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맥베스’(2017), 여성에게 찬탈한 권력

1. 원작과 재해석 작품들

“‘레이디 맥베스’는 과도한 권력욕이 가져오는 종말을 사유하는 작품입니다. 굳이 따로 강조하지 않아도 ‘현 시국’과 연결되는 부분이 많지요.”

이 말은 지난 해 12월, 창극 ‘레이디 맥베스’를 연출한 한태숙씨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러면서 인간의 탐욕을 다룬 작품의 주제의식이 ‘현재의 세태’와 맞닿아 있다고도 말했다. 기자는 이것이 ‘최순실 게이트’의 시국을 연상시킨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2016.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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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이디 맥베스>(2017)는 이 창극의 원작이기도 한 소설 Lady Macbeth of Mtsensk(무첸스크군[郡]의 맥베스 부인)을 19세기 영국 배경으로 재해석해 만든 영화다. 러시아의 문호 니콜라이 레스코프(Лесков, Ииколай)가 쓴 이 소설 제목에서 ‘무첸스크’라는 지명이 우리나라에서는 낯설기 때문에 소담출판사의 문고판(bestseller minibook 20)으로 출간될 당시에는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으로 번역된 바 있다.

원작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은 그 외에도 뮤지컬 등 여러 버전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레이디 맥베스’가 진정한 명성을 날리게 된 것은 러시아 작곡가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가 오페라로 작곡하면서이다. 1934년에 초연된 이 작품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성적 묘사로 비판과 찬사 속에서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부르주아지 색채가 강하다는 이유로 러시아에서 상연이 금지된 이력이 있다.

2. 레이디가 맥베스인가, 맥베스의 레이디인가

‘맥베스’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를 이르는 말이다. 그렇다면 ‘레이디 맥베스’라는 명칭은 ‘어떤 여자가 마치 맥베스 같다’(A Lady as Macbeth)는 뜻인가, 아니면 ‘어떤 여자가 맥베스의 여인(Macbeth’s wife)’이라는 소리인가? 영화 <레이디 맥베스>를 보면 레이디는 이미 완전히 독립적인 인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서 ‘레이디 맥베스’는 ‘맥베스의 아내’를 이르는 말이다.

이 분간이 중요한 이유는 그녀가 만약 ‘레이디 맥베스’(여자 맥베스)라면 ‘여성의 권력화’가 주제겠지만, 그게 아닌 ‘맥베스의 레이디’라면 ‘여성화 된 남성의 권력’ 즉 ‘권력의 여성화’로 주제가 바뀌기 때문이다.

‘현재의 사태’를 연출했다는 저 창극은 ‘여성의 권력화’를 다루었다는 것인가, 아니면 ‘권력의 여성화’를 다루었다는 것인가? 참고로 셰익스피어의 원작 「맥베스」에서의 ‘레이디 맥베스’는 분명한 ‘권력의 여성화’를 묘사한다. 왜냐하면, 맥베스의 아내가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Vivien Leigh as Lady Macbeth at Stratford upon Avon 1955.

“…그렇다면 그런 중대사를 당신으로 하여금 저에게 제안하게 했던 것은 무슨 짐승이었던가요? 그런 포부를 피력하셨던 바로 그 때야 말로 당신께서는 대장부이셨습니다. 그러하오니, 그 전 보다도 더 대담한 모습을 보이시면 당신께서는 그만큼 더 대장부답게 되실 것이옵니다. 그 당시에는 시간도, 장소도 적당치 못하였지만, 그래도 그 두 가지 조건을 마련해 보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두 조건이 저절로 이루어지고 보니, 그 절호의 기회가 당신을 나약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저는 젖을 빨려본 적이 있어서 제 젖을 빨고 있는 어린 것이 얼마나 귀여운지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제가 당신처럼 맹세를 했다면 그 어린 것이 저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방실 방실 웃고 있다고 해도, 이빨도 나지 않은 그 말랑말랑한 잇몸에서 내 젖꼭지를 빼내고, 메어쳐서 그 머리를 부셔버렸을 것이옵니다.”
[맥베스, 제6장 인버네스. 맥베스의 성 앞에서 맥베스 아내의 말]

3. 「맥베스」 에서 「레이디 맥베스」로

스코틀랜드의 장군 맥베스와 뱅코는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던 중에 마녀 세 명을 만난다. 마녀들은 맥베스에게는 “코다의 영주, 미래의 왕”이라는 예언을 하고, 뱅코에게는 “자손이 왕이 되실 분”이라는 예언을 한다. 무슨 망발이냐는 반응을 보이던 맥베스는 막상 첫 예언이 맞아떨어지자(왕이 개선장군인 그를 보자마자 영주로 임명한 것) 예언을 직접 손수 실행에 옮겨나간다. 왕을 암살한 것이다. 이때 맥베스의 아내는 미묘한 양가감정 속에서 주저하는 남편 맥베스를 충동하여 거사를 치를 수 있도록 도모한다. 자기네 성에 국왕 던컨이 방문한 것을 적기로 잡아, 왕을 살해하고서 도망친 왕자에게 누명을 씌운 뒤 남편으로 하여금 마침내 왕위에 오르게 한 것이다. 예언이 실현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살인은 살인이 살인을 낳았다. 모든 비밀을 아는 뱅코를 살해하고, 귀족 맥더프가 왕자 맬컴 편에 붙어 도망치자 그의 처자식을 살해한다. 이 같은 학살극 속에 맥베스의 아내는 죄책감으로 자살하고 맥베스는 망령에 시달리다가 다시 마녀들을 찾아간다. 새로운 예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에 마녀들은 여자에게서 태어 난 자는 결코 맥베스를 쓰러뜨리지 못할 것이라는 예언을 일러준다. 여자에게서 태어나지 않은 자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최후의 격전에서 맥더프가 바로 여자에게서 난 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절망에 빠진다. 맥더프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게 아니라, 찢어진 어머니 태에서 꺼낸 자였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맥베스는 맥더프 손에 죽고, 왕위는 다시 맬컴 왕자에게로 돌아간다. 여기까지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줄거리이다.

이와 같이 셰익스피어의 원작 「맥베스」를 떠올리면서 보면 대체 <레이디 맥베스>가 어디를 봐서 ‘(여자) 맥베스라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든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즉 가장 ‘맥베스’다운 부분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 누락된 부분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나이 많은 부자와 결혼한 빈농의 딸 카타리나는 기대와는 달리 집에만 갇혀지내는 신세가 된다. 24살 밖에 안 된 카타리나는 무심한 남편 보리스의 억압뿐 아니라 시부(媤父) 지노비의 타박에 가중된 고통에 시달린다. 그러던 카타리나는 하인 세르게이와 사랑에 빠지고, 욕망이 깊어져 급기야 사랑에 방해가 되는 시부와 남편을 차례로 제거한다. 남편은 독버섯으로 죽이고 시부 지노비는 세르게이와 목 졸라 죽인 것이다. 간섭할 사람이 없어진 카타리나는 하인들의 눈총에 아랑곳하지도 않고 세르게이와 사랑을 나누지만 얼마 안 있어 죽은 남편의 다른 상속자인 어린 조카가 등장하자 그 조카마저 살해한다. 결국 둘은 결혼 직전 경찰에 체포되어 시베리아 감옥으로 향하는 행렬에 끌려간다. 그 행군의 와중에 세르게이가 소네트카라는 다른 미녀와 바람을 피우자 카타리나는 그녀와 강으로 뛰어들어 목숨을 끊는다. 여기까지가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의 줄거리다.

여성의 욕망은 창조적으로 부각되었지만, 「맥베스」다운 맥베스 고유의 욕망이 보전되기 위해서는 결정적으로 이 한가지, 곧 ‘예언’ 플롯이 빠지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여기서는 빠져있는 것이다. 맥베스 고유의 욕망이란 ‘예언’을 전적인 타자의 계시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가적인 충동의 동기로 활용하는 교활함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맥베스에게 내려진 신탁(oracle)은 예언이 아닌 국왕 암살의 정당성이 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은 ‘여성의 권력화’에 대한 기호가 되었다. 여성의 욕망 곧, 여성성에 관한 극한의 자유만이 부각된 것이다.

이 예언 플롯이 창조적으로 복원된 것은 바로 영화 <레이디 맥베스>에서이다. 이 영화는 영국 출신 감독(William Oldroyd)에 의해, 영국을 배경으로 재해석된 영화인데, 공교롭게도 셰익스피어 원작이 러시아에서 다시 영국 작품으로 되돌아오면서 맥베스 고유의 플롯이 되살아 난 것이다. 창조적인 기호를 통해서.

이를 테면, 캐서린(카타리나)의 남편 보리스는 침실에서 아내에게 이렇게만 말할 뿐이다.

“Don’t smile.” (웃지마.)
“Take off your dress.” (벗어)
“Face the wall.” (벽 보고 서.)

달콤한 첫날밤은커녕 남편은 밤마다 저런 명령만 반복한다. 침실에서 말 할 수 있는 권리는 남성에게만 있는 것이다. 결혼이후 단 한 번도 아내를 안아준 적이 없다. 심지어 남편은 벗은 아내의 뒷모습만 감상하다가 잠들지언정 아내의 몸엔 손도 대지 않는다. 성기능 장애가 있는 것일까? 영화는 그런 상상을 일축한다. 남편이 살해당한 후,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서 낳은 아이가 상속자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침실에서의 저런 기이한 권위 행태는 ‘쾌락도 남성만의 권리’라는 사실을 반영한다.

영화 <레이디 맥베스>도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과 마찬가지로 예언의 플롯은 없지만 이 고압적인 권위의 언어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의 예언 플롯을 대체한다. 맥베스의 욕망이 예언에 잠식당해 자신의 행동이 지배 받았던 것이라면, <레이디 맥베스>는 어느새 저 명령의 언어에 잠식당했기 때문이다. 하인 세바스찬을 처음 대면했을 때, 캐서린은 자기도 모르게 세바스찬을 이런 언어로 다루고 있었다.

“Don’t smile.” (웃지마.)
“Face the wall.” (벽 보고 서.)

비로소 남성을 다루는 여성이 된 것이다. 이는 맥베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예언을 장악해 스스로 예언을 성취해 내는 것과 일반이다. 따라서 <레이디 맥베스>는 「맥베스」에 담겨있던 ‘여성화 된 남성의 권력’ 즉 ‘권력의 여성화’를 창조적인 기호로 복원한 셈이다.

4. ‘여성화 된 남성의 권력’

이와 같은 시대적 여성의 욕망 곧, 여성성의 자유가 부각된 플롯을 대할 때면 우리는 대개 남성성과 여성성의 대립 즉, 부권 사회와 모권 사회 간의 대립으로 보기 십상이지만 권력 자체는 여성화를 띤다.

욕망하는 여성만이 권력화 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탐하는 모든 실력자들이 여성화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앞서 창극 <레이디 맥베스>를 취재했던 기사에서, 지난해 시점이었던 ‘현재의 세태’를 여성들이 욕망했던 ‘여성의 권력화’로 특정하는 것은 넌센스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권력의 쟁취와 찬탈은 ‘여성화 된 남성의 권력’ 양상을 띠기 때문이다. 「맥베스」에서는 ‘레이디 맥베스’ 곧 맥베스의 아내가 그 예언을 정당성으로 둔갑시키는 일을 담당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통계가 예언을 대신하고 그 여성의 일 즉, 예언을 정당성으로 둔갑시키는 일은 주로 언론이감당하고 있다.

하지만 말이 났으니까 말이지,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 치고 찢어진 어머니 태에서 꺼내지지 않은 자가 어디있단 말인가.

에필로그:

역사적 캐서린은 이 영화 주인공과 이름이 같다. 스페인 출신의 그녀는 영국으로 시집을 왔는데 결혼식도 올리기 전에 신랑과 함께 병이 들어버렸다. 신랑은 죽고 캐서린만 살아남았다. 시아버지 헨리 7세는 죽은 아들의 동생을 새신랑으로 주기로 약속했다. 실은 스페인과의 정략결혼이었기 때문에 아예 파혼을 유보했던 것일 뿐 실제로 둘째 아들을 줄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아버지가 죽는 바람에 처음 시집 온지 8년 만에 20살짜리 시동생과 결혼할 수 있었다. 비로소 정실 왕비가 된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첫딸 메리를 낳은 후 폐경기를 맞은 캐서린을 버리고 하녀와 불륜에 빠졌다. 남편 헨리 8세는 내친김에 아예 결혼을 무효화 시키고 싶어 했다. 이유는 형과 결혼한 적이 있었고, 처녀도 아니고… 당시 결혼의 무효화는 교황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교황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열 받아 새로 차린 게 ‘성공회’였다.

참고로 찬송가 21장 ‘다 찬양하여라ㅡ’ 결혼 축복성가와 함께 시작되는 이 영화에서 기독교 사제는 캐서린이 시부와 남편 없는 사이 바람을 피우고 돌아다닐 때 감시자 역할을 한다. 캐서린이 돌아다니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심방을 와서는 돌아다닐 것을 자제하라 권면하기 때문이다. 남편 역시 캐서린을 다그칠 때, “집에서 성경책이나 읽으라”고 명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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