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은 좋은데 형체가 갖춰지지 않았다

박경리가 예비 작가였을 때 김동리를 찾아가 글을 선보이자, 김동리는 그녀의 글이 “상은 좋은데 형체가 갖춰지지 않았다”고 평했다고 한다. ‘상’은 뭐고 ‘형체’는 뭐였을까. 6.25 난리 통에 남편과 아들 잃은 20대 과부인 박경리의 삶으로 치자면, ‘막막함’이 상(像)이었을 것이고, 형체(form)는 ‘욕망’ 내지는 ‘갈망’에 그쳤을 것이다. (아니면 그 반대였을 수도.)
형체가 없기 때문에 혼돈이라고 한다면 형체는 곧 질서이다. 배고픔이 이미지라면 생기(nefesh haya)는 형체이다. 슬픔이나 고통이 이미지라면 기억일 때 비로소 형체이다. 그런 것처럼 분노나 기쁨이 이미지라면 억제일 때 비로소 그 형체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글이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부존재, 형체가 없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 마음에서 질서가 가장 중요하다. 글이 없는 사람은 질서도 같이 없는 것이다. 석박사만 질서 있단 뜻이 아니다. 이름만 쓸 줄 알아도 질서는 잡힌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이름(nomen)이라는 말이 법(nomos)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이다.

* 박경리는 김동리의 충고를 받아들여 당초 시를 쓰려던 생각을 접고 소설로 전향하여 ‘토지’의 작가가 되었다.

상은 좋은데 형체가 갖춰지지 않았다”에 대한 1개의 생각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