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잘못된 용어인가?

여행에 관련된 어휘 몇 개가 있다.
개인적이거나 공적인 어떤 일을 목적으로 현재 살고 있는 곳을 떠나 다른 지역을 돌아다니는 일을 우리가 광범위하게 여행(travel/trip)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다른 고장이나 나라에 가서 그곳의 풍경, 풍습, 문물 따위를 구경하는 것을 관광(tour)이라고 부른다. 그런가 하면 여정(journey)이라는 말도 있다. 그것은 그 여행의 과정이나 노정(일정)을 뜻하는 말이지만 좀 더 깊은 의미에서 예컨대, ‘내 인생의 여정’이라는 식으로 쓸 수도 있는 말이다. 인생을 하나의 어떤 ‘여정’이라고는 쓸 수 있지만 ‘관광’이라고는 전혀 쓰지 않는 쓰임새이다. 이와 같은 여행에 관한 일련의 어휘 가운데 가장 심원한 것은 아마 ‘순례’일 것이다. (기원이 될 만한 어떤 곳을) 돌아다니며(巡) 예(禮)를 행한다는 의미로서 종교적 쓰임새를 갖는 말이지만 그것은 어떤 주거의 양식을 띠는 말이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의 경우 그들은 자기 조상을 칭할 때 ‘영국인’이나 ‘유럽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순례자(pilgrim father)라고 부른다. 그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기원을 일종의 이주민으로 규정하는 까닭일 것이다. 따라서 순례란 이와 같이 하나의 사전적 범주에 머물러 어떤 종교 사찰이나 관광하는 여행으로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영적 기원과 뿌리를 찾는 신앙의 여정이요, 또 그것은 바로 우리의 영적 주거의 삶의 한 형식과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여행 방식 가운데 가장 심원한 의미를 갖는다 할 것이다.
아브라함은 성서에서 그 자신이 이미 순례자로 등장한다. 그에게 있어 성지는 하나님께서 ‘지시할 땅’이었다. 그리고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해내야 했던 모세에게 순례는 ‘율법의 준수’였다. 그래서 그의 성지는 목적지 가나안이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광야’ 그 자체로 보는 것이 맞다. 그런 점에서 다윗의 성지 또한 화려한 성전으로서 예루살렘이 아니라, 젊은 날 찬양의 결실로서 예루살렘이 바로 성지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두 말할 나위 없이 십자가 도상에서 그들의 성지와 순례를 완성하셨다. 아울러 바울을 포함한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순례와 성취를 전파하고 이해시키기 위해 그야말로 수많은 지역을 새롭게 돌아다녔다. 그들 역시 순례를 감행한 것이다. 그리고는 그 내용을 기록으로 남겼다. 우리는 이 장구한 일련의 그 기록물을 성서로 받아들고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예수님, 이 분들은 모두 성지에서 당대에 활동을 했고, 사도 바울과 같이 그것을 증거하고 전파하기 위해 애쓴 초대 교회 공동체들은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바로 그 기록물, 즉 성서에 적힌 그것을 읽고, 또 그것을 토대로 그들의 발자취를 밟음으로 그 성지를 증언해내는 증인(witness)의 역할이 바로 맡겨진 본분일 것이다. 상대적으로 성지에서 삶을 살아가는 현지인들은 성지에 살면서도 아무런 감흥이 없거나, 대개가 율법과 코란에만 빠져 있어 그 ‘순례’로서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한다. 그것은 그들의 어떤 잘못이라기보다는 그것을 과업으로 소유할 수 없는 운명경륜과 같은 것으로서(c.f. 롬 9), 그것은 우리와 같은 이방인들만이 부여받는 증인으로서 사역이자 사명인 까닭이다. 이와 같이 성지를 밟는 가장 큰 목적은 우리가 읽는 성경만이 진짜라는 사실체험에 있다. 여러 종교가 있고 그들 나름대로의 경전이 있지만, 그 기록은 대부분 교리적인 내용뿐이다. 천사가 나타나서 전해준 예언을 기록한 것뿐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러나 우리가 읽는 성경에는 플롯plot/이야기으로 되어 있고 우리는 문자와 현장을 통해서 그 이야기 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천사가 전해준 몰몬경을 의지하는 몰몬교처럼 비현실적 존재에 의한 비역사적 기록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삶을 지닌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 땅의 사람으로 사신 예수님, 그리고 그와 함께 활동했던 제자들의 숨결이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믿음의 실제 현장 방문은 평생의 사명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문제는 내가 성지순례를 한번도 못해봤다는 것이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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