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 텔레마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을 때,

신구약을 통틀어 하나님의 ‘뜻’에 가장 비중 있게 동원된 어휘는 아마 텔레마(θέλημα)일 것이다. 희랍어인 이상 신약성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셉투아진트에서 조차 하나님의 뜻 대부분을 이 어휘로 번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의 뜻은 ‘의지’, ‘선택’, ‘성향’, ‘욕망’, ‘기쁨…’ 다양하지만 신약성서에서는 ‘의지(뜻)’로만 거의 99% 사용되는 것 같다.

문제는 그 ‘의지’가 과거·현재·미래뿐 아니라,
좋은 일· 나쁜 일에 조차 종횡무진 사용되었다는 데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이들 성경 저자들이 ‘뜻’, ‘의지’를 기술할 때에는
저자 자신이나 그 일을 직접 당한 사람들의 ‘뜻’(θέλημα)과는 전혀 상관없이
기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렇다 보니 어디서는 사단의 텔레마인 것처럼 말했다가
어디서는 하나님의 텔레마인 것처럼 말했다가
주체가 오락가락하는 곳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혼동은 1%도 되지 않는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현대적 흑마술의 효시로 자리 잡았던
알리스터 크로울리(Aleister Crowley)라는 인물의
<텔레마 이론>을 들여다보면
그 ‘뜻’에 대한 곡해가 어떻게 사교/밀교로 빠져들게 했는지
그 궤적에 대한 학습이 가능하다.

텔레마를 100퍼센트 ‘자유의지’로 풀어나간 좋은 사례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성서 저자가 혼동하고 있다는 1%는
아마도 다윗의 인구조사 정도가 포함될 것인데,
이쪽에서는 악마의 텔레마라고 했다가
저쪽에서는 하나님의 텔레마라고 했다가.

그렇지만 성서는 단 1퍼센트도 하나님 주권을 다른 Ego에게 넘겨준 사실이 없다.

엄청난 비극을 당했을 때,
하나님의 의지요ㅡ라는 소릴 듣고 아멘할 당사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텔레마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텔레마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이다.

그런 것처럼,
어떤 사람의 설교 중에 튀어나온 텔레마ㅡ라는 말을 듣고
아멘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텔레마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그에겐 그 설교가 설교가 아니기 때문일 공산이 크다.

그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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