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개헌’은 왜 반대해야 하는가.

1492년 아메리카 대륙이 콜럼버스에 의해 발견된 이래 미국은 줄곧 영국의 식민지였지만, 동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독립전쟁은 영국계 백인 중심의 민족적 독립국가 체제를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독립과 더불어 발생하는 끊이지 않는 혼란은 결국 5년간의 내전(남북전쟁)을 통해 해소되었고, 산업과 금융업이 발달한 동북부 지역은 명실 공히 아메리카합중국의 핵심세력이 되었다.

그들은 영국에서 벤치마킹한 경제체제 곧, 부국경제체제로서의 세계를 중심부(core, 영국본국, 주체지역)와 주변부(periphery, 준식민지 내지 식민지)로 나누는 경제발달을 하였듯이, 천연자원이 풍부한 남부와 서부를 내부적 경제식민지화로 구현하면서 성장하였다.

드넓은 미개척 대륙에 동서로 횡단하는 철도를 놓으면서 미 전역을 연결하는 철도통신망을 갖춘 단일 경제∙정치 체제를 이룩한 것이다. 이는 지상 최대의 영토와 천연자원을 소유한 연방정부체제로서의 공화국이 되게 해주었다.

이것이 지방분권의 의미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지방분권이 본격화된다면 필연적으로 중심부와 식민지(내지는 준식민지)로 나뉘기 마련이며, 영토가 좁고 천연자원도 없는 상황에서의 경제식민화라면 오로지 한가지 방식, 그 양상은 동북(산업금융)ㅡ남서(천연자원)로 연동되던 미국식 연방체제와는 달리, 북(핵/이념)에 식민지화 된 남(산업금융)으로서의 사회주의(내지는 공산주의)연방으로 향할 우려가 크다. 이미 통일 이전임에도, 경제가 급속도로 이념에 부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방분권은 반대함이 마땅하다.

우리사회를 덮친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

윈스턴 처칠로 분한 게리 올드만.

플라톤은 인간이 구현하는 정치·사회체계를 세 가지로 분류하였다. 왕/군주 일인이 통치하는 군주정(Βασιλεία), 소수의 엘리트가 지배하는 귀족정(Αριστοκρατία), 그리고 다수가 정치를 주도하는 민주정(Δημοκρατία). 아울러 그는 이러한 체제들이 각각 그 일인의 폭정(τύραννος), 소수 엘리트만의 과두정(ἀριστοκρατία), 그리고 다수의 우민화를 통해 중우정(ὀχλοκρατία)으로 변질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경고하였다. 그러나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인이 지배하는 군주정과 소수의 엘리트가 지배하는 귀족정, 그리고 다수의 민주정이 공존하는 혼합정치가 분명 존재하며 바로 그 혼합의 왜곡에서 폭정, 과두정, 중우정으로 나타난다고 개정하였다.

1938년 무솔리니와 히틀러가 뮌헨 회담 장소로 가는 모습

이들보다 한 세기 뒤에 태어나 활동한 역사가 폴리비우스(Polibius, BC 200-118)는 이들의 정치이론에 발전론을 입혀서 체제의 몰락이란 군주정에서 폭정으로, 귀족정에서 과두정으로, 민주정에서 우민화로 퇴행하는 데서 기인하기에, 로마 제국처럼 군주정에서 귀족정으로, 귀족정에서 민주정으로 발전하는 것이 제국의 안녕이라고 선전하였다. 그러면서 그 혼합의 시스템으로서 ‘공화정’ 곧 집정관, 원로원, 호민관으로 구성된 체제를 그 완전체로 역설하였다.

하지만 그 완전체조차도 몰락을 할 때는 각각의 머리로부터 썩어 들어갔던 것을 감안하면 플라톤의 근원적 통찰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며, 또한 그 체제의 운용면에 있어서도 아리스토텔레스가 부연(敷演)했던 이상의 다른 혼합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파시즘(fascism)의 등장을 통해서였다.

군중에게 연설하는 무솔리니

파시즘(Fascism/ fascismo)은 ‘묶음’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파시오(fascio)에서 온 말이다. 그런데 이 파시오란 고대 로마의 정무관이 들고 다녔던 파스케스(fasces)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럼 대체 이 파스케스가 뭐에 쓰는 물건이냐. 파스케스는 막대기를 여러 겹으로 묶어서 그 끝에다 도끼를 달아놓은 일종의 권위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는 상징물로서 뿐만 아니라 실제로 체벌이나 처형에도 사용되었으며 그 상징(물)이 기표하는바, 파시즘이란 한마디로 집단주의의 총화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에는 1인 독재자를 지칭하는 말로 전용되지만 실상 역사적으로는 ‘노조’(노동조합)를 이르는 표현으로도 사용되었기 때문이다(un fascio/ 1910).

파스케스를 든 집정관 모습.

이 일단의 결속주의(結束主義)는 정치적으로 적용될 때 국가주의, 국수주의적 색채 속에서 급진적 성향을 띠기 마련인데, 여기서 응용해 뻗어 나온 것이 바로 나치즘(Nazism)이었다.

새롭게 인종적 어프로치를 한 셈이다.

아돌프 히틀러

고대 로마 사회에서 폴리비우스가 자부하던 정치 발달 체제는 썩어 몰락하였음에도 그 어느 것 하나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며 도리어 새로운 혼합의 옷을 입고서 근대 전유럽을 활보하였고, 이는 어떤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무솔리니와 히틀러라는 인물을 통하여서 아주 실제적이면서도 막강한 위력이 되었다. 다른 말로하면 왕도 없어지지 않았고, 귀족체제도 없어지지 않았으며, 다수와 혼합된 채 폭정, 과두정이 그대로 살아서 새로운 변혁을 꿈꾸었던 것이다.

바로 이때, 시대가 윈스턴 처칠이라는 인물을 불러냈다.

전쟁에 패전한 지휘관이었고, 인격적으로는 괴팍하기 짝이 없어 정치적 동반자도 없이 소외된 채 늙어 가고 있던 한 노인을 왜 다시 불러냈을까. 이 영화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가 어느 정도 가까이서 그에 관한 근접/접사 촬영을 해 놓고 있다.

처칠의 웅얼대는 발음까지 훌륭히 연기해낸 게리 올드만.

윈스턴 처칠을 불러낸 이유는 세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첫째, 저 파스케스(fasces)의 악을 일찍부터 파악을 하고서 시종일관 예언자의 목소리를 낸 정치인은 윈스턴 처칠뿐이었다는 사실.
둘째, 저 파스케스 악에게 모조리 패하거나 항복하여 유럽 전역이 두려움에 압도되어 떨고 있을 때 마지막까지 무릎을 꿇지 않음으로써 그 악이 전 세계로 확산되는 것을 저지한 유일한 유럽 정치인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셋째, 폭정·과두정·중우정의 왜곡된 혼합이 탄생시킨 저 파스케스 악은 진정한 민주주의 곧, 왕·귀족·다수가 다같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영국 민주주의의 힘으로 파쇄시킬 수 있다는 그의 결기와 확신.

의회 당직자들에게 연설을 통해 사전 설득을 하는 처칠.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에는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곧바로 냉전의 시대로 진입한다. 냉전의 시대(Cold War Age)란 앞서 저 악의 막대기 묶음을 무찌르기 위해 동맹에 참여했던 소련을 중심으로 동구권 전역이 공산주의 전선으로 재편된 시대를 말한다. 그 막대기 묶음이 공산주의로 넘어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냉전의 시대마저도 종식된 지금은, 뒤 늦게 우리 대한민국을 접경하여 아주 좁은 범주로 그 막대기 묶음의 권역이 줄어들었지만, 파급력 만큼은 가히 전 세계를 향한 위협을 구가하고 있음을 우리 세대가 목격한다.

특히 그 여파로 우리 삶 깊숙이에 그 막대기 묶음이 맹위를 떨치고 있건만 안타깝게도 우리 곁엔 아직 처칠이 없어 보인다.

에필로그.

윈스턴 처칠은 영화에서 시종일관 그 파스케스(막대기 묶음)에 대항하여 ‘민주주의’ 가치를 반복해 되뇌이지만,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파스케스에게 점유당한 오늘날에는 윈스턴 처칠이 끊임 없이 가치로 되뇌었던 그  민주주의가 실상은 ‘자유민주주의’(Δημοκρατία)였다는 사실로 역류한다. 즉 아리스토텔레스가 예증했던 그 혼합의 왜곡이 우리사회에서 폭정, 과두정, 중우정으로 고스란히 시연되고 있는 셈이다.

■ 함께 읽을 글: 영화 ‘덩케르크’는 ‘브렉시트’(Brexit) 이야기

‘자유민주’에서 ‘자유’가 빠지면 어떤 일이 생기나

올해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 국민투표’ 여부를 놓고 정치권에서 격렬하게 논쟁 중인 것으로 보인다.

개헌의 주된 골자가 담긴 ‘헌법 개정 자문보고서’는 지난 해 2월초 53명으로 구성된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같은 해 10월에 마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이 개헌특위 인원은 36명이며, 소속 정당 분포를 보면 민주당 15, 한국당 14, 국민의당 5, 바른정당 1, 정의당 1명이며 한국당 소속 의원이 위원장이다. 특정 정당 한 편에서 작성한 것은 아닌 셈이다.

우리 실생활에 가장 밀접하게 다가올 만한 눈에 띄는 주요 변경 부분을 살펴보면,

제33조 2항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 보건의료서비스 보장 받을 권리
제35조 1항 모든 국민의 노동의 권리 → 모든 사람의 노동의 권리
제35조 2항 기간제/파견제 사실상의 금지
제35조 3항 최저 임금제 시행
제35조 5항 해고의 금지
제36조 2항 노동자는 사업운영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현재 한창 이슈가 되어온 기간/파견제 고용 문제나 최저임금제 문제도 들어가 있고, 사회보장 및 의료 복지가 한층 강화된다거나 노동의 권리가 외국인에게까지 폭넓게 적용될 것이라는 전망은 다 위와 같은 문안으로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상기의 항목을 포함 수많은 개정 항목 가운데 가장 강력한 개정 부분은 아마 다음과 같은 내용일 것이다. 전문과 총강 부분이다.

전문(前文) 부분.

총강 부분.

바로 ‘자유민주’에서 아예 ‘자유’를 제거한 것이다.

자유란 무엇인가?
민주란 무엇인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같기 때문에 하나를 생략한 것인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를 제거한 것인가. 얼핏 보기에 양자는 같은 것일 수 있다. ‘자유’는 곧잘 ‘민주’라는 이름으로 임하고, ‘민주’ 또한 ‘자유’로서 임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양자는 현저하게 다른 것이기도 하다. 현실 속에서 자유(또는 민주)의 궁극적 파괴는 바로 자유(또는 민주) 자신을 통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양자의 혼용은, 명백하게 다른 두 개의 개념을 하나의 유사(Similarity)가 되도록 만드는 인간이 지닌 강력한 변용술에 따른 것으로(그것을 주로 ‘정치’라 부른다), 둘 중에 하나를 남겨야 한다면 그 한 가지는 바로 ‘민주’가 아닌 ‘자유’였다는 사실을 포착할 수 있다. 이는 자유가 민주를 대체할 수는 있지만, 민주가 자유를 대체할 수는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 테면, 보통 ‘종교의 자유’라고 말하지 ‘종교의 민주’라고 말하지는 않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이 두 종류의 실체를 그 어휘가 갖는 용례와 용법을 통해 확실한 차이를 드러내 보일 것이다. 여기에서 ‘자유와 민주’는 자유(liberty)와 자유(freedom)라는 유사로 표현된다.

이를 테면 이렇게 다른 두 자유이다.

트럼프 대통령 이전의 미국은 동성애 자유(liberty)를 위해 개인과 종교의 자유(freedom)를 박탈시켜 버렸지만, 트럼프가 권력을 쥔 후에는 동성애자에게 있는 자유(liberty)가 개인과 종교의 자유(freedom)를 파괴하지는 못하도록 복원시켰다. 여기서 보았다시피 자유(Freedom)는 개인의 해방이지만 자유(Liberty)는 개개인 권리의 총합이다. 전자는 획득하고 쟁취해 내는 것이지만 후자는 자기가 그냥 승인하는 것이다.

또한 동성애의 자유(liberty)를 무한대로 넓혀 놓았던 오바마와 동일한 인종인 알렉스 헤일리의 조상 쿤타킨테는 자유(freedom)를 얻어야 하는 것이었지만, 지난 2011년 모 서울시장 후보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광화문 네거리에서 ‘김일성 만세’를 부르면 어떻게 하냐는 우려는 헌법에 나와 있는 표현의 자유(liberty)를 포기하고, 이를 억압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한 바도 있다.

그런가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돈 있는 동성애자 연예인들이 호화 결혼식 하는 자유(liberty)는 있지만, 그것을 호적으로 펴내는 자유(freedom)는 아직 거절당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실권할 경우 동성애는 죄라고 말할 자유(liberty)가 없어질 가능성이 큰데, 일군의 동성애자 전체의 자유(liberty) 총합이 위협 받는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상기의 개헌 내용을 볼 때 곧 우리도 동성애는 죄라고 말할 자유(liberty)가 없어질 가능성이 짙어졌다.

이상이 명확하게 다른 두 자유의 용법과 실체이다.

그렇다면 앞서 ‘종교의 자유’라 말할 수는 있어도 ‘종교의 민주’라고는 말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의 그 ‘민주’, 즉 자유가 민주를 포함할 수는 있지만 자유를 포함하지 않은 ‘민주’는 어떤 개념일까.

이런 것이다.

민주주의(liberty) 자체는 근현대에 대개 독재나 집단주의로부터 탈출(freedom)하려는 동기에서 시작하지만, 그것은 역사적으로 언제나 스스로 독재나 집단주의에 근접해 있다. 민주주의 즉, 전체(democracy)를 표방한다고 하는 그 가치 역시 언제나 군주정(monarchy)의 부패태(態)인 폭정(tyranny)을 늘 잠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통상은 독재 폭정(τύραννος)으로 변질 될 우려가 있는 1인 군주정(Βασιλεία)보다는 귀족정(Αριστοκρατία)이 낫고, 자기네끼리 과두정(ἀριστοκρατία)이 될 우려가 있는 귀족정치보다는 민주주의(δημοκρατία)가 낫다고 알려져 현대에는 민주주의를 자유(liberty)로 변용시켜 계몽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 명제로 등장했던 이들 고대 그리스어에서 민주주의를 뜻하는 데모크라티아(δημοκρατία)는 ‘사람들’(people)을 뜻하는 데모스(δῆμος)와 법을 뜻하는 크라티아(κρατία)가 합쳐서 된 말이며, 이 용어를 동시대 언어로 공히 사용했던 기독교 경전에는 그 ‘데모스’라는 말이 총 서너 군데에 나오면서 다 이렇게 소개되고 있다.

다음과 같은 문맥에서이다.

1. 파울로스(Παῦλος)가 연설을 할 때 사람들이 다 그리로 넘어가자 유대인이 주도한 ‘데모스’들은 시기가 나서 시장바닥의 불량배들을 동원해 떼를 지어 일부러 막 소란을 피우며 파울로스 일행이 머무는 숙소로 난입하여 파울로스 일행을 ‘데모스’들에게 끌어낸다. ㅡ사도행전 17.

2. 파울로스가 에페소스의 한 극장에서 ‘데모스’에게 이르기를 미개한 미신에 속아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 하자 우상 제작 업자들이 ‘데모스’를 격동시켜 파울로스를 잡으라고 선동하자 ‘데모스’들이 막 흥분을 하며 밀려든다. ㅡ사도행전 19.

3. 헤로데가 하루는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데모스’에게 연설을 하자 ‘데모스’들이 크게 부르짖으며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며 몰려든다. ㅡ사도행전 12.

이것이 ‘자유’가 빠지고 ‘민주’만 남은 기본질서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 참고로 상기의 개헌 초안 작성에 참여한 입법 의원들은 다음과 같다.

위원장 이주영 자유한국당
간사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서울 구로구갑)
간사 정종섭 자유한국당 (대구 동구갑)
간사 김관영 국민의당 (전북 군산시)
위원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위원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제주 제주시갑)
위원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경기 부천시원미구갑)
위원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충남 논산시계룡시금산군)
위원 박병석 더불어민주당 (대전 서구갑)
위원 백재현 더불어민주당 (경기 광명시갑)
위원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충북 청주시청원구)
위원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대전 유성구을)
위원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위원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경기 안양시만안구)
위원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경기 안산시상록구갑)
위원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서울 강남구을)
위원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서울 강동구갑)
위원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부산 사하구갑)
위원 강효상 자유한국당 (비례대표)
위원 김성태 자유한국당 (비례대표)
위원 김정훈 자유한국당 (부산 남구갑)
위원 나경원 자유한국당 (서울 동작구을)
위원 성일종 자유한국당 (충남 서산시태안군)
위원 윤재옥 자유한국당 (대구 달서구을)
위원 이종구 자유한국당 (서울 강남구갑)
위원 이종배 자유한국당 (충북 충주시)
위원 이채익 자유한국당 (울산 남구갑)
위원 정용기 자유한국당 (대전 대덕구)
위원 최교일 자유한국당 (경북 영주시문경시예천군)
위원 홍일표 자유한국당 (인천 남구갑)
위원 송기석 국민의당 (광주 서구갑)
위원 이상돈 국민의당 (비례대표)
위원 이태규 국민의당 (비례대표)
위원 천정배 국민의당 (광주 서구을)
위원 하태경 바른정당 (부산 해운대구갑)
위원 노회찬 정의당 (경남 창원시성산구)
출처: 개헌 특위 홈페이지

‘정의로운 자’가 ‘불의한 자’인 메커니즘에 관하여 (플라톤)

소크라테스:

“그러니까 다른 모든 것과의 관계에 있어서 정의란 그 각각의 유용한 경우에는 무용하지만, 그 각각의 무용한 경우에는 유용하게 되는 것이겠군? 그런건가?”

폴레마르코스:

“네, 그럴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여보게나, 정의란 그다지 중요한 어떤 것은 못되겠네.” “제한적으로만 유용한 것이라면 말일세.” “하지만 이런 걸 생각해 보게. 이를테면 권투와 같은 싸움에 있어서 때리는 데 가장 능한 사람은 방어하는 데에서도 능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폴레마르코스:

“물론입니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질병을 막고 피함에 있어서 능숙한 사람이면, 그는 그것에 걸리게 하는데 있어서도 지극히 능숙하겠지?”

폴레마르코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소크라테스:

“그러니 작전 계획이나 또는 다른 행동을 몰래 알아내는데 있어서 뛰어난 사람이면, 자기 부대를 지키는 사람으로서도 뛰어난 사람이겠지?”

폴레마르코스:

“물론입니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유능한 감시자는 동시에 유능한 도둑이네.”

폴레마르코스:

“그런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

“그러니까 만약에 정의의 인간이 돈을 간수하는데 있어서 유능하다면, 그는 훔치는 데도 유능하네.”

폴레마르코스:

“어쨌든 결론적으로는 그렇게 되는군요.”

소크라테스:

“그러고 보니 정의의 인간은 일종의 도둑임이 판명된 것 같으네…. 정의란 일종의 도둑질 솜씨지만 그러나 그것은 친구에겐 이익을, 적에겐 손해를 가져다주기 위한 기술인 것 같네. 자네 말은 이런 말이 아닌가?”

폴레마르코스:

“단연코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껏 무슨 말을 제가 했는지도 모르겠군요. 그렇지만 정의는 친구에겐 이익되게 하나 적에겐 해가 되게끔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중략>

소크라테스:

“그러니까 자네 말은 선량한 친구에게는 이롭게 해주고 악한 적에게는 해롭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해야 된다는 거군.”

폴레마르코스:

“물론 그렇게 말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

“그런데 (비록 악한 적일지언정) 사람을 해친다는 일이 정의의 인간이 할 법한 일인가?”

폴레마르코스:

“그야 물론입니다. 상대가 악인이고 적이면 해쳐야 됩니다.”

소크라테스:

“그러면 말(horse)이 해침을 당하면 좋게 되는가 나쁘게 되는가.”

폴레마르코스:

“나쁘게 됩니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그건 개(dog)로서의 특이성(ἀρετή)에 있어서 그렇게 되는가, 말로서의 특이성에 있어 그런건가?”

폴레마르코스:

“말로서의 특이성으로 비롯되는 겁니다.”

소크라테스:

“그러니까 개 역시 해침을 당하게 되면 개로서의 특이성에 있어서 나빠지는 것이지, 결코 말로서의 특이성에 있어서 그렇게 되는 건 아니겠지?”

폴레마르코스:

“네 틀림없습니다.”

소크라테스:

“그런데 여보게나, 그렇다면 인간의 경우에도 우리는 똑같이 말해야 하지 않겠나?” “즉 인간이 해침을 당하면 인간적인 특이성(ἀρετή)에 있어서 나빠지는 것이라고 말일세.”

폴레마르코스:

“그야 물론입니다.”

소크라테스:

“그런데 정의란 인간적인 특이성(ἀρετή/덕과 같은 탁월함)이 아닌가?”

폴레마르코스:

“그야 틀림없습니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해침을 당하는 사람이 반드시 부정한 사람으로 되는가?”

폴레마르코스:

“그럴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

“그러면 음악가는 그의 음악적 재능에 의해 다른 사람들을 비음악적이게 만들 수 있는가?”

폴레마르코스:

“그건 불가능 합니다.”

소크라테스:

“또 승마에 능한 사람이 그의 승마술로 다른 사람들을 승마의 솜씨가 없게끔 만들 수 있는가?”

폴레마르코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소크라테스:

“그러면 정의에 의해 다른 사람들을 부정한 인간들로 만들 수 있을까? 아니 요컨대 선한 인간이 그의 덕(선함)에 의해 다른 사람을 악인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폴레마르코스:

“불가능합니다.”

소크라테스:

“차게 하는 것은 뜨거움이 아니라 그 반대의 것이 하는 일이라 나는 생각하네.”

폴레마르코스:

“예.”

소크라테스:

“습하게 하는 것도 건조함이 바로 그 습함이 관여하는 일이네.”

폴레마르코스:

“물론입니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폴레마르코스여! (어쨌든) 남을 해친다는 것은 그 대상이 악인이든 친구이든 정의의 인간이 관여할 일이 아니네. 그 반대의 인간, 즉 부정한 인간이 관여할 일이네!”

ㅡ Plato.《πολιτεία》 I. 333δ-335δ.

이러한 원리에 입각하여 ‘정의로운 인간’은 ‘불의한 인간’일 가능성이 농후한 것.

“정의로운 인간은 도둑의 일종이다.”
ㅡ플라톤.

황금, 유향, 몰약의 기호와 해석

예수 탄생일에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알현하면서 바쳤다는 황금, 유향, 몰약을 기독교에서는 대개 예수의 세 가지 신성한 직분 곧 왕, 제사장, 선지자를 상징한다고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이해들은 상투적인 교의의 전형으로, 그 각각의 본원적 기호를 빗나간 것일 수 있다.

myrrh

몰약은 고대 아카드어 낱말 무루(murru)에서 파생되어, 아랍어로는 무르(murr), 히브리어로는 모르(מוֹר), 희랍어로는 뮈라(μύρρα)라는 어휘군을 형성하였는데, 한글 ‘몰약’은 이들 중 희랍어를 음역한 것이다. 고대로부터 방향제, 방부제, 소독제, 위장약, 생리불순치료제 등 약재로 활용된 몰약은 이집트문명이나 헬라문명에서 향유의 원료로도 사용되다 근대 들어 화장품 원료가 되기도 했다. 몰약이 전파된 루트는 서아시아 일대에서 성행하던 것이 실크로드를 따라 서쪽으로는 희랍·로마, 동쪽으로는 페르시아와 인도로 각각 퍼지게 되었다. 몰약의 채집은, Commiphora abyssinica라는 학명을 쓰는 감람과 계통의 꽃잎/ 열매 식물 줄기에서 나오는 즙을 받아 말리는 적황색의 고체 덩어리들이다. 향기는 특이하지만 무엇보다도 무척 쓴맛인 이 몰약은 아랍어 명칭 무르(murr) 자체가 아주 쓰다는 뜻으로서, 희랍 신화에 따르면 ‘뮈라’(Μύρρα)라는 한 여성이 거부할 수 없는 신탁에 따라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아도니스(Adonis)를 낳게 되는데 이와 같은 운명적 오명을 뒤집어 쓰고서 쓰디 쓴 고난의 삶을 살아가다 아이마저 불행한 죽음을 당한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이 아들의 이름 아도니스를 셈어로 바꾸면 아도나이(Adonai/ אֲדֹנָי) 즉, 주(Lord)이다. 참고로, 예수님 모친의 이름 마리아(Μαρία)는 ‘쓰디 쓰다’는 뜻을 가진 모세의 누이 이름 미리암(מרים)에서 비롯되었다고 루터는 주석한 바 있다.

Arabic frankincense

유향은 고대로부터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희랍, 로마에서 향료로 각광을 받았다. 히브리어로 레보나(לְבוֹנָה), 아랍어로는 루반(luban), 희랍어로 리바노스(λίβανος), 라틴어로 올리바눔(olibanum)이라 하는데 모두가 다 유백색이란 뜻이지만 이 말들의 어원인 아카디아어의 라바나툼(labanatum)은 사제(la-bi)가 나무 진(na)을 태우는(tum) 데서 연유한 것이라 한다. 유향의 채집은, 아주 깊은 숲에서 용나무 비슷한 나무의 줄기를 도끼로 찍어내면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진액을 받아 굳혀 고체로 만드는 것이었다. 아가서 4장 6, 12-16절이나 전도서 2장 5절에서 솔로몬의 시어로써 “유향의 언덕”으로 묘사되는 대목을 감안할 때 이는 솔로몬 정원 또는 성전에서의 향내나는 나무인 점, 그리고 아랍어 루반(luban)은 아예 우유라는 뜻임을 감안 할 때 총체적인 (생명의 젖이 흘러내리는) 성전을 그 기호로 볼 것이다.

다음은 황금이다.

황금은 대개 기독교인들이 왕권을 상징한다 하여 어떤 예물로 이해하지만, 이는 황금이라는 실물 자체의 기호라기보다는 황금이라는 어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희랍어로 황금은 크리소스(χρυσός)이다. 당연히 음가 자체가 ‘그리스도’를 지향한다. 참고로 4세기에 동방 콘스탄티노플에 대주교 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의 이름이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Ιωάννης ο Χρυσόστομος, 349-407)였다. 존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으로 더 잘 알려진 이 사람의 별명이 크리소스톰 즉 ‘황금의 입’이다.

가장 오래 된 황금송아지 상

그를 대부분 뛰어난 설교자였다고 들 회자하면서, 오늘날 맘몬의 화신들과도 같은 자기들의 현대적 명설교자들을 가리키는 기호로 남용하지만 실상은, 크리소스톰의 시절이 시절이었던 만큼 그것은 ‘교리’에 능한 설교가였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처럼 교리를 파괴하는 설교 행위가 아니라.
즉 설교로 (그리스도의)교리를 세워나간 것이다. 황금 크리소스(χρυσός)는 그런 의미로서의 기름부음/크리스토스(Χριστός, Christ)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다른 말로 하면 크리소스톰이란 별명은 ‘황금의 입’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입’이라 불렀어야 했던 것이다. 인간의 욕망이 그의 입을 황금으로 둔갑시킨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