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이 작업하는 장면

1980년대 중반의 미국 문화에 대해 논할 때 대부분 뭔가 혁신적인 소비재 제품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한 시대의 진정한 상징은 아래 영상에서 보는 것처럼 세계적 비주얼 아티스트와 락 스타가 함께 할 수 있었던 역사적 순간이 아니겠나 생각한다.

애플의 제품들이 최근들어 부쩍 시들해졌는데, 아마도 애플사가 저와 비슷한 상황을 통해서 iPod, iPad, iMac, iPhone에 쏟아부었던 우리의 열정을 다시 살려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과연 이제 보게 될 앤디 워홀(Andy Warhol)과 데비 해리(Debbie Harry)와 같은 저런 중량감를 재현해 낼 수 있을까?

Andy Warhol Digitally Paints Debbie Harry with the Amiga 1000 Computer (1985)

두 사람은 이미 그 시절(1985년)에 출시된 코모도어(Commodore)사의 컴퓨터 아미가(Amiga)를 통해서 그 새로운 시대를 지배할 일종의 ‘중력’을 시전하고 있다. 이 은발의 남성(앤디 워홀)은 금발의 여성 초상화를 ‘아미가’ 컴퓨터에서 그려 냄으로써 개인용 컴퓨터가 구현할 그 탁월한 그래픽 파워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모니터의 푸른 색을 띤 면에다가 빨간색 페인트 통을 몇 개 클릭하고는 거기에 노란색 페인트 통을 다시 몇 개 클릭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언제나 감탄하는, 오늘날 우리가 큰 충격을 받고 있는, 바로 그 워홀리안 화풍(Warholian)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그 충격적이고 천재적인 예술은 단돈 1295달러(1985년 기준)면 가능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당시 아미가 가격: 약 1100-1200달러]
조영남 선생에게 머라할 게 아니다.

이 아미가라는 제품과 워홀을 보는 것은, 한 인간이 자신의 기능(재능)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떤 기능을 가진 기계를 만나는 것을 보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그가 컴퓨터를 사용하는 방식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에 대해 가장 훌륭하다고 느끼거나 혹은 분노를 느끼는 그 자체 그대로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위 영상물에 달린 댓글처럼 “그가하는 일이라곤 머리를 클릭하고 모두 채우기를 선택하면, 노란색으로 바뀌는 것, 그게 끝입니다.” 인 것이다.

그 외의 댓글, “그녀의 얼굴은 파랗다.” 그 외의 댓글, “나 자신을 포함 누구나 할 수있는 예술로서 유명해진 앤디 워홀은 확실히 천재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인 것이다. 이것이 팝 아트다!

자료 출처: 오픈컬처.

 

슈즈트리는 왜 쓰레기로 보이나

슈즈트리(Shoes Tree) @황지해 作. 17M x 100M

‘슈즈트리’는 서울로7017 개장 기념 한시적으로 기획된 설치 예술이다. 최고 높이 17M에 길이는 약 100M에 달한다고 한다.

외부에 공개되면서 호불호가 엇갈리는 평이다. 아니, 악평 일색이다.

그러는 가운데 진중권 교수가 “예술은 왜 꼭 예뻐야 한다고 생각하냐, 흉물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말해 화제다. (참조: 17.05.26 오마이뉴스 기사)

그러면서 그는 “정크아트(Junk Art)는 원래 쓰레기를 가지고 뭘 만들어내는 예술”이라며 “그 전체적인 의미를 생각해 봐야 하는데 신발 하나하나를 보고 하는 수준의 얘기들을 받아적어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고 했는데, 어이가 없어가지고 정크아트가 어떤 것인지 몇 점 소개할까 한다.

예술인가? 쓰레기인가? 예술과 쓰레기의 차이는 어떤 것인가?

정크아트란 말 그대로 Junk 즉 ‘쓸모없는 물건’, ‘폐물’, ‘쓰레기’로서 일상에서 발생한 잡동사니들을 오브제로 활용하는 미술을 말한다.

사실은 피카소의 큐비즘, 브라크의 파피에 콜레, 다다와 같은 콜라주에 기원이 있지만 정크아트의 진정한 의미는 2차세계대전 이후의 잔해나 현대 문명이 싸질러 놓은 폐기물을 재생한다는 의미로서 서구에서 등장했다.

널리 알려진 정크아트 작가로는 부서진 자동차 부품을 이용했던 챔벌레인(John Chamberlain),

‘Karankawas Falls’ (c) John Chamberlain

폐기된 고철 금속이나 나무 등으로 거대한 구조물을 만든 수베로(Mark di Suvero),

(c) Mark di Suvero

폐가의 목재와 가구로 거대한 부조 작품을 제작한 네벨슨(Louis Nevelson),

Mrs. N’s Palace, 1964–1977. Painted wood, mirror. From the collection of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포크, 나이프, 수저 같은 일상의 금속을 압축시켜 놓는 세자르(César Baldaccini)

(c) Cesar Baldaccini (1921-1998)

그 외에도 자동차 폐차 부속으로 쌓아올리는 아르망(Arman), 아르망의 작품은 충청남도 천안에도 한 점이 제작되어 있다. 아래와 같이 탑으로 쌓아올린 것이 바로 그 작품이다.

현재 백화점이 들어선 저곳은 본래 오래전부터 고속버스 터미널이 위치해 있는 곳인데, 저 작품에 들어간 오브제는 모두 폐차 된 버스들에서 추출한 바퀴의 축들이다.

고속버스를 타고 다니던 수많은 군상들의 애환이 이 바퀴 축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 이 작업의 모티프다.

이 작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는 또 한 점의 정크아트가 있다. 아르망 작품은 아니다. 처음에 언뜻 봤을 때는 오리엔탈 느낌의 금속 그릇들이라 아티스트가 우리나라 사람인 줄 알았다.

위에서 열거했던 서구 작품이 대체로 아키텍처럴 뉘앙스의 경직된 선들 일색이었던 것에 비하면 굴곡의 선들로 이루어진 표현이 대조적이다. 이 작품은 인도 출신 작가의 작품이다. 수보드 굽타(Subodh Gupta)라는 아티스트다.

서구 작가들은 직선을 통해서 새로움의 변형을 꾀하는데, 그야말로 폐품 덩어리로 자연스런 굴곡을 잘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서 완성도 있는 새로운 형태를 창조해 내고 있어 인상적이다.

그 외에도 파올로치(Eduardo Paolozzi), 팅겔리(Jean Tinguely), 스탄키에비치(Richard Stankiewicz) 등은 모두 정크아트의 거장들이다.

자 그러면 우리의 슈즈트리로 다시 돌아가서,

작가에게 조형감각이 결여되어 있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데,

아, 이제서야 왜 저런 게 나왔는지 알것 같다.

아마도 이 설치물의 하이라이트는 저 동상인 걸로 보인다. 독립운동가 강우규 상이라고 한다. 아마도 널려진 신발들은 일제 침략에 짓밟힌 선조들을 표현하려고 한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신발 무더기를 저기까지 끌고 가려니…이게 무슨 조형물도 아니고 익스테리어도 아니고… 저렇게 되어버린 한 원인이다. (일반 언론에서는 요 부위가 잘 스크랩되지를 않고 있다. 왤까ㅡ)

▲ 서울역 광장에 있는 왈우 강우규 의사 동상

강우규라는 이름은 생소하다. 우리에게 그동안 왜 잘 알려지지 않았을까? 뒤늦은 2011년에 세워진 이 동상의 주인공에 관한 다음 인용문을 읽어볼 만 하다.

6명은 대체로 소기의 목적(조선총독 살해 등)을 달성하지 못했다. 일부의 경우, 민간성격 시설(은행, 회사 등)을 향해 무차별 폭탄을 투척한 경우로서, 불발이 아니었다면 무고한 민간 피해가 발생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실제, ‘김상옥'(의열단)의 경우, 민간 피해를 발생시켰고, 서울역 폭탄 ‘강우규’의 경우도, 일반군중 피해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김시현'(의열단)의 경우, 민간시설(은행, 신문사, 전력회사)까지 폭탄 공격을 하고자 다량의 폭탄 반입을 시도했던 상황이다.
결국 이들 사례를 종합하면, 이들의 행동들은 사실상 급진좌파들의 전통적 수법(사회혼란 유도)과 거의 다를 바 없다. 목적달성을 위해 무고한 민간의 희생을 가볍게 여기는 일부 사례를 통해서는 급진좌파들의 전형적 수법(수단방법 안가리기)까지 엿볼 수 있다.
‘의열단’의 성격은, 급진좌파 사회주의다. 2016.9.25일 국내언론(세계일보)는 <영화 ‘밀정’ 본 당신, 서울에서 항일의거 흔적을 찾아보자>라는 기사를 통해, ‘의열단’의 행동을 치켜세운 바 있다. ‘김익상’, ‘김상옥’, ‘나석주’, ‘김시현’ 의열단 소속외에, 의열단 소속 여부가 불분명한 ‘강우규’, ‘송학선’ 등 6명을 주로 소개했다.
출처: chogabje.com

어떤 독립투사는 일찍부터 우리에게 알려져 있고, 어떤 독립투사는 뒤늦게 알려지는 데에는 이념적 이유가 따로 있는지 언급하기 섣부르지만, 어쨌든 공교롭게도 이 작품은 이 동상으로 연결짓고자 무리를 하는 바람에 더욱 당혹스런 조형물이 되고 말았다.

예술 작품에 이념이 산입되면 예술로서 의도는 틀어지기 마련이다.

이상 이 작품이 쓰레기처럼 보이는 실질적인 이유는 다음 3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1. 낮은 예산 책정
비용이 총 1억3000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비싸다고 하는데, 이 가격은 작가로 하여금 오브제를 신발로 택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값싸고 지저분한 플라스틱 신발.

2. 신발의 정체성
‘슈즈트리’ 라고 해놓고 대체 웬 독립투사인지.
그럼 죄다 고무신으로 하든지.

3. 작가의 조형미 결여
그리고 이 작품을 보고 작가의 조형감각이 참 결여되었다 생각했는데, 프로필을 보고 이해 하게 되었다. 다음은 정원디자이너 및 환경미술가로 프로필 기재된 작가 황지해의 대표작이다.

그녀는 해우소(변소)를 아름답게 꾸밈으로써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던 것이다….

진중권 교수가 “예술은 왜 꼭 예뻐야 한다고 생각하냐, 흉물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말하였으나, 예술은 아름다운 것을 흉물스럽게 가꾸는 게 아니라, 흉물스러운 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바로 예술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저 변소처럼.

55개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 프레임의 환상적인 몽타주

우리가 영화의 가장 첫 번째와 마지막 장면들만 추려서 본다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여기 이 55개 필름의 개폐 쇼트를 나란히 재생해보았다.
오프닝 쇼트 중에서 일부는 최종적인 쇼트와 현저히 유사하지만, 다른 쇼트들은 완전히 다르다. 다양한 테마들을 전달할 목적으로 구현되고 있다.
일부는 진행 과정을 보여주고, 일부는 감소됨을 보여주고, 일부는 영상을 시작하고 끝내는 데 사용된 인상깊은 이미지들이다.
―제작: Jacob T. Swinney

이글 제일 아래에는 이 슈퍼 몽타주에 사용된 필름 목록을 타임 테이블과 함께 볼 수 있다.
오래 전 발표된 작품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로부터 최근 작품으로는 버드맨(Birdman)도 있다.

이 작업을 처음 창안한 스위니(Jacob T. Swinney)가 처음 이 클립들에 관한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은 영화관에서 영화 Gone Girl(2014)을 보면서였다고 한다. 그는 매우 비슷하거나, 혹은 매우 대조적인 개폐 쇼트를 지닌 영화를 선별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만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를 보여주는 필름들을 포함시키기 위해 조금 더 확장하는 방식으로 편집하기로 하고, 기본적으로 이들 개폐 쇼트가 인상적이면 그것을 포함 시켜서 진행했다고 한다.

The Tree of Life 00:00
The Master 00:09
Brokeback Mountain 00:15
No Country for Old Men 00:23
Her 00:27
Blue Valentine 00:30
Birdman 00:34
Black Swan 00:41
Gone Girl 00:47
Kill Bill Vol. 2 00:53
Punch-Drunk Love 00:59
Silver Linings Playbook 01:06
Taxi Driver 01:11
Shutter Island 01:20
Children of Men 01:27
We Need to Talk About Kevin 01:33
Funny Games (2007) 01:41
Fight Club 01:47
12 Years a Slave 01:54
There Will be Blood 01:59
The Godfather Part II 02:05
Shame 02:10
Never Let Me Go 02:17
The Road 02:21
Hunger 02:27
Raging Bull 02:31
Cabaret 02:36
Before Sunrise 02:42
Nebraska 02:47
Frank 02:54
Cast Away 03:01
Somewhere 03:06
Melancholia 03:11
Morvern Callar 03:18
Take this Waltz 03:21
Buried 03:25
Lord of War 03:32
Cape Fear 03:38
12 Monkeys 03:45
The World According to Garp 03:50
Saving Private Ryan 03:57
Poetry 04:02
Solaris (1972) 04:05
Dr. Strangelove 04:11
The Astronaut Farmer 04:16
The Piano 04:21
Inception 04:26
Boyhood 04:31
Whiplash 04:37
Cloud Atlas 04:43
Under the Skin 04:47
2001: A Space Odyssey 04:51
Gravity 04:57
The Searchers 05:03
The Usual Suspects 05:23

via Kickstarter

꿈에 스승을 가르치다

꿈에서 내가 강의를 하는데 수강자 가운데 스승이었던 분이 앉아 있었다.
그는 내가 이쪽 학문에 처음 입문했을 당시 가장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선생이었다.
그가 내 강의를 들으려고 와 앉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뭔가에 미숙했다.
뭐에 미숙했지? 그 미숙한 뭔가에 대해 그와 의견을 교환 했는데, 그게 뭔지 기억나지를 않는다…

“나가라”, “나가지 말라”

우리는 대개 “나가라, 떠나라”는 음성과 “나가지 말라, 떠나지 말라”는 음성, 두 종류의 전혀 다른 음성을 동시에 듣게 된다. 이 양자 가운데서 선택을 주저하는 이유는 “의지”와 “예정”이라는 상반된 교리(dogma) 때문인데, 그러나 실상은 이 상반된 삶의 양상인 “의지”와 “예정”, 양자 모두를 사용하며 살아가게 마련이다. (달리 도리가 없기 때문에.)
다만 그 결국에 가서 믿음(πίστις)이었다고 회고하는 사람과 어떤 확신(πεποίθησιν)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으로 다시금 갈리게 되는데, 여기서 비로소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과 확신이라는 두 말은 단일한 어근을 갖고 있지만 둘은 전혀 다른 세계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믿음’과 ‘확신’이라는.
비트켄쉬타인은 말하기를 “언어가 세계를 반영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언어와 세계가 연결되어 있는 까닭”이라고 하였다.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두 관문, 믿음과 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