쿠나
단 것을 갖다주니 쩔레쩔레 고개저어 우린 단것 좋아 않소,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말구
어허 저놈 뒤좀 봐라 낯짝 하나 더 붙었다
이쪽보고 히뜩히뜩 저쪽보고 혜끗혜끗, 피두피둥 유들유들
숫기도 좋거니와 이빨꼴이 가관이다.
단것 너무 처먹어서 새까맣게 썩었구나, 썩다못해 문들어져
오리(汚吏)가 분명쿠나
간같이 높은 책상 마다같이 깊은 의자 우뚝나직 걸터앉아
공(功)은 쥐뿔도 없는 놈이 하늘같이 높이 앉아 한손으로 노땡큐요 다른 손은
땡큐땡큐
되는 것도 절대 안돼, 안될 것도 문제 없어, 책상위엔 서류뭉치, 책상밑엔 지폐뭉치
높은 놈껜 삽살개요 아랫놈껜 사냥개라, 공금은 잘라먹고 뇌물은 청(請)해먹고
내가 언제 그랬더냐 흰구름아 물어보자 요정(料亭)마담 위아래로
모두 별탈 없다더냐.
넷째놈이 나온다 장성(長猩)놈이 나온다
키크기 팔대장성, 제밑에 졸개행렬 길기가 만리장성
온몸이 털이 숭숭, 고리눈, 범아가리, 벌룸코, 탑삭수염,
짐승이 분명쿠나
금은 백동 청동 황동, 비단공단 울긋불긋, 천근만근 훈장으로 온몸을 덮고 감아
시커먼 개다리를 여기차고 저기차고
엉금엉금 기나온다 장성(長猩)놈 재조봐라
쫄병들 줄 쌀가마니 모래가득 채워놓고 쌀은 빼다 팔아먹고
쫄병 먹일 소돼지는 털한개씩 나눠주고 살은 혼자 몽창먹고
엄동설한 막사없어 얼어죽는 쫄병들을
일만하면 땀이난다 온종일 사역시켜
막사지을 재목갖다 제집크게 지어놓고
부속 차량 피복 연탄 부식에 봉급까지, 위문품까지 떼어먹고
배고파 탈영한놈 군기잡자 주어패서 영창에 집어놓고
열중쉬엇 열중열중열중쉬엇 열중
빵빵들 데려다가 제마누라 화냥끼 노리개로 묶어두고
저는 따로 첩을 두어 운우서수 공방전(雲雨魚水攻防戰)에 병법(兵法)이 신출귀몰(神出鬼沒)
마지막놈 나온다
장차관이 나온다
허옇게 백태끼어 삐적삐적 술지게미 가득고여 삐져나와
추접무화(無化) 눈꼽낀눈 형형하게 부라리며 왼손은 골프채로 국방을 지휘하고
오른손은 주물럭주물럭 계집젖통 위에다가 증산 수출 건설이라 깔짝깔짝 쓰노라니
호호 아이 간지럽사와요
이런 무식한 년, 국사(國事)가 간지러워?
굶더라도 수출이닷, 안팔려도 증상이닷, 아사(餓死)한놈 뼉다귀로 현해탄에 다리놓아 가미사마 배알하잣!
째진 북소리 깨진 나팔소리 삐삐빼빼 불어대며 속셈은 먹을 궁리
검정세단 있는데도 벤쯔를 사다놓고 청렴결백 시위코자 코로나만 타는구나
예산에서 몽땅먹고 입찰에서 왕창먹고 행여나 냄새날라 질근질근 껌씹으며
켄트를 피워물고 외래품 철저단속 공문을 휙휙휙휙 내갈겨 쓰고나서 어허 거참
달필(達筆)이다.
추문듣고 뒤쫓아온 말잘하는 반벙어리 신문기자 앞에 놓고
일국(一國)의 재상더러 부정(不正)이 웬말인가 귀거래사(歸去來辭) 꿍얼꿍얼,자네 핸디 몇이더라?

4

오적(五賊)의 이 절륜한 솜씨를 구경하던 귀신들이
깜짝 놀라서 어마 뜨거라 저놈들한테 붙잡히면 뼉다귀도 못추리것다
똥줄빠지게 내빼 버렸으니 요즘엔 제사지내는 사람마저 드물어졌겄다.
이라한참 시합이 구시월 똥호박 무르익듯이 몰씬몰씬 무르익어가는데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나라망신시키는 오적(五賊)을 잡아들여라
추상같은 어명이 쾅,
청천하늘에 날벼락치듯 쾅쾅쾅 연거푸 떨어져내려 쏟아져 퍼붓어싸니
네이- 당장에 잡아 대령하겠나이다, 대답하고 물러선다
포도대장 물러선다 포도대장 거동봐라
울뚝불뚝 돼지코에 술찌꺼기 허어옇게 묻은 메기 주둥이,
침은 질질질
장비사돈네팔촌 같은 텁석부리 수염, 사람여럿 잡아먹어 피가 벌건 왕방울 눈깔
마빡에 주먹혹이 뛸 때마다 털렁털렁
열십자 팔벌이고 멧돌같이 좌충우돌, 사자같이 으르르르릉
이놈 내리훑고 저놈 굴비엮어
종삼 명동 양동 무교동 청계천 쉬파리 답십리 왕파리 왕십리 똥파리 모두 쓸어모아다 꿀리고 치고 패고 차고 밟고
꼬집어뜯고 물어뜯고 업어메치고 뒤집어던지고 꼰아
추스리고 걷어팽개치고
때리고 부수고 개키고 까집고 비틀고 조이고
꺾고 깎고 벳기고 쑤셔대고 몽구라뜨리고
직신작신 조지고지지고 노들강변 버들같이 휘휘낭창 꾸부러뜨리고
육모방망이, 세모쇳장, 갈쿠리, 긴 칼, 짧은 칼, 큰칼, 작은칼
오라 수갑 곤장 난장 곤봉 호각
개다리 소다리 장총 기관총 수류탄 최루탄 발연탄 구토탄 똥탄 오줌탄 뜸물탄
석탄 백탄
모조리 갖다 늘어놓고 어흥 –
호랑이 방귓소리 같은 으름장에 깜짝, 도매금으로 끌려와 쪼그린 되민증들이 발발
전라도 갯땅쇠 꾀수놈이 발발 오뉴월 동장군(冬將軍) 만난 듯이 발발발 떨어댄다.
네놈이 오적(五賊)이지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날치기요
날치기면 더욱 좋다. 날치기, 들치기, 밀치기, 소매치기, 네다바이 다 합쳐서
오적(五賊)이 그 아니냐
아이구 난 날치기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펨프요
펨프면 더욱 좋다. 펨프, 창녀, 포주, 깡패, 쪽쟁이 다합쳐서
풍속사범 오적(五賊)이 바로 그것 아니더냐
아이구 난 펨프이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껌팔이요
껌팔이면 더욱 좋다. 껌팔이, 담배팔이, 양말팔이, 도롭프스팔이, 쪼코렛팔이 다
합쳐서
외래품 팔아먹는 오적(五賊)이 그아니냐
아이구 난 껌팔이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거지요
거지면 더더욱 좋다. 거지, 문둥이, 시라이, 양아치, 비렁뱅이 다합쳐서
우범오적(五賊)이란 너를 두고 이름이다. 가자 이놈 큰집으로 바삐가자
애고 애고 난 아니요, 오적(五賊)만은 아니어라우. 나는 본시 갯땅쇠로 농사로는
배고파서 돈벌라고 서울왔소. 내게 죄가 있다면은
어젯밤에 배고파서 국화빵 한 개 훔쳐먹은 그 죄밖엔 없습네다.
이리바짝 저리죄고 위로 틀고 아래로 따닥
찜질 매질 물질 불질 무두질에 당근질에 비행기태워 공중잡이
고춧가루 비눗물에 식초까지 퍼부어도 싹아지없이 쏙쏙 기어나오는건
아니랑께롱
한마디뿐이겄다
포도대장 할 수 없이 꾀수놈을 사알살 꼬실른다 저것봐라
오적(五賊)은 무엇이며 어디있나 말 만하면 네 목숨은 살려주마
꾀수놈 이말듣고 옳다꾸나 대답한다.
오적(五賊)이라 하는 것은
재벌과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란 다섯 짐승, 시방 동빙고동에서
도둑시합 열고 있오.
으흠, 거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다. 정녕 그게 짐승이냐?
그라문이라우, 짐승도 아조 흉악한 짐승이지라우.
옳다됐다 내새끼야 그말을 진작하지
포도대장 하도좋아 제무릎을 탁치는데
어떻게 우악스럽게 처 버렸던지 무릎뼈가 파싹 깨져 버렸겄다, 그러허나
아무리 죽을 지경이라도 사(死)는 사(私)요, 공(功)은 공(公)이라
네놈 꾀수 앞장서라, 당장에 잡아다가 능지처참한 연후에 나도 출세해야겄다.
꾀수놈 앞세우고 포도대장 출도한다
범눈깔 부릅뜨고 백주대로상에 헷드라이트 왕눈깔을 미친듯이 부릅뜨고
부릉 부릉 부르릉 찍찍
소리소리 내지르며 질풍같이 내닫는다
비켜라 비켜라
안비키면 오적(五賊)이다
간다 간다 내가 간다
부릉 부릉 부르릉 찍찍 우당우당 우당탕 쿵쾅
오적(五賊)잡으러 내가 간다 남산을 훌렁넘어 한강물 바라보니 동빙고동 예로구나
우레같은 저 함성 범같은 늠름기상 이완대장(李浣大將) 재래(再來)로다
시합장에 뛰어들어 포도대장 대갈일성,
이놈들 오적(五賊)은 듣거라
너희 한같 비천한 축생의 몸으로
방자하게 백성의 고혈빨아 주지육림 가소롭다
대역무도 국위손상, 백성원성 분분하매 어명으로 체포하니
오라를 받으렸다.

5

이리 호령하고 가만히 들러보니 눈하나 깜짝하는 놈 없이
제일에만 열중하는데
생김생김은 짐승이로되 호화찬란한 짐승이라
포도대장 깜짝놀라 사면을 살펴보는데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이게 어느 천국이냐
서슬푸른 용트림이 기둥처처 승천하고 맑고 푸른 수영장엔 벌거벗은
선녀(仙女) 가득
몇십리 수풀들이 정원 속에 그득그득, 백만원짜리 정원수(庭園樹)에 백만원짜리
외국(外國)개
천만원짜리 수석비석(瘦石肥石), 천만원짜리 석등석불(石燈石佛), 일억원짜리
붕어 잉어, 일억원짜리 참새 메추리
문(門)도 자동, 벽도 자동, 술도 자동, 밥도 자동, 계집질 화냥질 분탕질도
자동자동
여대생(女大生) 식모두고 경제학박사 회계두고 임학(林學)박사 원정(園丁)두고
경제학박사 집사두고
가정교사는 철학박사 비서는 정치학박사 미용사는 미학(美學)박사
박사박사박사박사
잔디 행여 죽을세라 잔디에다 스팀넣고, 붕어 행여 죽을세라 연못속에
에어컨넣고
새들 행여 죽을세라 새장속에 히터넣고, 개밥 행여 상할세라 개집속에
냉장고넣고
대리석 양옥(洋屋)위에 조선기와 살쩍얹어 기둥은 코린트식(式) 대들보는
이오니아식(式)
선자추녀 쇠로치고 굽도리 삿슈박고 내외분합 그라스룸 석조(石造)벽에 갈포발라
앞뒷퇴 널찍터서 복판에 메인홀 두고 알매달아 부연얹고
기와위에 이층올려 이층위에 옥상트고 살미살창 가로닫이 도자창(盜字窓)으로
지어놓고
안팎 중문 솟을대문 페르샤풍(風), 본따놓고 목욕탕은 토이기풍(風), 돼지우리
왜풍(倭風)당당
집밑에다 연못파고 연못속에 석가산(石假山), 대대층층 모아놓고
열어재킨 문틈으로 집안을 언 듯보니
자개 케비넷, 무광택 강철함롱, 봉그린 용장, 용그린 봉장, 삼천삼백삼십삼층장
카네숀 그린 화초장, 운동장만한 옥쟁반, 삘딩같이 높이 솟은 금은 청동 놋촉대,
전자시계, 전자밥그릇, 전자주전자, 전자젓가락, 전자꽃병, 전자거울, 전자책,
전자가방, 쇠유리병, 흙나무그릇, 이조청자, 고려백자, 거꾸로 걸린 삐까소,
옆으로 붙인 샤갈,
석파란(石坡蘭)은 금칠액틀에 번들번들 끼워놓고, 산수화조호접인물 (山水花鳥蝴蝶人物)
내리닫이 족자는 사백점 걸어두고, 산수화조호접인물 (山水花 鳥蝴蝶人物)
팔천팔백팔십팔점이 한꺼번에 와글와글,
백동토기, 당화기, 왜화기, 미국화기, 불란서화기, 애태리화기, 호피담뇨 씨운테레비, 화류문갑 속의 쏘니녹음기, 대모책상 위의 밋첼카메라, 산호책장 곁의 알씨에이 영사기, 호박필통에 꽂힌 파카만년필, 촛불켠 샨들리에, 피마주기름 스탠드라이트, 간접직접 직사곡사 천장바닥 벽조명이 휘황칸칸 호화율율.
여편제들 치장보니 청옥머리핀, 백옥구두장식,
황금부로취, 백금이빨, 밀화귓구멍가게, 호박밑구멍마게, 산호똥구멍마게,
루비배꼽마게, 금파단추, 진주귀걸이, 야광주코걸이, 자수정목걸이, 싸파이어팔지 에어랄드팔지, 다이야몬드허리띠, 터키석안경대,
유독 반지만은 금칠한 삼원짜리 납반지가 번쩍번쩍 칠흑암야에 횃불처럼
도도무쌍(無雙)이라!
왼갖 음식 살펴보니 침 꼴깍 넘어가는 소리 천지가 진동한다
소털구이, 돼지콧구멍볶음, 염소수염튀김, 노루뿔삶음, 닭네발산적, 꿩지느라미말림,
도미날개지짐, 조기바톱젓, 민어 농어 방어 광어 은어 귀만 짤라 회무침,
낙지해삼비늘조림, 쇠고기 돈까스, 돼지고기 비후까스, 피안뺀 복지리,
생율, 숙율, 능금, 배 씨만 발라 말리원서 금딱지로 싸놓은 것, 바나나식혜,
파인애플화채, 무화과 꽃닢설탕 버무림,
롱가리트유과, 메사돈약과, 사카린잡과, 개구리알구란탕, 청포우무, 한천묵,
괭장망장과화주, 산또리, 계당주, 샴펭, 송엽주, 드라이찐, 자하주, 압산,
오가피주, 죠니워카, 구기주, 화이트호스, 신선주, 짐빔, 선약주, 나폴레옹 꼬냑, 약주, 탁주, 소주, 정종, 화주, 째주, 보드카, 람주(酒)라!
아가리가 딱 벌어져 닫을 염도 않고 포도대장 침을 질질질질질질 흘려싸면서
가로되
놀랠 놀짜로다
저게모두 도둑질로 모아들인 재산인가
이럴 줄을 알았더면 나도 일찍암치 도둑이나 되었을 걸
원수로다 원수로다 양심(良心)이란 두글자가 철천지 원수로다

6

이리 속으로 자탄망조하는 터에
한놈이 쓰윽 다가와 써억 술잔을 권한다
보도 듣도 못한 술인지라
허겁지겁 한잔두잔 헐레벌떡 석잔넉잔
이윽고 대취하여 포도대장 일어서서 일장연설 해보는데
안주를 어떻게나 많이 쳐먹었는지 이빨이 확 닳아없어져 버린 아가리로 이빨을 딱딱 소리내 부딪쳐가면서 씹어뱉는 그 목소리 엄숙하고 그 조리 정연하기
성인군자의 말씀이라
만장하옵시고 존경하옵는 도둑님들!
도둑은 도둑의 죄가 아니요, 도둑을 만든 이 사회의 죄입네다
여러도둑님들께옵선 도둑이 아니라 이 사회에 충실한 일꾼이니
부디 소신껏 그길에 매진, 용진, 전진, 약진하시길 간절히 바라옵고 또 바라옵니다.
이 말끝에 박장대소 천지가 요란할 때
포도대장 뛰어나가 꾀수놈 낚궈채어 오라묶어 세운뒤에
요놈, 네놈을 무고죄로 입건한다.
때는 가을이라
서산낙일에 객수(客愁)가 추연하네
외기러기 짝을찾고 쪼각달 희게비껴
강물은 붉게 타서 피흐르는데
어쩔꺼나 두견이는 설리설리 울어쌌는데 어쩔꺼나
콩알같은 꾀수묶어 비틀비틀 포도대장 개트림에 돌아가네
어쩔꺼나 어쩔꺼나 우리꾀수 어쩔꺼나
전라도서 굶고살다 서울와 돈번다더니
동대문 남대문 봉천동 모래내에 온갖구박 다 당하고
기어이 가는구나 가막소로 가는구나
어쩔꺼나 억울하고 원통하고 분한사정 누가있어 바로잡나
잘까거라 꾀수야
부디부디 잘가거라.

7

꾀수는 그길로 가막소로 들어가고
오적(五賊)은 뒤에 포도대장 불러다가
그 용기를 어여삐 녀겨 저희집 솟을대문,
바로 그곁에 있는 개집속에 살며 도둑을 지키라하매,
포도대장 이말듣고 얼시구 좋아라
지화자좋네 온갖 병기(兵器)를 다가져다 삼엄하게 늘어놓고 개집속에서 내내
잘살다가
어느 맑게 개인날 아침, 커다랗게 기지개를 켜다 갑자기
벼락을 맞아 급살하니
이때 또한 오적(五賊)도 육공(六孔)으로 피를 토하며
꺼꾸러졌다는 이야기. 허허허
이런 행적이 백대에 민멸치 아니하고 인구(人口)에 회자하여
날같은 거지시인의 싯귀에까지 올라 길이 길이 전해오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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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가문 날에 비구름 

내가 오늘 이런 자리에 선 것 자체가 기이합니다. 아시다시피 나는 본디 미학자이지만 직업은 시인이올시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시국에 관계된 초미한 대권선거에 관련된 연설회에 선 것 그 자체가 참으로 기이합니다.

그러나 새벽녘 단 한마디로 그 기이함을 털어냈습니다. 조국이 나를 부른것입니다. 조국의 위기가 나를 부르지 않았다면 나는 그 어떤 명망에도 그 어떤 명분에도 그리 헐헐하게 이 자리에 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조국의 위기, 그리고 또 하나 나 자신의 커다란 내면의 대변동. 이것이 나를 오늘 이 자리에 서게 했습니다.

내가 왜 오랜 서울생활을 접고 제2의 고향이라는 강원도 원주 변두리로 내려가게 되었을까요? 물론 장모님인 박경리 선생의 서거로 아내가 토지문화관의 그 어려움을 떠맡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실제로 토지문화관의 아내의 일을 돕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집안일을 한마디 말로 해도 괜찮다면 이렇습니다. 나의 아내는 장모님 말씀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고 장모님은 돌아가시기 전 유언으로 ‘김 시인은 문화관 일에 결코 접근시키지 말라’ 하셨습니다. 현실은 그대로 되었고 그 말씀을 깊이 이해한 나는 원주와 원주 주변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까 내가 내 내면의 커다란 대변동 운운한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 결과 나는 원주주변 문막과 부론의 ‘흥원창’ 즉 충청도의 단강과 강원도의 섬강과 경기도의 남한강이 합류하는 지점의 우뚝한 산봉우리 ‘월봉’과 그 앞에 있는 옛 법천사 중장터의 경제원리 사이에 끼어든 월봉 산봉우리 위의 참으로 기이한 물흐름의 비밀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그것에서 1만4000년 전 파미르고원 마고성의 ‘신시’의 수수께끼인 ‘획기적 재분배’의 무서운 비결인 팔여사율(八呂四律)을 발견합니다.

팔여사율은 중국 4500년 전 황제의 이른바 율려(律呂)가 아닙니다. 무엇일까요? 간단히 말해 여성성, 우연성, 생동성 여덟에 남성성, 질서성, 고정성 넷의 이른바 ‘카오스모스’적 결합입니다. 전 아시아의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경제와 시장원리인 ‘호혜, 교환, 획기적 재분배’의 법칙이 바로 팔여사율이라는 산상지 유수(山上之 有水:산 위에 물이 있음)의 이치인 것입니다.

그로부터 나는 차차 고구려, 백제, 신라로부터는 머나먼 중조선 원주, 충주, 여주 인근에 왜 궁예, 왕건, 견훤 등의 군사적 대 혈전이 빈발하고 경순왕이 왜 칩거하며 장수왕, 광개토대왕의 무수한 고구려 탑과 천문대가 밀집해있는지, 그리고 또 어째서 천주교의 시작인 배론성지와 곤지암과 남한강, 북한강의 신·구교 성지들이 밀집해 있는지, 그리고 그리고 또 왜 오대산에는 세계와 우주의 핵이라는 명계(溟界)에 화엄고장이 들어섰는지 조금씩 알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왜 이곳, 이천의 ‘앵산’에서 스물여덟살의 여성동학당 ‘이수인’을 회주로 하는 화엄개백의 수왕회(水王會)가 나타나고 두물머리 앞산에 여운형의 중도노선이, 그리고 수많은 신·구 기독교 수행자들이 줄을 잇는지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든 것은 ‘원만’이란 옛 말로 집약되고 그 ‘원만’은 흥원창의 ‘월봉’에로 상징되었습니다.

‘월봉’은 여성의 상징입니다.

‘월봉’아래 영서지방 최초의 최대선창이었다는 ‘흥원창’에는 이런 전설이 있습니다.
고려 하반기 병명을 알 수 없는 이상한 질병이 퍼져 수많은 아기들이 삼밭에 삼대 쓰러지듯이 죽어갔다고 합니다. 그때 한 미혼의 처녀가 흰 해오라기 네 마리와 함께 흥원창에 나와 꿇어 엎드리고 꼭 나흘간 그 병을 거두어가 달라고 빌었다고 합니다. 나흘 만에 어린애들의 병은 사라지기 시작했고 처녀는 나흘 만에 죽어 하늘로 떠났다고 합니다.

그 세 강 앞에 있는 부론의 길 이름이 있습니다. ‘앙암로(仰岩路)’, ‘월봉을 모시는 길’이 그 길 이름입니다. 많습니다. 그 길을 통과한 사람들은 많습니다. 궁예, 왕건, 견훤, 경순왕, 마의태자와 고구려의 장수들입니다.

또 있습니다. 그 옆 마을 ‘노림’은 이조 선조 때의 저 유명한 재상 ‘한백겸’의 고향입니다. 그는 중국의 신시체제인 ‘정권법’과 ‘팔상시’의 한국판인 ‘기전제’ 연구자로서 그로부터 선조 때 저 이름난 중도경제기구인 ‘대동법’을 일으킨 명인입니다.

그가 청년기에 반역자 ‘정여립’의 송장을 거두어준 것으로 관에 끌려가 호되게 곤장을 맞고 과거 열(列)에서 제거된 것은 유명합니다. 그러나 임진왜란 중에 일본에 부역할 자들을 잡아내 혼내줌으로써 그 뒤 과거에도 승진하고 정승까지 올라간 한국 주역 연구의 명인입니다.

그 옆은 손곡입니다. 손곡은 선종으로 유명한 거돈사와 법상종의 법천사 사이에 그 가까운 골짜기에 길이 없습니다.

왜? 여자 때문입니다.

왜? 공부 좀 하십시오.

나는 ‘월봉’에서 나의 공부가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날 내게 이조 중후기의 지리서인 신경준의 ‘산경표’가 등장하고 그 속의 경상도 영주·봉화 사이 산간의 초미(初眉)라는 한 낭떠러지기 소식이 대구 매일신문 문화부의 노력과 함께 들어왔습니다.

동해안에 해가 뜰 때 그 낭떠러지기 바위 속의 광석들이 여러 빛으로 반짝이고 그 때 바위사이에서 한 기운, 즉 핵산미립자가 나와 주변 소백·태백산간의 산기운의 최고 오염요소인 산을 정화시킨다는 것입니다. 바로 초미(初眉) 즉 첫이마 소식은 내게 잊혀지질 않았습니다.

왜?
나는 7년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참가했다가 저 유명한 ‘몰트만’ 목사와 그 측근 ‘안드레이스’ 목사의 부탁으로 그들의 친구인 생태학자와 독일 녹생당 제 2인자인 미카엘 데이비스와 라인 강가에서 세 시간동안 담화를 나눕니다.

그의 말입니다. ‘유럽생태학과 독일녹색당은 이제 끝났다. 사물 속에 이른바 마음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정신적 요소가 실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제 동아시아에서 생태학이 아닌 생명학으로 새로운 녹색당이 나와야 한다. 그때 우리는 그 영향으로 큰 자기비판을 통해 거듭 날 것이다.’

이 말은 내게 하나의 채증같은 것입니다. 잊히질 않습니다.
자연의 산의 오염을 자연의 핵산미립자 스스로 정화한다면, 그리고 인간은 환경이니 생태니 하며 마구 떠들 일이 아니라, 그 핵산미립자를 찾아 그 산을 치료할 수 있도록 열심히 조치를 할 수 있다면 인간의 일을 참으로 끝내는 것이 됩니다. 내 가슴에서 이 말은 잊히질 않습니다.

나는 원주에 내려간 뒤 사람을 거의 안 만납니다. 깡통 빨갱이들이 지겨워서죠. 그래서 택시 값을 너무 많이 쓴다고 아내에게 혼난 적이 있는데도 그렇습니다.

내가 공부하다 답답해 가는 곳 중엔 시인 원천석의 묘지인 ‘석경사’가 있습니다. 그의 1000여 수의 시중에 나는 딱 한편만 좋아하는데
-재세불생 유산간(在世不生 唯山間)-
“이 세상은 살만한 곳이 아니다. 오직 산과 산 사이 어둑한 골짜기뿐이다.”
그럴까요? 이른바 볼란타입니다. 중국말로는 奉蘭西.
간다하라에서는 이 컴컴한 귀퉁이를 부처님보다 더 편안한 자리라 부른답니다. 그럴까요?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 원천석 묘지가 있는 황골 뒤의 치악산이 곧 ‘입석대’란 곳입니다. 그 곳엔 차가 없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에 그곳이 곧 초미라는 망상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럴까요?

나는 한 유능한 택시기사와 함께 그 황골의 입석대 뒤편 구룡사 뒷산인 비로봉 바로 뒷편으로 돌아돌아 들어갔습니다. 강림, 부곡, 솔거사리라는 곳입니다.

나는 그곳에서 똥을 크게 싸고 왔습니다. 내 첫 이마 즉 초미(初眉)를 발견했기 때문이죠. 첫 이마자리에서 뜻있는 남자는 똥을 싸는 법입니다. 남자의 첫 이마. 동틀 때 자연이 자연을 치료하는 기운을 뿜어내는 기이한 자리. 그렇습니다.

거기 솔거사리에서 방리철이라는 이상한 쇠성분이 해뜰 때 나온다고 합니다. 수려원도 있고, 태종대도 있습니다. 이방원이 자리이기도 합니다. 나는 그쯤은 별 관심없습니다. 그러나 원천석에게 벼슬을 하라고 이방원이 두 번을 찾아왔던 흔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의미가 있습니까?

나는 강림을 내려와 바로 문막-부론의 흥원창, 바로 그 여성 상징처인 월봉으로 갔습니다. 무엇을 깨달았을까?

남자는 남자가 할 일을 찾아내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 예수 제자들이 많을 것입니다. 좋습니다. 내가 예수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갇힌 동굴 앞 바위에 끝끝내 막달라 마리아가 앉아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산상수훈. 그리고 예루살렘 입성전야의 최고의 사랑이 섬김이라는 이야기.

이제 여자가 세상 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4500만 중에 1000만이 일하는 여자들입니다. 작은 일 인가요?
작은 일이라고 보면 큰일 납니다. 꼭 프랑스 혁명 전후에 ‘프리메이슨’ 세계 조직사건을 모르는 사람의 태도지요.

누가 알아요? 지금 그런 것 시작됐는지도 몰라요. 여자에게 현실적인 일을 맡기고 남자는 이제 첫이마를 찾아야 할 때입니다. 3000년 모권제 억압 이전의 신성공동체에서의 사관, 즉 여무 말입니다. 우리나라 경우엔 ‘단군’입니다. 그러나 남자가 도와야 합니다. 어떻게 ‘왕검’이 괜히 있나요? 문제는 어려분이 ‘첫이마’를 어떻게 규정하는가 문제일 뿐입니다.
여러 말 이전에 잘라 말합니다.
“나는 여성들의 현실통어 능력을 인정합니다. 안할 거예요?”

깡통빨갱이들을 나는 비난했습니다. 왜?
정부 돈 잘라 먹는 놈이 무슨 혁명을 해요? 나는 세상이 다 아는 오적의 욕쟁이 김지하입니다. 이름까지도 땅속에 던져 넣고 갔지요. 그런데 깡통빨갱이들이 돈을 떼먹고도 돈 떼먹었다고 욕하니까 날더러 반동분자래!
반동이 그런 거예요? 그러면 온동은 뭐예요? 온동은 있어요?

나는 4·19 때 민통조직에 안 들어갔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마르크스와 러시아 번역성 소설들을 다 읽었으면서도 안 들어갔습니다. 왜?

내 아버지는 목포에서 유명한 빨갱이였어요. 또 6·25 뒤에는 영암 월출산에서 기관총을 쏘며 게릴라를 했어요. 해방직후 남노당이 월북할 때 저희들만 올라가고 모조리 제거해 버렸지요. 그것이 보도연맹입니다. 6·25 때 전쟁직전에 잡아다 둘씩 묶어서 바다에 집어넣었지요. 그게 20만이나 됐어요. 내 아버지는 일본 오사카에서 5년간 전기기술을 공부한 사람이니까 목포에서 귀한 사람이었지요.

그때 LST던가 군함타기 직전에 살아나왔죠. 그런데도 6·25 직후 또 빨치산! 월출산에서 또 청산투쟁을 했어요. 다 죽인다니까 모조리 흰 옷 입고들 산을 올랐으니 총도 밥도 없었겠지. 그래서 내려 보냈지요. 산밑에는 경찰과 해병대의 기관총 뿐. 월출산 밑이 하얬습니다.

아버지는 그 판에 그 ‘청산’에 반발해 투쟁하면서도 게릴라했어요. 그러다 동네사람들이 ‘영일(영일이 나올시다)’이를 목포 우익들이 산채로 돌을 달아서 가마니에 넣어가지고 삼학도 앞바다에 집어넣는 것을 봤다고 후라이를 쳤어요. 아버지는 청산과 외아들의 죽음. 이 두 가지에 기관총을 내던지고 하산했지요. 등산전문가라 샛길을 타고 내려와보니 내가 살아 있었습니다.

잡혀 들어가 고초를 겪고 나와 세 번 자살시도, 실패하자 국군에 들어가(그때는 자수하면 국군에 재입대 시켰습니다) ‘육군군예대’에서 황해, 허장강 등과 함께 연예로 조명비치고 그랬죠. 종전이 되고 목포 못 오니까 폭격아래 허허벌판에 판자 집으로 지은 군인극장에 영사주임으로 있으면서 열세 살의 나를 불러올려 강원도 원주에서 살게 된 것이에요.

가난했지요. 내가 조직에 들어가겠어요?
그러나 외아들이 지 애비사상 모른 채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론도 투쟁도 남보다 뛰어나지만 난 조직엔 안 들어간 거예요. 여러분은 우리나라 현대사, 근대사를 거의 몰라요. 우리 아버지는 그런 공산당이 아니었어요. 그럼 무엇인가요?

남로당 아니면 사회주의, 공산주의 없다고? 바로 그것이 깡통빨갱이들의 시작입니다. 오모가리당, 뒷개패는 아세요? 영광출신 오성택 중심의 ‘오목당’이 무엇인지나 아세요?

삼일운동이후 5년 뒤에야 남조선 공산당이 결성됩니다. 삼일운동 직후 1년 뒤인 1920년 9월 9일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지리산 천왕봉에서 있었던 다섯 사람의 첫 빨갱이 모임을 모르세요? 그러니 역사가 이 모양이고 정치가 이 모양이죠. 정말 몰라요?

그때 주동자가 진주목사 신상식(별명 우범)이죠. 경상도 쪽 두 사람이 동학출신의 ‘형평사’ 조직의 ‘김단야와 그 오른팔 박헌영’이고 전라도 쪽 두사람이 동학·불교쪽의 화엄개벽 ‘수왕회(여자가 대장인 조직)’의 ‘천이식과 인정인(남학과 정역사람’이죠. 이들은 공산이라 안하고 공생(共生)이라 했죠. 신상식은 오산사람으로 어려서 중국 출입때 좌익지식을 얻었다고 합니다.

삼일운동직후 부산, 군산, 목포 등에 일본 배가 많이 출입했는데 그 때 부두파업이 아주 치열했습니다. 일본 기업가들이 ‘틀림없이 배후에 국제적 공산주의 조직이 있다’고 확신했답니다. 그러나 ‘물때(지겟꾼조직)’ 따위와 같은 ‘화엄개벽파 수왕회’였고 이 자조·자립운동은 그 뒤로는 1970년 초 청도로부터 시작된 새마을운동을 고비로 사라집니다.

‘당신은 그걸 어찌 압니까?’ 누군가 내게 물어요. 그러나 나는 대답을 안 합니다. 왜 해요?

내가 앞에서 “조국이 나를 부른다”고 했죠?
김일성이라는 임금(그 뒤 3대에 걸친 고대 깡통사회)이 주체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말을 한 것은 내가 아니라 유명한 종북주의자 김영환, 강철입니다. 시원하십니까? 알아요?

해월 밑에 있던 앵산의 그 ‘이수인’이가 양평에서 강간당하다 찢겨 죽습니다. 그때 두물머리(양수리, 신구기독교 4대강 반대운동 상징터)에 숨어있던 해월 최시형 선생이 그 앞 강물에 뜬 하이얀 초승달을 바라보며 울며 부르짖었습니다.
‘이가 李다’
‘이’는 죽은 여자 이수인의 별명입니다. 그 천박한 아이가 곧 ‘李’ 즉 전주 이씨 그러니까 임금이 된다는 뜻입니다. 왜?

이수인은 정조 무렵 반정부 사건 관련으로 집안에서 쫓겨나 무주(茂朱)로 도망와서 ‘무주 이씨’로 성을 바꿉니다. 그래서 이수인은 스스로를 ‘이(蝨)’라고 낮춰 부른 것이고 해월선생은 ‘정역(正易)’의 김일부가 그 역(易)에서 말한 기위친정(己位親政) 즉 후천개벽이 되면 밑바닥(기위)이 임금 자리로 돌아온다(진청)는 뜻으로 ‘이가 李다’라고 울부짖었던 겁니다.

왜 이상합니까?
박근혜 후보가 이 민주 사회에서 대통령 되는 게 이상해요?

2012년 김지하 시인은 ‘오적(五賊) 필화사건’으로 선고유예를 받은 부분에 대해 항소했으나 기각된 바 있다. 서울고등법원에서의 장면이다. 출처: 연합뉴스

도리어 남자들이 이전 나처럼 산으로 가 첫이마, 초미(初眉) 노릇을 할 자기(불이 아닌 빛으로서의 태양 노릇)를 찿아야 할 때 아닌가요?

나는 박정희 정치에 대해 다 넘어 섰습니다. 이미 독방에서요. 뭐가 문제인가요?

더욱이 여러분의 우리나라 역사지식은 일본놈, 중국놈들과 그 기타 외국지식을 뒤집어 쓴 식민지 지식인들의 그것으로 가득찼습니다. 새 공부하는 뜻으로 여자 세상 한번 그려보세요.

달세상, 물세상, 그늘 세상입니다. 왜 종말 생각 안 합니까? 왜 개벽 생각 안 합니까? 동학이 우스워요? 이 ‘가문 날에 비구름’ 이란 말이 우스워요?
우스워요? 그럼 웃으세요.

나는 몇 년 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 간 적이 있습니다. 왜 갔을까요? 스톡홀름 대학의 한국학과 첫 외국문학 세미나였습니다. 그 스톡홀름에서 처음 번역한 외국 문학이 나의 시 ‘오적’이었답니다.

이상해요? 내 주제는 “촛불, 횃불, 숯불”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여러분처럼 제 나라를 식민지로 생각하는 깡통 빨갱이들이 데모를 했어요.

-김지하 반동분자-
-김지하 노벨상 받으러 공작하러 갔다-
그래요? 맞아요?
“촛불, 횃불, 숯불” 입니다 내 말 주제는.

그런데 박근혜 후보의 정치투쟁 제 일선이라는 어떤 사람이 며칠 전 신문에 이런 글을 썼어요.
“촛불을 확 쓸어버렸어야 했다.” 맞아요?
내 큰 아들도 촛불이지만 나는 그런 캄캄한 밤에 꼭 30분씩 가서 참관하고 돌아온 나 자신이 촛불이예요.
나는 촛불 책을 5권이나 써냈어요. 나를 확 쓸어버릴래요? 그게 무슨 글인 줄 도 모르고?
그 안에 여성 문제, 아이들 문제, 비정규직 문제 다 들어있다면?

촛불에 나중에 끼어든 자들이 있지요. 횃불인가요? 그 패거리가 밥 음료수 막 퍼가지고 왔지요. 그것도 숯불인가요? 나중에 근 한 달 동안 거리에서 저희 존재 증명한다고 우당탕탕하던 깡통 빨갱이들.
나중엔 봉하 쪽 부엉바위에서 꽝한 사람이 누구더라?
그 사람한테는 새누리당 꼭대기들도 촛불을 켰죠! 그것이 모두 촛불 아니던가요?
그것도 확 쓸어버릴 건가요?
지금 선거할 건가요? 안 할 건가요? 마당에서 작대기로 땅빼먹기합니까?

2012.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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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 선서 속의 낙태란 어떤 것인가?

모든 시대 모든 나라에서 의사들의 전통적 윤리 선서문으로 차용되고 있는 히포크라테스 선서(Hippocratic Oath)는 히포크라테스가 자기 선대의 의료적인 견해들을 정리하고, 직접 시행해보고, 그 치료의 결과들을 자료화 하여 도출해 낸 요약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래 전문을 읽어보면 알다시피 환자 치료에 관한 직접적인 내용이라기보다는 (사회) 윤리적 측면을 강조하되, 특히 의사들의 가문이나 이너써클을 위한 조언을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다. 서로의 아들을 가르치고, 자신들의 교사를 보살 피고 있는 것이다. 즉 고대의 어떤 의료 그룹이 이 문서를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히포크라테스는 단지 이를 논거로 세우려는 집단의 욕망이 만들어낸 설립자에 불과하다. 실제로 실존적 히포크라테스는 BC 430년경 플라톤에 의해 언급된 것이 고작 그 유래라 할 수 있다.

자. 이 선언문에는 현재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낙태에 대한 진술이 지나간다. 그런데 좀 특이하다. 유의하여 볼 필요가 있다.

THE OATH OF HIPPOCRATES I SWEAR by Apollo the physician and Æsculapius, and Health, and All-heal, and all the gods and goddesses, that, according to my ability and judgment,

나는 내 능력과 판단에 따라 아폴로 곧 의술의 신과 아에스큘러피어스, 그리고 건강, 그리고 모든 치유, 그리고 모든 신들과 여신들을 걸고 맹세하노라

I will keep this Oath and this stipulation — to reckon him who taught me this Art equally dear to me as my parents, to share my substance with him, and relieve his necessities if required; to look upon his offspring in the same footing as my own brothers, and to teach them this art, if they shall wish to learn it, without fee or stipulation; and that by precept, lecture, and every other mode of instruction,

나는 이 선서와 계약을 지킬 것이니, 나에게 이 의술을 가르쳐준 자를 나의 부모님으로 생각하겠으며, 나의 모든 것을 그와 나누겠으며, 필요하다면 그의 일을 덜어주겠노라. 동등한 지위에 있을 그의 자손을 나의 형제처럼 여기겠으며 그들이 원한다면 조건이나 보수없이 그들에게 이 기술을 가르치겠노라. 교훈이나 강의 다른 모든 교육방법을 써서라도.

I will impart a knowledge of the Art to my own sons, and those of my teachers, and to disciples bound by a stipulation and oath according to the law of medicine, but to none others.

나는 이 지식을 나 자신의 아들들에게, 그리고 나의 은사들에게, 그리고 의학의 법에 따라 규약과 맹세로 맺어진 제자들에게 전하겠노라. 그러나 그외의 누구에게도 이 지식을 전하지는 않겠노라

I will follow that system of regimen which, according to my ability and judgement, I consider for the benefit of my patients, and abstain from whatever is deleterious and mischievous.

나는 내 능력과 판단에 따라 내가 환자의 이익이라 간주하는 섭생의 법칙을 지킬 것이며, 심신에 해를 주는 어떤한 것들도 멀리하겠노라

I will give no deadly medicine to any one if asked, nor suggest any such counsel; and in like manner I will not give to a woman a pessary to produce abortion. With purity and with holiness I will pass my life and practice my Art.

나는 요청받는다하더라도 극약을 그 누구에게도 주지 않을것이며 그와 같은 조언을 하지 않을 것이며, 비슷한 의미로 낙태를 조장하는 페사리를 여성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청렴과 숭고함으로 나는 나의 인생을 살 것이며 나의 의술을 펼치겠노라

I will not cut persons labouring under the stone, but will leave this to be done by men who are practitioners of this work. Into whatever houses I enter, I will go into them for the benefit of the sick, and will abstain from every voluntary act of mischief and corruption; and, further, from the seduction of females or males, of freemen and slaves. Whatever, in connection with my professional service, or not in connection with it, I see or hear, in the life of men, which ought not to be spoken of abroad,

나는 바위아래에서 일하고 있는 자( or 분만하는자)를 베지 않을것이나, 이러한 일을 시행하는 자에 의해서는 이루어지게 할 것이다. (>> 나는 칼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 결석 환자도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맡길 것이다.) 내가 어떠한 집에 들어가더라도 나는 병자의 이익을 위해 그들에게 갈 것이며 어떠한 해악이나 부패스러운 행위를 멀리할 것이며, 남성 혹은 여성, 시민 혹은 노예의 유혹을 멀리할 것이다. 나의 전문적인 업무와 관련된 것이든 혹은 관련이 없는 것이든 나는 일생동안 결코 밖에서 말해서는 안되는 것을 보거나 들을 것이다.

I will not divulge, as reckoning that all such should be kept secret. While I continue to keep this Oath unviolated, may it be granted to me to enjoy life and the practice of the art, respected by all men, in all times. But should I trespass and violate this Oath, may the reverse be my lot.

나는 그와 같은 모든 것을 비밀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결코 누설하지 않겠노라. 내가 이 맹세를 깨지 않고 지낸다면, 그 어떤 때라도 모든 이에게 존경을 받으며, 즐거이 의술을 펼칠 것이요 인생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하나 내가 이 맹세의 길을 벗어나거나 어긴다면, 그 반대가 나의 몫이 될 것이다.

다섯 번째 문단에서 바로, “비슷한 의미로 낙태를 조장하는 페사리를 여성에게 주지 않을 것”이라는 대목의 표현이다.

원어로 보면 이렇다.

οὐδὲ ὑφηγήσομαι συμ βουλίηντοιήνδε: ὁμοίως δὲ οὐδὲ γυναικὶ πεσσὸν φθόριον δώσω

문제는 여기서 ‘낙태’로 볼 만한 단어가 없다는 사실이다. “파괴적인 페사리”이지 “낙태를 조장하는 페사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페사리란 무엇인가?

페사리가 뭔지를 알려면 오늘날의 페사리가 뭔지 찾아보는 것이 이해에 빠르다. 현대 의학용어 사전은 페사리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페서리는 말랑말랑한 고무 뚜껑으로서 질 상부를 밀봉하여 정자가 자궁 내로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도록 만들어진 여성용 피임기구입니다. 자궁경부 위에 덮어 씌우는 형태로서 자궁경부가 튀어나온 여성에게 더 효과적입니다. 피임용 격막의 직경은 6∼10cm로서 콘돔보다 두꺼운 고무로 만들어지며, 고무로 덮인 유연한 금속테두리를 가지고 있어 질 내에 올바르게 위치하는 것을 도와줍니다. 페서리는 다양한 크기가 있으므로 의사의 지시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격막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자가 피임용 격막과 질 사이로 새어 들어가는 위험을 완전히 피할 수 없으므로 살정크림 혹은 살정거품제를 함께 사용하는 것이 좋으며 피임성공률은 90% 정도입니다.

한마디로 ‘질좌제’, 여성 피임 도구, 그러니까 고대 페사리(πεσσὸν)는 오늘날의 피임 도구 브랜드가 된 셈이다.

그러면 고대의 페사리는 무엇일까? 그것도 마찬가지이다. 현재로선 그 실제 모양을 알 수 없으나 원형의 석조(oval-shaped stone)에 린넨 천 조각으로 씌워 만든 어떤 것이라 추정 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활인할 수 있다.

1. 히포크라테스가 의사들에게 내 주어선 안 된다고 한 그것은, 어떤 독초인가 아니면 어떤 피임도구인가?

2. 결론은 이것이다. ‘피임도구’는 ‘독초’와 동일한 것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사실.

왜냐하면 그 “파괴적인 페사리”는 어떤 사람이 의사에게 찾아와 극약을 달라고 했을 때 “비슷한 의미로 조장하는”(οὐδὲ ὑφηγήσομαι συμ βουλίηντοιήνδε) 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남성용 피임도구는 독초로 간주되지 않으면서 유독 여성용 피임도구만을 독초로 취급하는 데서 오인되는 여성 인권의 문제가 대두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여성의 신체는 남성의 신체와 달리 태아를 보호하는 신성한 용기라는 의미에서 그것은 인권적 차별과 억압이라기보다는 신성한 보호로 이해함이 타당할 것이다.

 

태초에 ‘행위’가 있었느니라! (괴테)

괴테가 “태초에 빛이 있었다” 하지 않고 “태초에 행위(리듬)가 있었다”고 한 것은 무엇을 말하려 했던 것일까?

“태초에 빛이 있었다”란 기독교 성서 가운데 구약 부분의 가장 첫 책에서 천지창조를 상징하는 명제인데, 신약성서의 요한복음에서는 이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는 개정된 기치로 언어(λόγος)에 천착함으로써 응답했다. 괴테는 이를 한층 실존적으로 격상시켜 ‘죄’라는 인간의 불가항력적 본성을 입혀 응답한 것이다.

그 태초에 행위가 창조되는 과정을 아래와 같이 가정할 수 있다.

 

§
 

1. “감각에 속해 있지 않았던 ‘지각인 것’은 없다.”

2. 우리 인식은 하나의 먼 기억에 의존한다.

 

3. 겪었던 어떤 느낌을 회상 시키는 순간에야 무엇인가 의미케 된다.

 

 

4. 아는 것만 본다.

 

 

5. 어떤 사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없을 때 그것의 존재를 받아 들이지 못한다.

 

 

6. 하나의 메시지를 해독하는 것은 곧 상징적 한 형태를 지각하는 것이다.

 

 

 

7. 그러므로 장차 감정으로 인식될 먼저 존재했던 그것들(놀람이나 두려움이나 믿음이나 사랑 그런것들)과 환경(맹수나 가난이나 그런 것들) 사이에서 인간은 몸짓으로 존재했던 것뿐이다.

 

 

8. 언어는 거기에 입혀진 것이다.

 

 

 

9. 그런 점에서 인간은 들숨과 날숨의 반복 속에서 떨어져 나온 외침으로서 한 존재인 것이지 자기네끼리 스스로 만들어낸 생명이 아니다.

 

 

10. 이것이 기독교인에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인 것이다.

 

 

§
 

“태초에 ‘말씀’이 있었느니라!” 이렇게 써야 하지 않을까.
벌써 여기에서부터 막히다니! 누가 나를 도와줄 것인가?
‘말씀’이라는 낱말을 과연 이렇듯 높이 평가해야 하는가.
정령의 깨우침을 받았다면,
이 낱말을 다르게 옮겨야 한다.
“태초에 ‘뜻’이 있었느니라!” 이렇게 써야 하지 않을까.
네 펜이 경솔하게 서두르지 않도록
첫 행을 심사숙고하라!
과연 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리는 것이 뜻일까?
“태초에 ‘힘’이 있었느니라!” 이렇게 쓰여 있어야 마땅하리라.
하지만 이것을 쓰는 동안에 벌써 뭔가가 미진하다고 경고하는구나.
정령이 도와주는구나! 불편듯 좋은 생각이 떠올라
자신 있게 쓰노라. “태초에 ‘행위’가 있었느니라”! (“Im Anfang war die Tat!”)
― 괴테의 「파우스트」 중에서

융(Carl Jung)과 나치즘(Nazism)

융(Carl Jung)은 어떻게 히틀러 나치즘(Nazism)에 부역했나.

구글 검색 창에 “칼 융과 나치즘”(Carl Jung and Nazism)이라는 말을 기입해 본 적 있는가. 융(Carl Jung)이 반유대주의 신봉자이자 나치의 동조자라는 혐의에 깊이 빠져들게 될 것이다. 많은 자료가 그를 비난하고 있거나, 변증을 꾀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그를 토양적 혈통적 아리안 인종의 영웅으로 칭송하고 있는데, 사실 이러한 문제를 식별하는 일은 의외로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 이 논쟁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한 때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친구이자, 학생, 또는 동료였던 이 유명한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에 대한 증언은 무엇이 사실인가ㅡ

진실은 결코 좋게 보이지만은 않는다고 전한다. 자신의 여동생과 함께 나치의 길을 가고자 했지만 정작 나치에 의해 의도적으로 배제 된 니체와는 달리, 융은 반유대주의자로 읽히는 맥락에서 그리 벗어나 있지 않다. 1934년 The State of Psychotherapy Today지(誌)에서 그가 나치의 국가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를 “가공할 현상”으로 경탄해 마지않으면서 “아리안 종족의 무의식은 유대인보다 잠재력이 더 크다.”고 쓴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역사학자 앤드류 사무엘스(Andrew Samuels)가 보여 주듯 그러한 진술들 가운데 가장 불쾌한 것 중 하나였다.

친 융 학파 중 한 사람은 Lingering Shadows라 불리는 수필집에서 융이 “나치의 이념에 무의식적으로 감염되었다.”고 인정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심리학자 John Conger는 “반(反) 유대주의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감염되었다 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옹호적 반문을 한다. 나치가 권력을 잡기 전에 융은 이미 30대 때에 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와 마찬가지로 유대인 동료들을 쫓아 냄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한편 전문직 종사자들과 거래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전기작가 디어드리 베어(Deirdre Bair)는 사람들이 융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융의 이름으로 (유대인)박해를 지지하곤 했다고 주장한다. 융은 특히 자신이 “독일인의 심리 요법이 유대인 개개인에게 공개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실제로 투쟁했었다”는 가디언지의 마크 버넌(Mark Vernon)의 기사에 격분한 적이 있다. 베어는 융이 “지도층 의사들과 함께 ‘총통은 미쳤다’고 선언함으로써 히틀러를 축출하기 위한 두어 가지 계획에 참여했으나, 둘 다 무위로 그쳤다.”고 전한다. 하이데거(Heidegger)와는 달리 융은 전쟁 중에 반유대주의적 견해를 강하게 비난했다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유대인 분석가들을 보호했다”고 Conger는 말한다. 난민을 도왔을 뿐 아니라 전쟁 중에 그는 CIA의 전신인 OSS에서 일했다고도 한다.

한편 알렌 덜레스(Allen Dulles)는 융의 나치즘과 파시즘에 대한 깊은 반감에 관해서도 썼다. 덜레스는 “융 교수가 전쟁 중에 연합군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러한 융의 언어들, 인격 속에서의 모순과 행동은 아무리 반쯤 접어 듣더라도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융의 아돌프 히트러에 관한 관조를 위한 정당성에 종사한다. 무엇보다 융에게 찬사를 보내는 오늘날의 신 나치들을 들여다 보면, 그가 제시했던 히틀러의 특징 곧, “보탄(Wotan*) 또는 오딘(Odin)”으로서 당대 독일인들이 했던 것처럼 현대의 인종차별적 민족주의에다가 고대 유럽인들의 공포의 파간/선전 시스템을 그대로 옷입힘으로써 자기네 신자들을 흥분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어렵지 않다. [* 보탄: 북유럽 신화의 Odin에 해당하는 게르만 신화의 신]

1936년 에세이 Wotans에서 융은 “1933년 수십만의 실직자들이 벌인 행진”을 통해 독일인이 “바이마르 공화국의 끝을 향해” 이주한 것은 “정신력의 인격화”(personification of psychic forces)였다면서 그 모든 힘으로서의 전통 신으로 ‘보탄’(Wotans)을 묘사했다. 그러면서 융은 보탄이 “폭풍과 열광의 신, 정열의 자유이며, 전쟁의 갈망이요, 더욱이 초자연의 모든 비밀 속에서 정통한 환상의 마술사이자 예술가”라면서 독일인 또는 히틀러로 투사된 그를 찬양했다. “독일의 정신”(German psyche)을 분노한 신으로 인격화 한 융은 더 나아가 “밖에 서 있는 우리는 마치 책임 있는 대리인인 것처럼 너무 많이 독일인을 판단한다. 하지만 아마도 그들은 비폭력자라고 보면 거의 진리에 가까울 것이다.” 라고 했다.

희망에 비추어 볼 때, 분명히 희망에 반하여 “융은 독일에 대한 구속(redemption)의 논거로서” 그의 성명들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명백하게 희망의 반대편에서” 작용했다고 브래스크(Per Brask)는 기록한다. 그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Wotan”(보탄)의 무의식에 대한 그의 신비주의적 인종차별은 알프레드 로젠버그(Alfred Rosenberg)의 “히틀러의 수석 이데올로기” 이론과 함께 완벽하게 일치했다. 융에 관한 이같은 모순들과 마찬가지로 상황도 복잡했다. 1942년 Omnibook Magazine에 의해 출판된 1938년 인터뷰에서 융은 히틀러에 대한 독일 숭배와 “열등감을 가진 사람의 특성”인 메시아에 대한 유대인의 욕구를 비교하면서 이러한 혼란스러운 개념들을 반복해서 이어갔다. 그는 “마술적” 형태로서의 히틀러의 힘을 묘사한다. 그러면서 “그 힘은 히틀러가 듣고 순종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목소리는 그 자신의 무의식 이외의 다른 어떤 것이 아니며, 독일 사람 자신들 즉, 7천 8백만의 독일인의 무의식에 투사된 것이었다. 그것이 그를 강력하게 만드는 이유였다. 다른 말로 하면 독일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융의 관찰은 과장된 것이지만 그들은 착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사로 잡힐 수 있으나 그것은 분명 그들의 의지이다. 그는 자신의 뜻이 아닌 나치 지도자가 제정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융은 말하기를 “진정한 리더는 항상 이끌고 나가는 것”이라 말한다. 그는 계속해서 베를린에서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함께 관찰하면서 더 어두운 그림을 그려나갔다.

히틀러는 무솔리니(Mussolini)와 비교했을 때 옷이나 로봇의 가면과 같은 마스크가 있는 오토 마톤(automaton) 같았다. 자신을 거죽이 덮인 일종의 나무 받침대 같은 인상이 들도록 만들었다. 어떤 공연을 관람할 때도 그는 결코 웃지 않았다. 마치 그가 유머 감각이 전혀 없거나 나쁜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는 인간미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모든 표현에서 유머 감각이 없는 비인간적인 인상으로 보이려는 목적은 단 하나, 그는 마치 진짜 사람의 두 배가 되는 것처럼 보이기 위했던 것이다. 그런 의도를 매커니즘으로 신체의 맹장처럼 의도적으로 숨겼다.

히틀러와 함께라면 당신이 남자와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이 히틀러와 함께 있었다면 의사 또는 영적인 형상 또는 반신(demi-deity, 半神), 또는 더 나아가 신화와 함께 있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당신은 그 남자와 결코 이야기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거기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이 아니라 집단이었던 것이다. 그는 개인이 아니라 전체 국가였던 것이다. 그가 개인적인 친구가 없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과연 한 국가와 어떻게 친밀하게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융은 계속해서 보탄(Wotan) 숭배의 부활, “성경에서의 삼위, 제3제국과의 평행선”, 그리고 특히 융 학파 다른 고유한 공식 등 대한 논의를 계속한다. 융의 분석에 있어서, 니커보커(H.R. Knickerbocker)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나치의 이름과 상징에 대한 이 정신의학적 설명은 비전문가에겐 환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치당과 그 안내인(FÜHRER)에 대한 팩트만큼이나 환상적일 수 있을까? 단순히 그들을 갱이라고 부를 때 설명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잘 설명 될 수 있어야 한다.”

cf. open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