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하게 다르게 변화

어제 은사님으로부터 당신 가정에 있었던 비화를 들었다. 더 없이 행복한 가정이었는데, 사랑하는 딸을 잃은 사연이다(가장 똑똑하고 가장 사랑스러웠다고). 그 뒤로 완전히 다른 가정으로 변했다고 한다. 어떻게 변했을 지는 상상이 (안) 간다. 나라면 견딜 수 있는 변화일까?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그리하여 욥은 그토록 그 두렵고 떨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그토록 번제에 강박을 가졌는지도. 결국 그 이야기가 창조의 프리퀄이 되었다.

세계 속의 나, 인식 방법

우리 인간은 자신을 어디에나 있는 존재로 인식한다(곰곰히 생각해보라). 하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없는 존재임을 인식하게 된다. 이 처럼 뿌리뽑힌 존재로서 ‘나’를 being-in-the-world(세계-내-존재)라고 한다.

아마도 이런 인식 체계가 아니었더라면, 우리의 하나님을 쉐카이나 즉, 어디에나 계시지만 어디에도 계시지 않은 존재로 인식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 나는 가본적 없는 저 아프리카 대륙 혹은 인도네시아의 한 군도에까지 다다라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 없고 여기에 있지만, 한편 여기에도 없는 것만 같다.

이케아 ‘연필거지’, 동아연필은 생각 좀 해봐야

이케아는 매장에 동아연필 놔뒀어야지. 동이 날 턱이 있나…

IKEA-vs-Donga
▲ 이케아 연필
▼ 우리들의 영원한 동아 연필

이케아 ‘연필거지’ 논란, 동아연필(주)는 생각 좀 해봐야 함.
연필 굵기라든지, 특히 색상, 색상의 질감.., 품질..
동아연필은…대체 왜 뎃생에 쓸 수도 없는 4B 연필을 만드는지…

상은 좋은데 형체가 갖춰지지 않았다

박경리가 예비 작가였을 때 김동리를 찾아가 글을 선보이자, 김동리는 그녀의 글이 “상은 좋은데 형체가 갖춰지지 않았다”고 평했다고 한다. ‘상’은 뭐고 ‘형체’는 뭐였을까. 6.25 난리 통에 남편과 아들 잃은 20대 과부인 박경리의 삶으로 치자면, ‘막막함’이 상(像)이었을 것이고, 형체(form)는 ‘욕망’ 내지는 ‘갈망’에 그쳤을 것이다. (아니면 그 반대였을 수도.)
형체가 없기 때문에 혼돈이라고 한다면 형체는 곧 질서이다. 배고픔이 이미지라면 생기(nefesh haya)는 형체이다. 슬픔이나 고통이 이미지라면 기억일 때 비로소 형체이다. 그런 것처럼 분노나 기쁨이 이미지라면 억제일 때 비로소 그 형체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글이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부존재, 형체가 없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 마음에서 질서가 가장 중요하다. 글이 없는 사람은 질서도 같이 없는 것이다. 석박사만 질서 있단 뜻이 아니다. 이름만 쓸 줄 알아도 질서는 잡힌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이름(nomen)이라는 말이 법(nomos)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이다.

* 박경리는 김동리의 충고를 받아들여 당초 시를 쓰려던 생각을 접고 소설로 전향하여 ‘토지’의 작가가 되었다.

형평성

밤 12시 넘어까지 공부하던 아들이 갑자기 뛰쳐나와 질문을 했다. 어떤 남자 교사와 여자 교사가 호신술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여성이 남성의 고환을 터트려 20만원을 물어주었다고 한다. 또 남자 교사와 여학생이 호신술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남섬이 여성의 허벅지를 만지는 바람에 2000만원을 물어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게 이래도 되는 법이에요? 그래서 나는 답하였다.

나는 여기에 답 할 만한 법 지식이 없노라.