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國 공산주의는 누가 몰아냈나

미합중국 34대 대통령에 당선된 아이젠하워 장군이 첫 임기를 시작한 해인 1953년 10월, 그의 정부는 사상이 불온한 1,456명에 대한 축출을 단행한다고 발표하였다. 민주당은 이에 즉각 반발했다.

“이는 정부의 조작이다. 트루먼 前 정부에 흠집내기 위한 조작이다.”

실은 1,456명이라는 수치에 아이젠하워도 갸우뚱 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상원의원 죠셉 매카시(Joseph Mccarthy)는 그렇지 않았다.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까지 여겼다. 매카시 공화당 의원은 열성적으로 이 일을 주도하였는데, 이에 희생된 대표적인 인사가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미국에 안겨준 과학자 오펜하이머(Robert Oppenheimer)였다.

독일계 유대인인 오펜하이머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루스벨트 대통령의 요청으로 맨해튼 프로젝트를 맡게 된다. 독일 나치가 원자폭탄을 개발해 세계를 재패할지 모른다는 첩보속에서 이를 선점하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3년 후 원자폭탄은 테스트에 성공하고 실전 투입되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투하되어 반경 3km를 초토화시키면서 약 14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는 7만 명이 사망했다.

이로써 오펜하이머는 인류에 불을 선사했다는 찬사와 함께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며 타임지 표지에도 등장했지만, 하루 아침에 변절자로 몰려 모든 공직에서 추방된 것이다. 그런 결과의 배후에는 오늘날과는 다른 미국과 소련의 첨예한 냉전의 시대가 있었는데, 1949년 원폭 개발에 성공한 소련이 바로 수소폭탄 개발에 돌입하자 미국이 큰 위기감에 봉착한 배경이 있었다. 왜냐하면 오펜하이머가 수소폭탄 개발을 요구하는 정부 지시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한방에 갔다. ‘소련과 내통한 역적으로….’

매카시는 뿐만 아니라, 방송 매체 VOA(Voice of America)나 ‘재외 미국 도서관’ 같은 해외 주재 선전기관에 대한 조사도 착수했다. 여기서 그들은 사상 색출의 일환으로 해당 도서관들에서 공산주의 성향을 가진 저자의 서적 일체를 몰수하기도 했다. 일부 도서관장들은 알아서 그런 서적들을 불살라버리기도 했다. 이와 같은 과잉된 행위에 대해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다트머드 대학을 방문한 자리에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학생 여러분은 그와 같이 서적을 불사르는 무리에 가담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증거들을 파괴함으로써 과실을 감추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무엇을 가르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그렇게 사람들을 끌고 들어갈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공산주의를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이게 말리는 말이야 부추기는 말이야?’)

이와 같은 매카시의 이념 색출 행위가 지속되자 사람들은 점점 피로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자 의회와 정부도 매카시에 대한 비판적 태도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그만 전세가 역전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당시 매카시 의원은 고위급 군의관을 조사하고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육군을 자극하는 모욕적 발언을 하고 만 것이다. 이 일로 그는 조사를 하는 처지에서 도리어 조사를 받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기세는 눌리지 않았다. 당시 군측 변호인단에는 보스턴의 거물 변호사 ‘웰치’(Joseph N. Welch)가 있었는데, 매카시는 의원들 앞에서 그를 이렇게 비난했다.

“웰치는 오래 전부터 상당히 의심스러운 ‘변호사 협동조합’(우리의 민변 같은?) 소속의 젊은 변호사인 피셔를 고용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웰치는 이렇게 반박했다.

“피셔는 매우 뛰어난 재능을 가진 충직한 젊은이입니다. 의원 여러분! 우리나라의 이와 같은 수많은 젊은 변호사에 대한 이 같은 살상 행위는 더 이상은 지속되어선 안 됩니다. 매카시는 그야말로 암살자로 변해 있습니다… 매카시의 이러한 암살 행위는 마땅히 그 죄값을 물어야 합니다.”

거물급 변호사 웰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작된 박수가 말이 끝난 후에도 계속되었다. 매카시는 그렇게 씁쓸한 퇴장을 한 것이다. 상원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것이 1954년 12월이었고, 그 이후 줄곧 술병을 입에 달고 살다 3년 뒤에 간염으로 사망한다.

이렇게 하여 이른바 매카시즘(McCarthyism)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반공을 정략적으로 활용하는 정치 활동이나 여론 몰이 행위를 일컫는 전용어가 된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의 공산주의는 급진적 자유주의 색채를 띠고서 동성애/인종 인권 등을 내세우는 집단 전체주의가 표면에 드러나 있을 뿐 실질적인 공산주의 활동은 미미한 실정이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공산주의는 누가 몰아낸 것일까?

미국인들은 본질상 성숙하여서, 애시당초 공산주의란 발도 못 붙일 그런 수준의 민도여서, 지금의 자유를 누리는 건가? 그렇다면 매카시는 괜한 짓을 한 것이네.

우리나라에서도 어떤 정치인은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디 있어요” 라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어떤 정치인은 자신이 젊어서 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공산당선언)을 몰래 읽었던 일을 회상하며 자기가 저술한 책에다 “ㅎㅎ그땐 그게 대체 뭐이라고…ㅎ” 적어놓기도 하지만, 미국 같이 자유민주주의의 힘으로 모든 이념을 극복한 환경속에서 매카시를 돌아보는 것과, 그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맞고 있는 중우정(ὀχλοκρατία) 상황속에서 다시 돌아보는 매카시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참고로 당시 오펜하이머는 과거 열렬한 공산주의자였던 애인이 있었으며, 부인 캐서린 해리슨과 동생 프랭크 오펜하이머, 친구가 공산주의자라는 점이 속속 드러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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