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의 ‘임시 정부’는 왜 ‘임시’로 끝났나

‘임시 정부’ Vs. ‘임시정부’ 

‘임시’라는 말은 명확한 기한을 정하지 않은 잠시 동안의 상태를 이르는 명사이다. ‘정부’라는 단어와 함께 쓸 때는 둘 다 명사이므로 띄어쓰기를 해야 하나, 그 임시 정부가 어떤 고유성을 띨 때에 한하여 그것은 ‘임시정부’라 붙여 써도 마땅할 것이다. 이 글은 이 문법적 고려를 가해서 쓴 글이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3·1 독립선언에 기초하여 설립된 조직이다. 이 기구는 1919년 4월 13일 상하이에서 처음 설립된 단체로서 3·1운동이 개시되고서 1개월 뒤에 결성한 단체이다. 3·1운동의 여세로 5개월 뒤에는 각지에서 활동하는 단체들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경성(京城)에서 벌어진 3·1운동이 없었으면 단지 ‘임시 정부’로 머물렀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임시 정부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는 소리이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라는 명칭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고안한 것은 신석우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고종(高宗)이 지은 ‘대한제국’이라는 이름과 연관성을 갖는 문제에 대해 여운형이 망해먹은 ‘대한’이란 이름을 왜 쓰느냐고 이의를 걸었으나 ‘망한 이름으로 흥해보자’고 밀어부쳐 ‘대한민국’이 되었다 한다.

임시 정부와 이승만

바로 이 임시 정부의 초대 대통령이 이승만이다.

1919년 9월 상하이에서 임시 정부들이 통합될 때 그는 부재한 상태에서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이는 그의 외교력, 즉 우드로 윌슨과의 친분을 고려해 추대되었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그가 이미 4월에 한성 임시 정부의 총재로 추대받자 워싱턴에 임시정부 총재 집무실을 열어놓고 대외적으로 (통합) 대통령 행세를 해서 정치적으로 유리한 고지였다는 견해도 있다. 어쨌든 그를 뽑은 것은 상하이 임시 의정원이었는데, 이승만에게 상하이로 와줄 것을 청원하는 청원서를 그가 거주하고 있는 워싱턴에 발송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5년 뒤인 1925년에 그는 임시 정부 대통령직에서 탄핵당한다. 발단은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이라는 해외 기구에 우리나라 통치를 위임했다는 사유였다. 당시 독립운동가들로부터 이완용보다 더 한 자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결국 면직당했다. 하지만 반(反) 이승만 전선은 ‘위임통치’라는 단어만 전파했지, 그 국제연맹이 우드로 윌슨이 만든 기구라는 사실은 누락한다.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은 1918년 1월 8일 미국 국회에서 1차 세계대전 이후 제국주의의 팽창을 막고 세계평화와 새로운 질서를 제시하는 14개조를 연설한 일이 있는데, 이 14개조항이란 우리나라 같은 약소국에는 더 없이 중요한 독트린이었다. 그 요지는 제국 간의 비밀조약 파기, 항해의 자유 보장, 국가들 간의 관세장벽 해제, 군축, 그리고 무엇보다 ‘민족자결과 자치권’이라는 대목이었다. 바로 이 ‘민족자결주의’가 우리나라 같이 식민 치하에 놓인 입장에서는 일종의 ‘복음’과도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윌슨 대통령은 연합국과 대결하고 있던 독일, 오스트리아, 터키에 속한 식민지에만 적용하려던 것이었으나 미국에 거점을 둔 이승만 등 세계 정세 파악에 밝았던 지도자들은 이 원칙을 바로 우리나라에까지 강력하게 적용시키는 외교의 노력을 펼쳤던 것이다. 게다가 우드로 윌슨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이승만의 스승이었다. 위탁통치인가 외교인가, 여전히 다툼의 여지가 있다.

3·1운동 정신의 피로감과 새로운 독립 전선

3·1운동의 흥분이 천년만년 가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국내든 국외든 피로감에 젖어들기 마련이었는데, 국내에서는 일제의 박해 내지는 친화 정책으로 이탈자가 속출하고 있었고, 해외에서는 생활형 독립운동가들의 끊임없는 파벌 싸움으로 평소 애국적인 동포들도 신물을 내고 있었던 터이다.  이러한 피로감 속에서 기회가 찾아 왔다.  일본이 미국 본토를 때린 것이다. 1941년 12월 7일 아침, 미국령 하와이 진주만이 일본에게서 기습 공습을 받았다. 미국이 어떤 나라로부터 본토가 침공당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임시 정부는 3일 후인 1941년 12월 10일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를 했다. (뭔 힘이 있다고? 라고 말하지 말라) 미국이 대대적인 반격에 나설 것임을 예상해서였을 것이다. 이때 애국심 있는 재미 한인들에게도 새로운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재미 한인 단체들은 앞뒤를 다퉈 미국에 충성을 다짐하는 선언을 발표했다. 그것은 구호에 그친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활동으로 나타났는데 이른바 ‘US War Bond’ 즉, ‘미국 전쟁공채’를 구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재미 한인은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무려 50만 달러를 구매하였다고 한다. 1941년대의 50만 달러이다.

이 액수는 한인 개인당 약 2천불에서 3천불에 달하는 액수였는데, 이는 1900년대 초 노동이민으로 이주해 와서 정착하기까지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된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이기도 했다. 오늘날은 ‘친미’라는 용어로 이러한 친화적 동력을 격하시키지만 미주 한인의 이러한 친화력은 1900년대 같은 이주 동양인이었던 일본인과는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처신이었다. 일본인은 한인보다 좀더 일찍 이주한 종족이었는데 이들은 기독교로 쉽게 개종한 한인과는 달리 자국의 불교 내지는 신도(神道/ 신토)를 좀처럼 버리지 않았다. 그것은 자기 2세들의 미국 동화작용까지 방해하는 사회 행태로 나타났는데, 미국 사회에 동화력을 갖춘 한인들이 조국에 대한 애국심을 간직하고 있는 양상과는 달리 당시의 일본인의 조국에 대한 열정은 무조건적 충성심에 기인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이것이 두 인종에 대한 미국 사회의 처후를 가른 것이다.

당시의 일본인은 한인보다 지위가 더 좋았음에도 전쟁이 터지자 미국 사회는 일본군이 미국 서해안에 상륙한다면 미국 거주 일본인들은 모조리 일본군을 도울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여론은 미국 대통령으로 하여금 ‘행정명령 9066’을 발동시키게 했다. 이 행정명령이 뭐냐하면, 미국 서부지역의 약 11만 명에 달하는 일본인을 서해안에서 떨어진 중부사막 수용소들(relocation camps)로 보내 태평양전쟁이 끝날 때 까지 무려 3년 반 동안이나 감금을 시킨 일이다. 인권의 나라에서 어찌 이런 처후가 발생했느냐. 전쟁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자기 자녀를 미국에 보내 공부시키거나 아예 미국 시민권자로 만드는 반미주의자는 이런 걸 잘 말하지 않는다. 모르고 있거나.

정부가 될 기회를 놓친 ‘임시 정부’

한인들은 요인암살, 테러 등을 불사하여 실질적 무력투쟁을 명분으로 삼는 임시 정부(들)의 지지부진함과 끊임없는 분쟁 그리고 파벌싸움에 후원하는 것보다는 제2차세계대전을 치르고 있는 연합군을 지원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인 독립운동이라 여겼다. 게다가 전 연합군의 최종 병기고이고 인적, 물적, 모든 면에서 자원이 무한한 미국의 승전 가능성이 높고 또 그들이 세계의 헤게모니가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조국 광복의 동력으로서 더 믿음직스러웠다.

그리하여 한인들은 광복군을 위한 독립금, 혈성금, 인구세 등 임시 정부를 위해 모금했던 액수의 수십 배를 더 미국 전쟁공채를 구입하는 데 사용했다. 노동이민으로 온 자신들에게 영사도 하나 보내주지 않던 나라, 그토록 부르짖던 호소에도 외면하던 조국에 애정이 흐릿해지다가 이 전쟁을 통해 되살아난 것이이다. 애국심이.

한편 임시 정부는 구미외교위원부라는 기구를 두고 있었다. 1919년 8월 임시 정부 설립 당시 워싱턴에 설치하여 미국, 유럽 등을 상대로 외교를 주무하는 용도였다. 그러나 1925년 구미외교위원부의 2대 위원장이었던 이승만을 임시정부 대통령직에서 탄핵하면서 이 기구를 그의 사조직으로 분류하는 바람에 공식적으로는 철폐시킨 기구였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당시의 임시정부란 ‘임시 정부’였기에 이승만은 독자적으로 독립을 위한 활동을 속개했다. 그러던차 임시 정부는 1934년 다시금 이승만을 외교위원으로 선출한 터이다. 모지? 어쟀든.

그렇다면 임시 정부와 주미 외교위원부는 2차세계대전으로  찾아온 이 절호의 독립의 기회를 십분 활용해야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러지를 못했다.

미주 한인을 중심으로 미국전쟁공채 구매 등 적극적 의사 표현에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동안, 임시 정부는 궁극적으로 ‘참전’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에게는 이 전쟁이 자국을 방어하는 전쟁이었겠지만, 이면에서 이 전쟁은 세계 질서를 재편하는 전쟁이었기에 약소국들은 너도나도 참전을 선언하고 있는 분위기인데도, 진주만 공습 3일만에 ‘대일 선전포고’를 한 한국 임시 정부가 참전 선언은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당시 미국의 헐(Cordell Hull) 국무장관은 이승만이 중경 임시 정부의 워싱턴 대사인 것까지는 인정하였지만, 대한민국의 ‘임시 정부’는 끝끝내 ‘임시정부’로는 인정하지 않았다. 이승만의 대변인 역이던 크롬웰(James Cromwell)은 1942년 6월 23일 임시 정부 승인을 위해 미국 국무성과 더 이상의 대화를 한다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결론을 내린다. 대체 왜 그리되었을까? 이승만이 소극적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임시 정부는 일본에 선전포고는 하였으나, 광복군은 마지막 순각까지 적극적인 참전의 의사를 밝히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일부 자신의 목숨을 던진 의사들을 통해 무력 테러는 있었지만, 이제 비로소 전쟁다운 전쟁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을 때 정작 일본과의 접전에 나서지 않은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가장 큰 문제였던 것이다. 이는 다른 약소국의 상대적인 반응에서 드러난다. 당시 연합국들과 더불어 참전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정부’로 인정을 받는 기회였다. 왜냐하면 파시즘이 기세를 떨칠 당시 ‘임시 정부’는 우리에게만 있었던 게 아니다. 식민지 및 종속국들은 반 파시즘의 기치 아래 곳곳에서 게릴라전을 펼쳤다. 그 가운데서 이를 테면, 줄기차게 게릴라전을 펼치던 티토(Josip Broz Tito)는 연합군에 참전함으로써 우방임을 인정받았고 전쟁 후에는 그 세력을 유고슬로비아 독립국으로 인정하였던 사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왜 광복군은 참전 의사를 밝히지 않았던가?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용감하던데.

이로써 결과적으로 상해 임시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해외 거점을 두고 한인을 대표하는 여러 한인 단체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만약 중경의 ‘임시 정부’만을 정부로 인정한다면 다른 단체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되지 않겠느냐는 사유를 스스로 제공하고 말았던 것이다. 당시 상해에서 독립금, 혈성금, 심지어 인구세 등의 명목으로 각지의 한인들에게서 거둬갔던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의 기원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과 접전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참전에 대한 어떠한 구두 천명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은 연합군의 승리로 종전이 되었다. 당시 재미 한인 단체들이 연합하여 결성한 한족연합위원회는 중경 특파원을 보내 중국 한인을 항일 전선에서 적극 참가하게 하여 미국 정부로 하여금 상해 임시 정부를 교전국 정부로(연합군 일원으로) 그 지위를 인정받아야 정부 승인을 받을 수 있다고 역설하였으나 광복군은 아무런 접전 없이 일본의 무조건 항복 뉴스를 맞은 것이다.

훗날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대표 김구는 이르기를, 임시 정부와 광복군은 한 일이 없어 앞으로 발언권이 약하게 되었으므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하였다 전한다. 실제로 광복군은 연합군의 일원이 아니었기에 해방된 경성에 태극기를 높이 들고 입성하지를 못 하였다. 임시 정부 대표들은 모두 다 개인 자격으로 미소 양군이 점령하고 있는 38선으로 분단된 조국에 돌아왔다.

현대에 들어 대한민국의 기원에 대한 논란이 가열차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대한민국의 임시정부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대다수는 그 임시 정부를 ‘김구의 임시 정부’로 기억하는 까닭일 것이다. 김구를 위대한 선각자로 여기지 않는 사람도 있던가?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임시정부로서의 권위를  ‘김구의 임시 정부’로 기억하는 한, 그러면 그럴수록 그런 고정관념은 당시 함께 공존했던 여러 임시 정부들 중 하나에 불과했던 사실의 반증으로 작용하는 모순에 봉착할 것이다.

‘임시 정부’가 아닌 ‘정부’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부의 궁극적 요체는 ‘군사력’에 있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군사력을 가진 나라는 세상에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현대적 의미로서의 전쟁이란 일종의 진짜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외교’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실은 현대만이 아니라 과거 임시 정부 때도 그랬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나라는 2차세계대전 당시와 똑같은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지정학적인 이유로 열강의 틈에 끼어서,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이념의 갈래에 끼어서, 언제나 가장 많은 피를 흘리는 당사 국인 우리 자신은 결정적 상황에서 스스로의 당사 국 지위를 내려놓는 민족성을 보이는 것이다. 혹시 자주독립을 꿈꾸며 광복의 동력을 연합군에게 내주고 만 것이었다면, 자주독립을 위해 그렇게도 사드(THAAD)의 해체를 부르짖었을 수 있다. 그러나 자주독립이라는 술어는 엄밀한 의미에서 외교력이 없는 국가에서만 돋보이는 용어일 수 있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역사적으로 스스로 독립을 이룬 나라란 없다. 있다면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에 독립을 할 필요가 없었거나, 아니면 전혀 가치가 없는 땅을 영토로 딛고 있었거나.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필연적으로 힘 있는 누군가가 주권을 부여해 줄 때에만 비로소 독립은 성립될 수 있었다. 그것이 역사이다. 그게 아니라면 ‘임시 정부’는 태어날 때부터 스스로 ‘임시 정부’란 말을 써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임시 정부는 그렇게 임시로 끝났다.

 

 

김지하의 ‘오적’(五賊)과 ‘이 가문 날에 비구름’

김지하가 《오적五賊》을 쓴 나이는 29살이다. 《이 가문 날에 비구름》은 그로부터 42년 후에 낸 텍스트다(2012). 두 텍스트 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 차이를 어떤 이는 ‘변화’라 부르고 어떤 이는 ‘변절’이라 부른다. 변화는 무엇이고 변절은 무엇일까? 탐탁지 않은 사람들은 (오적이) ‘표절’이었다고 까지 폄훼한다. 지금은 탄핵당한, 한 여성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이유에서다.

두 극점에 위치한 텍스트 두 편을 옮겨본다. 우선 전자의 텍스트는 판소리 형식으로 구성된 일종의 담시 형태이고, 후자 텍스트는 강연 형식의 담론을 기자가 엮은 것이다. 읽는다 하더라도 변화의 핵심을 포착하는 이들이 많을 것 같지 않지만, 본문을 읽지 않는 이 시대에 텍스트 자체를 읽을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다.

 

오적(五賊)

1

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것다.
옛날도, 먼옛날 상달 초사훗날 백두산아래 나라선 뒷날
배꼽으로 보고 똥구머으로 듣던 중엔 으뜸
아동방(我東方)이 바야흐로 단군아래 으뜸
으뜸가는 태평 태평 태평성대라
그 무슨 가난이 있겠느냐 도둑이 있겠느냐
포식한 농민은 배터져 죽는 게 일쑤요
비단옷 신물나서 사시장철 벗고 사니
고재봉 제 비록 도둑이라곤 하나
공자님 당년에고 도척이 났고
부정부패 가렴주구 처처에 그득하나
요순시절에도 시흉은 있었으니
아마도 현군양상(賢君良相)인들 세상 버릇 도벽(盜癖)이야
여든까지 차마 어찌할 수 있겠느냐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
남녘은 똥덩어리 둥둥
구정물 한강가에 동빙고동 우뚝
북녘은 털빠진 닭똥구멍 민둥
벗은 산 만장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쬭
남북간에 오종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게딱지 다닥 코딱지 다닥 그위에 불쑥
장충동 약수동 솟을 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
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
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만하고 목질기기가 동탁배꼽 같은
천하흉포 오적(五賊)의소굴이렷다.
사람마다 뱃속이 오장육보로 되었으되
이놈들의 배안에는 큰 황소불알 만한 도둑보가 겉붙어 오장칠보,
본시 한 왕초에게 도둑질을 배웠으나 재조는 각각이라
밤낮없이 도둑질만 일삼으니 그 재조 또한 신기(神技)에 이르렀것다.
하루는 다섯놈이 모여
십년전 이맘때 우리 서로 피로써 맹세코 도둑질을 개업한 뒤
날이날로 느느니 기술이요 쌓으느니 황금이라, 황금 십만근을 걸어놓고 그간에 일취월장 묘기(妙技)를 어디 한번 서로 겨룸이 어떠한가
이렇게 뜻을 모아 도(盜)짜 한자 크게 써 걸어놓고 도둑시합을 벌이는데
때는 양춘가절(陽春佳節)이라 날씨는 화창, 바람은 건 듯, 구름은 둥실
지마다 골프채 하나씩 비껴들고 꼰아잡고
행여 질세라 다투어 내달아 비전(泌傳)의 신기(神技)를 자랑해 쌌는다.

2

첫째 도둑 나온다 재벌이란 놈 나온다
돈으로 옷해 입고 돈으로 모자해 쓰고 돈으로 구두해 신고 돈으로 장갑해 끼고
금시계, 금반지, 금팔지, 금단추, 금넥타이 핀, 금카후스보턴, 금박클, 금니빨,
금손톱, 금발톱, 금작크, 금시계줄.
디룩디룩 방댕니, 불룩불룩 아랫배, 방귀를 뽕뽕뀌며 아그작 아그작 나온다
저놈 재조봐라 저 재벌놈 재조봐라
장관은 노랗게 굽고 차관은 벌겋게 삶아
초치고 간장치고 계자치고 고추장치고 미원까지 톡톡쳐서 실고추과 마늘 곁들여
나름
세금받은 은행돈, 외국서 빚낸 돈, 왼갖 특혜 좋은 이권은 모조리 꿀꺽
이쁜 년 꾀어서 첩삼아 밤낮으로 작신작신 새끼까기 여념없다
수두룩 까낸 딸년들 모조리 칼쥔놈께 시앗으로 밤참에 진상하여
귀뜀에 정보얻고 수의계약 낙찰시켜 헐값에 땅샀다가 길뚫리면 한 몫잡고
천(千)원 공사(工事) 오원에 쓱싹, 노동자임금은 언제나 외상외상
둘러치는 재조는 손오공할애비요 구워삶는 재조는 뙤놈술수 빰치겄다.
또 한놈 나온다.
국회의원 나온다.
곱사같이 굽은 허리, 조조같이 가는 실눈,
가래끓는 목소리로 응승거리며 나온다
털투성이 몽둥이에 혁명공양 휘휘감고
혁명공약 모자쓰고 혁명공약 배지차고
가래를 퉤퉤, 골프채 번쩍, 깃발같이 높이들고 대갈일성, 쪽 째진 배암샛바닥에
구호가 와그르르
혁명이닷, 구악(舊惡)은 신악(新惡)으로! 개조(改造)닷, 부정축재는 축재부정으로!
근대화닷, 부정선거는 선거부정으로! 중농(重農)이닷, 빈농(貧農)은 잡농(雜農)으로!
건설이닷, 모든집은 와우식(臥牛式)으로! 사회정화(社會淨化)닷,
정인숙(鄭仁淑)을, 정인숙(鄭仁淑)을 철두철미하게 본받아랏!
궐기하랏, 궐기하랏! 한국은행권아, 막걸리야, 주먹들아,
빈대표야, 곰보표야, 째보표야,
올빼미야, 쪽제비야, 사꾸라야, 유령(幽靈)들아, 표도둑질 성전(聖戰)에로 총궐기하랏!
손자(孫子)에도 병불(兵不) 후사, 치자즉 도자(治者卽盜者)요 공약즉 공약(公約卽空約)이니
우매(遇昧)국민 그리알고 저리멀찍 비켜서랏, 냄새난다 퉤 –
골프 좀 쳐야겄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 관련하여 법정에 선 모습. 당시 33세였다. 출처: 동아일보 허문명 기자 블로그

3

셋째놈이 나온다 고급공무원 나온다.
풍신은 고무풍선, 독사같이 모난 눈, 푸르족족 엄한 살,
콱다문 입꼬라지 청백리(淸白吏) 분명쿠나
단 것을 갖다주니 쩔레쩔레 고개저어 우린 단것 좋아 않소,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말구
어허 저놈 뒤좀 봐라 낯짝 하나 더 붙었다
이쪽보고 히뜩히뜩 저쪽보고 혜끗혜끗, 피두피둥 유들유들
숫기도 좋거니와 이빨꼴이 가관이다.
단것 너무 처먹어서 새까맣게 썩었구나, 썩다못해 문들어져
오리(汚吏)가 분명쿠나
간같이 높은 책상 마다같이 깊은 의자 우뚝나직 걸터앉아
공(功)은 쥐뿔도 없는 놈이 하늘같이 높이 앉아 한손으로 노땡큐요 다른 손은
땡큐땡큐
되는 것도 절대 안돼, 안될 것도 문제 없어, 책상위엔 서류뭉치, 책상밑엔 지폐뭉치
높은 놈껜 삽살개요 아랫놈껜 사냥개라, 공금은 잘라먹고 뇌물은 청(請)해먹고
내가 언제 그랬더냐 흰구름아 물어보자 요정(料亭)마담 위아래로
모두 별탈 없다더냐.
넷째놈이 나온다 장성(長猩)놈이 나온다
키크기 팔대장성, 제밑에 졸개행렬 길기가 만리장성
온몸이 털이 숭숭, 고리눈, 범아가리, 벌룸코, 탑삭수염,
짐승이 분명쿠나
금은 백동 청동 황동, 비단공단 울긋불긋, 천근만근 훈장으로 온몸을 덮고 감아
시커먼 개다리를 여기차고 저기차고
엉금엉금 기나온다 장성(長猩)놈 재조봐라
쫄병들 줄 쌀가마니 모래가득 채워놓고 쌀은 빼다 팔아먹고
쫄병 먹일 소돼지는 털한개씩 나눠주고 살은 혼자 몽창먹고
엄동설한 막사없어 얼어죽는 쫄병들을
일만하면 땀이난다 온종일 사역시켜
막사지을 재목갖다 제집크게 지어놓고
부속 차량 피복 연탄 부식에 봉급까지, 위문품까지 떼어먹고
배고파 탈영한놈 군기잡자 주어패서 영창에 집어놓고
열중쉬엇 열중열중열중쉬엇 열중
빵빵들 데려다가 제마누라 화냥끼 노리개로 묶어두고
저는 따로 첩을 두어 운우서수 공방전(雲雨魚水攻防戰)에 병법(兵法)이 신출귀몰(神出鬼沒)
마지막놈 나온다
장차관이 나온다
허옇게 백태끼어 삐적삐적 술지게미 가득고여 삐져나와
추접무화(無化) 눈꼽낀눈 형형하게 부라리며 왼손은 골프채로 국방을 지휘하고
오른손은 주물럭주물럭 계집젖통 위에다가 증산 수출 건설이라 깔짝깔짝 쓰노라니
호호 아이 간지럽사와요
이런 무식한 년, 국사(國事)가 간지러워?
굶더라도 수출이닷, 안팔려도 증상이닷, 아사(餓死)한놈 뼉다귀로 현해탄에 다리놓아 가미사마 배알하잣!
째진 북소리 깨진 나팔소리 삐삐빼빼 불어대며 속셈은 먹을 궁리
검정세단 있는데도 벤쯔를 사다놓고 청렴결백 시위코자 코로나만 타는구나
예산에서 몽땅먹고 입찰에서 왕창먹고 행여나 냄새날라 질근질근 껌씹으며
켄트를 피워물고 외래품 철저단속 공문을 휙휙휙휙 내갈겨 쓰고나서 어허 거참
달필(達筆)이다.
추문듣고 뒤쫓아온 말잘하는 반벙어리 신문기자 앞에 놓고
일국(一國)의 재상더러 부정(不正)이 웬말인가 귀거래사(歸去來辭) 꿍얼꿍얼,자네 핸디 몇이더라?

4

오적(五賊)의 이 절륜한 솜씨를 구경하던 귀신들이
깜짝 놀라서 어마 뜨거라 저놈들한테 붙잡히면 뼉다귀도 못추리것다
똥줄빠지게 내빼 버렸으니 요즘엔 제사지내는 사람마저 드물어졌겄다.
이라한참 시합이 구시월 똥호박 무르익듯이 몰씬몰씬 무르익어가는데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나라망신시키는 오적(五賊)을 잡아들여라
추상같은 어명이 쾅,
청천하늘에 날벼락치듯 쾅쾅쾅 연거푸 떨어져내려 쏟아져 퍼붓어싸니
네이- 당장에 잡아 대령하겠나이다, 대답하고 물러선다
포도대장 물러선다 포도대장 거동봐라
울뚝불뚝 돼지코에 술찌꺼기 허어옇게 묻은 메기 주둥이,
침은 질질질
장비사돈네팔촌 같은 텁석부리 수염, 사람여럿 잡아먹어 피가 벌건 왕방울 눈깔
마빡에 주먹혹이 뛸 때마다 털렁털렁
열십자 팔벌이고 멧돌같이 좌충우돌, 사자같이 으르르르릉
이놈 내리훑고 저놈 굴비엮어
종삼 명동 양동 무교동 청계천 쉬파리 답십리 왕파리 왕십리 똥파리 모두 쓸어모아다 꿀리고 치고 패고 차고 밟고
꼬집어뜯고 물어뜯고 업어메치고 뒤집어던지고 꼰아
추스리고 걷어팽개치고
때리고 부수고 개키고 까집고 비틀고 조이고
꺾고 깎고 벳기고 쑤셔대고 몽구라뜨리고
직신작신 조지고지지고 노들강변 버들같이 휘휘낭창 꾸부러뜨리고
육모방망이, 세모쇳장, 갈쿠리, 긴 칼, 짧은 칼, 큰칼, 작은칼
오라 수갑 곤장 난장 곤봉 호각
개다리 소다리 장총 기관총 수류탄 최루탄 발연탄 구토탄 똥탄 오줌탄 뜸물탄
석탄 백탄
모조리 갖다 늘어놓고 어흥 –
호랑이 방귓소리 같은 으름장에 깜짝, 도매금으로 끌려와 쪼그린 되민증들이 발발
전라도 갯땅쇠 꾀수놈이 발발 오뉴월 동장군(冬將軍) 만난 듯이 발발발 떨어댄다.
네놈이 오적(五賊)이지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날치기요
날치기면 더욱 좋다. 날치기, 들치기, 밀치기, 소매치기, 네다바이 다 합쳐서
오적(五賊)이 그 아니냐
아이구 난 날치기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펨프요
펨프면 더욱 좋다. 펨프, 창녀, 포주, 깡패, 쪽쟁이 다합쳐서
풍속사범 오적(五賊)이 바로 그것 아니더냐
아이구 난 펨프이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껌팔이요
껌팔이면 더욱 좋다. 껌팔이, 담배팔이, 양말팔이, 도롭프스팔이, 쪼코렛팔이 다
합쳐서
외래품 팔아먹는 오적(五賊)이 그아니냐
아이구 난 껌팔이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거지요
거지면 더더욱 좋다. 거지, 문둥이, 시라이, 양아치, 비렁뱅이 다합쳐서
우범오적(五賊)이란 너를 두고 이름이다. 가자 이놈 큰집으로 바삐가자
애고 애고 난 아니요, 오적(五賊)만은 아니어라우. 나는 본시 갯땅쇠로 농사로는
배고파서 돈벌라고 서울왔소. 내게 죄가 있다면은
어젯밤에 배고파서 국화빵 한 개 훔쳐먹은 그 죄밖엔 없습네다.
이리바짝 저리죄고 위로 틀고 아래로 따닥
찜질 매질 물질 불질 무두질에 당근질에 비행기태워 공중잡이
고춧가루 비눗물에 식초까지 퍼부어도 싹아지없이 쏙쏙 기어나오는건
아니랑께롱
한마디뿐이겄다
포도대장 할 수 없이 꾀수놈을 사알살 꼬실른다 저것봐라
오적(五賊)은 무엇이며 어디있나 말 만하면 네 목숨은 살려주마
꾀수놈 이말듣고 옳다꾸나 대답한다.
오적(五賊)이라 하는 것은
재벌과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란 다섯 짐승, 시방 동빙고동에서
도둑시합 열고 있오.
으흠, 거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다. 정녕 그게 짐승이냐?
그라문이라우, 짐승도 아조 흉악한 짐승이지라우.
옳다됐다 내새끼야 그말을 진작하지
포도대장 하도좋아 제무릎을 탁치는데
어떻게 우악스럽게 처 버렸던지 무릎뼈가 파싹 깨져 버렸겄다, 그러허나
아무리 죽을 지경이라도 사(死)는 사(私)요, 공(功)은 공(公)이라
네놈 꾀수 앞장서라, 당장에 잡아다가 능지처참한 연후에 나도 출세해야겄다.
꾀수놈 앞세우고 포도대장 출도한다
범눈깔 부릅뜨고 백주대로상에 헷드라이트 왕눈깔을 미친듯이 부릅뜨고
부릉 부릉 부르릉 찍찍
소리소리 내지르며 질풍같이 내닫는다
비켜라 비켜라
안비키면 오적(五賊)이다
간다 간다 내가 간다
부릉 부릉 부르릉 찍찍 우당우당 우당탕 쿵쾅
오적(五賊)잡으러 내가 간다 남산을 훌렁넘어 한강물 바라보니 동빙고동 예로구나
우레같은 저 함성 범같은 늠름기상 이완대장(李浣大將) 재래(再來)로다
시합장에 뛰어들어 포도대장 대갈일성,
이놈들 오적(五賊)은 듣거라
너희 한같 비천한 축생의 몸으로
방자하게 백성의 고혈빨아 주지육림 가소롭다
대역무도 국위손상, 백성원성 분분하매 어명으로 체포하니
오라를 받으렸다.

5

이리 호령하고 가만히 들러보니 눈하나 깜짝하는 놈 없이
제일에만 열중하는데
생김생김은 짐승이로되 호화찬란한 짐승이라
포도대장 깜짝놀라 사면을 살펴보는데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이게 어느 천국이냐
서슬푸른 용트림이 기둥처처 승천하고 맑고 푸른 수영장엔 벌거벗은
선녀(仙女) 가득
몇십리 수풀들이 정원 속에 그득그득, 백만원짜리 정원수(庭園樹)에 백만원짜리
외국(外國)개
천만원짜리 수석비석(瘦石肥石), 천만원짜리 석등석불(石燈石佛), 일억원짜리
붕어 잉어, 일억원짜리 참새 메추리
문(門)도 자동, 벽도 자동, 술도 자동, 밥도 자동, 계집질 화냥질 분탕질도
자동자동
여대생(女大生) 식모두고 경제학박사 회계두고 임학(林學)박사 원정(園丁)두고
경제학박사 집사두고
가정교사는 철학박사 비서는 정치학박사 미용사는 미학(美學)박사
박사박사박사박사
잔디 행여 죽을세라 잔디에다 스팀넣고, 붕어 행여 죽을세라 연못속에
에어컨넣고
새들 행여 죽을세라 새장속에 히터넣고, 개밥 행여 상할세라 개집속에
냉장고넣고
대리석 양옥(洋屋)위에 조선기와 살쩍얹어 기둥은 코린트식(式) 대들보는
이오니아식(式)
선자추녀 쇠로치고 굽도리 삿슈박고 내외분합 그라스룸 석조(石造)벽에 갈포발라
앞뒷퇴 널찍터서 복판에 메인홀 두고 알매달아 부연얹고
기와위에 이층올려 이층위에 옥상트고 살미살창 가로닫이 도자창(盜字窓)으로
지어놓고
안팎 중문 솟을대문 페르샤풍(風), 본따놓고 목욕탕은 토이기풍(風), 돼지우리
왜풍(倭風)당당
집밑에다 연못파고 연못속에 석가산(石假山), 대대층층 모아놓고
열어재킨 문틈으로 집안을 언 듯보니
자개 케비넷, 무광택 강철함롱, 봉그린 용장, 용그린 봉장, 삼천삼백삼십삼층장
카네숀 그린 화초장, 운동장만한 옥쟁반, 삘딩같이 높이 솟은 금은 청동 놋촉대,
전자시계, 전자밥그릇, 전자주전자, 전자젓가락, 전자꽃병, 전자거울, 전자책,
전자가방, 쇠유리병, 흙나무그릇, 이조청자, 고려백자, 거꾸로 걸린 삐까소,
옆으로 붙인 샤갈,
석파란(石坡蘭)은 금칠액틀에 번들번들 끼워놓고, 산수화조호접인물 (山水花鳥蝴蝶人物)
내리닫이 족자는 사백점 걸어두고, 산수화조호접인물 (山水花 鳥蝴蝶人物)
팔천팔백팔십팔점이 한꺼번에 와글와글,
백동토기, 당화기, 왜화기, 미국화기, 불란서화기, 애태리화기, 호피담뇨 씨운테레비, 화류문갑 속의 쏘니녹음기, 대모책상 위의 밋첼카메라, 산호책장 곁의 알씨에이 영사기, 호박필통에 꽂힌 파카만년필, 촛불켠 샨들리에, 피마주기름 스탠드라이트, 간접직접 직사곡사 천장바닥 벽조명이 휘황칸칸 호화율율.
여편제들 치장보니 청옥머리핀, 백옥구두장식,
황금부로취, 백금이빨, 밀화귓구멍가게, 호박밑구멍마게, 산호똥구멍마게,
루비배꼽마게, 금파단추, 진주귀걸이, 야광주코걸이, 자수정목걸이, 싸파이어팔지 에어랄드팔지, 다이야몬드허리띠, 터키석안경대,
유독 반지만은 금칠한 삼원짜리 납반지가 번쩍번쩍 칠흑암야에 횃불처럼
도도무쌍(無雙)이라!
왼갖 음식 살펴보니 침 꼴깍 넘어가는 소리 천지가 진동한다
소털구이, 돼지콧구멍볶음, 염소수염튀김, 노루뿔삶음, 닭네발산적, 꿩지느라미말림,
도미날개지짐, 조기바톱젓, 민어 농어 방어 광어 은어 귀만 짤라 회무침,
낙지해삼비늘조림, 쇠고기 돈까스, 돼지고기 비후까스, 피안뺀 복지리,
생율, 숙율, 능금, 배 씨만 발라 말리원서 금딱지로 싸놓은 것, 바나나식혜,
파인애플화채, 무화과 꽃닢설탕 버무림,
롱가리트유과, 메사돈약과, 사카린잡과, 개구리알구란탕, 청포우무, 한천묵,
괭장망장과화주, 산또리, 계당주, 샴펭, 송엽주, 드라이찐, 자하주, 압산,
오가피주, 죠니워카, 구기주, 화이트호스, 신선주, 짐빔, 선약주, 나폴레옹 꼬냑, 약주, 탁주, 소주, 정종, 화주, 째주, 보드카, 람주(酒)라!
아가리가 딱 벌어져 닫을 염도 않고 포도대장 침을 질질질질질질 흘려싸면서
가로되
놀랠 놀짜로다
저게모두 도둑질로 모아들인 재산인가
이럴 줄을 알았더면 나도 일찍암치 도둑이나 되었을 걸
원수로다 원수로다 양심(良心)이란 두글자가 철천지 원수로다

6

이리 속으로 자탄망조하는 터에
한놈이 쓰윽 다가와 써억 술잔을 권한다
보도 듣도 못한 술인지라
허겁지겁 한잔두잔 헐레벌떡 석잔넉잔
이윽고 대취하여 포도대장 일어서서 일장연설 해보는데
안주를 어떻게나 많이 쳐먹었는지 이빨이 확 닳아없어져 버린 아가리로 이빨을 딱딱 소리내 부딪쳐가면서 씹어뱉는 그 목소리 엄숙하고 그 조리 정연하기
성인군자의 말씀이라
만장하옵시고 존경하옵는 도둑님들!
도둑은 도둑의 죄가 아니요, 도둑을 만든 이 사회의 죄입네다
여러도둑님들께옵선 도둑이 아니라 이 사회에 충실한 일꾼이니
부디 소신껏 그길에 매진, 용진, 전진, 약진하시길 간절히 바라옵고 또 바라옵니다.
이 말끝에 박장대소 천지가 요란할 때
포도대장 뛰어나가 꾀수놈 낚궈채어 오라묶어 세운뒤에
요놈, 네놈을 무고죄로 입건한다.
때는 가을이라
서산낙일에 객수(客愁)가 추연하네
외기러기 짝을찾고 쪼각달 희게비껴
강물은 붉게 타서 피흐르는데
어쩔꺼나 두견이는 설리설리 울어쌌는데 어쩔꺼나
콩알같은 꾀수묶어 비틀비틀 포도대장 개트림에 돌아가네
어쩔꺼나 어쩔꺼나 우리꾀수 어쩔꺼나
전라도서 굶고살다 서울와 돈번다더니
동대문 남대문 봉천동 모래내에 온갖구박 다 당하고
기어이 가는구나 가막소로 가는구나
어쩔꺼나 억울하고 원통하고 분한사정 누가있어 바로잡나
잘까거라 꾀수야
부디부디 잘가거라.

7

꾀수는 그길로 가막소로 들어가고
오적(五賊)은 뒤에 포도대장 불러다가
그 용기를 어여삐 녀겨 저희집 솟을대문,
바로 그곁에 있는 개집속에 살며 도둑을 지키라하매,
포도대장 이말듣고 얼시구 좋아라
지화자좋네 온갖 병기(兵器)를 다가져다 삼엄하게 늘어놓고 개집속에서 내내
잘살다가
어느 맑게 개인날 아침, 커다랗게 기지개를 켜다 갑자기
벼락을 맞아 급살하니
이때 또한 오적(五賊)도 육공(六孔)으로 피를 토하며
꺼꾸러졌다는 이야기. 허허허
이런 행적이 백대에 민멸치 아니하고 인구(人口)에 회자하여
날같은 거지시인의 싯귀에까지 올라 길이 길이 전해오겄다.

———————–

 이 가문 날에 비구름 

내가 오늘 이런 자리에 선 것 자체가 기이합니다. 아시다시피 나는 본디 미학자이지만 직업은 시인이올시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시국에 관계된 초미한 대권선거에 관련된 연설회에 선 것 그 자체가 참으로 기이합니다.

그러나 새벽녘 단 한마디로 그 기이함을 털어냈습니다. 조국이 나를 부른것입니다. 조국의 위기가 나를 부르지 않았다면 나는 그 어떤 명망에도 그 어떤 명분에도 그리 헐헐하게 이 자리에 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조국의 위기, 그리고 또 하나 나 자신의 커다란 내면의 대변동. 이것이 나를 오늘 이 자리에 서게 했습니다.

내가 왜 오랜 서울생활을 접고 제2의 고향이라는 강원도 원주 변두리로 내려가게 되었을까요? 물론 장모님인 박경리 선생의 서거로 아내가 토지문화관의 그 어려움을 떠맡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실제로 토지문화관의 아내의 일을 돕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집안일을 한마디 말로 해도 괜찮다면 이렇습니다. 나의 아내는 장모님 말씀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고 장모님은 돌아가시기 전 유언으로 ‘김 시인은 문화관 일에 결코 접근시키지 말라’ 하셨습니다. 현실은 그대로 되었고 그 말씀을 깊이 이해한 나는 원주와 원주 주변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까 내가 내 내면의 커다란 대변동 운운한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 결과 나는 원주주변 문막과 부론의 ‘흥원창’ 즉 충청도의 단강과 강원도의 섬강과 경기도의 남한강이 합류하는 지점의 우뚝한 산봉우리 ‘월봉’과 그 앞에 있는 옛 법천사 중장터의 경제원리 사이에 끼어든 월봉 산봉우리 위의 참으로 기이한 물흐름의 비밀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그것에서 1만4000년 전 파미르고원 마고성의 ‘신시’의 수수께끼인 ‘획기적 재분배’의 무서운 비결인 팔여사율(八呂四律)을 발견합니다.

팔여사율은 중국 4500년 전 황제의 이른바 율려(律呂)가 아닙니다. 무엇일까요? 간단히 말해 여성성, 우연성, 생동성 여덟에 남성성, 질서성, 고정성 넷의 이른바 ‘카오스모스’적 결합입니다. 전 아시아의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경제와 시장원리인 ‘호혜, 교환, 획기적 재분배’의 법칙이 바로 팔여사율이라는 산상지 유수(山上之 有水:산 위에 물이 있음)의 이치인 것입니다.

그로부터 나는 차차 고구려, 백제, 신라로부터는 머나먼 중조선 원주, 충주, 여주 인근에 왜 궁예, 왕건, 견훤 등의 군사적 대 혈전이 빈발하고 경순왕이 왜 칩거하며 장수왕, 광개토대왕의 무수한 고구려 탑과 천문대가 밀집해있는지, 그리고 또 어째서 천주교의 시작인 배론성지와 곤지암과 남한강, 북한강의 신·구교 성지들이 밀집해 있는지, 그리고 그리고 또 왜 오대산에는 세계와 우주의 핵이라는 명계(溟界)에 화엄고장이 들어섰는지 조금씩 알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왜 이곳, 이천의 ‘앵산’에서 스물여덟살의 여성동학당 ‘이수인’을 회주로 하는 화엄개백의 수왕회(水王會)가 나타나고 두물머리 앞산에 여운형의 중도노선이, 그리고 수많은 신·구 기독교 수행자들이 줄을 잇는지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든 것은 ‘원만’이란 옛 말로 집약되고 그 ‘원만’은 흥원창의 ‘월봉’에로 상징되었습니다.

‘월봉’은 여성의 상징입니다.

‘월봉’아래 영서지방 최초의 최대선창이었다는 ‘흥원창’에는 이런 전설이 있습니다.
고려 하반기 병명을 알 수 없는 이상한 질병이 퍼져 수많은 아기들이 삼밭에 삼대 쓰러지듯이 죽어갔다고 합니다. 그때 한 미혼의 처녀가 흰 해오라기 네 마리와 함께 흥원창에 나와 꿇어 엎드리고 꼭 나흘간 그 병을 거두어가 달라고 빌었다고 합니다. 나흘 만에 어린애들의 병은 사라지기 시작했고 처녀는 나흘 만에 죽어 하늘로 떠났다고 합니다.

그 세 강 앞에 있는 부론의 길 이름이 있습니다. ‘앙암로(仰岩路)’, ‘월봉을 모시는 길’이 그 길 이름입니다. 많습니다. 그 길을 통과한 사람들은 많습니다. 궁예, 왕건, 견훤, 경순왕, 마의태자와 고구려의 장수들입니다.

또 있습니다. 그 옆 마을 ‘노림’은 이조 선조 때의 저 유명한 재상 ‘한백겸’의 고향입니다. 그는 중국의 신시체제인 ‘정권법’과 ‘팔상시’의 한국판인 ‘기전제’ 연구자로서 그로부터 선조 때 저 이름난 중도경제기구인 ‘대동법’을 일으킨 명인입니다.

그가 청년기에 반역자 ‘정여립’의 송장을 거두어준 것으로 관에 끌려가 호되게 곤장을 맞고 과거 열(列)에서 제거된 것은 유명합니다. 그러나 임진왜란 중에 일본에 부역할 자들을 잡아내 혼내줌으로써 그 뒤 과거에도 승진하고 정승까지 올라간 한국 주역 연구의 명인입니다.

그 옆은 손곡입니다. 손곡은 선종으로 유명한 거돈사와 법상종의 법천사 사이에 그 가까운 골짜기에 길이 없습니다.

왜? 여자 때문입니다.

왜? 공부 좀 하십시오.

나는 ‘월봉’에서 나의 공부가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날 내게 이조 중후기의 지리서인 신경준의 ‘산경표’가 등장하고 그 속의 경상도 영주·봉화 사이 산간의 초미(初眉)라는 한 낭떠러지기 소식이 대구 매일신문 문화부의 노력과 함께 들어왔습니다.

동해안에 해가 뜰 때 그 낭떠러지기 바위 속의 광석들이 여러 빛으로 반짝이고 그 때 바위사이에서 한 기운, 즉 핵산미립자가 나와 주변 소백·태백산간의 산기운의 최고 오염요소인 산을 정화시킨다는 것입니다. 바로 초미(初眉) 즉 첫이마 소식은 내게 잊혀지질 않았습니다.

왜?
나는 7년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참가했다가 저 유명한 ‘몰트만’ 목사와 그 측근 ‘안드레이스’ 목사의 부탁으로 그들의 친구인 생태학자와 독일 녹생당 제 2인자인 미카엘 데이비스와 라인 강가에서 세 시간동안 담화를 나눕니다.

그의 말입니다. ‘유럽생태학과 독일녹색당은 이제 끝났다. 사물 속에 이른바 마음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정신적 요소가 실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제 동아시아에서 생태학이 아닌 생명학으로 새로운 녹색당이 나와야 한다. 그때 우리는 그 영향으로 큰 자기비판을 통해 거듭 날 것이다.’

이 말은 내게 하나의 채증같은 것입니다. 잊히질 않습니다.
자연의 산의 오염을 자연의 핵산미립자 스스로 정화한다면, 그리고 인간은 환경이니 생태니 하며 마구 떠들 일이 아니라, 그 핵산미립자를 찾아 그 산을 치료할 수 있도록 열심히 조치를 할 수 있다면 인간의 일을 참으로 끝내는 것이 됩니다. 내 가슴에서 이 말은 잊히질 않습니다.

나는 원주에 내려간 뒤 사람을 거의 안 만납니다. 깡통 빨갱이들이 지겨워서죠. 그래서 택시 값을 너무 많이 쓴다고 아내에게 혼난 적이 있는데도 그렇습니다.

내가 공부하다 답답해 가는 곳 중엔 시인 원천석의 묘지인 ‘석경사’가 있습니다. 그의 1000여 수의 시중에 나는 딱 한편만 좋아하는데
-재세불생 유산간(在世不生 唯山間)-
“이 세상은 살만한 곳이 아니다. 오직 산과 산 사이 어둑한 골짜기뿐이다.”
그럴까요? 이른바 볼란타입니다. 중국말로는 奉蘭西.
간다하라에서는 이 컴컴한 귀퉁이를 부처님보다 더 편안한 자리라 부른답니다. 그럴까요?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 원천석 묘지가 있는 황골 뒤의 치악산이 곧 ‘입석대’란 곳입니다. 그 곳엔 차가 없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에 그곳이 곧 초미라는 망상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럴까요?

나는 한 유능한 택시기사와 함께 그 황골의 입석대 뒤편 구룡사 뒷산인 비로봉 바로 뒷편으로 돌아돌아 들어갔습니다. 강림, 부곡, 솔거사리라는 곳입니다.

나는 그곳에서 똥을 크게 싸고 왔습니다. 내 첫 이마 즉 초미(初眉)를 발견했기 때문이죠. 첫 이마자리에서 뜻있는 남자는 똥을 싸는 법입니다. 남자의 첫 이마. 동틀 때 자연이 자연을 치료하는 기운을 뿜어내는 기이한 자리. 그렇습니다.

거기 솔거사리에서 방리철이라는 이상한 쇠성분이 해뜰 때 나온다고 합니다. 수려원도 있고, 태종대도 있습니다. 이방원이 자리이기도 합니다. 나는 그쯤은 별 관심없습니다. 그러나 원천석에게 벼슬을 하라고 이방원이 두 번을 찾아왔던 흔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의미가 있습니까?

나는 강림을 내려와 바로 문막-부론의 흥원창, 바로 그 여성 상징처인 월봉으로 갔습니다. 무엇을 깨달았을까?

남자는 남자가 할 일을 찾아내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 예수 제자들이 많을 것입니다. 좋습니다. 내가 예수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갇힌 동굴 앞 바위에 끝끝내 막달라 마리아가 앉아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산상수훈. 그리고 예루살렘 입성전야의 최고의 사랑이 섬김이라는 이야기.

이제 여자가 세상 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4500만 중에 1000만이 일하는 여자들입니다. 작은 일 인가요?
작은 일이라고 보면 큰일 납니다. 꼭 프랑스 혁명 전후에 ‘프리메이슨’ 세계 조직사건을 모르는 사람의 태도지요.

누가 알아요? 지금 그런 것 시작됐는지도 몰라요. 여자에게 현실적인 일을 맡기고 남자는 이제 첫이마를 찾아야 할 때입니다. 3000년 모권제 억압 이전의 신성공동체에서의 사관, 즉 여무 말입니다. 우리나라 경우엔 ‘단군’입니다. 그러나 남자가 도와야 합니다. 어떻게 ‘왕검’이 괜히 있나요? 문제는 어려분이 ‘첫이마’를 어떻게 규정하는가 문제일 뿐입니다.
여러 말 이전에 잘라 말합니다.
“나는 여성들의 현실통어 능력을 인정합니다. 안할 거예요?”

깡통빨갱이들을 나는 비난했습니다. 왜?
정부 돈 잘라 먹는 놈이 무슨 혁명을 해요? 나는 세상이 다 아는 오적의 욕쟁이 김지하입니다. 이름까지도 땅속에 던져 넣고 갔지요. 그런데 깡통빨갱이들이 돈을 떼먹고도 돈 떼먹었다고 욕하니까 날더러 반동분자래!
반동이 그런 거예요? 그러면 온동은 뭐예요? 온동은 있어요?

나는 4·19 때 민통조직에 안 들어갔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마르크스와 러시아 번역성 소설들을 다 읽었으면서도 안 들어갔습니다. 왜?

내 아버지는 목포에서 유명한 빨갱이였어요. 또 6·25 뒤에는 영암 월출산에서 기관총을 쏘며 게릴라를 했어요. 해방직후 남노당이 월북할 때 저희들만 올라가고 모조리 제거해 버렸지요. 그것이 보도연맹입니다. 6·25 때 전쟁직전에 잡아다 둘씩 묶어서 바다에 집어넣었지요. 그게 20만이나 됐어요. 내 아버지는 일본 오사카에서 5년간 전기기술을 공부한 사람이니까 목포에서 귀한 사람이었지요.

그때 LST던가 군함타기 직전에 살아나왔죠. 그런데도 6·25 직후 또 빨치산! 월출산에서 또 청산투쟁을 했어요. 다 죽인다니까 모조리 흰 옷 입고들 산을 올랐으니 총도 밥도 없었겠지. 그래서 내려 보냈지요. 산밑에는 경찰과 해병대의 기관총 뿐. 월출산 밑이 하얬습니다.

아버지는 그 판에 그 ‘청산’에 반발해 투쟁하면서도 게릴라했어요. 그러다 동네사람들이 ‘영일(영일이 나올시다)’이를 목포 우익들이 산채로 돌을 달아서 가마니에 넣어가지고 삼학도 앞바다에 집어넣는 것을 봤다고 후라이를 쳤어요. 아버지는 청산과 외아들의 죽음. 이 두 가지에 기관총을 내던지고 하산했지요. 등산전문가라 샛길을 타고 내려와보니 내가 살아 있었습니다.

잡혀 들어가 고초를 겪고 나와 세 번 자살시도, 실패하자 국군에 들어가(그때는 자수하면 국군에 재입대 시켰습니다) ‘육군군예대’에서 황해, 허장강 등과 함께 연예로 조명비치고 그랬죠. 종전이 되고 목포 못 오니까 폭격아래 허허벌판에 판자 집으로 지은 군인극장에 영사주임으로 있으면서 열세 살의 나를 불러올려 강원도 원주에서 살게 된 것이에요.

가난했지요. 내가 조직에 들어가겠어요?
그러나 외아들이 지 애비사상 모른 채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론도 투쟁도 남보다 뛰어나지만 난 조직엔 안 들어간 거예요. 여러분은 우리나라 현대사, 근대사를 거의 몰라요. 우리 아버지는 그런 공산당이 아니었어요. 그럼 무엇인가요?

남로당 아니면 사회주의, 공산주의 없다고? 바로 그것이 깡통빨갱이들의 시작입니다. 오모가리당, 뒷개패는 아세요? 영광출신 오성택 중심의 ‘오목당’이 무엇인지나 아세요?

삼일운동이후 5년 뒤에야 남조선 공산당이 결성됩니다. 삼일운동 직후 1년 뒤인 1920년 9월 9일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지리산 천왕봉에서 있었던 다섯 사람의 첫 빨갱이 모임을 모르세요? 그러니 역사가 이 모양이고 정치가 이 모양이죠. 정말 몰라요?

그때 주동자가 진주목사 신상식(별명 우범)이죠. 경상도 쪽 두 사람이 동학출신의 ‘형평사’ 조직의 ‘김단야와 그 오른팔 박헌영’이고 전라도 쪽 두사람이 동학·불교쪽의 화엄개벽 ‘수왕회(여자가 대장인 조직)’의 ‘천이식과 인정인(남학과 정역사람’이죠. 이들은 공산이라 안하고 공생(共生)이라 했죠. 신상식은 오산사람으로 어려서 중국 출입때 좌익지식을 얻었다고 합니다.

삼일운동직후 부산, 군산, 목포 등에 일본 배가 많이 출입했는데 그 때 부두파업이 아주 치열했습니다. 일본 기업가들이 ‘틀림없이 배후에 국제적 공산주의 조직이 있다’고 확신했답니다. 그러나 ‘물때(지겟꾼조직)’ 따위와 같은 ‘화엄개벽파 수왕회’였고 이 자조·자립운동은 그 뒤로는 1970년 초 청도로부터 시작된 새마을운동을 고비로 사라집니다.

‘당신은 그걸 어찌 압니까?’ 누군가 내게 물어요. 그러나 나는 대답을 안 합니다. 왜 해요?

내가 앞에서 “조국이 나를 부른다”고 했죠?
김일성이라는 임금(그 뒤 3대에 걸친 고대 깡통사회)이 주체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말을 한 것은 내가 아니라 유명한 종북주의자 김영환, 강철입니다. 시원하십니까? 알아요?

해월 밑에 있던 앵산의 그 ‘이수인’이가 양평에서 강간당하다 찢겨 죽습니다. 그때 두물머리(양수리, 신구기독교 4대강 반대운동 상징터)에 숨어있던 해월 최시형 선생이 그 앞 강물에 뜬 하이얀 초승달을 바라보며 울며 부르짖었습니다.
‘이가 李다’
‘이’는 죽은 여자 이수인의 별명입니다. 그 천박한 아이가 곧 ‘李’ 즉 전주 이씨 그러니까 임금이 된다는 뜻입니다. 왜?

이수인은 정조 무렵 반정부 사건 관련으로 집안에서 쫓겨나 무주(茂朱)로 도망와서 ‘무주 이씨’로 성을 바꿉니다. 그래서 이수인은 스스로를 ‘이(蝨)’라고 낮춰 부른 것이고 해월선생은 ‘정역(正易)’의 김일부가 그 역(易)에서 말한 기위친정(己位親政) 즉 후천개벽이 되면 밑바닥(기위)이 임금 자리로 돌아온다(진청)는 뜻으로 ‘이가 李다’라고 울부짖었던 겁니다.

왜 이상합니까?
박근혜 후보가 이 민주 사회에서 대통령 되는 게 이상해요?

2012년 김지하 시인은 ‘오적(五賊) 필화사건’으로 선고유예를 받은 부분에 대해 항소했으나 기각된 바 있다. 서울고등법원에서의 장면이다. 출처: 연합뉴스

도리어 남자들이 이전 나처럼 산으로 가 첫이마, 초미(初眉) 노릇을 할 자기(불이 아닌 빛으로서의 태양 노릇)를 찿아야 할 때 아닌가요?

나는 박정희 정치에 대해 다 넘어 섰습니다. 이미 독방에서요. 뭐가 문제인가요?

더욱이 여러분의 우리나라 역사지식은 일본놈, 중국놈들과 그 기타 외국지식을 뒤집어 쓴 식민지 지식인들의 그것으로 가득찼습니다. 새 공부하는 뜻으로 여자 세상 한번 그려보세요.

달세상, 물세상, 그늘 세상입니다. 왜 종말 생각 안 합니까? 왜 개벽 생각 안 합니까? 동학이 우스워요? 이 ‘가문 날에 비구름’ 이란 말이 우스워요?
우스워요? 그럼 웃으세요.

나는 몇 년 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 간 적이 있습니다. 왜 갔을까요? 스톡홀름 대학의 한국학과 첫 외국문학 세미나였습니다. 그 스톡홀름에서 처음 번역한 외국 문학이 나의 시 ‘오적’이었답니다.

이상해요? 내 주제는 “촛불, 횃불, 숯불”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여러분처럼 제 나라를 식민지로 생각하는 깡통 빨갱이들이 데모를 했어요.

-김지하 반동분자-
-김지하 노벨상 받으러 공작하러 갔다-
그래요? 맞아요?
“촛불, 횃불, 숯불” 입니다 내 말 주제는.

그런데 박근혜 후보의 정치투쟁 제 일선이라는 어떤 사람이 며칠 전 신문에 이런 글을 썼어요.
“촛불을 확 쓸어버렸어야 했다.” 맞아요?
내 큰 아들도 촛불이지만 나는 그런 캄캄한 밤에 꼭 30분씩 가서 참관하고 돌아온 나 자신이 촛불이예요.
나는 촛불 책을 5권이나 써냈어요. 나를 확 쓸어버릴래요? 그게 무슨 글인 줄 도 모르고?
그 안에 여성 문제, 아이들 문제, 비정규직 문제 다 들어있다면?

촛불에 나중에 끼어든 자들이 있지요. 횃불인가요? 그 패거리가 밥 음료수 막 퍼가지고 왔지요. 그것도 숯불인가요? 나중에 근 한 달 동안 거리에서 저희 존재 증명한다고 우당탕탕하던 깡통 빨갱이들.
나중엔 봉하 쪽 부엉바위에서 꽝한 사람이 누구더라?
그 사람한테는 새누리당 꼭대기들도 촛불을 켰죠! 그것이 모두 촛불 아니던가요?
그것도 확 쓸어버릴 건가요?
지금 선거할 건가요? 안 할 건가요? 마당에서 작대기로 땅빼먹기합니까?

2012.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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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스 마카브르 (죽음의 무도)

당스 마카브르(Danse Macabre)는 프랑스어다. 영어로 Dance of Death, 즉 ‘죽음의 무도(舞蹈)’를 이르는 말이다. 19세기 카미유 상생스가 작곡한 교향시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중세 말, 죽음의 보편성을 알레고리로 묘사했던 미술의 한 장르를 일컫는다.

이를 테면 죽음을 살아 있는 시체나 해골로 표현하고, 생명 있는 산 자들은 황제나 교황, 성주, 노약자, 노동자로 표현하여, 죽은 자와 산 자를 서로 대면시키거나, 무덤에서 춤을 추게 하는 식의 구도와 연출을 보여주는 화풍이다.

미카엘 볼게무트 작품 (1493)

그것은 삶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특히 살아 있는 지금의 영광이 얼마나 헛된지를 깨닫게 하려 의도된 화풍이다.

이 죽음의 춤은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죽음의 영향력을 나타낸다. 삶의 연약함을 상기시키기 위해 짜인 연출과 구도 속에서 종종 우화로 그림 위 또는 아래에 설명구들이 겻들여 있기도 하다.

다음은 19세기 초에 활동한 로랜슨(T. Rowlandson)이라는 화가의 작품들이다. 죽은 자가 등장하는 여러 풍자를 감상 할 수 있다. 모두 19세기 전통에서 가져온 것이지만 풍유 내용들이 현대적으로도 손색이 없다.

…when the old fool has drank his wine, and gone to rest…I will be thine…
The dance of death: the honeymoon by T. Rowlandson, 1816. The Wellcome Library

“… 늙은 바보가 술을 마시고 있는 동안… 난 항상 네 것으로 있을 거야 …”

…I list you, and you’ll soon be found, one of my regiment under ground…
The dance of death: the recruit by T. Rowlandson, 1816. The Wellcome Library.

“…나는 너를 데려가고… 넌 곧 발견 될 거야. 땅 속에 묻힌 내 군대의 군인으로…”

…Time & Death their thoughts impart – On works of Learning & of Art…
The dance of death: time and death by T. Rowlandson, 1816. The Wellcome Library.

“…시간과 죽음은 그들의 생각을 전달한다. 배움과 예술의 작품에서…”

…O the unconscionable Brute! To murder for a little Fruit!…
The dance of death: the urchin robbers by T. Rowlandson, 1816. The Wellcome Library.

“…오~인정머리 없는 브루트여! 고작 작은 프루트(과일) 하나를 사살하려고…”

….Such mortal Sport the Chase attends: At Break Neck Hill the Hunting Ends…
The dance of death: the last chase by T. Rowlandson, 1816. The Wellcome Library.

“…추적이 수반되는 필사(必死)의 스포츠: ‘브레이크 넥 언덕’(목이 부러지는 언덕)에서 사냥은 끝난다…”

Thomas Rowlandson (1756–1827)

 

타임지 표지 인물과 TIME 로고의 상관 관계

Moon Jae-in stands for a portrait in Seoul, South Korea, on April 15, 2017.

문재인 대선 후보가 아시아판 타임지 표지 인물로 선정되었다. 그런데 어떤 표지인물들은 TIME 로고가 인물 뒤로 가려 있고, 어떤 인물의 경우는 TIME 로고가 인물 앞으로 나와 있는데 그 이유에 대한 견해들이 분분한 모양이다. (문재인 후보의 경우는 TIME 로고가 인물 앞으로 나와 있는 경우다.)

저널에 기고도 많이 하고 책 편집 경험도 풍부한 드 크루즈(Archie D’Cruz)라는 블로거가 지난 해인가, 타임지 표지에 관한 분석을 내놓은 걸 본 일이 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우선 표지 편집은 이런 것이다.

각 표지는 그 인물의 실제 이미지와 커버 디자인의 이미지가 서로 연결되어 보이기 마련이다. 표지 성격이 다 다르고, 표지 인물이 얼마나 유명한지, 유명하면 어떤 식으로 유명한지에 따라 또 다르겠지만, 역대의 TIME 커버 디자인을 보면 그런 편견이 잘못된 가정인 것을 보여준다.
그걸 파악하기 위해서는 TIME이라는 로고의 아치 형태 부위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좋다. 다음은?2014년부터 2016년 5월까지의 표지 이미지들이다.

이것들에 대한 관찰의 핵심은 페이지 꼭대기 부분에서 TIME로고와 겹치는 요소(인물 이미지 등)의 가장자리 라인들이 어떻게 정의되어 있는지를 파악하는 일이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 다음과 같이 명확한 아웃라인으로 처리된다.

그러나 얼굴만 확대 편집 된 경우,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대개 아래의 표지와 같이 (얼굴이) TIME 로고 뒤로 물러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매우 주관적인 감각이 작용하는 곳이며, 이러한 규칙에 대한 예외는 있을 수 있다. 디자이너 입장에서 표지 이미지가 부분적으로 로고를 덮거나 포함할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처리 과정에서 아예 완전히 로고가 가려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TIME과 같이 잘 알려진 출판물의 경우,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다. 만약 잘 알려지지도 않은 잡지를 그렇게 한다면 상대적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그게 무슨 잡지인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나 TIME은 로고 없이도 알릴 수 있다는 일종의 미적 과시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이상이 일반적인 규칙이라면, 그 규칙을 어기는 몇 가지 TIME 표지도 있는 게 사실이다. 다음과 같은 것이다.

첫 번째 것은 TIME 부위가 실제로 페이지에서 덮혀 있지만 이미지에서 얼굴의 깔끔한 가장자리와 위치는 TIME을 잘 연상케 한다. 두 번째 것은, 담배 연기가 TIME의 깔끔한 윤곽을 흐려버리고 있다. 하지만 로고 주위를 소용돌이 치는 것이 연기가 뒤로 가는 것보다는 더 좋은 효과이다.
그리고 세 번째 것은, 프란시스 교황의 앞이나 뒤에 모두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경우다. 이 표지는 로고를 앞에 위치하고 있으나, 2013년 올해의 인물표지에서는 그가 앞에 나와 있다.

§

상기의 드 크루즈(Archie D’Cruz)의 설명은 그야말로 평이한 일반적인 편집 기법에 관한 해설이었다. 내 생각은 다르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 타임즈 표지는 일군의 TIME 디자이너들이 의도를 했든 의도를 하지 않았든, 어떠한 기도(企圖)를 가지고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인물 사진들의 표정의 선택, 포즈의 선택, 그리고 조명의 사용, 이런 것들은 결코 우연히 나오는 표현들이 아니다.

물론 드 크루즈의 말대로 그것들은 그때 그때 다를 수 있고 불규칙한 게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동안의 여러 표지들을 몇 가지 패턴을 상정하고 배열해 볼 때에 어떤 미묘한 유사를 띤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은 설명 가능한 게 아니라, 이미지 그 자체로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우선 첫 번째 보여드릴 배열은 다음 이미지들이다. 이 분들 이미지는 어떤가? 선한가 악한가?
선하고 악한 것은 주관적이며 불규칙하다. 그러나 역광은 일관성이 있다.
빌 케이츠와 푸틴의 역광은 공히 성인의 후광 같지만, 푸틴은 수감자 프로파일 같은 것을 골라 넣고 말았다.

다음은, 아래의 배열을 보시라. 어떤가? 이들은 선한가, 악한가? 이들의 경우는 TIME 로고는 거의 다 일률적으로 가려 있다. 교황은 왜 어두운가? 트럼프 만큼이나 보수 정치가로 알려진 크리스티(Chris Christie)도 TIME 로고가 많이 가려져 있지만(The Boss라고 쓰인 표지) 가장 심각하게 가려 있는 것은 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TIME이다. 아예 철자를 볼 수 없다. 이들의 가린 정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렇다면 가장 아래 좌측의 소녀도 푸틴처럼 독재자란 말인가? 그런 것이 아니다. 말라야(Malala Yousafzai) 라는 이 파키스탄 인권 소녀는 14세의 어린 나이에 탈레반에게 저격당했을 정도로 독재자와는 다른 양상으로 시간(TIME)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들 모두가 하나 같이 시간을 침범하고 있는 도상으로서의 유사인 것이다.

이런 배열도 가능하다. 얼굴의 크기가 비슷하고, 카다피의 피부색만 약간 창백하지만 토운이 대체로 유사하다.
오바마는 잡스와 유사한가? 아니면 카다피와 유사한가? 오바마의 이중성은 우리도 할 말이 많다.

이런 편집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뿔이 왜 보이는 걸까요?)

다음의 경우, 박근혜 대통령은 정면 타이틀 THE STRONGMAN’S DAUGHTER 색과 톤은 좌측 남성과 유사하지만, 그 아래 성공한 여성과는 포즈 면에서 다르다. 대신 트럼프처럼 옆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좌측 장애인 남성은 그 아래의 성공한 여성처럼 정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럼 이들 두 사람은 어떤가?

두 사람은 포즈나 두상 편집의 사이징도 비슷하지만 무엇보다 아직 실권을 쥐지 못한 시점이라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TIME 로고 역시 둘 다 반투명 톤인 점이 유사한 상징의 노릇을 하고 있다.
(두 사람에 관한 취재 기사 내용이나 테마에 있어서도 다소 심심한 것이 비슷하다)

마지막으로는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만델라다.
이 이미지의 유사는 희망이다.
가지 꼭대기의 태극기가 위태로우면서도 희망에 차 있다. 이들의 표정처럼.

아 끝으로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의 타임지 주요 표지 인물 사진을 모으면 다음과 같다. 근데 왜 한 사람이 없는 지는 모르겠다.
내가 못 찾았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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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방금 찾았습니다. 그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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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인물 사진으로는 없고…속지용으로…

55개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 프레임의 환상적인 몽타주

우리가 영화의 가장 첫 번째와 마지막 장면들만 추려서 본다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여기 이 55개 필름의 개폐 쇼트를 나란히 재생해보았다.
오프닝 쇼트 중에서 일부는 최종적인 쇼트와 현저히 유사하지만, 다른 쇼트들은 완전히 다르다. 다양한 테마들을 전달할 목적으로 구현되고 있다.
일부는 진행 과정을 보여주고, 일부는 감소됨을 보여주고, 일부는 영상을 시작하고 끝내는 데 사용된 인상깊은 이미지들이다.
―제작: Jacob T. Swinney

이글 제일 아래에는 이 슈퍼 몽타주에 사용된 필름 목록을 타임 테이블과 함께 볼 수 있다.
오래 전 발표된 작품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로부터 최근 작품으로는 버드맨(Birdman)도 있다.

이 작업을 처음 창안한 스위니(Jacob T. Swinney)가 처음 이 클립들에 관한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은 영화관에서 영화 Gone Girl(2014)을 보면서였다고 한다. 그는 매우 비슷하거나, 혹은 매우 대조적인 개폐 쇼트를 지닌 영화를 선별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만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를 보여주는 필름들을 포함시키기 위해 조금 더 확장하는 방식으로 편집하기로 하고, 기본적으로 이들 개폐 쇼트가 인상적이면 그것을 포함 시켜서 진행했다고 한다.

The Tree of Life 00:00
The Master 00:09
Brokeback Mountain 00:15
No Country for Old Men 00:23
Her 00:27
Blue Valentine 00:30
Birdman 00:34
Black Swan 00:41
Gone Girl 00:47
Kill Bill Vol. 2 00:53
Punch-Drunk Love 00:59
Silver Linings Playbook 01:06
Taxi Driver 01:11
Shutter Island 01:20
Children of Men 01:27
We Need to Talk About Kevin 01:33
Funny Games (2007) 01:41
Fight Club 01:47
12 Years a Slave 01:54
There Will be Blood 01:59
The Godfather Part II 02:05
Shame 02:10
Never Let Me Go 02:17
The Road 02:21
Hunger 02:27
Raging Bull 02:31
Cabaret 02:36
Before Sunrise 02:42
Nebraska 02:47
Frank 02:54
Cast Away 03:01
Somewhere 03:06
Melancholia 03:11
Morvern Callar 03:18
Take this Waltz 03:21
Buried 03:25
Lord of War 03:32
Cape Fear 03:38
12 Monkeys 03:45
The World According to Garp 03:50
Saving Private Ryan 03:57
Poetry 04:02
Solaris (1972) 04:05
Dr. Strangelove 04:11
The Astronaut Farmer 04:16
The Piano 04:21
Inception 04:26
Boyhood 04:31
Whiplash 04:37
Cloud Atlas 04:43
Under the Skin 04:47
2001: A Space Odyssey 04:51
Gravity 04:57
The Searchers 05:03
The Usual Suspects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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